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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 체득 세 가지

[밍후이왕]

자비에 대한 깨달음

글/대륙 대법제자

나는 줄곧 사부님의 한 마디 말씀 “당신이 겁난에 부딪혔을 때, 그 자비심이 당신을 도와 난관을 넘게 해준다.”[1]를 기억하고 있었다. 대개 특히 어려울 때 나는 이 말이 생각났는데 자비심이야말로 강대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힘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7.20’이전의 개인 수련 중에 자비에 대한 깨달음이 아주 많았다. 수련상태가 좋을 때는 내심 순정했는데 매 세포가 모두 자비에 포용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남을 감동시킬 수 있었으며,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었다. 관을 넘을 때 자비심이 크면 사악이 닿지 못하거나 혹은 닿아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사이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수많은 난들을 제거해 주셨는데 층차 제고가 아주 빠르게 느껴졌고, 직장 환경에서도 늘 이러한 상태에 처해있었기에 당시 직장의 환경을 아주 잘 평형할 수 있었다. 이것은 후에 박해가 시작된 후에도 작용을 일으켰는데 직장환경에서 오는 압력이 거의 없었고, 동료와 상사도 모두 일정한 정도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 후 냉혹하게 박해받는 환경에서 자비심은 강대한 힘을 보여주었다.

2008년, 내가 노교소에서 박해받을 때 ‘전관대대(전문단속반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당시 가장 사악하기로 정평인 난 팀장에게로 배치 받았다. 바로 그날, 그는 나를 폭염 속에서 한낮 내내 벌을 세웠고, 이튿날 저녁부터 때리기 시작했는데, 나에게 사악한 문제에 대해 반복하여 물었다. 매번 정면적으로 대응하자 그는 나의 뺨을 힘껏 때려 여러 번 의자에서 나가 떨어졌다. 수십 번을 때렸는데 입에서 피까지 났다.

나는 당시 무섭지 않았고 그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비록 그는 아주 사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하든 그의 표면은 사람이고 선한 일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그를 위한 진심이 있고 충분히 선하기만 하다면 그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개변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에 나는 비로소 그와 같이 사악한 졸개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전관대대’에 오게 되면 세뇌전문 악경들에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룬궁을 비방하는 사악의 거짓말을 주입시키고 시험까지 보게 하였다. 그가 나에게 어떠한 악담을 하고, 괴롭히며, 욕설을 퍼붓든 간에 기회만 있으면 나는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나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도 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다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누군가 고자질할까봐 감히 듣지 못했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 나는 그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정황과 우리가 수련한 후의 심신변화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듣고 그는 얼굴에 원래의 사악한 기색이 없어졌는데 “그렇다면 파룬궁은 꽤 좋은 거네요. 나는 감히 듣지 못하겠어요. 이러다가 나도 당신에게 ‘전향’되겠어요.”라고 말했다.

후에 그는 나를 다시는 때리지 않았고, 나도 기회만 있으면 그에게 정면적으로 도리를 알려주었다. 그는 차츰 나를 괴롭히지 않았는데, 오직 세뇌전문 악경이 순찰할 때만 일부러 큰 소리로 바르게 앉으라고 소리쳤을 뿐이다. 그는 차츰 수련생을 동정하게 되었고, 후에 다른 소조로 옮겨갔을 때 다른 대법제자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 결과 공인하는 제일 악한 졸개였으나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게 되었다. 한 대법제자는 나에게 이전에 그의 방에 있던 대법제자에게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한 동안, 매번 나를 볼 때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미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가 “왜 당신을 미워해요? 나는 당신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라는데….”라고 말했다. 견정한 대법제자의 행위를 목격한 후 그는 “이 층(전문단속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장래 정말 누군가가 원만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 대법제자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당의 세뇌 때문에 졸개역할을 했던 소문난 악인이 대법제자의 자비에 의해 진념이 나온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 그 엄혹한 환경에서 우리 대법제자는 보기에 아무 것도 없고, 아주 약세를 보이지만 우리는 대법제자이다. 수련해낸 자비는 일체 사악을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자비야말로 바른 신이 갖고 있는 크나큰 힘이라는 것을 나는 깊이 깨닫게 되었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做而不求)”에 대한 깨달음

글/대륙 대법제자

그저께, 요즈음 한 업무에 좋은 결과가 있고 비교적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기에 높은 상사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속은 오히려 불안했고, 하루 종일 마음이 아주 괴로웠는데 한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때까지 직속상사는 그전에 내가 했던 업무에 대해 인정을 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늘 마음에 걸려했다. 업무 특성 때문에 매번 직속상사는 업무를 보고할 때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적게 언급했다. 속으로 ‘다른 사람은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아주 체면이 깎인다고 여겼고, 또한 자신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중시를 받지 못했다고 여겼다. 동시에 한 대법제자로서 직장에서 출중하지 못하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주고, 회사의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줄곧 답답했다.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게 되자 또 불안해졌다.

스스로도 정상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정말로 없을 때에는 얻을 것을 걱정하고, 얻고 난 후에는 잃을 것을 걱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신이 그전에 늘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다른 사람의 비평을 들으면 마음이 아주 담담하지만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들으면 참을 수 없다. 어쨌든 마음이 벌벌 떨리며 불안하다.” 사실 정말 다른 사람의 비평에 대해서 담담하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가? 내가 이미 개의치 않는 일에 대해서는 괜찮지만 내가 아주 중하게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 이른바 ‘명예’에 대해 여전히 때때로 아주 중히 여기고, 칭찬에 대해서는 벌벌 떨며 불안해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허명을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내가 이러한 허명을 얻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잃게 될까봐 걱정하였다.

자신을 되돌아보니 어려서부터 줄곧 칭찬만 들어왔기에 속인 속에서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을 키워왔다. 가끔은 칭찬 속에 있으므로 칭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이러한 칭찬에 부합되기 위해 행동을 해 왔는데 마치 칭찬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러한 허위적인 습관을 키워왔는데, 줄곧 아주 은폐되고 깊이 은폐되었기에 파악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오늘 수련생의 문장 한 편을 읽게 되었는데 자비와 오만은 사실 같은 것으로 모두 공리심(功利心)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비교를 하는가? ‘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 사실은 자신의 오성이 너무 낮은 것이었다.

사실 내가 착실하게 해야 할 일들만 잘 하고, 양심에 물어 조금도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왜 남의 생각을 이토록 중히 여기는가? 하물며 결과가 어떠한가 하는 것은 구해서 오는 것도 아니다. 진상을 알리는데 영향을 줄까봐 걱정하는데 이러한 걱정 자체가 바로 하나의 장애이다. 그전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얘기할 때 늘 아주 긴장되었는데 말을 잘하지 못할까봐 걱정해서 초래한 것이었다. 왜 정정당당하지 못한가? 늘 자기가 제일 잘 하기를 바라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데, 대법으로 자신의 명을 구하는 마음을 숨긴 것이었다. 여기에는 명리심, 공리심, 질투심이 포함되어 있는데 분석하고 나서 정말로 깜짝 놀랐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2]가 생각났는데 정말로 가슴이 확 트였다. 원래 이렇게 긴장할 필요도, 이렇게 힘들 필요도 없었다. 전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시각각 법에 용해되기만 하면 되는데 대도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

법을 외운 심득

글/대륙 대법제자

오늘 법을 외울 때 갑자기 사부님이 말씀하신 상생상극의 이치에 대해 비교적 깊은 체득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은 이미 상생상극(相生相克)의 법리(法理)를 알고 있는데,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3]고 말씀하셨다.

나는 삼계내의 물질은 늘 상대적 혹은 짝을 이루어 나타나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교란할 때 내가 맞받아치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내가 마음속으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그것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거나 혹은 나의 마음속에 없다면 이러한 모순에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모순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모순의 쌍방이 있는데 만약 한 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모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존재할 이유도 없게 된다. 수련의 법리에서 보면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교란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직장의 한 상사에게 인상이 좋지 않은데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있고, 당 문화가 너무 많다고 여기면서 마음속으로 늘 그에 대한 불만을 가졌다. 동시에 상대방도 나에게 불만을 갖고 있고, 나를 눈에 거슬려 한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것은 인위적으로 모순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만약 시간이 길어진다면 이러한 모순은 갈수록 더 현실로 변할 것이다.

오늘 법을 외울 때 이러한 생각은 정말 무섭고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남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고, 응당 구도 받아야 할 중생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응당 잊어버려야 하는데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잊어버린다면 나에 대한 원망이 존재하겠는가? 내가 정말 아주 철저히 잊어버렸을 때 그 자신도 나에 대한 불만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마음속으로 자비와 선한 마음을 품는다면(일부러 하는 유위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선의 에너지 마당이 그에게 머물 것이고, 동화될 것이며, 그 역시 나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이치가 바로 이러한데 법리가 이 일체를 제약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그전에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 있었는데 늘 다른 사람의 심리,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기분을 추측하기 좋아했다. 비록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게 엄중한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되었고, 그러면서 쉽게 다른 사람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인데 나는 응당 시종일관 긍정적인 심태를 가지고 주위 일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비춰주어야 한다.

직장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무엇을 하든 잘 하지 못하고, 책임감이 부족했으며,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느 부문의 사람이든 모두 그에 대해 불만을 가졌는데 나와 왕래하는 가운데서 비록 넘어는 갔지만 나도 참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사람들 앞에서 원망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는 참으로 아주 부족하구나 하면서 말이다. 비록 그를 도와 삼퇴를 해주었지만 그의 당문화 요소가 아직도 매우 많다고 여겼고,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그에 대해 아주 불만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련에 있어 나는 정말 너무 부족했다. 왜 그는 늘 내 앞에서 어슬렁거렸는가? 각자로 수련성취하려면 응당 비할 바 없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하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어야 하는 용량과 자비가 필요한 것이다.

법을 외웠을 때에야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머릿속에 법을 담지 못하였을 때 아주 쉽게 속인의 이치에 교란되는데 나는 진정으로 법을 외우는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만 비로소 속인의 이치, 속인의 기분에 교란 받지 않게 되고, 무의식중에 남의 의견을 따르지 않게 된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파룬궁” – “제3장 心性(씬씽)수련”

[2]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 도중”

[3]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 –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문장발표: 2013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5/2822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