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나의 안일심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버스를 잡으려고 두세 걸음만 뛰어도 되는데 그마저도 하기 싫어했고, 겉으로 보이는 일만 했으며, 우리집 뒷베란다의 방충망, 바닥, 수납장은 늘 먼지로 가득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이곳은 시간 날 때 다시 정리하자.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니까.’
오늘 나는 왜 날마다 연공하기 싫어하고 왜 조금만 해도 피곤하다고 외치는 등 안일심에 대해 교류하고 싶다.
1. 왜 날마다 연공하려 하지 않는가
16년 전 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공했다. 그때는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11개월 동안 기침을 했다. 양의사를 찾아가도 낫지 않고 중의사를 찾아가도 낫지 않아서 비로소 파룬궁을 연마하기로 했다.
나는 연공장에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서 나갔는데 나로서는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빨리 연공해서 병을 치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달쯤 지나서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이제는 저녁에 기침을 하지 않는 것 같군”이라고 말했다. 나는 비로소 파룬궁 연마가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자신도 모르게 기침이 멈췄다. 하지만 이후에 가래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법공부와 수련생들의 교류를 통해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래서 연공을 더욱 열심히 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매일 연공할 때 두 팔이 모기에 물려서 작은 붉은 반점투성이가 되고, 다리를 틀어서 통증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도 견뎌냈다. 문을 나설 때는 아기를 안고 2층에서 천천히 내려갔고, 겨우 한 살 된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연공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매일 공원에 갔다. 건강한 몸을 가져서 아이를 잘 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겨우 3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간 후에는 매일 연공을 견지하지 못했다. 먼저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갔고, 내 연공은 자연스럽게 5일로 줄었다. 이후에는 매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혼자서 공원에서 연공하게 됐고 하고 싶은 만큼만 연공했다. 그러다가 신체에 병업 상태가 나타나고서야 연공을 다시 부지런히 하게 됐다.
나는 장기간 연공하는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았음에도 전혀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며칠간 연공문제를 두고 나는 자신에게 몇 가지 자문자답을 하기로 했다. ‘넌 왜 연공하지? 기침을 치료하기 위해서야. 지금 기침이 나았어? 나았어. 그럼 걱정할 게 없으니 연공할 필요가 없겠네? 그래도 연공하고 싶고 이 신체가 영원히 병이 없기를 희망해. 또 마음속으로 영원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달림을 피하고 싶으며 모두가 서로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게 가능하겠어? 넌 법공부할 때 마땅히 인식했어야 해. 생생세세 넌 살생했고, 누구에게 빚을 지고, 누구를 해쳤고, 누구를 괴롭혔는데 연공으로 이런 빚을 갚으면 그만이야? 연공으로 고생하며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넌 일주일에 며칠이나 했어? 정공을 한 시간이나 했어? 겨우 30분만 연공하고서 무슨 고생을 했다는 거야.’
본래 자문자답을 통해 자신이 법에서 연공문제를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음을 찾아냈으며, 내심 깊은 곳에는 완고한 자아가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연공이 해이해지는 심리가 생겼다. 사실은 연공의 출발점이 이기적이어서 구세력의 배치를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구우주 속에서 배회하며 구우주 생명의 이기적인 심리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잠시 빌린 사람 몸이 연공한 후 온몸이 가벼워지고 젊어지기를 바랐고,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50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명백해진 나는 후천적 관념에 의해 봉쇄되어 내가 왜 층층이 걸어 내려왔는지를 잊어버렸다. 내가 천국 세계 중생들에게 한 서약을 잊었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겠다는 서약도 잊었다.
2. 왜 걸핏하면 피곤하다고 외치는가
말하면 모두들 믿지 않겠지만 나는 이불을 개면서도 마음속으로 피곤하다고 외쳤다. 이 며칠 동안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난 거의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피곤함을 느끼는데 왜 내 안일심이 이렇게 강한가? 어릴 때부터 시중을 받으며 자란 부잣집 아가씨도 아닌데! 솜이불 하나가 얼마나 무겁다고!’
냉정하게 자신을 보니, 자신의 안일심 속에는 다른 사람마음도 섞여 있었다. 쟁투심, 질투심, 비교하는 마음, 이 몇 가지 사람마음 때문에 속으로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매일 새벽에 연공하러 나가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출근한다. 어질러진 솜이불, 매트를 내가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출근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휴가 때는 남편이 늦게 일어나도 여전히 정리하지 않았고 나도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휴가 때 당신은 쉴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더 피곤해. 평소 집안일을 계속하면서 또 점심 식사까지 추가로 준비해야 하니까.’ 마음속으로 더욱 불평스러웠던 것은 남편과 아들이 함께 DVD를 보면서 간식을 먹고 밥도 먹고 나서 그릇만 놓고 가면 내가 다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모습이 전혀 달라진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로 마음속으로 더욱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일을 할 때 최대한 미루고 각종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했다. 침대 매트를 정리할 때도 나는 남편이 사온 매트가 무겁다고 원망하면서 혼자 정리하다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다. ‘이불을 개는 쉬운 일도 그가 하지 않는데 왜 내가 해야 하지?’
나의 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을 제거하게 하려고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일깨워주셨다. “우리 이 한 법문은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 개인 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중에서 이런 문제를 담담하게 보고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다.”(전법륜)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그다지 느낌이 없었는데 동일한 설법 뒷부분을 읽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잃는 과정 중에서, 우리가 진정하게 잃는 것은 바로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이다.”(전법륜)
나는 그것이 무슨 좋지 못한 것인지 생각했다. 갑자기 명백해졌는데 사부님께서는 남편과 쟁투하는 내 이 마음을 없애게 하셨다. 이불을 개기 싫어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게으름이고 사실상 안일심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또 쟁투심도 있었다. 다시 깊이 파고들어 보니 사실 또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고 마음속으로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고 모든 것을 도와주었으며 우리집에 와서 식사할 때도 나를 도와 설거지를 했다. 지금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불도 개놓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마음이 개변하지 못하면 그 물질은 계속 존재한다고 느꼈다. 매일 법공부해서 무엇을 하는가? 각종 사람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 아닌가? 각종 사람마음으로 인해 남편을 보기만 하면 마음이 짜증나고, 침대 위의 이불을 보면 마음이 번거롭고, 관광지에서 고개를 흔들고 손사래 치는 중국 관광객들을 보면 입을 열기 귀찮으며, 앞에 놓인 설거지감을 보면 심신이 피곤하다. 이런 좋지 못한 사상, 좋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인데 무엇인가? 바로 업력으로서,” “이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우선 당신의 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전법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자신의 안일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바로잡아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전법륜) 나는 늘 몇 분이면 완성할 수 있는 일을 늘 하려고 하지 않았고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진상 몇 마디를 하고 싶지 않았으며 또 각종 구실을 댔다. ‘침대를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을 낭비해!’ ‘그들은 급히 차를 타야 하니까 다음에 다시 말하자!’
다시 자신의 수련 상태를 생각해보았다. ‘수련은 네 개인의 선택이고 넌 일찍 일어나야 하고 관광지에 가야 하며 플랫폼에 올라가서 당직을 서야 해. 넌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주 신성하다고 생각해. 그러나 이 물질신체는 피곤을 느껴. 그래서 넌 가족이 도와주기를 바라고 그들이 너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해. 넌 집안일을 대충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수련인의 높은 표준에 도달한 거야?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수련하지 않는 가족을 원망하는데 네가 개인의 안일함을 수호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야. 넌 단지 자신이 당직서는 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해 잘 휴식하려고 하고, 끝없는 집안일을 마주하고 마음속으로 불만이 일어나고 있어.’
내가 피곤한 느낌을 말하려고 할 때 한 수련생이 “피곤하다고 외치면 안 됩니다.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면 더욱 피곤합니다”라고 말렸던 일이 기억났다. 또 한 수련생은 그가 피곤할 때 가부좌하고 정공을 연마하고 발정념한다고 했다. 수련생의 수련심득을 듣고서 나는 자신의 멈춰버린 상태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수련생의 입을 빌어서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3. 맺음말
자신의 안일심을 찾아냈을 때 나는 인식했다. 안일심은 사실 구세력이 나의 방종한 사상의 틈을 탄 것이고 내가 위로 수련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자신이 박해당하는 것을 사람의 이 관념은 아주 인정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관념의 감옥에 가둔 격이었다. 비록 인식했어도 유일한 방법은 실제 행동으로 가서 개변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어떤 사람은 그의 그 사상업력이 장기적으로 없어지지 않는가? 바로 어느 것이 자신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하는가? 우선 당신은 좋지 못한 사상 그것을 닦아 없애버려야 한다. 당신이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할 수 있음은,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정말로 당신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일하면서 형성한 각종 관념이고 진일보로 형성된 업력,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이 무엇을 갖고자 하는 그것은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것으로서 오로지 당신이 이것을 갖지 않으려고 해야만 당신에게서 제거해 줄 수 있다.”(미국서부법회 설법)
이상 교류는 최근 자신의 수련상의 일부 심득이고 만약 법에 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7/2/27/343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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