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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인은 정체를 형성하고 안으로 찾는 환경을 형성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글/중국 대법제자 천도(天濤)

[밍후이왕] 협조는 정체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현재 중국의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비로소 정체를 형성하고, 어떻게 하면 비로소 사부님께서 ‘평어’에서 긍정하신 ‘대도무형(大道無形)에 정체(整體)가 있다’를 체현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 나는 줄곧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몇 년간 늘 수련생들과 이 문제를 교류했으나 여전히 청성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느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 이곳에는 정체가 없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 그 몇 년간의 상태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어요, 그 몇 년간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일치했던가요, 현재는 어찌하여 누구도 누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관계할 수 없게 됐어요. 우리는 어찌하여 수련하다가 이 모양으로 됐을까요?”

이 몇 년간 나도 시종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로소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정체를 형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비로소 더욱 힘 있게 반박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중생구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최근 한동안 나는 조금 명백해진 느낌이 든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각도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어떻게 사람의 정체를 형성할 것인지 생각했고, 사람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의 방법으로 사람의 정체를 형성하고 유형적인 정체를 형성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도무형에 정체가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중공사당과 맞서려는 게 아니며 또 중공사당을 우리의 적으로 여기려는 게 아니다. 그것 또한 우리의 적이 될 자격이 없으며 우리 대법제자 또한 적이 없다. 우리가 정체를 형성함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며 또 중공사당을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정체를 형성함은 정체로 승화하고 정체로 제고하려는 것이며 진상을 더욱 똑똑히 알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일의 항목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 대도무형(大道無形)에 정체(整體)가 있다’라는 글에 대한 평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수련의 길이 같지 않고, 법을 실증하는 방식이 같지 않으며, 사회계층이 같지 않고 직업이 같지 않으며 환경이 같지 않아도 모두 수련할 수 있는바, 이것이 바로 대법이 수련자에게 펼쳐준 길이다. 대법제자는 정체이며 정법 중에서 한 일체를 나는 모두 긍정하는 것으로 모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지 않은 방법[做法]은 바로 운행[運轉] 중에 있어서 법의 유기적인 분공원용(分工圓容)의 방식이지만 법력(法力)은 정체적인 펼쳐짐[展現]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협조의 일을 하고 있는 수련생은 협조하는 중에서 정체를 형성하고 안으로 찾는 환경을 형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지, 곳곳으로 다니며 수련생을 지도하고 수련생을 지휘, 지적할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면 여러 사람이 전진하는 게 아니다.

정체를 형성하는 과정 중에서 착실히 마음을 닦는 게 가장 관건적이다. 기세 드높이 일하는 걸 수련 중에서 용맹정진하고 있다고 착각하여, 일하는 것과 마음 닦는 두 가지 방면을 엄중하게 분리시켜 정체를 형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수련생에게 간격을 조성해 사악이 틈을 타 우리를 박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되어 현재까지 우리 얼마나 많은 보도소 소장이 심한 박해를 당했고, 얼마나 많은 소장이 사오(邪悟) 했던가. 1999년 이후 또 얼마나 많은 협조인이 중형을 선고당했고 얼마나 많은 협조인이 생명을 잃었던가. 우리는 정말로 마땅히 청성해야 한다.

수련의 길에서 어떠한 한 번의 기회든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사악한 고험을 경과하고도 우리가 아직도 청성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아직도 근본적으로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지 못한다면, 역시 착실한 수련이라 말할 수 없으며, 우리는 아주 가능하게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한 번의 만고기연(萬古機緣)을 정말로 잃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체로 안으로 찾는 환경이 형성되고 우리가 모두 능히 무조건 법에 동화되면 우리의 마음은 곧 통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간격이 없으면 우리의 정체도 곧 형성된다. 이게 대도무형에 정체가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의 자비와 정념이 모두 나오고 우리가 그 자비와 정념으로 중생을 구도한다면 우리의 환경은 즉시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매일 구도되는 생명이 단지 5, 6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아마 바로 몇 십만, 백만 명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정법 하시는 길은 어떠한 힘도 가로막을 수 없으나 우리 제자의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으며, 제자인 우리 자신의 관념이 가로막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한번 또 한 번 우리에게 보여주시나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 사람의 관념으로 정법을 대하고 있어 우리 자신이 사부님 정법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사람의 마음으로 정법이 결속되기를 바라고 형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아직도 밖으로 찾고 있으며 밖에서 구하고 있다. 우리 자신에게 존재하는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의 사명을 완성할 수 없는데 정법이 어떻게 결속될 수 있겠는가. 어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자.

개인적으로 이해하건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연장하신 길은 사부님의 거대한 대가의 지불과 감당으로 펴내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의 사람 마음에 집착하고 있으며 자신이 지도자가 됐다고 집착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지휘하는데 집착하고 있다. 어서 자신의 사람 마음을 내려놓자.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하시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13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31/271544.htm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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