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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학습하는 마음가짐에서 생각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즈음 법 공부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통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경지가 제고되는데 대해 법 공부할 때 일부 알아야 할 내용들이 경서에서 나타날 것인데 특별히 애써서 따질 필요가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보아야 하는데, 마치 사존의 설법을 듣는 것처럼 하면 된다.

얼마 전, 수련생이 법 공부 경험을 교류하는 것을 들었는데, 한 가지 일로부터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유추해내듯 자세히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보았던 경문의 모든 경지와 함의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일부 층차의 더욱 높은 이치는 보아낼 수 있었다. 나도 시도해 보았는데 주의력을 제고하는 데는 일정한 도움이 있었지만 속인의 이론을 학습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법 속에서 더욱 많은 함의를 찾으려고 하니 말이다. 이 며칠, 생각이 비교적 확고해졌는데 그렇게 하면 합당하지 않은 것 같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법 공부는 수련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학습하는 가운데서 깨달은 이치로 부딪친 사람과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관을 넘는 고험 가운데서 자신의 집착과 수련 소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경지에서 안정되면 법 공부할 때 법은 당신에게 다음 경지에 대해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는 가운데서 법이 당신에게 요구한 경지에 착실하게 도달하지 못했다면 다음 경지의 가르침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서 세 가지를 유추하여 알아보는 생각으로 법을 학습한다면, 나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자신이 깨달은 문제를 법의 곳곳에서 모두 언급한 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자신의 깨달음이 좋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사존께서는 여러 곳에서 모두 이 점을 지적해주셨으니 말이다.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법에서 자기가 깨달은 부분과 부합되는 것을 찾고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전도된 것이다. 끝없는 대법 속에서 자기에게 부합되는 작은 깨달음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여 자기가 깨달은 것이 맞고 다른 사람보다 투철하게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높이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많은 대법제자는 한 층을 깨달은 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사존의 안배대로 직접 다음 한 층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어느 한 층의 깨달음을 말하라고 하면 그는 말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가 줄곧 용맹정진하면서 위로 돌파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사람의 일면은 그가 처한 경지의 일면만 명백히 알고 있지만 수련이 다 된 일면은 그 경지와 다음 일보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여 공만 열리게 되면 전부 깨닫게 된다.

하지만 법을 반복적으로 심사숙고하는 수련생들은 한 층에서의 많은 감수를 얘기할 수 있고, 좋은 의도로 다른 수련생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다른 수련생도 공동으로 제고되도록 도와준다. 비록 다른 수련생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하고, 법을 많이 학습하라고 독촉하지만 말과 행동 가운데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수련생에게 쏟아 붓곤 한다. 게다가 적지 않은 수련생도 이렇게 반복 유추하여 생각하는 수련생들이 법을 잘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말이 법에 있기에 숭배하는 마음이 생겼고, 숭배를 받는 수련생은 자신의 작은 성과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환희심이 생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가 커졌고 겸손함도 몰라 경지는 정체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혹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법을 학습하는 심태에 대해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여 보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잠시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법과 비하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깨달았으면 무엇을 깨달은 것이고, 깨닫지 못했어도 여전히 법에 동화되고 있기에 이러면 되는 것이다. 수련생을 도와주는데 대해서는 법을 많이 학습하도록 서로 독촉하고 평소 법에서 깨달은 대로 하면 된다. (많은 수련생은 이치는 알고 있지만 문제에 부딪치면 또 속인의 사고로 돌아간다.) 또한 세 가지 일을 하는 경험교류, 이런 것들이 바로 서로 도와 정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이 인터넷에서 하는 ‘교류’는 사람을 구하거나 사존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력을 들여 이른바 나중에 들어온 수련생을 정진하도록 이끈다고 한다. 몇몇 수련생이 앞장서서 서로 추앙하면 다른 수련생이 따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끄는 수련생은 따르는 수련생을 개인의 경지로 데려가고, 따르는 수련생은 이끄는 수련생의 환희심을 조장한다. 환희심은 무서운 것인데 자기도 모르게 남과 다르다고 여기게 한다. 어떤 수련생은 자기는 의념으로 사람을 구한다고 공언하기 시작한다. 그 생명이 스스로 구도를 선택한 것인가? 만약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면 사부님 혼자서 직접 다시 만드시면 되지 않은가? 이런 것은 법에 부합하지 않은 언론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숭배하는 수련생들은 이미 이에 대해 보아내지 못하고 그가 한 말은 모두 다 이치가 있다고 여기며 게다가 법리에서 증거를 찾아 이 관점을 지지하려 한다. 이 수련생들을 이끄는 수련생에게는 책임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끄는 수련생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수련생도 역시 자기의 문제를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대궁을 성취할 왕과 주로서 다른 각자의 중생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련해낸 경지와 일하는 방식은 마땅히 대법 각자(覺者)의 사유여야 한다.

이끄는 수련생들은 이른바 시시각각 수련생을 도와준다는 명의로 거의 항상 인터넷상에 있다. 인터넷의 위험을 무릅썼겠지만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으니 정말 가치가 없다. 또한 그들의 법 공부도 늘 수련생의 질문 때문에 끊겨 자신의 제고에도 영향을 준다. 이때 따르는 수련생들은 이끄는 이 수련생을 위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법 각자를 수련해내는 것으로 수련생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사람의 정으로 수련 후에 생긴 이성을 대체하면 안 된다.

비교적 복잡하게 썼지만 일부 수련생에 대해 유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적합하지 않은 부분은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3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 >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6/2729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