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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513] 대법이 창조한 기적

글/ 선양 대법제자

[밍후이왕] 햇살이 밝게 비추는 1998년 5월 어느 일요일 아침, 1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선양 공업전시관 맞은 편 광장에서 단체 연공을 했다. 이미 1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놀라운 기세와 흐트러짐 없는 질서, 그리고 대법수련자들이 보여준 풍채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1만여 명이 떠나간 자리에는 종잇조각 하나 없었고 당일 활동에는 한 푼의 경비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날 나와 남편은 매우 일찍 일어났다. 음향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날이 밝기도 전에 우리는 얼마 전 아들이 결혼할 때 산 VCD와 스피커 세트를 갖고 집을 나섰다. 나는 마음속으로 격동됐다. 남편에게 업혀 계단을 오르내렸던 내가 큰 스피커 2개를 안고 6층에서 걸어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늘 몸에 병을 달고 살다가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건강을 되찾았으니 격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4시 쯤 광장에 도착했는데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후 기술을 책임진 군인 수련생도 축전지와 음향 장비를 갖고 도착했다. 선양시 체육위원회의 통지가 늦어 우리는 사전에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몇몇 사람에게 급하게 임무가 배치되어 서로 안면도 없었다. 몇몇 젊은 수련생의 도움으로 우리는 전기선을 잇고 장비를 설치해 준비를 마쳤다. 빌려온 대형 스피커가 당일 주인공이었는데, 테스트를 해 보았더니 소리가 잘 나서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직장동료 “파룬궁은 정말 대단합니다!”

광장에는 이미 절반가량의 수련생들이 와 있었다. 나는 방석을 꺼낸 후 같은 연공장 수련생들을 찾아 동쪽 맨 옆줄 뒤에 앉았다. 시작까지는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수련생들이 잇따라 도착하면서 이미 줄을 섰던 수련생들은 계속 방석을 들고 앞뒤로 위치를 조절해야 했다. 협조인의 지휘에 따라 자리를 조금씩 옮기거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동하기도 했는데 모두 미소로 소통하며 이해하고 협력했을 뿐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그것을 소중한 단체 연공의 기회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련에 대한 검증이었고 대법을 널리 알리고 실증하는 가장 좋은 형식이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그 즈음 각 연공장에서는 휴일에 자주 큰 광장에서 연공하고 홍법했지만 1만 명이 동참한 것은 처음이어서 모두들 기분도 달랐다.

6시 정각에 우아하고 특별한 파룬따파 연공음악이 흘러나오자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의 연공 구령에 따라 일치하게 4장 공법과 정공을 연마했다. 음악이 멈추고 연공이 끝났지만 나는 아쉬워서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에너지장은 너무나 강해 개별적으로나 소규모로 연공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집에서 정공을 할 때 나는 30분만 해도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그날은 온몸이 가벼웠고 그 자리에 고정된 것 같았는데 그 미묘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옆 자리의 한 여 수련생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제 몸은 갈수록 커져서 저 전시관보다도 커진 것 같았어요. 좀 두려워서 눈을 떴더니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정말 후회돼요. 눈을 뜨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한 수련생은 아름답고 특별한 다른 공간을 보았고, 또 다른 수련생은 온 광장에 비할 바 없이 거대한 법선이 있었는데 위대한 사부님께서 뱃머리에서 서 계시고 수련생들이 모두 배에 올라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람마다 모두 다른 체험이 있었다.

1만 명이 연공하는 대형 활동이었지만 사전에 동선을 알려주지 않았고 리허설도 없이 모두 즉석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광장 대열은 놀라울 정도로 정연했고 동작도 매우 일치했다. 도로변과 고가도로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장면을 구경했다. 나중에 우리 회사 중견 엔지니어는 “파룬궁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연하게 움직이다니. 군인들 못지않습니다”라고 찬탄했다. 그는 가로 세로 몇 줄인지 세어서 곱하고 나무 아래에 있던 사람들을 더한 다음 연못과 공터 크기를 감안해 사람 수를 빼어보면 대략 1만 2천명은 된다고 했다.

수련생들, 사람마다 대법의 혜택 받아

1만 명에 이르는 파룬궁수련생들은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연령층도 다양했다. 노동자, 농민, 군인, 경찰, 학자, 정부 관리가 있었고 노인과 아이도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사람마다 심신이 혜택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연공장에서 그들은 조용히 입장하고 조용히 떠났다. 떠드는 사람이 없었고 혼잡하지도 않았는데 자전거마저도 정연하게 세워졌다. 하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도 경찰차도 보안요원도 동원되지 않았다. 속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대법은 수련생들을 혼탁한 속세에서 일깨워줘 반본귀진의 길을 걷게 했다. 그들은 매일 꾸준히 대법수련을 하며 ‘진선인’의 법리 요구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때문에 그것은 대법제자들의 자연스러운 수련 상태이자 대법제자들의 특징이었다.

A수련생은 원래 회계사였다. 그와 손자 러러(樂樂)는 모두 질병 때문에 기공을 연마했다. 하지만 병은 낫지 않았고 오히려 손자에게 부체가 붙어 한쪽 얼굴이 마비됐다. 하루는 러러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가 파룬궁수련생들이 연공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할머니, 저 공법이 좋아요.” 이유를 묻자 러러는 “연공장 위에서 붉은 빛이 내리 비춰요. 우리 저 공을 배워요”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대법을 수련했고 러러는 얼마 후 건강을 되찾았다. 공원에서 러러는 나에게 사부님께서 부체를 청리해준 과정을 자세히 말해줬고 수련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대법은 러러에게 지혜를 열어주어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명문대에 합격해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현재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

당시 공안이었던 B수련생은 젊었을 때 위궤양에 걸려 몸이 매우 말랐고 자주 통증에 시달렸지만 병원에서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법을 얻은 후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진선인’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자 병은 금방 나았고 20대처럼 어려 보였다. 수련 후부터 직장에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여 매년 모범인물이 되어 각종 상장을 20여개나 탔다. 1999년 ‘7.20사건’ 이후 대법을 지키기 위해 그는 성 당위원회에 탄원하러 갔다. 공안국 상사가 그에게 아직도 수련하느냐고 묻자 그는 “파룬궁은 저에게 건강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대법이 이렇게 좋은데 어찌 연마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상사는 “상급에서 지시가 있는데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으며 내보내야 하오”라고 말하면서 “자네는 아직 젊은데 미래를 생각해”라고 걱정해 줬다. 하지만 그는 확고하게 대법 수련을 선택했다. 역시 경찰인 친형은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그와 연락을 끊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후 그는 여전히 열심히 일했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상사는 몇 번이나 그를 간부로 발탁하려 했지만 상부에서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이 아쉬워하면 그는 “우주 대법을 얻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 헛되게 온 것이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대학교 음악 교수로 칠순에 가까운 C수련생은 갑자기 척추질환에 걸렸다. 국내 유명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대만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들은 모두 그가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절망과 고통이 이어지고 있을 때 뜻밖에 대법을 얻었는데 불과 몇 개월 연공하고 나니 건강을 회복해 계속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그는 기뻐하며 “이것은 기적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류회에서 법을 얻은 후의 수련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대만 유명 군병원 진단서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또 군부대에 있는 몇 명 수련생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사단급 간부였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각종 질병을 앓았다. 심장병, 폐결핵, 폐기종 등 병은 달랐지만 상황은 비슷해 모두 일 년 내내 입원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돌봐야 했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심신에 큰 변화가 왔다. 어떤 사람은 명리를 담담하게 보자 오히려 더 좋은 연구 성과를 거두어 상장까지 받았다. 얼마 전 나는 그중 두 사람을 만났는데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지만 모두 중국공산당의 홍색 공포에 놀라지 않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을 견지했으며, 각자 환경에서 여러 방식으로 대법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고 있었다. 이는 우주의 진리가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아무리 거센 광풍과 파도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1] 이는 전국적으로 대법이 널리 전해질 그 때 당시의 진실한 상황이다.

사부님, 시시각각 선양 제자 관심

사부님께서는 비록 선양에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지 않으셨지만 줄곧 선양 대법제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셨다. 당시 베이징 파룬따파 보도소 수련생이 알려주었는데,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바쁘면서도 몇 시간 분량의 제2회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동영상을 모두 보셨다고 한다. 당시 나는 아직 신수련생이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셨다니 너무나 감동되고 큰 격려를 받았다.

7.20 전에 선양시에는 대법소개 전단지가 있었는데 편의를 위해 각 연공장 주소와 연락인 이름, 전화번호를 밝혔다. 그때 연공장이 200여 개(정확한 숫자는 아님) 있었는데 ‘전법륜’을 구하기 매우 어려워 도매상을 찾아가 구매해야 했다. 한번은 다둥(大東) 연공장에 전법륜을 가지러 갔는데 한 여성 보도원이 트럭에서 전법륜을 묶은 짐을 한 덩이 한 덩이 씩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한 수련생이 외지에서 사다가 한 푼도 더 받지 않고 원가로 수련생들에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간과 교통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수련생들에게 보서(寶書)를 청해 온 것만으로 기뻐했다. 나와 자주 거래했던 한 도매상은 1년 동안 수련생들에게 10여만 권의 전법륜을 팔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선양의 도매상들 중 한 도매상이 판매한 수치일 뿐이다. 이는 대법이 선양에서 얼마나 널리 전해졌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최소한 10여만 명이 법을 얻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악은 유언비어를 날조해 사부님께서 재물을 끌어 모은다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돈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으시고 다만 우리에게 도덕을 승화하게 하고 건강한 신체를 주셨다.

선양의 대규모 아침 연공을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베이징 4.25탄원 때 1만 명 수련생들이 보여준 초범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은 신의 길을 걷는 1만 명의 각자(覺者)를 육성해 냈다. 그들의 생명의 길은 법에 의해 뻗어나가고 그들의 경지는 법에 의해 승화되고 있다. 나는 대법의 작은 입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나는 온 세상 사람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문장발표: 2015년 5월 13일
문장분류: 신수련생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역사자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13/3085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