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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의 병업 상태 고비를 도와 넘긴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들 몸에 크고 작은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마음의 우려가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련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들이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나는 염(念)을 움직여 그들을 우리 이곳에 잠시 머물게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요양원이라는 편리한 조건이 있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또 교란을 받지 않고 대량의 법공부, 발정념, 연공, 심성에 나타난 문제를 교류할 환경이 제공된다. 나중에 잇달아 이러한 수련생이 이곳에 입주했다.

장기간 많은 이러한 수련생과 접촉하면서 다음의 문제를 발견했다.

1. 법공부가 너무 적고 마음에 파고들지 않게 하며 법에 서서 문제를 인식할 줄 몰랐다

예를 들면 입주한 수련생 몸에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난 것에 대해 그들은 즉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는 가상이지 병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는 구세력의 박해로 저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등등이다. 비슷한 이러한 인식은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라고 여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인체 수련의 두 큰 층차의 변화다. 왜냐하면 世間法(쓰젠파) 수련 과정 중에서 사람의 신체는 모두 끊임없이 정화(淨化)되고 끊임없이 정화되어, 世間法(쓰젠파)의 최고 형식에 이르렀을 때 신체는 이미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出世間法(추쓰젠파) 수련,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체(佛體)수련이고”[1]

우리가 현재 만약 추쓰젠파 수련이라면 불체 수련으로서 몸에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현재 아직 쓰젠파 인체 수련이라면 긍정코 신체를 정화하는 일종 상태의 표현이 있다. 물론 이런 상태의 표현 형식은 다양하며 역시 제자의 정념을 고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난 수련생은 고통 속에서 심지어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관장하고 계시는지, 병을 얻은 게 아닌지 의심하며 정념이 전혀 없다. 소극적으로 감당하는 중에서 끌다 보니 1, 2년이 지났고, 또 여러 차례 입원했거나 어떤 이는 입원할수록 심해졌다. 법을 실증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조성했고 구세력이 배치한 올가미에 떨어졌다. 사실 고험 중에서 사부님께서 제자에 대한 배치는 쓰젠파에서 신체를 정화하고 그중에 구세력이 신체에 대한 박해의 요소가 있더라도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시어 제자의 정념이 충족한 정황에 따라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층차를 제고해 주신다. 이는 진정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한 수련생이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다리가 아픔은 병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병’이란 이 글자를 꺼내기만 해도 나는 듣고 싶지 않다.”[1] 사실 ‘저 다리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거랑 ‘저에게 병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만약 수련하지 않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부르며, 현재 우리가 수련했기에 명사는 신체 정화라고 부른다. 신체 정화는 법에서 인식이며 일체 좋지 않은 요소를 정화하고 제거한다. 목적은 제자의 오성을 제고하고 공을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삼계 내의 생명에 속하지 않으며 삼계 내의 어떠한 사람과 물질도 우리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만약 사람과 같은 생각일 때 사람의 요소 견제와 제약을 받는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에서 우리에게 신체 정화라고 알려주셨다.

나의 몸에 여러 차례 고비를 넘는 일이 나타났는데 매번 우선 내보내는 일념은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거야. 몸에 공이 나오겠네.” 아이고, 그리고 재빨리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찾으며 혹은 사상에 어떤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찾는다. 만약 있으면 즉시 자신을 바로잡으며 잠깐 후면 좋아졌다. 나는 단지 이러한 것을 알고 있다. 관, 어려움, 모순은 제자의 정념을 고험하는 것이며, 이때 대법을 생각하는 외에 나는 종래로 기타의 것인 구세력인지 무엇인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의 사상 중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에너지 마당이 강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교류를 통해 이곳에 입주한 수련생은 법리를 깨달은 후 관념이 바뀌어 안으로 자신의 수련 중에서 부족한 점을 찾았으며 법공부에서부터 착수했다. 수련생들은 오전, 오후, 저녁에 단체로 법공부하고 또 연공과 발정념, 자투리 시간에는 ‘홍음’을 외웠다. 가정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정력을 분산시키지 않았으며 대량으로 법공부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배우는 자는 스스로 변하니 반복적으로 통독함이 이미 도(道)중에 있는 것이다. 사부는 법신(法身)이 있어 조용히 보호해 주니, 꾸준히 견지하면 훗날 반드시 정과(正果)를 이룰 것이다.”[3]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따라서 마땅히 많은 시간을 법 공부에 써서 재빨리 제고해야 한다. 사상 중에 많이 담을수록 변화가 빠르게 마련이다.”[4] 이렇게 수련생에게 빠른 변화가 나타났고 착실히 마난을 넘겼다.

수련에 입문할 때부터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명을 개변해 주셨고 우리는 반본귀진의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에서 한층 한층 돌파했고 상응하는 고비마다 고험과 시험이었으며 제자의 심성 위치를 검증한 것으로 우리가 법에 서서 인식해야 사람에서부터 뛰쳐나오고 이탈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몸에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날 때 어떤 염두를 움직이는가가 극히 중요하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신체 정화라고 알려주셨으므로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된다. 사실 돌이켜보면 걸어온 이 길은 신체 정화의 과정이었고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었으며 사상 경지가 향상되는 과정이었고 사람에서부터 뛰쳐나오는 과정이었다.

2. 심성을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집착을 증폭시켰다

한 노년 수련생은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날마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사악을 폭로하는 일은 더욱 앞장서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넘어져 반신마비 상태가 나타났다. 일 년 후 장기가 쇠진돼 이곳에 입주했다. 그는 어째서 자신의 수련이 이 모양으로 되었는지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나는 그녀와 안으로 찾는 교류를 했다. 가정, 사회, 개인 수련 정황과 법공부 정황에서 그는 늘 강세여서 자신이 결정한 대로 하려 했다. 다른 사람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고 자아를 강조했다. 남편에 대해 업신여겼다. 남편이 술 담배를 하고, 화를 잘 내며, 게으르고, 일마다 곳곳마다 자기 뜻에 따르지 않아 마음속에 원망으로 가득해 다투기까지 했다. 이런 상태는 쟁투심이 매우 강한 것으로 선한 마음은 더욱더 없었다.

내가 이렇게 교류했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므로 곳곳마다 사람과 선하게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가정환경은 우리가 착실히 수련하는 장소이며 남편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생각해봤는가? 사실 남편은 우리를 도와 심성을 제고해 준다, 우리 심성 위치를 고험하는 것으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잘 파악해 심성을 지켜 원망도 원한도 없어야 한다. 사람의 이치로는 남편이 잘못했을 것이나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법의 우리에 대한 요구는 속인을 초월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5]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6] 심성을 제고해야 하며 사람의 사상 인식을 초월해야 한다. 어찌 사람과 같은 견식을 하겠는가, 어찌 사람과 옳고 그름을 논하겠는가?

노년 수련생은 개인 수련에 문제가 나타난 것과 일만 많이 했지 법공부에서 따라가지 못했음을 인식했다. 하여 대량으로 법공부하기 시작했고 몸은 매우 빨리 회복됐다.

3. 부정적 사유로 매우 좋지 않은 물질을 형성했다

잠시 입주한 수련생들의 경우, 많은 정황에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난 안 돼, 어떻게 하지? 책을 보면 똑똑히 보이지 않고, 배워도 알 수 없으며 외울 수 없고 늘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한다…… 등등이다. 생각해보자, 사람의 사상에서 형성된 것은 물질이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도 물질이 아니겠는가? 부정적 언어, 부정적 사유로 형성된 물질이 시간이 길어지면 매우 좋지 않은 물질을 형성한다. 그것은 수련 중의 저애력이 아니겠는가? 무의식중에 우리가 넘어야 할 고비를 가로막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정념을 상쇄하기에 좋지 않은 생각은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방면에서 잘 수련하지 못해 흑색 물질을 발산하고 있으며 이 역시 장기적으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제고하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이다.

수련은 엄숙하며 우리는 마땅히 정념을 강화하고 법에 부합되는 인식을 강화해야 하며 대법의 바른 법리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굽은 길, 넘어지는 것을 피면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원래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나 몹시 어렵게 여기는데 이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수련인은 계속 정념으로, 바른 법리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대법의 위덕과 기적이 현현할 수 있다. 원래 모든 고험은 제자가 정념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것으로 사실 대량의 법공부, 법 외우기로 정념을 강화할 수 있다.

4. 다수가 법공부에서 졸았다

잠시 입주한 수련생 중 다수는 법공부할 때 늘 책을 떨구거나 책을 보면 졸려 스스로 매우 고민했으나 어떻게 개변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 법공부를 잠깐 하면 잠들었고 하루에 단지 한 강의를 공부했었다. 입주 후 오전, 오후, 저녁에 대량의 법공부를 하여 마음이 청량(清亮)해져 며칠 후 졸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 왜 단체 법공부인지 깨달았다. 단체 연공과 교류, 단체 법공부의 에너지장이 졸림의 습격을 제거했다. 졸릴 때 잘 것인지, 법공부를 견지할 것인지, 만약 나는 자지 않을 것이다, ‘졸림’의 말을 듣지 않겠다, 그렇게 확고한 의지로 잠을 자지 않으면 ‘졸림’은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며 떠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정 정념을 잘할 수 있다.

5. 젊은 수련생이 바쁜 일에 지쳐 헤어 나올 줄 몰랐다

직장, 사업의 바쁜 일로 정력을 너무 크게 소모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수 없었으며 세 가지 일에서 담담해졌다. 이렇게 장기간 지나 몸에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으나 수련인이라 병원에 가는 것이 적합하지 않고, 잘 수련하려 해도 그 바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에 소비가 크고 또 나가야 할 돈이 있다고 하면서 마음에서 관계를 바로잡지 못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고 있다.

우리는 함께 교류했다. 우리가 세상에 내려올 때 사부님과 맺은 서약, 우리가 억만 차례 내려오며 천백 번 찾은 대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명리정(名利情)에 묶여 돌아갈 길을 잃었다. 우리는 자신이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임을 기억해야 하며 중생 구도는 우리의 책임과 사명으로 큰 재난이 닥칠 때 중생이 구도 될지 여부는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린 큰일임을 생각해야 한다.

대량의 법공부, 법 외우기를 통해 수련생들이 분발하기 시작했고 정념 정행으로 사존께 보답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拜師)’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19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5/3834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