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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자신을 수련하고, 정진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글/대륙대법제자 명진(明真)

[밍후이왕] 줄곧 수련상태가 좋지 않아 법공부를 마음에 파고들게 할 수 없었다. 잡념이 들어오거나 졸렸으며, 발정념할 때 손이 넘어가고 청성하지 못했다. 매우 조급했고 다른 수련생들이걱정을 하였다. 어떤 수련생은 안으로 찾기를 건의했다. 또 일하는 마음을 너무 중하게 하지 말고, 적당히 수면시간을 보장하라 했으며, 또는 발정념을 많이 하여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라 했다. 또는 법 공부를 많이 하라고 했다. 하여 밤에 3시간 자는 게 너무 적다고 생각되어 점심시간에 반시간 자던 낮잠을 한 시간으로 했더니 다소 개선되었으나 철저히 해결은 안되었다.

안으로 찾아도 모든 게 매우 정상이고 사람과의 모순도 없는데 뭘 찾는단 말인가? 사람 마음이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 스스로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밍후이왕에서 안으로 찾는데 관련된 교류 글을 읽었는데 매우 큰 계발을 받았다. 수련생은 모순에 봉착하여 분명히 상대방의 잘못이었으나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에게서 수많은 집착을 찾아냈다. 기계가 고장 나거나, 물이 새는 등, 여러 가지 일에서 언제나 자신이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을 찾아냈다. 그런 것이야말로 정진이구나! 그제야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안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뿌리 깊은 집착을 적잖게 찾아냈다.

근본 집착을 제거하고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집착을 닦아버리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가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착을 가지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1]

그때 나는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으려 했고 나는 왜 대법을 수련하는지를 생각해봤다. 마치모든 것에 집착이조금씩 있는 거 같았고 또 모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반복해서 사고하고 뿌리를 파내려 했으며, 나는 자신의 근본 집착이 ‘삼계를 벗어나려함’ 임을 발견했다.

나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당과 지옥, 윤회응보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사람이 미혹 중에서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증하기 어렵다고 생각돼 사람의 모습으로 있는 게 싫었다. 7,8세 때 나는 어른에게 커서 ‘불래불거(不來不去)’로 될 것이라고 했다. 뜻인즉 삼계를 벗어나 죽지도 윤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나는 죽는 게 두려웠고 다른 하나는 결심이 부족했으며 의지가 확고하지 못했다. 즉 대가를 지불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면서도 이러한 것을 가지려 했다. 이는 많은 사심이 들어있다. 아울러 불교의 영향이 남아있어 불이법문의 문제도 존재하는 게, 반드시 버려야 할 집착이었다.

줄곧 수련에 감각이 없이 잠겨서 수련해 오면서 깨달음이 차하여 제고가 매우 느리다고 생각했고, 남보다 못하다는 마음과 의심이 생겼다. “사부님께서 나를 책임지고 계시는가? 나를 제자로 인정하셨을까?” 늘 사부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싱가포르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보기 때문에, 당신이 수련만 하면 나는 곧 당신을 책임진다.”[2], “중국대륙의 어떠한 한 대법제자이든, 나, 이 사부가 다 그(그녀)를 빠트리지 않을 것인바, 반면으로 나간 구할 수 없는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박수) 나는 그(그녀)들을 생각하고 있다.”[3]

사부님께서 나를 대법제자로 선택하셨는데 오직 착실히 수련한다면 사부님께서 어찌 나를 책임지지 않으시겠는가? 사부님이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 의심하는 게 바로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믿지 않는 것이며, 수련 중에서 나타난 신적, 사부님의 보호, 감당, 수시로 되는 보살핌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까지 무사히 걸어올 수 없었다. 자신의 좋지 않은 상태는 모두 법공부를 마음에 파고들게 하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정념이 부족한 것으로 확고한 신사신법이야말로 가장 큰 정념이다.

원망의 마음을 닦아버리고 가정 수련환경을 개선하다

나는 남편과 중매로 결혼했다. 남편은 성격이 내향적이지만 화를 잘 냈고 어떤 경우에는 갑자기 화를 내며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우 냉정했다. 그가 좋게 대해도, 화를 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음에서는 “저 꼬락서니를 보라.”고 말했는데 일종 철저한 경멸이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의 신체가 좋지 않아 돌보면서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겼으나 매우 냉담했고, 사람 자체를 아예 마음에 두고 싶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전법륜’에서 다음의 구절을 읽었다.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4] 남편은 첫인상부터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왜 결혼까지 했을까, 그건 인연관계이고 빚을 졌기 때문이다.그러한 인식 이후로남편이 뭘 하라고 하면 뭘 했으며 일부 경우에 남편이 불만족스러워 고함을 질러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냉랭하게 생각했다. “빚을 갚자, 언제야 다 갚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건 선함이 아니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3-음양반배(陰陽反背)’에서 말씀하셨다. “여인은 드세고 날카로운데다 난폭하고 / 경박하고 신랄한 말투로 주인노릇까지 하네 / 어질고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 없으니 / 교태부리는 요괴요 암중 창녀라네”[5] 나는 이러한 사람으로 될 수 없으며 안으로 찾아 반드시 그것을 닦아 버려야 한다!

또 몇 편의 수련생 교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정말로 매우 많은 문제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하나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할 것을 요구했다. 말하는 어투가 저속했고 문제를 보는 게 편파적이고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등의 마음이 있었다. 자아를 중심으로 했고 욕해도 대꾸하지는 않아도 선한 마음으로 웃어넘기지 않았고, 오히려 전혀 남편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사실은 나의 선하지 못한 마음이 그의 선하지 못한 것을 불러오게 했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잖은가.

왜 남편을 업신여기는가? 추적해 보니 나에게 일종 관념이 있음을 발견했다. 가정에서 남자는 마땅히 여자보다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지할 것을 찾았고 속인이 가지려하는 금전,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얻으려 했다. 이러한 것을 남편에게서 얻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 불평이 생겼고 마음에서 원한이 생겼다. 그러나 인생의 득실은 사람의 소원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며 인연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나의 생명에 없는 것을 어찌 구하여 올 수 있겠는가, 빚을 졌으면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수련인이 속인의 명리정을 가지려 해서 되겠는가? 삼계의 이치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진정으로 수련하는 데 이런 명리정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사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의지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 원망, 원한, 질투가 있었는데 뿌리를 파보면 하나의 사심이었다. 아울러 현재 대다수는 법을 위하여 온 생명이다. 사부님께서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도 위로 추적해보면 아마 왕일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남편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런 자신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차 마음의 용량을 넓혀갔다. 다른 수련생의 말처럼 “자신과 다른 것을 포용하여 자신을 성취하자.” 나의 심성이 조금 제고될 때 남편의 심성도 변화가 발생했다. ‘7.20’ 이전에 남편은 나의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는 계속 나를 주시했다. 사당이 ‘가짜 분신자살 사건’ 조작했을 때는 문을 잠근 채 자면서 내가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기타 대법에 좋지 않은 말도 했고 다른 수련생과 왕래하지 못하게 했으며 수련생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이 일로 한바탕 싸우기도 했다.(주로는 두려움이며, 사당이 모임을 가지면 몇 년 판결한다고 공포심을 주었다.)

나는 점차 남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또 그의 병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단독으로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관계는 좀 완화되어 가면서 남편에게 대법의 일을 말하고 CD를 보여줬으며 밖에 나갈 때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예전에는 모르게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사부님의 광주 설법을 들었다. 나는 또 남편이 병환에 있을 때 반복해서 들려줬다. 평소에 ‘구평’을 틀어놓아도 반대하지 않았다.

나중에 자료를 만들고 법공부팀을 건립하고 밖에 나가 일을 할 때 항상 말을 하고 가도 반대하지 않았다. 진상을 알리다가 그에게 적합한 것이면 돌아와서 오늘 어떤 사람을 봉착했으며, 어떻게 그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는지 말해주었다. 사실은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대법에 대한, 정법수련에 대한, 사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우쳐 주려함이었다. 현재 대법, 삼퇴, 사당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이 있다.(그이는 3대 조직에 가입하지 않았다.) 현재 남편은 정중하게 성명을 발표했으나 다만 대법의 신기한 기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믿지 않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이틀 동안 연공을 했으나 술담배를 끊지 못했다. 계를 범하는 게 두렵다고 했고, 가족 중에 두 사람이 수련하다가 내가 붙잡히면 자신이 찾아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우리 가정은 기본적으로 융합되어, 집에 오는 손님, 청소하는 사람, 하수도 수리하는 사람, 정비하러 오는 사람이든 막론하고 언제나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해도 남편은 반대하지 않았다. 대법의 법리에 대해 인정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올해 5월,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다. 정차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뒤에서 박았다. 상대방은 병원에 가자고 했으나 남편은 가지 않았다. 100위안을 준다고 해도 남편은 받지 않았다. 다만 “괜찮아요, 당신 탓이라고 하지 않을 게요, 난 무료 의료보험이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때 남편은 걷지를 못해서 업어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통증으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남편에게 그때 “파룬따파하오, 사부님 구해주세요.”라고 외쳤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고는 “당신은 그에게 알려줘야 했어요.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고 있으므로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돈을 뜯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도와 함께 파룬따파하오를 외쳐야 한다. 사부님도 당신에게 사고를 감소시켜 줄 것이다. 그럼 당신은 그 사람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남편은 그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또 남편에게 알려줬다. “이렇게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골절도 되지 않았으니, 이는 반드시 사부님의 보호일 것입니다. 어서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남편은 즉시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내가 안으로 찾으면서 다소 제고된 후 주위 환경도 상응되는 변화가 발생했다. 바로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5] 였다. 나는 이 일을 반드시 홍법에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고가 난 곳에 가서 이 일을 알리면서 어느 기사에게 자료를 주고 소선대원에서 탈퇴시켰다.(사고를 낸 기사일지는 모른다.) 어제 남편이 또 한 가지 일에 만족하지 못해 크게 화를 냈다. 그것이 반복되었으니 그럼 반복해서 나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심성을 제고해 바르지 않은 상태를 개변하다

수련상태가 좋지 않아 제고가 느리다고 느껴졌다. 그 원인은 법공부할 때 졸리고 마음에 파고들게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수련생과의 교류에서 법공부를 해야 빠르게 돌파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는 나는 나이가 많아 외울 수 없다는 관념을 부정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구절씩 외웠고 한 단락씩 외웠다. 3,4회 외웠으나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또 수련생이 법을 베껴 쓰기 시작했는데 눈물이 떨어지면서 구절마다 마음에 들어온다고 했다. 나도 베껴 썼으며 4번이나 썼지만 마음에 파고들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늘 틀리게 베껴 썼다. 왜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는 지 정말 괴로웠다. 어찌하여 아무리해도 제고가 되지 않는가? 수련생의 교류대로 했는데 왜 트이지 않고 유암화명(柳暗花明)의 느낌이 없는 것인가?

사실 나는 겉면을 모방했다. 강렬하게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했다. 구함이 없이 법공부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7] 법공부가 마음에 파고들지 않는 데는 또 경사경법(敬師敬法)의 문제가 있었다. 법공부할 때 사상 중에 잡념이 있거나 흐리멍덩한데 이는 법에 대한 불경이니 법이 어찌 펼쳐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스위스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늘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했다. 당신들이 비록 부동한 경지에 있지만 모두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이 얻은 그것에는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속에 용해되어 들어있는지를? (박수) 물론 나는 나 자신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다만 당신들에게 내가 사부로서 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당신들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잘 수련하여 이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말라.”[8] 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으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는지는 제자로서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며 사부님의 은혜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으로 수많은 집착을 찾아냈다. 손자에 대한 정, 손자가 학교에 다니기 전 나와 함께 법공부를 했었는데, 총명하고 건강했다. 법에서 멀어지니 현재 신체가 그다지 좋지 않고 공부하기 싫어하며 성격도 나빠졌다. 그래서 손자가 수련하길 바랐는데 사실은 매우 중한 정과 구하는 마음, 공명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물론 효과가 좋을 수 없었다.

결혼에 대한 불만으로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 저 여자는 나보다 못한데 남편이 저렇게 잘해주다니,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보다 못한테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대하고 있잖은가. 마음속으로 큰 불평이 생겼다. 사실 일종 강렬한 질투심이며 어떤 때는 결혼을 후회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여러 차례 꿈에서 고비를 넘겼는데 나를 원했던 사람들을 거절하는 꿈이었다. 전에는 깨닫지 못해 꿈에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색관을 배치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게 색관이 아니겠는가? 옛 사람들은 “예의가 아닌 것은 보지 말라고 했다.” 남편을 생각함은 마땅히 버려야 할 정이고, 다른 이성을 생각함은 음탕함이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철저히 부정해야 하며 그것을 배제하고 깡그리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이런 모든 게 다 사심이다. 모두 속인 중에서 편안히 생활하려는 마음으로 수련인이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주신 안으로 찾는 법보로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해야 한다. “자비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하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9]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가자’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 3-음양반배(陰陽反背)

[6]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 3-법정건곤(法正乾坤)’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學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설법’

[9]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문장발표: 2013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3/278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