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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을 수련해 혜택을 받은 장교들의 이야기(1)

글/ 정신(正信)

[밍후이왕]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1] 이 몇 마디 말씀에 그해 대법이 중국 대륙에서 널리 전해진 성황을 알 수 있다. 1992년 5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파룬따파를 세상에 전하셨다. 그런 후 짧은 7년간 파룬따파는 구두로 전해져 중국대륙 외진 곳까지 전해졌고 수련인 수는 1억에 달했으며, 그중 많은 현역 혹은 퇴직 장교도 있었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말해보려 한다.

부사급 장교 부부가 다시 건강을 되찾다

양싱푸(楊興福)는 난징군구 정치부 문화작업실 부사급(副師級) 장교이며 대령 계급이다. 전 난징군구 정치부 ‘동선영시보(東線影視報)’ 편집장을 맡았다.

양싱푸는 1996년 7월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는 척추 디스크, 류마티스 관절염, 부비강염, 방광암 등의 질병에 시달렸다. 자주 어지럽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힘이 없고 소변을 자주 보았다. 1996년 친구의 추천으로 양싱푸는 파룬따파 수련으로 들어섰다. 2개월 후 그의 증상이 전부 사라졌고 온몸이 가볍고 활력이 넘쳤다. 그 후 그는 약을 끊고 20여 년간 국가를 위해 고액의 의료비를 절감해주었다.

동시에 양싱푸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고 심성 경지는 승화됐다. 업무에서 뛰어나고 성적이 우수해 부대 지도자와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다. 1997년 그는 선진근무자로 선정됐고, 1998년 또 3등 공을 세웠으며, 1999년 5월 그는 베이징에 가서 수상하고 수상 기관과 개인 시상식을 대표해 발표도 했다. 당시 어떤 신문이 이 일을 크게 보도했다.

파룬따파 수련 중에서 양싱푸는 건강을 얻었고 마음도 선해졌고 더욱 관대해졌고 성실해졌다. 그는 수련한 후에야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양싱푸의 아내 천춘메이는 전 난징시 소아병원 수간호사다. 그녀도 B형 간염, 안면마비 후유증, 위장병, 식도염 등의 질병을 앓았다. 1996년 7월, 천춘메이는 남편과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3개월 후 그녀의 질병이 사라졌고 그 후 수십 년간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 경지가 제고됐고 여러 차례 병원에서 모범직원, 노동조합모범, 개인모범 등으로 선정됐다.

사령부 작전처장이 질병이 사라지고 청렴결백해져

팡즈원(方志文)은 전 난징군구 사령부 작전처장이고 대령 계급이다.

팡즈원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형제자매가 6명이었으며 어려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젊을 때부터 위장병(위궤양, 위하수, 위경련, 위출혈), 치통, 항문질환(항문 열상, 탈항, 치질 등), 관절염, 편두통, 두드러기, 신장염, 간염 등 각종 질병을 앓았다. 입대 후 비록 각 방면에서 조건이 개선됐고 음식조절, 신체단련, 치료도 받았지만 건강은 줄곧 좋지 않았다. 심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며 업무에서도 정신력이 따라가지 못해 괴롭게 지냈다.

운 좋게 1996년 11월 본부 퇴직 지도자의 소개로 팡즈원은 ‘전법륜’ 등 대법서적을 보게 됐고 다른 사람과 함께 군구 기관운동장에서 연공을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신체는 좋아졌다. 연공 전 그의 몸은 약해 여름에 수박도 먹지 못했으나 연공 후에는 겨울에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었다. 그는 직접 질병이 없는 가벼운 몸을 느꼈다. 그 후 활력이 충만하고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잔업을 자주 해도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났다. 그는 질병을 앓은 적이 없고 국가와 군대를 위해 많은 의료비를 절약해주었다.

연공 후 팡즈원은 스스로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의 언행을 규범화하며 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노력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깨끗한 사람이 됐다. 군구 고급기관 주요부서 처장 산하에는 수십 명이 근무하는 군급(軍級) 이상의 기관업무처가 있으며 6개 성과 시에 분포돼 있다. 하지만 그는 직권과 기타 조건으로 연줄을 대 거래를 하거나 친척과 친구를 위해 이득을 챙기지 않았다. 그는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집에 인테리어를 하고 친척과 친구의 방문이 있어도 부대와 기관에 차량을 요청한 적이 없다. 그는 수차례 군사보장구역, 총부, 군위지도자 아래 부대 시찰에 참여하거나, 여러 차례 대형회의와 활동에 참가해도 직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꾀하지 않았다.

처장 임직 기간 팡즈원은 근무 부서 교체로 해안경비대에서 여단장으로 10개월간 직무를 대행했다. 그는 해산물과 특산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경비원을 요청한 적도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활비와 통신비 등 보조비용에서 500위안(한화 약 9만원)을 ‘안후이 희망공사 사무실’에 기부했다. 급식보조금 400위안(약 7만원)도 기관식당에 레인지 후드를 사라고 건넸다. 파룬따파가 모욕, 비방당할 때 군구 기관에서 그가 직무를 대행하는 부대에 와서 조사할 때 부대 지도자와 기관원들은 그의 인품과 청렴성 등을 충분히 인정했다. 그들은 “모두 이런 지도자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훌륭한 업무 처리, 청렴하고 공익에만 힘썼으며 각 방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팡즈윈은 군구에서 여러 차례 표창과 장려를 받았다.

한 사람이 수련하니 주변도 혜택을 받다

후젠화(胡建華)는 후베이성 첸장(潛江) 사람이다. 1979년 11월 징집에 응해 입대했고 전 중대장, 사령부관리계장, 소령계급이다. 그는 두 차례나 베트남전쟁에 참가해 일등 공훈을 세웠다.

비록 여러 차례 전쟁에 참가했고 공훈을 세웠지만 후젠화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젊을 때 각종 질병, 고혈압, 고지혈증, 미란성 위염, 심장병, 관상동맥질환, 편두통, 경추질환, 부비강염, 만성 인후염, 장기 재발성 구내염, 트라코마, 이명, 충치, 치질, 좌골신경통, 약물성 간염 등을 앓았다. 도처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 효과는 미미했다. 그는 세 번이나 단식치료법(보름간 물 두 컵만 먹고 음식을 먹지 않음)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1993년 지방으로 전업해(우한시 치오커오구 공상업) 근무했다.

그는 건강 문제로 가정에 부담을 줬고 부부 간에 갈등도 격화됐다. 또한 그의 직장과 장래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

1995년 8월, 절망과 고통 끝에 후젠화는 동료의 소개로 파룬따파를 배워 수련을 시작했다. 얼마 후 그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온몸의 질병이 사라진 것이다. 그 후 그는 약물과 주사를 멀리했다.

수련 후 후젠화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열심히 일하며 명리를 추구하지 않고 득실을 따지지 않았으며 늘 타인을 위해 생각했다. 기관 후방 관리근무에서 그는 한 푼도 탐오하지 않고 초과 근무 수당도 한 번도 받지 않았으며 배추 한 포기도 가져간 적이 없고 특별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 물건을 구매해도 사례금을 받은 적이 없으며 허위 영수증을 제출한 적도 없다.

한번은 한정가(漢正街)에서 물품을 구매했는데 가게 주인이 세숫비누 70여 개를 더 주었다. 후젠화는 발견 후 즉시 반납했다. 가게 주인은 감동해 말했다. “지금 사회에 당신처럼 좋은 사람은 찾을 수 없어요. 파룬궁은 너무 좋아요.” 또 한 번은 시장에서 쇠고기를 구매하고 돌아와 보니 한 봉지가 적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스스로 100위안(약 1만7천원)을 꺼내 가격대로 배상했다. 기관의 식당을 개선하기 위해 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매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고 물품을 구매했으며 비용을 절감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먹게 했다.

기관에서는 편리를 위해 그에게 삼륜차를 주며 집에 삼륜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심성을 엄격히 지키고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 사적인 일로 지출한 주유비와 주차비는 스스로 냈다. 기관에서 집을 분양할 때 그보다 1년 늦게 퇴역한 군인도 집을 분양해 주었는데 그는 분양 받지 못했다. 그는 지도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지도자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지 않았으며 개인 이익을 담담하게 봤다.

이런 사례는 아직 많다. 어쨌든 ‘진선인’의 지도 아래 후젠화는 노력해 좋은 사람이 됐고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노력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늘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품성이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매년 기관 선진노동자,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됐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2] 파룬궁을 수련해 후젠화는 심신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과 아내, 아들도 함께 혜택을 받았다. 그의 부친은 폐암 말기였고 암이 7cm나 됐는데 입원기간 스스로 법공부와 연공을 해 한 달 후 병이 완쾌돼 퇴원했다. 이후에 또 18년을 사셨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대법을 믿어 모두 혜택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어지럼증이 있었는데 발병하면 보름은 지나야 나아지곤 했지만 이후에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아들도 출생 후부터 질병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 나았다. 온 가족은 질병의 시달림에서 벗어낫고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후기

중국 관료의 탐오는 18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20년간 더욱 심해졌다. 최근 그런 폭로된 ‘부패 호랑이’, ‘군부 부패 호랑이’ 집안의 아름다운 보석, 황금, 외화는 너무 많아 군용차로 실어야 할 정도다. 이런 분위기 아래 ‘권력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기한이 지나면 폐기된다.’는 것이 관료들의 일반적인 심리다. 관리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는 권력을 얻어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며 승진만을 위해 노력한다. 본문 몇 명의 주인공은 높은 고위층 권력을 얻든 퇴직해 지방 관리가 되든 모두 ‘진선인’ 법리의 지도 아래 늘 타인을 배려하고 선량함과 성실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스스로 맑고 깨끗한 환경을 개척했다.

하지만 1999년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이런 선(善)을 지향하는 사람, 존중 받는 좋은 사람들이 오히려 모두 박해를 당하고 혹은 강제 퇴역을 당하며 혹은 박해로 사망하고 혹은 징역형을 받는 등 참극을 연출했다.

양싱푸는 불법 형사 구류를 3번 당했고, 불법 노동교양 3차례 당해 총 6년을 감옥살이 했고, 아내 천춘메이는 불법구류 3번, 불법 노동교양을 1년 당했다.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세뇌반에서 박해를 당했고 불법 가산 몰수를 10차례나 당했다. 2016년 12월 천춘메이는 박해당해 사망했다. 향년 62세였다.

팡즈원은 2000년 강제 전업해야 했으며 불법 감금됐고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후젠화는 공무원 자격을 박탈당한 후에 기관에서 제명당했고 두 차례 세뇌반에 납치됐으며 1년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고 불법 7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각종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정상적인 사회는 ‘악을 저지하고 선을 선양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실한 이야기로 파룬따파가 인류의 심신 건강에 준 큰 공헌과 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에 대한 극악무도한 악행을 알기를 희망하고, 선과 악에서, 정(正)과 사(邪)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3/360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