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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하는 중에서 수련한 체험

[밍후이왕]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거의 20년이 됐다.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은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강화되어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교란과 번거로움을 돌파하는 중에서 다시는 과거처럼 당황하지 않고 마음이 넓어졌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감당하고 얻은 것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성과가 눈앞에 선하다. 확실히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된다.

1. 고난 중에서 스스로 협조 중의 수련을 선택하다

나는 1998년에 수련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현지 보도원과 노수련생들은 연이어 불법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당시 나는 협조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법에 대한 굳건한 정념과 정신(正信) 및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이 나를 지탱해주어 사악이 미쳐 날뛰는 그 시기를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집집마다 알고 있는 수련생들을 찾아가 법에서 교류하고 또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격려해 사악의 박해를 해체하고 대법 수련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도록 했다.

1999년 7.20부터 2001년까지, 약 2년간 나와 수련생들은 협조해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했다. 현지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상을 전파해 사악을 겁먹게 했으며 인연 있는 사람들과 일부 공검법(公檢法, 공안, 검찰, 법원) 관리들에게 대법 진상을 명백히 알렸다.

2001~2004년에 나는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끌려갔다. 3년간 나와 불법적으로 감금된 수련생들과 함께 악마의 소굴에서 박해를 반대했다. 당시 나는 사심이 없이 한 마음으로 대법을 실증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련생들이 고통을 덜 받도록 성심껏 도와줬다.

검은 소굴은 흉악하고 악랄해 대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반대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늘 사부님의 강대한 가지(加持)를 얻어 정념이 확고해 두렵지 않았다. 어떤 수련생은 연공할 때 맞기도 하고 수갑이 채워지기도 해서 나는 일어서서 경찰의 악행을 저지했다. 감옥의 장기간 억압적인 박해 하에서 어떤 수련생은 동요했다. 나는 그에게 법을 외워주어 그가 법 중에서 정념이 올라오도록 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고문으로 전향이 되어 나는 그와 연계를 취하고 대법제자의 근원과 사명부터 이야기했다. 어떤 수련생에게는 편지를 써서 격려하기도 하고 어떤 수련생에게는 면전에서 법을 외워주면서 교류했다. 감옥에서 걸어 나오기 전 한 달간 감옥에서 강제로 전향된 대부분 수련생들을 거의 각성시켜 주었다. 당시 각 감방에서 박해받는 수련생들은 전체적으로 반박해를 공개하고 죄수복을 입지 않으며 관례대로 부르는 자기 번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강제로 전향된 수련생들은 이른바 전향을 폐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성명하고 반박해에 몰두했다. 감옥 안의 수십 명 수련생들은 서로 다른 감방에서 다 함께 일제히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라고 외쳤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너무나도 기뻤다. 그 희열은 강제로 전향된 수련생들이 대법수련 속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나는 감옥에서 엄정성명을 원하는 수십 명 수련생들의 이름을 갖고 나왔다.

검은 소굴의 상태는 험악해 수시로 고문을 당하거나 감금실에 갇혀 심한 박해를 받았다. 적지 않은 고생을 했지만 나는 매 시각 모두 사부님의 가지와 자비로운 보호를 받아 고민이 없고, 억울함도 없었으며, 매일 기운이 넘쳐흘러 기분이 유쾌했다.

우주대법과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연약해 보이는 이 여인을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로 단련시켰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제자는 반드시 더더욱 노력할 것이다.

2. ‘참음’의 과정도 수련의 과정

대륙의 복잡한 환경 중에서 수련하면 잔혹한 사악의 박해를 제외하고 수련생들 내부에서 오는 갈등, 압력, 고험도 일반적이지 않다. 정체 협조 중에서의 수련은 더욱 많은 노력과 감당이 필요하다.

감옥에서 나온 후 나는 자연스럽게 계속 협조했다. 걸어 나오지 않는 수련생들을 격려해 되도록 빨리 속인 속에서 걸어나오게 하는 동시에 잘하는 수련생들과 협조해 해야 할 일을 했다. 처음에는 번거로움에 봉착했을 때 표면적으로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식구들 몰래 울면서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때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한번 뿐이 아니어서 협조의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에 봉착할 때마다 모두 참지 못하고 사람 마음이 올라와 정념이 없었다. 반복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후 사명감은 내가 각종 압력과 고험을 정념으로 대하도록 했고 사부님의 자비와 수련생들의 격려 하에 난관을 극복했다.

나는 이전에 수련생들의 오해와 질책으로 심신 두 방면에서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아 속인이 중병에 걸린 것처럼 고통을 받았다. 협조 중에서 자신이 세심하게 고려했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느꼈지만 종종 수련생들의 질책을 받았다. 나보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지만 최종 결과는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수련생들과 협조를 잘하기 위해 논쟁하지 않고 참았다.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동화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감정을 억누르고 마지못해 참았다. 사부님은 법 중에서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에 대조하여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았다. 원래 나는 각종 걱정 때문에 표면에서 참고 다른 수련생과 논쟁하지 않았다.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논쟁하지 않으려 했고 때로는 사람 마음이 올라와 체면상 억지로 참았다. 진정한 참음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좌절이나 순조롭지 않는 일에 봉착하더라도 모두 법 중에서 말씀하신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1]을 해내야 하는데 참지 못하는 데로부터 억지로 참다가, 다시 잘 참을 수 있는 과정은 확실히 수련이 승화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수련생에 대해 자신의 판정 방식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기준에 따라 표면상의 행위와 현상을 보아서 누가 좋고 나쁘고, 누가 정진하고 정진하지 않는지 판정한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고 감추고 있어 수련생들은 내 마음속 생각을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나와 논쟁하면 수련생들은 대부분 내가 상대방에 대해 마음속으로 나쁜 견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이런 부정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나에게 크게 화를 내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 수련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줄 안다. 어찌 이렇게 자신을 수련할 줄 모르는가. 사실 모두 내 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수련생에 대해 나쁜 선입견이 있어서 초래된 것이다. 나는 수련생을 배척하는 마음이 아주 나쁜 사람마음이고 후천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관념 하에서 조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당신들은 모두 동수인데, 당신들은 적인가? 당신들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당신들은 응당 가장 친밀해야 하며, 서로 도와야 하는데, 당신은 누구를 보고 눈에 거슬려하는가? 그의 표면 형상과 행위는 다만 사람 이곳의 것인데, 그러나 당신들은 모두 신(神)이 온 것이 아닌가? 신의 그 면이 이럴 수 있겠는가? 수련 상에서 보아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의 법리로 이런 후천적인 것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열심히 법공부를 하며, 법을 외우고, 법공부를 하는 중에서 현재 수련생에 대한 분별심은 점점 없어졌고 선입견도 적어졌다.

매번 실의에 빠지고 억울함을 당하는 중에서 단련하고, 끊임없이 법공부하면서 수련 중에서 실천하자 조금씩 이지적으로 청성해졌다. 자신이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사람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도록 일깨워주었다. 명리정에 얽힌 이런 사람 마음이 없어지자 자연적으로 잘 참게 됐다. 현재 개인 층차에서 ‘인(忍)’을 수련해내는 것은 한 경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튼튼한 수련 기반은 평상시 착실하게 법공부를 해서 마음을 닦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보며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안으로 자신을 찾고, 안에서 자신의 기제(機制)를 운행하는데 맞추어 되도록 자신의 사고방식을 재빨리 우주의 진선인 특성에 동화시켜야 한다.

2015년 6월, 장쩌민을 고소한 후 공검법에 가서 대면 진상을 알리는 문제에 대해 나와 한 수련생은 서로 다른 인식을 가졌다. 한 번은 몇 명의 수련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교류했다. 수련생들은 공검법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현지의 환경을 더욱 좋게 개척하는 것이고, 또한 공검법 관리들이 진상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내 방법을 찬성했고 교류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이 수련생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현지 사법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려고 집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련생은 화난 얼굴로 나를 찾아와서 그날 간단한 교류에서 내가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망신 주었다고 오해했다. 그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아주 많은 말을 했는데 나의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나무랐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와 연락도 하지 않고, 협력도 하지 않으며, 그가 담당한 항목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갑작스러운 마찰 중에서 나는 계속 그의 말을 다 들었다. 그가 다 말한 다음 나는 솔직하게 그에게 사과했는데 정말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사과했다. 나는 온화한 말로 “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부족점이 많아요. 당신은 자비롭게 나를 도와줘야지 어떻게 협력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나요? 이 수련 중에서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건가요? 우리는 속인이 아니고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될수록 빨리 이런 부족함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우리 잘 협력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분노에 찬 그의 표정은 선명한 변화가 일어났고 눈빛도 변했다. 이어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말하는 태도가 전부 변했다. 갑작스러운 갈등 속에서 한 발 물러서니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3]이었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정서가 안정되어 과거처럼 그런 억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계획대로 사법국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또 다른 회사에 가서 한 명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까지 시켰다.

그런 후 나는 이 수련생과 함께 협력해 다시는 유사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협조 중에서 이지를 잃은 논쟁과 변명이 발생하지 않았고 법에서 교류하면서 서로 일깨워주고 가지(加持)해 주었다.

이 일이 발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차례 심성 충돌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법공부를 마치자 한 수련생이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밍후이(明慧)에서 통과됐는지 묻자 그는 생각 밖으로 바로 화가 나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노기등등해 한바탕 나를 나무랐다. 우리와 협력하는 이 수련생은 여태껏 나에게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폭발하자 나는 오히려 정신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수련을 어느 정도까지 한 거지? 내 태도가 수련생을 이 모양으로 변하도록 했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바로 “내가 수련할 요소가 있으니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다른 한 수련생은 이 상황에서 나와 그를 번갈아 보면서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알고 싶어 했다. 화를 낸 수련생은 아예 듣지 않고 매우 화가 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4]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매우 무거웠지만 매우 이지적이었다. 입으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법을 외웠다. 나에 대한 수련생의 태도를 나는 느끼지 못했고, 내가 체면이 깎인다거나 욕을 먹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내가 말한 말투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사람 마음을 찾아보았다. 집에 돌아온 후 발정념, 연공, 법공부를 해서 너무 늦게 잤지만 매우 잠을 잘 잤다. 이튿날 온몸이 가벼워지고 기력이 넘쳤다.

이튿날 그 수련생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사과하면서 그렇게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루 지나 우리가 다시 만났을 적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후에는 나도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 말투에 주의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렇게 돌발적인 풍파가 아주 빨리 지나갔고, 현재 우리는 서로 간에 아무런 선입견도 없다.

3. 듣기 좋은 말과 듣기 싫은 말 중에서 모두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나는 평소 번거로운 일 중에서 태연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의 불공평과 분노를 꾹 참고 잠자코 있어 정말로 일부 손실을 줄일 때도 있었다. 그 후 법공부를 하면서 안에서 찾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하자 곤두박질치듯이 하나의 관을 넘었다. 참지 못하고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 손실은 정말로 너무나 크다.

한번은 A수련생과 마찰 중에 둘이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에 나는 존재하는 일부 문제를 말하며 그를 나무랐다. 화가 난 그는 “당신의 그 꼬락서니를 거울에 비춰보셔요. 당신이 어울리나요?”라고 말하면서 문을 열고 나에게 당장 가라는 의사를 보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체면을 유지하려는 마음, 남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자아의 마음, 듣기 싫은 말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송두리째 전부 자극을 받았다. 이어서 손이 떨리면서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의 집에서 나오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다.

다행히 나는 아직 약간의 정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자신을 타이르고 갈등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빨리 감정을 변화시키고 열심히 착실하게 수련해 자신의 수련에서 큰 돌파를 얻도록 했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4]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한사코 안으로 자신을 찾고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며 법을 외웠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5]를 거듭 외웠다. 불공평한 마음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자극한 후 나타나는 느낌을 나는 적극적으로 배척했다. 그리고 덮어놓고 머릿속에 법을 넣었다.

안으로 찾으니 문제는 여전히 나에게 있었다. 변이된 당문화 오염을 받아 이 ‘투쟁’의 사유로 인해 일에 부딪히면 밖으로 보는 관성적인 행위 등이 있었다. 돌발적인 교란 중에서 첫 공격의 대상을 찾았고, 말을 할 때 남을 질책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진정하게 남을 위해 배려하지 않았다. 심성을 지키지 못했기에 참지 못하고, 논쟁 중에서 수련생지간의 간격을 가중시켰으며 또 수련에서 제고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나는 참지 못해 초래한 교훈을 기억했다. 이후에는 수련 중의 이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일에 부딪히면 나는 논쟁이나 변명을 적게 했다. 그리고 법공부를 강화해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을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6] 한동안 시간을 조정한 후 나는 자발적으로 A수련생을 찾아 교류했다. 진정으로 안에서 자신의 각종 사람 마음을 찾아 내려놓고 그와 잘 협력해 함께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그도 아주 솔직하게 안에서 찾았다. 쌓인 눈이 햇볕을 받으면 서서히 녹아내리듯 쌓여있는 간격은 정념의 힘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처럼 심성 마찰에 부딪힐 때마다 안에서 부족함을 찾아 사람 마음을 닦으면 수련해서 승화한 후의 기쁨과 수확을 모두 느끼게 된다. 이른바 그런 고통과 듣기 싫은 그런 말은 모두 수련인을 단련시키고 수련 성과를 이루게 한다.

한 번은 현지에서 박해를 폭로한 문장을 써서 분쟁을 일으켰다. 나는 수련생이 직접 감정적으로 말한 일부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인터넷에 접속하면 밍후이(明慧)가 속이고, 무슨 진실하지 못한 보도를 하며,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면서 문장과 편집 중 문제를 비난했다. 나는 수련생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발생한 일은 보기에는 우연인 것 같지만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수련하고 다른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역시 말을 꺼내고 말았다. 문장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문장의 기본 소재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내가 문장을 편집하고 심층 보도를 추적할 때 모두 직접 밍후이왕에서 소재를 채택한다. 사실 나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였다.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내 책임이 아니라고 아주 완곡하게 변명했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지 자세히 찾아보았다. 자아에 집착하고, 자신을 중시하며,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는데서 오는데 무의식적으로 밖을 향해 책임을 회피했다. 수련인은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든지 모두 자신을 보아야 하고 자신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수련인과 속인의 구별이다.

문장이 일으킨 분쟁은 외래의 요소가 교란해 나타난 내부 파동이다. 이 외래 요소는 보기에는 아주 자연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정체를 분쟁에 끌어들였다. 어떤 수련생들을 불평이 대단하고, 어떤 수련생들은 문장의 출처를 찾아 추측하며, 어떤 수련생들은 책임을 추궁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며, 어떤 수련생들은 횡설수설하거나 또 오해를 받아 억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정체가 어찌 이렇게 혼란스러우냐고 느끼기도 한다. 각종 심태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모두 수련 요소다. 원래 정체적으로 협조해 완성될 일이 외래 요소에 의해 뒤죽박죽이 됐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됐다.

나는 솔직하게 수련생과 교류하면 누구도 교류를 질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수련생에게 기본 소재로 폭로하는 문장을 쓸 때 반드시 진실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일단 보도가 잘못됐음을 발견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진실한 정보를 알기만 하면 바로 밍후이왕에서 보도를 갱신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추적 보도를 해야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이후에 관련된 수련생과 이렇게 교류하자 어떠한 상황이 나타나더라도 문장 그 자체에 대해 논쟁하지 않고, 책임을 찾지 않으며, 수련생을 질책하지 않았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모두 수련 중의 요소와 기회로서 각자의 마음을 찾으면 나타난 문제는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진선인을 수련하는데 누가 감히 터무니없는 말을 하겠는가? 누가 감히 밍후이왕을 속이겠는가? 우리는 선의적으로 수련생이 의식하지 못한 문제를 지적해 논쟁을 피해야 한다. 교류 중에서 말하는 표현 방식은 수련인의 자비와 정념을 체현해 내야 한다. 부적절한 표현 방식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해 수련생을 자극해서는 더욱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쉽게 수련생지간에 간격이 생기고 엄중할 때에는 사악에게 빈틈을 주게 되어 더욱 큰 시끄러움을 만들어내게 된다. 나의 교류는 수련생들과 공감대를 이루었다.

점차적으로 나는 끊임없이 성숙됐다. 이지적으로 돌발적인 갈등을 대할 수 있었으며, 점점 실천 중에서 어떻게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알았고, 어떤 경지야말로 수련 중의 참음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이 참음은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완전히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정하게 인내하며 참으면 그것은 정말로 하늘이 높고 땅이 넓듯이 마음이 넓어져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春)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나와 수련생들은 협조 중에서 갈수록 잘 되고 있다. 바로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말씀하신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7]였다.

4. ‘협조’에 대한 약간의 인식

되돌아보면 정체 협조 중에서 수련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협조인은 바로 수련과정 중에서 일반 수련생들에 비해 많은 대가를 치르고, 많은 감당을 하고,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법을 잘 배워 착실하게 열심히 법공부를 해서 법리가 뚜렷해야 한다. 그래야 모순 중에서 참고 견딜 수 있으며 또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을 중시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더 용감하게 책임을 감당할 정념이 있어야 관건적인 시각에 수련생들과 잘 협력할 수 있고 제때에 정법 노정을 따라잡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협조인을 속인의 관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수련의 여러 방면에서 엄격하게 법을 스승으로 삼는 수련 원칙에 의거해 대도무형의 수련 형식을 유지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협력이 필요할 때 해야 할 일을 함께 잘해야 하고, 평소에는 모두 각자 사람을 구하는 자신의 항목 중에서 묵묵히 해야 한다.

협조인은 더욱더 자신을 남다른 인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만하는 마음, 스스로 고상하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정체를 위해 고려하는 수련생은 얼마나 큰 어려움이 닥치거나 얼마나 큰 억울함을 감당해도 절대로 불평불만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으로도 더욱더 불평하지 말고 수련생들 중에서 증오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무릇 움직이는 생각이 부정적인 것이고 행위가 부절적하면 협조 중에서 있지 말아야 할 갈등과 번거로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 협조인 본인의 마음이 문제가 있어 교란을 불러온 것이다. 솔직히 말해 협조인은 더욱더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이 기초 위에서 수련생들과 협조, 협력해야만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이상은 수련 중의 일부 경험과 인식으로서 적절치 못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법해’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6]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논쟁하지 말라’
[7]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

 

원문발표: 2018년 5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2/3644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