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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타파한 몇 가지 사건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많은 관(關)을 넘어야 하는데, 원인은 사람이 출생한 이후 끊임없이 인류사회 인식 중에서 각종 각양의 관념이 생김으로써 이로부터 집착이 생긴 것이다.”[1]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관념을 타파해야 합니다. 사부님은 우리의 이름을 이미 지옥에서 지우셨고, 우리는 삼계 내의 생명에 속하지 않습니다. 삼계 내의 어떤 사람과 물질도 우리에게 작용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간혹 삼계 내의 사람과 물질의 제약을 받는가,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우리의 층차를 낮추었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각과 같으면 견제와 제약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의 제약을 받지 않고 우리가 관념을 바꿔 사람의 생각에 있지 않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준 안으로 닦고 안으로 찾는 법보(法宝)로 관념의 속박을 돌파하고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면 인류의 물질이 어찌 우리를 제약할 수 있겠습니까?

아래에 저는 관념을 타파한 몇 가지 사건을 쓰려 합니다.

1. 목이 붓고 아픈 것과 물을 마시다

어느 날 새벽 눈을 뜨니 목이 부어 조금 아팠습니다. 저의 첫 번째 느낌은 어제 음식을 먹고 머리에서 열이 난다고 느껴져 물을 마셨습니다. 물을 마신 후 편안하게 느껴졌고 매우 좋아졌습니다. 이튿날 새벽 어제 상황이 되풀이 되었고, 더 심해졌습니다. 저는 또 물 두 컵을 마셨고, 좀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삼일 째도 여전히 이와 같았고, 저녁이 되어 몸이 홀가분하지 않아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물 컵을 보며 무엇 때문에 효과가 없는지, ‘혹시 심성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은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관념’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며, 이 두 글자를 생각했습니다. ‘관념, 무엇이 관념인가, 갑자기 사람의 것을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관념이 아닌가? 물을 마시는 것은 본래 문제가 없다. 나는 물을 목이 붓고 아픈 것을 치료하는 약으로 여겼다. 속인이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수련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속인의 관념에 부합되며 그것이 바로 속인의 생각이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물을 마시는 것이며,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이 속인의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저는 또 무슨 원인으로 목이 붓고 아픈지 안으로 찾았습니다. 며칠 전 아내(수련생)와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이 용솟음쳤고,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안으로 수련하지 않고 자신이 어디가 틀렸는지 찾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모든 것을 원망했습니다. ‘이것이 집착이 아닌가?’ 저는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 쟁투심을 찾았고, 대법제자로서 찾았으니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안으로 찾고 찾다가 갑자기 목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 요통

저는 허리가 아픈지 오래 되었고, 각종 마음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여 매우 고민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 그릇을 닦고, 바닥을 닦고, 빨래를 하고,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도 모두 불편하고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조금 누워있으면 괜찮아졌지만 ‘수련인은 병이 없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호박씨를 까고 있었고, 까고 까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 허리가 아플 때 칼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호박씨로 칼슘을 보충하려 했습니다. 속인이 넘어지고 손상되면 모두 호박씨로 칼슘을 보충했고, 그래서 저는 늘 호박씨를 먹었으며, 시간이 길어지자 이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은 ‘속인의 관념이 아닌가? 당신의 생각이 속인에 부합되면 당신은 속인이 아닌가? 이 관념을 고쳐야 한다.’

그렇게 갑자기 허리가 왜 아팠는지 생각이 났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의 집착을 점화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7, 8년 전의 어느 날, 저는 골목을 가다가 길이 막혀버렸고, 빠른 길은 오직 여기로 지나야만 갈 수 있었습니다. 저와 수련생은 힘겹게 기어 올라가 아래로 뛰어내렸고, 어찌된 일인지 저는 순식간에 땅에 앉아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 사부님, 제자를 도와주세요.’ 라고 외쳤고, 일어서니 괜찮아 계속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이것은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저를 대신해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제가 넘어져 상처를 입었을 때 마음을 바꾸어 아프다, 혹은 문제가 있다는 사람의 관념을 타파했다면 사부님께서 저를 대신해 감당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가? 가까운 길을 가기 위해 억지로 지났기에 이런 일이 생겼고, 돌아온 후 안으로 찾지 않았으며, 또한 허리가 삔 것처럼 아프고 갈수록 아픔이 심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제 관념을 바꾸고 집착을 찾으니 괜찮아지면서 좋아졌습니다.

3. 관절통이 괜찮아졌다

저는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때론 잠을 자다가도 아파서 깨어났으며, 줄곧 원인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걷는 속도가 느리고 빨리 걷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연공을 하다가 다리 하나가 국수처럼 보들보들해지며 순식간에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저는 즉시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의 신체를 조절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저는 일어난 후 계속 연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뼈가 아픈 것을 느꼈고, 길을 걸으며 여전히 늦게 걸었으며 빨리 걸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조절해주셨는데 왜 아직도 아픈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나의 머릿속에 나타났습니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2]

행위 두 글자가 저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행위는 어찌된 일인가’ 저는 행위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명백해졌습니다. ‘길을 늦게 걷는 것은 행동에서 다리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모두 조절해주셨다.’ 저는 큰 걸음을 내디뎠고,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신사신법(信师信法)하면 지나가지 못할 관이 없습니다.

4. 의심과 두려운 마음

수련하는 사람은 환경과 현재에 처한 상황에 많은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원인은 이 특수한 시기에 특수한 환경, 특수한 상황 중에서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큰 법을 수련하면서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나타난 것인가? 자신을 속인으로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간혹 경찰을 보면 주눅이 들고 경찰차를 봐도 두려웠습니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저를 한 번 더 보면 감시하는 것 같고 뒤에 사람이 따라와도 미행당한 것 같았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사방을 보게 되는데 사실 모두 ‘느낌’에 의해 생긴 의심이며 또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한번은 집에서 혼자 이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다가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며칠 동안 모두 이러했고, 저는 정말 집을 팔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두렵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면 진정으로 번거로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두려워하기만 하면 곧 공포심으로서 그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당신의 집착심이 나오면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두려워할수록 더욱 병과 같이 되는데, 당신의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며, 당신에게 이번 교훈을 받아들이게 하여, 공포심을 버리고 제고해 올라오게 한다.”[3] 저는 명백해졌습니다. 사실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생각해 보았자 아무 일도 없는 것입니다. 처음 두렵고 소름이 느껴질 때 저는 다시 한 번 느껴보았습니다. ‘이 느낌은 관념이 아닌가? 때문에 의심이 생겼고, 이로 인해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움으로 나의 집착을 버리게 하신 것이다.’ 저는 이 단락의 법을 보고 마음을 비워 교훈으로 삼았고, 또 제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수련을 하는 사람입니다. 삼계 내의 생명, 누가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생명이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에게 그것을 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眞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4] ‘신도 귀신도 우리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자비를 수련해 정념정행(正念正行) 한다. 우리는 무엇이 두렵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직 정념정행하고, 구도중생 하면 법속에는 사람마음이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박해할 수 있겠는가?’ 어떤 수련생들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당신 마음은 자비가 있어야 하고, 관념을 타파해야 하며, 박해를 감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한 고통을 명령을 내린 사람과 당신을 박해한 사람에게 전가하지 말고,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자비를 알게 하고, 대법의 위엄을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상을 이해하고 구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그들을 구원하는 일종 방법입니다.

“박해를 반대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신의 길(神道)을 걷는도다”[5] 저는 수련생들이 비범하고 정정당당한 수련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저의 층차에서 미미한 얕은 인식이며, 부적절한 곳은 수련인 여러분들이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도법(道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위덕(威德)’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대법행(大法行) 송사’

 

원문발표: 2018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3644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