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자

글/ 동진(同眞)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속인의 일을 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미래에 참조할 실 예인 것이다. 당신들이 극단으로 나간다면 당신들은 바로 이 한 갈래의 길을 파괴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당신은 얼마든지 당당하게 사회에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또 수련을 한다면 수련인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 원만에 이르러야 할 표준에 부족함이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사람에게 바로 이런 한 갈래 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1]

우리가 수련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우리의 모든 것은 정법과 연결됐고, 우리의 삶, 우리의 일, 우리의 모든 것은 모두 수련을 떠날 수 없으며, 수련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수련을 잘한 대법제자는 일과 생활에서도 반드시 더 잘할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직원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이 일을 잘해야 하며, 가정에서는 부모이고 자식이라면 자신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 일과 가정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수련 중에 갑자기 사심 없는 사람으로 변할 수는 없다.

나는 이전에 거의 4년 반 동안 한 의류회사에서 관리 업무를 했는데, 4년이 넘는 동안 휴일은 겨우 13일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매일 일하는 시간과 길에서 쓰는 시간까지 합쳐 최소 12시간이 됐으며, 심지어 14시간이 될 때도 있었다. 출근 시간이 아침 8시 20분이었다. 편도 10km 거리를 한 시간 동안에 가기 위해 나는 7시에 집에서 출발해 20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한번은 일주일 동안 폭설이 내렸는데 두 번이나 자전거 타이어에 쇠못이 박힌 적이 있다. 퇴근할 때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는 자전거를 고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출근해서 가게를 돌려면(모두 여섯 개의 가게가 번화가에 있어서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음) 또 자전거를 타야 하기에 나는 자전거를 밀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좀 늦게 출근하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사장님에게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회사에서 출근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사장님이 물으면 그냥 자전거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고 하면 이유는 충분하다. 시간에 맞춰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것이 평범한 사람 중의 일인 것 같지만 실질은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오늘 이 일에 대해 자신에게 이유를 찾는다면, 내일은 수련을 느슨히 하는 수많은 이유를 찾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일에 있어서 결코 나 자신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일주일에 세 번을 집에서 두 시간 이상 일찍 나와 자전거를 끌고 10km를 걸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도착했다.

일과 생활에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할 수 있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는 사고방식을 형성하면 수련에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도 잘할 수 있고, 생활 속의 일도 잘 처리할 수 있으며, 수련의 길도 바르게 갈 수 있다.

법을 외우는데도 이 방면의 체득이 있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두 쪽씩 외우려 했다. 만일 오늘 외우지 못하면 내일은 4쪽을 외워야 한다. 때로는 머리가 맑지 않고, 때때로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울 때도 있었으며,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심지어 어떤 힘이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즉시 의지력을 강화해 젖은 수건으로 관자놀이를 감싸면서 흔들림 없이 끝까지 외워 결국 피로와 졸음 등 모든 교란을 이겨냈다. 법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우면서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몸 전체가 에너지로 둘러싸였다.

우리는 때때로 타성이 올라와 법공부와 연공이 느슨해지는 것을 자연 상태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안에는 반드시 사악의 교란이 있으므로 우리가 의지력을 강화하면 모든 교란 요인을 해체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매주 한 번 ‘전법륜’을 통독하겠다고 목표를 정했다면, 한번 통독하게 되면 여유 시간이 더 있더라도 임무를 완성했다고 긴장을 늦출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일주일에 ‘전법륜’을 두 번 통독하겠다고 정하면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두 번은 꼭 통독할 수 있다. 사람의 잠재력은 무한하며, 대법제자의 잠재력은 더욱 무한하다. 우리가 항상 깨어 있고 정법과 수련에 강한 의지력이 있으면, 모든 고난을 반드시 이겨내고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사업을 이루려 해도 모두 견지해야 하는데 하물며 수련은 더 말할 것 있는가! 많은 일은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해 중도에 주저앉는다.

인류 사회는 대법제자의 하나의 수련장인데, 우리는 이 장에서 걸어 나와 우리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구해야 한다. 오직 수련과 일, 생활 속에서 한시도 자신을 늦추지 않아야만 사악이 틈을 탈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감옥, 노동교양소, 세뇌반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밖에도 사악한 교란과 박해가 아주 많다. 그것들은 종종 대법제자가 버리지 못한 집착을 이용해 그것을 연화해 수련자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수련인의 집착을 증폭시켜 마지막에는 정진하려는 당신의 의지를 꺾는다. 우리는 항상 법에서 깨어 있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에서 더욱 경계해야 하며, 늘 정념으로 온갖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처음처럼 정진하려는 의지가 결코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과 신의 사이에서 한 생각 차이로 사람에게 끌려갈 수 있다. 때때로 스스로 느슨해져 단지 사람 이쪽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뿐인데, 아마도 이 ‘조금’이 홍수에 제방을 무너뜨린 그 개미구멍일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브라만 제자가 산속에서 단독 수련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아주 열심히 수련했다. 하루는 한 사냥꾼이 사슴 한 마리를 쏘았는데 그는 그 사슴을 보호했다. 그는 산속에서 혼자 쓸쓸했기에 이 사슴을 키우게 됐는데 나중에는 이 사슴을 가장 친한 친구로 삼아 많은 정력을 이 사슴에 쏟아부으면서 정진의 의지를 늦췄다. 그는 이 사슴이 죽은 후에는 온종일 이 사슴을 생각했으며,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불법(佛法)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슴을 생각했다. 결국 죽은 후에 사슴으로 환생해 수년간의 수련을 한 번에 망쳤는바 교훈은 심각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방면의 교훈은 너무나도 많다. 많은 대법제자가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고, 병업관(病業關)인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법리적으로 인식해야 하며, 교훈에서 성숙해 정법노정의 매 걸음을 잘 걸어야 한다.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시시각각 대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늦추지 않으면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헤치고 마지막 정법의 길을 잘 갈 수 있다.

약간의 얕은 깨달음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2021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11/4010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