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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를 벗어나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고해에서 허덕인 지 얼마던가

30살 나던 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하고 여섯 살 난 딸을 데리고 혼자 셋방살이를 했다. 남편이 재혼해 아들을 낳으려 하기에 나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비록 이혼할 때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헤어졌지만, 나의 마음에는 화와 원망이 가득했다. 그가 배반한 것, 재산을 숨긴 것, 딸 양육비를 하루 1위안을 주고 아파트를 차지한 것을 원망했다. 남편을 출소하게 하려고 모든 것을 지급하고 갖은 고생을 다 겪었지만, 그는 출옥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우리 모녀를 버린 것에 더욱 증오했다.

이혼한 후 나는 매일 눈물로 보냈다. 매번 셋방은 비가 새지 않으면 바람이 들어왔다. 겨울밤에 눈보라가 치자 창호지가 바람에 찢겨 바람이 들어와 한밤중에 일어나 창문을 막았다. 큰비가 오면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비를 무릅쓰고 집에 달려갔다. 딸이 창문을 닫을 때 깨진 유리에 발이 찔려서 피가 온 바닥에 흘렀고, 나는 큰비를 무릅쓰고 아이를 업고 진료소를 찾았다.

20여 년 동안 우리는 여기저기 이사하고 집을 임대했다. 모두 아홉 번 이사했다. 딸이 저녁에 열이 나면 나는 아이를 업고 링거 맞으러 갔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채소 시장에 가 채소를 주어 집으로 갖고 와 만두를 빚었다. 겨울에 임대한 시멘트 집은 따뜻한 구들이 없고 전기담요가 없어 저녁에 딸을 품고 찬 온돌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딸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아이의 아버지는 한 번도 딸 보러 오지 않았다. 딸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날 큰 눈이 내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나는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로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하자 아이 아버지는 차가 고장 났다고 말했다. 매번 이 일이 생각나면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고해에서 허덕이며 정신과 신체가 붕괴의 변두리에 이르자 나의 심장은 나빠졌고 혈색소도 최저치가 되었으며 조혈 기능은 거의 쇠약해져 손발이 마비되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멈추지 않으면 넘어지고 걸으면 솜을 밟는 것 같았고 무력했다. 몇 걸음 걸으면 숨이 차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안색이 누르스름하다가 검은빛이 났다. 출근해서 앉아 있다가 눈앞이 캄캄해지며 혼미해서 넘어졌다. 의료실의 여의사는 내가 이제 곧 지전(燒紙. 죽은 자를 위해 태우는 가짜 돈)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체는 전남편에 의해 야기된 것이었다. 나는 매일 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1999년 봄은 나의 일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때 나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그녀의 집에서 죽을까 봐 두려워 나에게 책을 보라고 주었다. 나는 “세상에 운명을 바꾸는 책이 어디 있나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듣고 급히 말했다. “아이코! 당신은 정말 제대로 물어보았어요. 이 책은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내가 책 제목을 보니 ‘전법륜(轉法輪)’이었다. 나는 심심한데 책이나 보자고 생각했다.

저녁에 책을 보고 또 보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희미해졌다. 볼수록 책의 이치는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체 고난은 생생세세의 업력이 조성한 것이며 고생을 겪는 것은 죄업을 소거(消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실과 득(失與得)의 관계를 알았다. 나는 줄곧 새벽 2시까지 책을 보았다. ‘전법륜(轉法輪)’은 나의 모든 미혹을 풀어주었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전남편과의 인연 관계를 알았다. 나는 설령 신선이 와서 나에게 권해도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몇 년 동안 마음속에 커다란 바위 하나 눌러 놓은 것 같았는데, 무거워서 매일 거친 한숨을 내쉬었으며 7년 동안 웃지 않았다. ‘전법륜(轉法輪)’은 다년간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책 중의 언어는 백화(白話) 같지만, 종래로 들어본 적이 없는 이치이다. 그는 천서(天書)인가? 신서(神書)인가? 마지막에 파룬따파(法輪大法)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는 사부님 당시의 모든 법을 보고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고해에서 벗어나게 구하려고 오신 것이다. 내가 이전에 겪은 고생은 모두 내가 법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시련 중에서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다

수련한지 반년도 되지 않아 사악(邪惡)은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개시했다.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1999년 12월 16일 나는 아이를 잘 맡겨두고 수련생 두 명과 함께 베이징에 갔다. 우리는 기차역에 도착해 표를 샀다. 매표원은 차가 조금 전에 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상의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우리는 즉시 택시를 잡아 기차를 쫓아가기로 했다. 기차가 다음 정류장에서 정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택시 운전사에게 빨리 가자고 했다. 택시가 나는 듯이 20리를 쫓아가자 기차가 멈춘 것을 보았다. 우리가 기차에 올라 보니 승객 한 명만 있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한 전용 열차 같았다.

차에 오르자 사부님께서는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기침이 끊임없이 나왔고 가래도 끊임없이 나왔다. 휴지 한 두루마리를 하룻밤 사이에 다 사용했다. 새벽에 톈진에 도착했다. 이튿날 기차를 타는데 베이징에 가는 사람은 신분증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신분증이 없었지만, 기차를 탔다.

우리 세 사람은 종래로 먼 길을 떠난 적이 없었다. 가는 길에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늘 있었다. 우리는 순조롭게 톈안먼 광장까지 도착했다. 곳곳에 대법제자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고 그 광경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또 수많은 대법제자가 경찰에게 잡혀 경찰차에 태워졌다. 차에 사람이 차면 사이렌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우리가 광장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사복경찰이 막아서서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다. 나는 “광장에 사람마다 올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 고 물었다. 한 무리 사람들이 다가와 우리를 한 차에 밀어 넣었다. 차 안에는 대법제자들이 꽉 찼다. 그중 한 여 수련생이 격동되어 말했다. “조금 전 포륜(抱輪)을 할 때 광장이 온통 붉은 빛인 것을 보았어요.”

우리는 한 파출소에 끌려갔다.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베이징에 왜 왔어요?” 나는 “대법의 공정함을 말하기 위해 왔어요. 대법과 사부님의 구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그 경찰에게 그만하라고 하면서 누가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결과 우리는 현지의 베이징 주재 사무소에 끌려갔다. 방안에 대법제자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몸수색을 당했고 그들은 돈을 가지고 가버렸다. 나는 또 밤새 수갑을 찼었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시련이 끝이 없었다. 경찰은 한 번 또 한 번 집을 수색하고 나를 파출소에 데려갔다. 여름에 반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모기가 많았다. 그들은 나를 쇠 침대 옆에 수갑을 채웠다. 모기가 팔을 물어 일련의 큰 물집이 생겼으며, 가렵지만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면 수갑에서 소리가 났다. 모기장에서 자던 경찰이 나를 욕했다. 가련하게도 이 경찰은 42세에 응보를 받아 죽었다.

한 번은 ‘610’에 붙잡혔다. 그들은 나를 철 의자에 수갑을 채워놓았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온종일 수갑을 채웠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자료는 어디에서 왔는가?” 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흉악하게 생긴 두 사람이 큰 가죽 구두를 신고 양쪽에서 각각 나의 어깨를 발로 찼다. 두 어깨는 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나는 조금도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후에 생각해보니 당시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여기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사부님의 도움을 청했고 거의 매 시각 발정념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다. 감옥 의사가 와 심장을 검사하고 눈을 뒤집어보고 맥박을 재더니 소리를 질렀다. “좋지 않아요! 맥이 잡히지 않아요. 빨리 병원에 보내세요!” 그리고 재빨리 나의 입에 커다란 약 한 알을 넣어주었다. 나는 슬그머니 뱉었다. 나는 신체가 괜찮으며 단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연공인은 맥이 없고 혈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에 그는 당연히 맥을 잡지 못했다. 몇몇 사람이 나를 들고 차에 올랐다. 병원에 도착하니 산소를 공급하고 수혈을 했다. 나는 거기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분주히 보내더니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병은 매우 심각해요. 의사는 입원을 건의해요.” 나는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610’에 보고하더니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들이 간 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신을 신고 수련생에게 편지를 주려고 달려갔다.

나는 두 차례나 구치소에 납치되어 갔다가 이튿날 나왔다. 한 번은 구치소에서 재판을 열어 보호관찰 1년 반을 선고했다. 나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감옥 문을 나설 때 ‘610’ 요원을 만났다. 그는 매우 놀라면서 “정말 이상하다. 당신을 조금 전에 보냈는데 나왔네.”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한다. “붙잡힌 그 파룬궁(수련생)이 또 나왔어요. 아마 그 집에 뒤를 봐주는 사람이 든든한가 봐요.” 나는 듣고 속으로 말했다. ‘내 배후가 누군지도 보지 않네. 나의 사부님의 뿌리는 우주에 박혀있다.’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파출소, ‘610’ 요원이 불법으로 우리 집 문을 열고 난입했다. 그들은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집을 수색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딸이 판지에 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발견하고 나를 파출소에 납치해갔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아직도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나요, 장쩌민이 국제법정에 고발된 것을 알고 있나요, 대법을 박해하면 보응을 받아요!” 그 경찰은 책상을 두드리며 고함쳤다. “다시 말하면 때리겠다!” 나는 그를 정시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나갔다. 그는 밖에서 전화로 상급에 보고하고 좀 있다가 나를 풀어주었다. 정말 사부님의 말씀처럼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1]

유암화명, 고진감래

비바람 속에서 대법을 견정히 수련한 지 20년이 되었다. 그 몇 해 동안 중생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대법 진상을 알게 하려고 나와 딸, 그리고 주위의 수련생은 저녁에 나가 스티커를 붙이고 대법 자료를 배포했다. 하루 저녁에 여러 주택 단지를 배포할 수 있다. 겨울에 나와 딸이 자료를 붙일 때 풀을 칠하는 솔이 얼어서 딱딱해지자 우리는 손으로 벽, 전봇대에 풀을 발랐다. 손이 얼어 마비되었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행복했다. 금세에 대법제자가 된 것이 정말 행운이다!

수련하면서 사부님께서는 나의 신체를 끊임없이 정화해 주셨다. 최근 관문을 지날 때 온몸이 숯불처럼 뜨겁고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근육과 뼈가 아프고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고 땀에 흠뻑 젖었다. 또 설사하고 큰 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나 3, 5일 후 좋아졌다. 며칠 지나자 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지금 나의 몸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생겼다. 피부는 뽀얗기도 하면서 붉은빛이 돌고 마음은 유쾌하다. 매일 사존의 불은 호탕에 푹 빠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성이 제고되면서 화가 없어졌고 미움도 없어졌다. 지금 나는 아파트에서 산다. 또 퇴직금도 있다. 딸은 외국 유학을 마친 후 돌아와 베이징의 세계 500대 기업 순위의 국제 회사에서 근무한다. 대법을 배운 우리는 복이 있다.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지만, 오직 수련을 잘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사부님의 설법을 복습하자. “천지개벽에도 우주정법의 홍대한 천상(天象)이 없었고, 천지개벽에도 대법제자는 있어본 적이 없다. 사부가 이 휘황(輝煌)을 개창했는데, 당신들을 이런 역사적인 시각으로 이끌어 주었다. 당신들 자신을 잘 수련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당신들 자신을 한껏 펼쳐 보이고, 더욱 잘하라!”[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사도은(師徒恩)’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115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5/3990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