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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독특한 득법의 길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밍후이왕에서 보낸 제9회 대륙 대법제자 인터넷 수련심득교류대회 응모작품통지를 보고 나, 이 신 수련생도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

1. 나의 독특한 득법의 길

내가 대법으로 들어온 과정을 말하자면 수련생들과는 모두 다른데 나는 부정적인 면으로부터 법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2002년의 여름은 유달리 무더워서 나는 주말을 택하여 산서의 오대산(山西的五台山)에 가 피서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그곳은 불교 성지라는 말을 들었고, 나는 또 어려서부터 이런 신비한 일에 대해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점심에 나는 한 밀종의 사찰에 들어갔는데 그때 관광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마침 한 스님이 식사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상냥하게 나와 말하였고 나도 이 기회에 일부 불교에서 수행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에게 귀의하지 않았냐고 묻기에 나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후에 그가 갑자기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자네 파룬궁 수련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의 이 물음이 도리어 나의 흥취를 자아냈다, 당시 나는 부인하지 않고 다만 그에게 파룬궁이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었다. 그는 아주 정색해서 말했다. “자네 절대로 그걸 수련하지 말게.” 무척 엄숙하고 아주 무서운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그가 나를 위해서 그런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나는 ‘파룬궁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를 알아보려는 마음을 심게 되었다.

본디 나는 그건 그저 한 가지 기공으로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만 여겼지, 기타 문제는 종래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계속하여 나는 수련에 일부 요해가 있는 많은 사람을 찾아가서 파룬궁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얻은 것이란 사당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과는 같지 않음을 느꼈다. 만약 그렇다면 뉴스를 들으면 그만이 아니냐, 왜 파룬궁이 한 스님을 그토록 무서워하게 만들었는지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후에 나는 또 감옥에서 막 나온 밀종 진수를 하는 사람이 그가 잡힌 원인이 바로 그를 믿는 사람이 많아서 당국은 두려워서 그를 잡아 가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를 통해 이 사람과 만나게 되었고, 또 그에게 파룬궁은 어찌된 일인가를 물었는데 그 또한 부정적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불교 중에서 보급되고 있는 책을 주었는데 대부분은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는 감각은 불교의 것이란 정경 놀음이었다. 이런 것을 듣고 속으로 나는 파룬궁에 대해 한 가지 ‘선입견’이 생겼는데 생각하는 것도 이러했다.

후에 또 한 도장을 만났는데 나는 또 파룬궁의 일을 물었다. 나는 본디 그도 스님들처럼 말할 줄로 알았는데 그가 도리어 나에게 “만약 그(이 선생님)가 해낼 수 있다면 그는 바로 진짜야!“라고 말했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얻은 것이며 게다가 기타 사람들의 말과는 매우 다른 것이어서 너무도 생각 밖이었던 것이다. 이때로부터 나는 더는 파룬궁에 방어를 설치하지 않았다. 2008년 사부님께서는 또 수련생을 안배하여 정면으로 나와 파룬궁을 말하게 하였고 또 나에게 한 세트의 전자판 자료를 보여 주었다.

2. 텔레비전 인을 떼어 버리고 왜 위생을 지켜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수련 전에 나는 전형적인 텔레비전 미치광이어서 어떠한 프로그램이든 모두 나를 흡인하였고, 특히 운동 경기와 연속 드라마 보기를 즐겼다. 이 때문에 나는 늘 부모님의 꾸지람을 들었으나 나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수련에 들어서서부터 나는 변했다. 법 공부에 빠져 짬만 있으면 책을 보고자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더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전변은 모친을 무척 놀랍게 하였고 게다가 나는 짬만 있으면 소리 내어 읽으면서 어머니도 듣게 하였다. 이제 내 집에는 텔레비전을 설치하지 않았고 그저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이 있으면 만족이다.

다른 하나의 큰 변화로는 바로 갑자기 주위 환경 중의 일체 모두가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집의 가구, 마룻바닥에 만약 한 층의 흙이 꼈다면 그건 얼마나 가련한 상태일까를 마음속으로부터 체험하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주동적으로 유리를 닦고 주방을 정리하는 등 바로 대청소하는 것처럼 했는데 부모님은 몹시 놀라워했다.

평소에는 일관적으로 게으르던 내가 왜 갑자기 깨끗하고 정결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바로 파룬궁의 위력이라고 했다. 그때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쟁투심을 지니고 있어 잠재의식 가운데는 그들을 모두 사부님께 탄복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누가 알았으랴 모친한테 반영된 것을 들으니 속으로 불복하였고, 또 그녀도 평소에 나더러 깨끗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별반 차별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법에서 보면 자신의 잠재의식 가운데 다른 사람도 선생님께 탄복시키려는 그 마음이 모친을 밀어낸 것임을 알게 되었다.

3. 정념으로 시비를 가릴 줄 알게 되었고 의뢰심을 버리다

법을 얻은 후 사부님께서는 나를 수련생이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가도록 안배하셨다. 모두 대법을 수련함으로 자연히 유달리 친절한 감을 느꼈고 날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하고 늦게 하든지 원망이 없었다. 예전에 나는 줄곧 자유인 상태였으므로 나는 그래도 겸직 신분으로 수련생을 도와 일했다. 평소에도 모두 사업과 수련을 용해하고 공부를 비기고 수련을 비겼으며 말하고 일 처리 하는 것을 모두 법으로 교류토론 하였다. 다른 수련생은 모두 노제자여서 무의식중에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표현상으로는 바로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따라 배우지 않은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고 알 수 없으면 곧 노 수련생에게 물었고 자신에게 무슨 심득이 있으면 늘 노 수련생을 찾아 교류했으며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마음이 든든하였는데 무형 중 수련생을 사부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누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당시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수련생이 있었지만 나는 도리어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돼야 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으며, 업무 수요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렇듯 엄중한 수련생을 의지하는 상태에서는 자연히 노 수련생의 의견을 표준으로 판단하는 일이 나타나고 법으로 가늠하지 않았다. 사존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하셨는데 당시 다른 수련생이 여러 번 나에게 그 노 수련생은 득도지인(得道之人)이라고 말해 주었어도 나는 이것이 고험이며 또한 사부님의 간곡한 일깨움임을 깨닫지 못했다. 한 때 정말로 이 수련생을 득도지인으로 여겨 무의식중에 수련을 지체시켰다. 후에 한 번 또 한 번의 법 공부를 통해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주의식을 과거의 착오적 상태에서 빼 내오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나는 자신이 이 수련생을 생각할 때면 먼저 앞에 ‘모모 모가 말한 것’이라 덧붙임으로써 사부님 말씀과 구분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야 조금 조금씩 사부님 법으로 일체를 가늠하는 것을 배워냈고 서서히 수련생에 대한 의뢰심을 버리게 되었다.

4. 수련생이 상경하여 법을 실증한 행위를 정확히 인식

수련에 막 들어서자 많은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으로 갔다가 잡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는 사람의 생각이 아주 심하여 왜 사존께서는 또 수련생이 상경하여 법을 실증한 것을 위대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자신을 찾을 줄 몰랐고, 신사신법 할 줄도 몰랐으며, 반대로 자신의 사람 마음으로 사존님 설법을 추측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상경하여 법을 실증한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잖은가, 적극성을 타격할 것이다.’

지금은 수련생과 사부님께 매우 미안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자신의 더러운 생각으로 사부님을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사부님에 대한 최대의 불경인데 무슨 신사신법을 논할 게 있는가! 후에 법 공부가 깊어감에 따라 조금조금 씩 이성적인 인식이 있게 되었고 진정으로 상경하여 법을 실증하는 위대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도 수시로 나를 고무 격려 해 주셨고 법을 나의 머릿속에 넣어 주시어 나를 깨닫게 하셨다. 수련생이 상경하여 현수막을 펼쳐 든 그것은 모두 하나하나의 바른 입자이다. 정신과 물질은 일성이지만 속인은 모른다. 그러나 수련자는 법리상에서와 공이 올라간 후에는 이 일을 알아야 한다, 사악이 집중된 곳인 천안문에서 수련생이 현수막을 펼쳐 들 수 있다는 그것이 바로 조사정법이 천안문 상공에 반영된 한 차례 정사 대결이다. 수련생들의 끊임없는 상경을 통해 전 중국이 모두 이 일을 알게 되었고, ‘파룬궁’이란 세 글자만 들어도 그 바른 입자가 세인의 신체 미세관으로 들어가게 되고, 앞으로 구원될 씨앗을 심어 놓게 되며, 이 씨앗은 수련생이 거리를 가면서 한 장의 전단지를 배포할 때 묻히는 것이니 당연히 위대한 것이다.

이 도리를 깨우친 후 다시 07년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녹화를 보았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물음에 대답하실 때, 거리에서 장기적으로 전단지를 배포하는 대법제자를 사부님께서는 모두 가장 위대하게 여긴다고 하실 때 나는 삽시에 감동되어 눈물을 떨어뜨렸다.

5. 수련인은 돈을 벌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다

수련 전에는 내내 자유인의 상태여서 모든 수입은 죄다 자신의 경영으로 얻은 것이다. 법을 배운 후, 다른 하나의 잘못된 인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바로 법을 읽는 데 대해 인이 박였던 것이다. 주변은 모두 노제자인데 나 자신은 뱃속에 넣은 법이 적다고 여겼다. 그래서 짬만 있으면 법 공부했고 무형 중 ‘세 가지 일을 모두 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잘 평형 시키지 못했고 속인 상태에 부합하는 것을 홀시하였다. 표현상으로는 돈을 버는데 흥취를 느끼지 못했고 2년 동안 줄곧 저축했던 것을 쓰고 있었다. 자신은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고서도 반대로 자신으로 하여금 돈과 재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했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사업 기회를 안배해 주었지만, 당시 한창 수련생의 회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일만 하고 돈을 벌지 않아야만 대법을 위해 지불하는 것이며, 사업 기회가 있게 된 것은 나에 대한 고험이라 여겼으므로 모두 일률로 사양해 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또 모친의 입을 빌려 나에게 제시하였다. “법 공부만 신경 쓰고 생활을 신경 쓰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랬지만 나는 깨닫지 못하고 모친에게 세속 관념이 있다고 여겼고, 속으로는 돈을 번다는 것을 깔보았고 돈 말을 하기만 하면 가짜 수련이라 여겼다.

그러나 후에 법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속인 상태에 부합돼야 한다는 사부님 말씀에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라 하셨는데 그 중 경제 박해는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배치한 박해 형식 중의 하나였다. 이때에야 자신이 법 공부와 참다운 수련을 결합하지 못한 것은 바로 사상 중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말하면 자유인 상태 자체가 쉽게 하나의 아주 이기적인 심리상태를 생기게 할 수 있다. 법 공부를 통해 회사에서 나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마땅히 정상적인 출근을 해야 함을 알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수행하는 사람은 모두 씻은 듯 가난해야 한다.’라고 여기는 이 자체가 바로 낡은 관념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큰 돈벌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자체는 바로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 눈에는 나의 행동이 그들로 하여금 대법수련을 하기만 하면 돈이 없고 돈을 요구하지 않는 줄로 여기게 했다. 나는 법을 실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잘못된 인식을 알게 된 후 사부님께서는 외지 수련생이 나를 찾아오게 하였고 나더러 그녀를 도와 국외 시장을 개발하게끔 안배하셨다. 이번에 나는 받아들였다. 나의 이 세인 동창생이 나와 동업할 것을 요청했을 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속인과 합작 경영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신 법을 생각하고는 거절하였다. 나의 태도는 분명하였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도와준 값을 받았는데 출장비였다.

이 일을 마치자 사부님께서는 다른 한 속인 친구를 안배하여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하였다, 이번은 그가 한 항목을 도맡았는데 전문 소그룹을 조직하려 하였고 나도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아침 9시 출근 저녁 5시 퇴근하는 출퇴근 족으로 되었다. 안정된 봉급이 있게 되자 모친께서도 기뻐하면서 내가 예전에 2년이란 시간을 지체하여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하셨다. 나도 지나간 2년은 자신의 인식이 착오적이어서 굽은 길을 걸었다고 밝혔다.

6. 정법 수련을 정확히 인식하고 나도 나가서 사람을 구하다

전 2년 동안 수련생에 의뢰하고, 수련생의 법 실증 행위를 정념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대법제자에 대한 구세력의 경제상 박해에 대해 인식이 분명하지 못했으며, ‘수련하면서 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상의 잘못된 구역에서 걸어 나온 후, 법 공부를 통하여 나는 조금씩 대법으로 일을 가늠할 줄 알기 시작하였고, 속으로 더는 거리에서 CD, 전단지를 배포하는 행위를 얕잡아 보지 않게 되었으며, 이전에 자신은 그저 법리상으로부터 깨달음이 높고 허황한 것만 생각하였으므로 바로 구세력의 꾐에 빠졌고 게다가 호기심이 유달리 강해 언제나 노 제자들이 말하는 과거 윤회 속에서의 경력을 듣기 좋아하고 함께 법 공부할 때면 사부님 요구대로 통독하는 게 아니라 흔히 표면상으로만 자신의 인식을 말할 뿐 속으로는 노 수련생의 고심법리를 듣고 싶어 하였다.

비록 표면상으로는 역시 속인의 회사 형식이 있긴 했지만 실지로는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고 수련에 대해 여전히 과거의 산과 절에 들어가 조용히 수련하고 단독 수련하는 인식 상에 머물러 있었는데 여전히 구세력의 그것으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션윈 만회 CD를 주면서 나의 동창, 동료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고 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란 정념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어떻게 입을 열고 진상을 알릴까를 생각하였다. 나에게 이 마음이 있게 되자 사부님께서는 내가 진상 알리기를 실천하도록 안배하셨다.

한번은 설을 막 쇠고 회사에 출근하니 모두 한담을 하고 있기에 나는 생각했다. 한담 중에 진상을 알리면 좋겠다. 이때 직장 동료가 나에게 그가 고속도로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원래는 대법제자가 걸어놓은 ‘610 박해를 제지하라, 파룬따파 하오!’란 현수막이었다. 나는 즉시 말했다. 그들이 한 말이 맞아요. 이렇게 여러 해 되도록 그들은 그냥 박해하고 있으니 너무 슬픕니다. 나에게는 국외 출장의 기회가 있었으므로 국외 상황에 결합하여 동료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다른 한 번은 직장의 한 겸직 직원과 함께 업무 활동으로 식사를 할 때 우리 둘뿐이므로 나는 그에게 어떻게 진상을 말해줄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자기 집 우편함에서 션윈예술단의 프로그램을 받았는데 시디로 구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당신도 받았네요. 정말 복이 있어요. 나는 외국에 간 적이 있어 아주 분명히 알아요, 그 션윈 만회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훌륭한 쇼가 되었어요, 의상으로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5천 년 문화를 원작으로 하여 발양한 것인데 보고 나면 마치 뿌리를 찾은 것 같아요. 그런 다음 화제를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데로 돌리고 진상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몇 주일이 지난 후 그는 또 나의 직장에 일보러 왔다가 션윈 만회 CD를 직접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한 번 기회를 안배해 주셨다고 생각하고는 즉시 회사의 오버헤드 프로젝터 대영사막에 방영하였고 또 회사 동료와 함께 보았는데 당시 조금도 두려운 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사부님 가지였으며 그야말로 ‘제자가 정념이 강하면 사부에겐 회천력 있노라’였다. [1]。

몇 번 시도해 본 후 나는 또 수련생이 준 CD를 기타 동창,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 한 사람씩 찾아다녔기에 효율이 낮았고 또 게으름의 교란을 쉽사리 받게 되었다. 한 번은 버스에서 몸에 갖고 다니며 보던 팜 컴퓨터를 잃었는데 하차 후에야 발견했던 것이다. 막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안에 있는 내용이 몽땅 설법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즉각 자신에게 말했다. 정념으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일체는 다 좋은 일이며 정면적인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나의 팜 컴퓨터를 주었다면 누구의 복이다. 사람이 물건을 잃게 되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물건을 잃게 되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는데 나는 왜 두려워하는가? 이건 귀신을 불러오는 게 아닌가? 결과적으로 모두 정상이었고, 내가 다른 물건을 잃은 것과 별다름이 없었다. 마음속에 정념이 있게 된 후, 머릿속에 갑자기 사부님 법이 나타났다. ‘당신은 명명백백하게 가서 수련해야 한다,’ [2] 나는 갑자기 의식했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CD 배포 방향을 가리켜 준 것이 아닌가.

나는 깨달았다. 내가 책을 잃은 것은 흐리멍덩한 상태 하에서였는데 당시 주의식이 강하지 못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랬지만 모든 요소는 모두 사부님에 의해 좋은 일로 변했는데 바로 나더러 명명백백하게 CD를 배포하라고 알려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출퇴근길에 버스를 탈 때 CD를 ‘잃어버려’ 인연 있는 사람더러 가져가게 하였다. 후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수련생은 그래도 CD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면서 대면하여 직접 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하였다. 내 상황은 친구가 적은데 속하며, 출근이 바쁘고 먼 곳에 사는데 어떻게 가장 직접 대면하여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직장 동료가 자기 집 우체통에서 CD를 받았다고 하던 일이 생각났다. 맞아,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직접 주민 문 앞에다 넣어주자. 시작에는 좀 두려웠지만, 부단히 자신에게 물었다. 아파트 단지에는 광고들이 그렇게 많이 붙어있는데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데 내가 왜 두려워하는가? 누가 나를 두렵게 하는가? 나는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이런 박해 분위기를 승인하는 것임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분위기를 선생님과 협력하여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할수록 정념은 더욱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무사하길 바란다.’라는 일념을 발했다. 어쩌면 자비심일 수도 있다. 나 자신도 무척 놀라웠다. 왜냐하면, 장기간 나는 자신이 자비심을 닦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하여 몹시 고뇌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자 나의 속도가 빨라졌다. 보통 한 개 단지에 몇십 장 CD를 잠깐 사이면 다 배포할 수 있었다. 나는 직접 우편함에 넣은 것이 아니라 오가는 한 개 단지의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눈에 뜨이는 곳을 선택하였다.

후에는 부단히 경험을 총결해 냈는데 대낮에는 어디에 나가서 공무를 처리하던 몸에는 늘 CD를 지니고 다니면서 부근의 주민 아파트를 만나면 곧 들어가서 배포한 다음 공무를 처리했다. 평소엔 조반을 마치고 채소 살 때도 다 이러했다.

이렇게 CD 배포와 생활 사업을 결합하였는데 전문적으로 CD만을 배포하기 위해 나간 적은 없었다. 이렇게 중생 구도를 일상생활에 용입하였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련은 당신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 주지 않는다.” [3]

7. 나는 자비를 수련해 내지 못하여 고뇌한다

장기적으로 나는 늘 선을 닦아내지 못하였으니 자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줄곧 닫긴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도리어 절실한 감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매번 내가 한 층의 법리를 알게 되었을 때면 나는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진실한 것이다.

내가 이전에는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따라 배우지 않았을 때 발정념 하면서 속으로 ‘오직 이 선생님만이 나의 사부님이고 기타의 일체 안배는 승인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는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다.

내가 버스에 앉았을 때 갑자기 두 글자 “蠶”(찬)“繭”(젠)(누에고치)와 “破繭成蝶”-(고치를 뚫고 나오면 나비가 된다)란 성어의 심층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직장의 영업허가증이 취소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속으로 갑자기 그것 역시 한 층의 생명임을 느꼈을 때 나는 또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바로 이 시각 나도 아주 분명하지는 못한데 이것을 조그마한 자비심으로 칠 수 있는지 동수가 나를 도와 탐구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허스

주:[1] 리훙쯔사부님저작:《홍음2》〈사도은〉[2] 리훙쯔사부님저작:《전법륜》[3] 리훙쯔사부님저작:《휴스턴법회설법》

(밍후이왕제9회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7일
문장분류: 대륙 9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7/2647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