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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佛恩)에 푹 빠진 구순 노인

글/ 지린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만 구순인 내가 금생을 되돌아보니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하에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너무 감사하다! 아래 불은(佛恩)에 푹 빠진 나의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1)

나는 동북 시골에서 태어났다. 집에는 방 두 개만 있을 뿐 땅이 없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이 나를 돌봐주었다. 그러다가 삼촌에게 아들이 없어 나는 삼촌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자연스레 말수가 적고 일을 많이 했다. 고생과 가난이 내 반평생을 따라다녔고 한 번도 무엇을 바란 적이 없었다. 스무 살에 결혼 할 때 형이 나에게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묻자 나는 모자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결국 이것도 사주지 않았다.

결혼하고 반년 뒤, 나는 징병으로 끌려갔고 부대를 따라 해구로 갔다. 이렇게 8년 일하다가 전역해 지방으로 왔고 혼자 일하며 일가 일곱 식구를 먹여 살렸다. 월급을 적게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평균을 내니 해마다 회사 빈곤보조 대상에 속했다. 만약 습관이 박힌 것이 좀 있다면 담배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을 때 종이를 잘게 잘라서 담배 잎처럼 피웠다. 평생 고생하고 일만 하면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지만 누구에게 미움을 사지도 않았고 다들 나와 지내기 좋아했다. 사람은 근면 성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한 평생 고생하고 손해만 보았지만 한 번도 따지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집에서, 회사에서, 친척이나 친구 혹은 이웃들을 모두 이렇게 대했다. 다투지 않았고 이러쿵저러쿵 마구 논하거나 남의 흉을 보지 않았기에 어디에서든 소문 난 좋은 사람이었다. 어느 한 번 입쌀을 나눌 때 한 트럭 가득 입쌀이 와서 차에서 내려 안으로 메고 가야 하는데 다들 웃고 떠들기만 했고, 메고 가도 서로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한 번 또 한 번 입쌀을 날랐는데 다들 이 한 트럭에서 내가 절반은 날랐다고 말했다. 일만 좀 한 것으로 뭐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60살에 퇴직했고 아이들도 결혼하고 자립해 경제 조건이 좋아졌다. 이치대로 말하면 이젠 편안히 복을 누려도 되지만 60살부터 70살, 이 10년이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 반평생 겪은 고생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병들이 하나하나 늘어나 간, 폐, 위 등 장기에 모두 병이 생겼다. 큰 아들이 의학을 배우고 의과대학에 출근하기에 진찰 받기가 쉬워지고 약도 적지 않게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 고통은 정말 죽기보다 못했다.

(2)

일흔 살 되던 해인 1997년에 내 상황을 알게 된 한 시골 친척은 ‘전법륜’ 한 권을 아내를 통해 인편으로 보내주었다. 며칠 보고난 후 말씀마다 내 마음에 다가왔고 마음이 그토록 홀가분하고 신체에도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인민광장 연공장에 찾아가 연공을 배우고 저녁마다 법공부 팀에 참가했다.

연공을 시작하자 알록달록한 각종 밝은 점이 눈앞에서 반짝거렸다. 사부님께서는 내 천목을 열어주셨고 팔을 들자 뜨거운 에너지를 온 몸에 쏟아 붓는 것 같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 주신 것이다. 포륜(抱輪)할 때 바로 입정 상태에 들어갔고 텅 빈 것처럼 아무 것도 없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즉시 나를 수련 상태에 들어가게 하셨다.

보름이 지나자 온 몸의 병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얼굴에 가득했던 주근깨가 없어졌으며 피부가 새하얗게 갓난아기처럼 변하는 등 큰 변화가 발생했고 다들 너무 부러워했다. 나는 예전부터 고생을 잘 견디고 손해를 보아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기에 다들 나보고 근기가 좋다고 했고 이 방면의 시련이 아주 적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해 불끈 화를 잘 냈기에 이 방면 수련에 주의를 돌렸고, 20년 수련하면서 딱 한 번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이 법은 너무나 커서 진선인(眞善忍)을 동시에 수련하기에 인(忍)을 해내지 못하면 진(眞)과 선(善)도 수련해내지 못한 것이다.

다들 이러한 변화를 보았고, 특히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은 내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대법의 위력에 놀라워했다. 나 역시 꾸준히 20년 동안 견지하면서 연공과 법공부를 빠뜨린 적이 없었고 많은 법들을 외울 수 있었다.

(3)

하지만 나이가 많고 게다가 질병 때문에 법을 얻었기에 오랫동안 형성된 관념이 아주 강했다. 특히 장기간 시달렸던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이 방면의 시끄러움이 좀 많았다.

작년 입추 때, 날씨가 추워지자 나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연말까지 지속됐다. 그날 큰 아들이 와서 내가 이렇게 기침하는 것을 보더니 예전에 의심했던 폐암을 떠올리며 나보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자고 했다. 아들이 의사여서 그의 의견을 꺾지 못했고 게다가 나 역시 마음이 확고하지 못해 아들과 함께 병원에 갔다. 검사해보니 폐에 염증이 생겨 입원해 주사를 맞아야 했다. 며칠 주사를 맞은 후 다시 검사해보니 나아지기는커녕 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더 심해졌다. 계속 치료받으니 또 무슨 전염병에 걸려 전염병 병원에 가서 격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때 팔다리도 잘 움직이지 못했고 갈수록 더 심해졌다. 며칠 앞두고 곧 설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대법을 수련하는 딸은 나보고 집에 돌아가 설을 보내자고 했고 연말이라 다들 바쁘니 그녀가 나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이에 가족들은 모두 동의했고 집에 온 후 아들은 나에게 약을 한 아름 주면서 제때에 약을 먹으라고 당부한 후 각자 자기 일을 보러 갔다.

내가 유일한 어른이기에 설날이면 해마다 우리집에서 설을 보냈고 그야말로 아주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전염 기간’이어서 큰 아들은 친척들에게 ‘격리명령’을 선포해 누구도 오지 말라고 했다. 우리집은 대가족으로서 모이면 4대가 한 자리에 있고 식구가 몇 십 명이다. 이번에 그들은 아들 집에서 설을 보냈고, 아들딸들이 모두 잘 살아 설맞이 용품을 보따리째, 상자째로 많이 사서 우리집 문 앞에 놓고 전화로 나에게 문안했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사람이 오지 않으니 환경이 조용해 나와 딸은 조용히 법공부, 연공, 발정념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법을 얻은 지 20년 가까이 되고 예전에 있던 수많은 병들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입원치료를 하지 않고 모두 나았다. 하지만 이번에 입원하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별의별 선진적인 설비로 다 검사받았지만 갈수록 더 심해졌고 염증이 사라지기는커녕 구멍까지 생기고 전염병에 걸려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됐다. 왜 이러한가? 단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수련했기에 사부님께서 내 병을 모두 없애주신 것이다. 수련자에게 무슨 병이 있단 말인가? 이건 내가 구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나는 올해 아흔으로서 만약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목숨도 없었을 것이고 현재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목숨은 모두 대법이 준 것이다. 뭘 내려놓지 못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생사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마음을 확고히 하자 며칠 뒤 증상이 사라졌다. 아들이 와서 나에게 약을 먹었냐고 묻자 나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며 약봉지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아들은 화를 내며 바로 누나를 찾아갔고 무슨 결과가 생기면 누나에게 책임을 묻고 누나가 책임지게 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아들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재검사하러 갔고 그때 나는 속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검사 결과 염증이 사라지고 구멍도 없어져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아들은 실증과학만 믿기에 잘못 진단했다고 스스로 변명했다. 고집이 세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상하다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 일은 가족 중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다들 너무 불가사의하고 신기하다고 여겼다. 사실 앞에서 파룬궁이 너무 신기하다는 사실을 승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4)

신기한 일들을 얘기하자면 아주 많다.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여러 해 동안 딸은 두 차례 노동교양을 당했고 그때 경찰은 기세등등하게 딸 방을 수색한 후 내 방에 왔다. 내 방 궤짝 안에 ‘9평공산당’ 100여 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수련생이 방금 가져온 것이고 나는 천으로 그걸 막았다. 경찰은 방에 들어온 후 궤짝을 한 번 열어 보았을 뿐 천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전향하지 않았다고 가족들이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런 걸 상관하지 않고 매달 두 번씩 모두 보러 갔다. 난폭한 감옥 경찰은 가족들에 대해 태도가 다 좋지 않았지만 나만 보면 무례하기는커녕 웃으면서 말했다. “전향하지 않은 사람은 면회를 못하지만 할아버지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딸을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딸을 만나게 해주셨고, 그녀를 격려해주고 법에서 확고히 수련하며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도록 배치해주신 것이었다.

대법 수련이 나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기에 나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어디로 가든 진상을 알렸고 당당하게 나의 인생사와 대법을 수련해 심신이 혜택을 입은 사례를 들려주었다. 내가 산 증인이기에 누구나 듣기 좋아하고 믿었다. 나는 가방을 메고 아파트마다 자료를 나눠주었고 어디든지 모두 다녔다. 지금 높은 빌딩에 들어가려면 카드가 있어야 하고 층마다 모두 제한하기에 나는 자료를 메고 1층부터 18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지만 힘들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배포했는데 아흔 노인이 신체가 건강하고 손발이 날렵했다.

어느 날, 장을 보러 갔다 돌아오다가 아파트 아래에서 이웃집과 얘기를 나누었다. 목소리가 아주 커 6층에서 내 말을 똑똑히 들은 딸은 내가 집에 들어서자 화를 내며 말했다. “아버지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나요?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세요.” 부동산에서 이런 말들을 들을까 봐 그녀가 걱정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다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내가 아흔이 되어도 이처럼 건강하고, 날파람 나게 걸으며, 젊은이 못지않게 자전거를 잘 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부가 뽀얗고 붉은 빛이 돌아 어린애 같고, 검버섯이 없고 주름이 아주 적으며, 온통 백발이던 머리가 모두 검게 변하고, 기억력이 좋고 사유 반응이 빠르며, 말할 때 더듬거리지 않았다. 다만 왼쪽 귀가 조금 어두울 뿐이다. 아흔인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해 젊음을 되찾았다.

내 또래의 전우, 동료들이 이젠 거의 살아있지 않고 한두 명이 있다 해도 침대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은 내 현재 상황이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이 할아버지 보세요. 늘 싱글벙글 웃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왜 기쁘지 않겠는가? 이토록 좋은 대법을 얻었고, 아흔까지 살면서 목숨을 몇 번 건졌는지 모른다. 누가 준 것인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대법이 준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3524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