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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작품] 리훙쯔 사부님께서 관현에 오셔서 법을 전한 것을 기념하며

글/ 관현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두 차례 산둥성 관현(冠縣)에 오셔서 파룬따파를 전수하셨다. 손을 흔드는 사이에 어머니와 많은 속인의 병을 치료해 어머니와 중생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어머니와 중생들을 위해 신기하게 병을 치료하고 중생에게 행복을 주는 기적을 써내려는 염원이 늘 있었다. 그러나 수준의 한계로 늦도록 펜을 들지 못했다가 지금 용기를 내어 사부님을 회상하는 이 문장을 쓴다. 어머니와 전 가족을 대표해 사부님에 대한 비할 바 없는 공경과 감격스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1992년 11월과 1993년 5월, 1996년 겨울(사부님께서 한단(邯鄲)에서 지난(濟南)을 거쳐 관현까지 오심)에 사부님께서는 관현에 세 차례 오셔서 우주의 근본대법을 관현 대지에 가득 비춰주셨다. 수련과 대법을 널리 전한 불은(佛恩)이 흠뻑 젖은 나날에 얼마나 많은 전국 곳곳 대법제자들이 여기에 와서 교류하고 또 얼마나 많은 기적이 여기서 발생했던가, 실로 계산하기 어렵다. 다만 어머니의 실례로 파룬따파의 비할 바 없는 위대함과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지금 이미 노령에 이르셨다. 30여세 때부터 B형 간염과 우피선(牛皮癬)에 걸리셨다. 속설에 이르기를 “외과는 옴(癬)을 치료하지 못하고 내과는 천식을 치료하지 못한다”, “간은 오장육부의 적이며 백병은 모두 여기로부터 온다”고 했다. 그 의미는 바로 이 병을 치료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다방면 오랜 세월을 치료해도 관현과 랴오청(聊城), 지난(濟南) 등 병원에도 모두 가보았고 한약, 양약을 적지 않게 먹었지만 별로 나은 감이 없었다. 병세는 갈수록 심해져 1993년 봄에 이르러 어머니는 밥도 드실 수 없고 잠도 편안히 잘 수 없으며 복수가 점차 불어 이미 간경화 복수 중후기에 이르렀다. 또 악화되면 무슨 결과가 될 것인지 뻔했다. 어머니는 나를 옆에 불러다 눈물을 흘리며 “얘야, 나는 안 될 같아. 나에게 무슨 방법을 찾아다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내 마음은 매우 괴롭고 조급했다. 그 부은 어머니의 복부를 보고 마음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전문가를 찾아도 방법이 없었는데 오직 간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간을 바꾸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가? 그 답안 역시 부정적이었다. 온 가족은 곤경에 떨어진 것과 같았으며 나는 입맛이 없고 잠도 이루기 힘들어 시시각각 고통에 시달렸다.

이때 리훙쯔 사부님께서 법력이 무한해 손을 흔드는 사이에 관현 교통국 직원 장슈잉(張秀英)의 수년간 고질병도 치료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소식을 다급히 어머니에게 알려드리니 어머니는 들은 후 비록 반신반의했으나 자신도 병을 치료하길 원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전국 어디에나 다 가시는데 어디에 가서 사부님을 찾겠는가?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리훙쯔 사부님께서 파룬따파를 전수하러 시간을 내어 관현에 오신다고 했다. 이 소식을 알리니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시며 날마다 사부님의 도착을 기다렸다. 사실 이전에 사부님께서 관현에 오셔서 파룬따파를 전수하신지 반년이 지났지만 기연이 되지 않아 어머니가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내 1993년 5월 12일 오전, 사부님께서 린칭(臨淸)에서 학습반을 여실 때 시간을 짜내어 관현에 오셔서 제자들을 보셨다. 나는 이 좋은 소식을 어머니에게 알리니 어머니는 기뻐서 수시로 사부님을 찾아가실 준비를 했다. 대략 오전 9시 이후, 사부님께서 두 번째로 관현에 왕림하셔서 온 도시가 상서로움에 푹 빠지게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먼저 모 제자 집에 가셨으나 사부님을 보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느 제자의 집도 사람들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오후에 가장 먼저 법을 전하신 관현 양조공장(酒廠) 회의실로 시간을 정해 다시금 관현제자들에게 한차례 법을 강의하신다고 하셨다.

대략 11시 전후, 많은 관현 제자들이 사부님을 빼곡히 둘러싸고 관저우(冠州) 호텔에 도착했으며 관현 전 부현장 지위펀(齊玉芬)과 현 기공협회의 왕(王)회장이 사부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이날 점심 무렵 마침 단비가 내려 많은 제자들은 다시 한 번 끝없는 불법 속에서 사존의 자비와 사은(師恩)의 호탕함을 느낄 수 있었다.

'冠县酒厂会议室(师父两次来冠县传授法轮大法的地方。大门朝西)'
관현 양조공장 회의실(사부님께서 두 차례 관현에 오셔서 파룬따파를 전수하신 곳이다. 대문은 서쪽을 향했다.)

많은 제자들이 아주 일찍부터 관현 양조공장 회의실에 와서 사부님을 환영하려고 기다렸다. 그 중에는 중공 관현 부서기 쓰융차오(史[石]永朝)와 일부 과․국 지도자가 있었다. 막 비가 내렸기에 일부 길이 먼 대법제자들이 아직 오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회의실 동남구석 앞자리에 앉으셔서 한편으로 기다리고 한편으로 몸을 돌려 수련생들과 친절히 교류하시고 여러 사람들의 문제에 해답하셨다. 어머니는 사부님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마침내 사부님께서 씩씩하게 강단에 올라가시니 전 회의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렸다.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하라고 표시하시고 “우리는 또 만났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보고회를 시작하셨다. 이어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번에 여러분의 상황을 보니 이미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심성요구에 따라 했기에 매 사람들은 모두 얼굴빛이 아주 좋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반년 간 수련성과를 긍정하시고 이어서 1992년 말에 국가에서 개최한 ‘92년 동방건강 박람회’에 요청을 받고 가신 상황을 소개하셨다. 대회 첫날 오전에 한 여성의 직경이 20센티미터 되는 축구공만한 크기의 종양을 떼어 내니 배가 단번에 쭈그러져서 허리띠도 맬 수도 없을 정도였다. 가족들은 매우 격동되어 대회 사무실에 상황을 말하자 사무실은 방송으로 파룬궁을 칭찬했다. 오후에는 폐암 환자가 와서 즉석에서 치료했다. 환자는 이튿날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진단서를 갖고 왔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암 세포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전 대회장을 뒤흔들었다. 전반 대회기간 파룬궁은 날마다 기적을 일으켜 마지막에 사람들로 꽉 찼으며 전부 칭찬을 했다. 대회에서 파룬궁이 특별한 성과를 나타내자 대회조직위원회는 명성공파라고 평했으며 증서도 발급했다. 이번 대회는 국가에서 개최한 대형건강박람회이기에 베이징의 모든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 및 텔레비전 방송국은 모두 기자가 와 있었다. 신화사는 전국과 해외 지사에 모두 통보를 했으며 홍콩과 해외 신문들도 파룬궁을 소개한 문장이 보도됐다. 홍콩의 일부 신문에는 사부님의 사진을 게재했으며 이때부터 파룬궁은 국내외에서 명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한 시간 넘게 법을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일부 대법제자가 제기한 물음에 해답하셨다. 마지막에 사부님께서는 직접 병을 제거해주셨다. (금방 입문한 사람도 있고 속인도 일부 있었는데 이들 역시 연분이 있어 복을 받았다.)

사부님께서는 강당에서 왼쪽 손에 마이크를 쥐시고 청중에게 병을 제거한다고 생각하라고 하신 후 몸에 힘을 빼고 잘 서라고 한 다음 두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만약 자신이 병이 없으면 자기 가족의 병을 생각하라고 하심) 그리고 사부님의 큰손을 한번 흔드시고 전 회의장 사람들을 한번에 잡으시는 동작을 하시면서 물었다. “좋아졌나요?” 어떤 사람은 좋아졌다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하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여러분의 병을 제거하겠습니다. 오성이 좋은 사람은 덕을 볼 것인데 병은 마음대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손으로 잡는 동작을 하시니 매우 많은 사람들의 병이 즉시 좋아졌다.

어머니도 사부님의 요구대로 두 발을 어깨너비로 느슨하게 서고 두 다리는 약간 구부리고 눈을 감았다. 사부님의 “느슨히 하세요, 느슨히 하세요”라는 말씀을 들으며 간의 병을 생각하니 어머니는 한 줄기 냉기가 간 부위에서 나오는 감을 느꼈다. ‘휙’하고 오른쪽 다리를 따라 땅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재빨리 간 부위를 움직이니 금방 괴로운 상태가 소실됐으며 몸은 비할 바 없이 완전히 홀가분해졌다. 어머니는 기뻐서 아이처럼 격동되었으며 사부님을 향해 박수를 쳐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략 오후 5시 좌우, 사부님께서 이번 공(功)을 지닌 보고회를 마치셨다. 모두들 사부님을 빼곡히 둘러싸고 양조공장 회의실을 나오니 실외는 가랑비가 단비처럼 매 대법제자 몸에 흩날렸다. 사부님께서 가시려하니 뭇 제자들은 사부님을 대문 밖까지 배웅하고 계속 사부님의 차가 멀리까지 가서야 모두들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천천히 떠났다.

이날 어머니의 병은 완전히 나아 이때부터 파룬따파 수련의 행렬에 들어섰으며 매우 많은 사람은 모두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위대함에 감탄했다. 일부 이웃도 잇달아 어머니와 함께 파룬궁을 연마했다.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의 우피선도 완전히 나아졌는데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어머니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행렬에 동참하여 법공부, 연공, 발정념과 진상 알리기 및 진상자료와 호신부를 배포하기 등 세 가지 일을 매우 잘했다. 사악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1년 기간에 어머니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현성 모 연공장에 가서 아침연공에 참가하셨다. 그들은 4시에 농촌에서 출발해 시골 산길을 걸었는데 그 시간은 어두워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여명 전이다. 그러나 기적은 또 다시 나타났다. 그들 앞길이 어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매우 밝았는데 연공장을 갈 때까지 되서야 이 빛은 천천히 사라졌다.

어머니 외에 내가 아는 사부님께서 치료해 병이 나은 사례, 혹은 파룬궁을 수련해 병이 좋아진 사례는 매우 많다. 아래 몇 가지 사례는 발표한 적이 없는 것이다.

1. 자오위셴(趙玉顯)은 관현 인민병원 식당 종업원이며 집은 현재 칭촨(淸泉)아파트단지 징류(靖劉)마을에 있다. 20여 년 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관현 서문 밖 인공수로 다리에서 머리가 아래로 향한 채 떨어졌다. 당시 강바닥이 바짝 말라 있어서 그는 충격으로 사지마비가 됐으며 목 아래로 감각을 잃었다. 여름에도 몸에(머리를 제외하고) 모두 땀이 나지 않으며 사지가 따뜻하지 않고 대소변도 못 가리며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어 가족이 도와줘야 했다. 사부님께서 처음 관현에 오셨을 때 그는 전신마비가 된지 여러 해여서 현대의학에서는 전혀 치료 방법이 없었다. 다만 집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의 친척은 사부님의 병 치료가 신기한 것을 알고 사부님을 찾았다. 사실 누구도 이러한 병자를 받길 원하지 않았지만 사부님께서는 베이징에서 온 노 수련생을 안배해 그를 치료하게 하셨다. 자오위셴의 병소 부위를 두드릴 때 튀어 오르는 냄새는 아주 고약해 주위 사람들도 모두 코를 막고 물러날 정도였다. 오후 절반시간을 들여 그는 두 팔을 겨우 들고 뜰 안에서 두발을 앞으로 몇 보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이것은 현대의학에서는 절대 기적이다. 이때부터 자오위셴의 생활은 매우 큰 개변이 있었으며 이후에 그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 1992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부님께서 관현 노(老)원로 간부국 활동센터에서 치료를 상담하신 때 때마침 란워(蘭沃)향의 한 여자아이가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여자아이는 대략 5~6세인데 백혈병에 걸렸다. 많은 곳을 가 보았지만 어떤 의사도 치료할 수 없었으며 모두 불치병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쓰촨(四川)사람인데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 집은 매우 가난한데다 아빠도 아이를 데리고 도처로 치료하러 다녔지만 방법이 없었으며 또 병원을 다니느라 매우 많은 빚을 졌기 때문에 이후에 또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무슨 영문인지 이 며칠간 시내에 가서 친척을 보고 싶었으며, 친척집에 왔다가 사부님의 병 치료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사부님은 아이를 보신 후 손으로 병소 부위의 업력을 흩어지게 하고 또 많은 좋지 않은 것을 잡아냈다. 그러자 아이의 등과 허리부위에 있던 어혈이 점차 소실되어 아주 빨리 정상 피부색을 찾았다. 됐다! 이 아이의 병은 이렇게 좋아졌다! 완쾌됐다! 친척들은 이것이 정말인지 믿기 어려워했으나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아이의 병은 아직 재발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이미 아이가 둘 딸린 엄마가 됐다.

3. 쑹구이전(宋桂眞)은 관현 시내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늘 두통이 있어 아프기만 하면 쇼크 상태가 됐으며 오래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1994년 여름, 며느리와 아들이 이혼한 후 어리석게도 아직 포대기에 있는 손자를 버리고 갔다. 그러자 그는 매우 괴로워 두통이 또 재발했다. 이번에는 매우 심해 오랜 기간 증상이 소실되지 않았는데 친척친구의 권고로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사부님의 지난(濟南) 전수반에 참가했다.(1994년 6월). 작은 손자도 따라서 참가했다. 학습반에서 아주 빨리 몸이 조절됐고 병이 모두 소실되어 지금 신체가 매우 건강하다.

4. 한 고등학생이 만성 신장염에 걸렸는데 이후에 발전해 요독증이 되어 팔과 다리가 아주 뚱뚱하게 부었으며 머리는 수박처럼 되고 두 눈은 부어서 뜨기도 아주 곤란했다. 1994년 12월,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마지막 학습반을 여실 때 그는 운 좋게 참가해 하루만 들었는데 이튿날 정상인과 같게 됐다.

5. 관현 시내에 큰 장사를 하는 여사장이 있었는데 아주 심한 위장병에 걸려 병원에서 위절제 수술을 하려 했다. 대략 위장의 5분의 3을 떼어 내려고 했다. 묘하게도 한 대법제자가 그의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다가 그에게 파룬궁을 알려주었다. 좀 지나 사장은 말했다. “당신이 말한 이 공이 좋으면 나도 연마하겠습니다. 그럼 어디에 가면 배울 수 있죠?” (여사장은 대법제자가 파룬궁을 소개할 때 코가 막혀 있었는데, 몇 마디 소개하는 말을 듣자 즉시 코가 뚫려 직감적으로 파룬궁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대법제자는 그녀에게 관현 영화관 홀이 연공장이라고 알려주었으며 매일 아침 사람들이 그곳에서 연공하며 무료로 연공을 가르치니 가서 배우라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아침 여사장이 영화관 홀에 들어가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포륜동작을 하는 것을 보았고 따라서 두정포륜을 약 3~5분하니 그녀의 위장이 이상하게 괴로워 무엇이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급히 홀에서 나와 문을 나서다 왈콱왈콱 더러운 것들을 한 더미나 다 토한 후 신체와 위장이 매우 편안해졌다. 이때부터 그는 수련의 길을 걸어왔는데 줄곧 지금까지 신체가 아주 좋다.

또 매우 많고 많은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편폭의 제한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겠다.

관현 전체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제4차로 ‘고향’ 관현에 돌아오실 것을 바라고 있다!

(밍후이왕 파룬따파 홍전 20주년 응모원고)

문장발표: 2012년 5월 19일
문장분류: 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19/249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