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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를 보고 느낀 점

[밍후이왕] 최근 감상한 영화 ‘어벤져스(Avengers, 復仇者聯盟)’에서 좋은 감수가 있었다. 영화는 6명의 슈퍼 영웅들이 함께 세상을 구원한다는 이야기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중, 전반 60여 분 동안은 적들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음에도 영웅들은 동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도 잃을 뻔 한다. 무엇 때문인가? 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같은 편 사이에서조차 협조하지 않고 서로 불복하면서, 한편으로 일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직기반을 무너뜨렸기에 조성된 것이다. 회의할 때에는 겉으로는 어떻게 전투를 할 것인지 작전을 연구하는 것 같지만, 실질상 서로 질책하고 승복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은 모두 대단한 영웅들이기에 누구도 남의 지시를 따르려 하지 않았으며, 대화로 안 되면 다투고, 화를 내며 싸웠다. 그 중 한 영웅이 모두에게서 공통된 심리적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역시 ‘불’을 끄기는커녕 상대를 질책하는 어투로 누구는 마음이 너무 좁고 어떠하다고 지적하며 자신 역시 모순 속에 빠지고 만다. 영웅들은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고, 옆에서 이를 본 적들은 비웃는다.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마친 적들은 영웅들이 서로 다투는 틈을 타 조직적으로 공격해 온다. 영웅들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공격을 맞이한다.

강해진 적과 맞서기 전, 영웅들은 모두 냉정함을 되찾고 깨닫는다. 누구도 시비를 따지지 않았고 다른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자신들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서로 묵묵히 협조한다. 그러나 적들의 소규모 공격에도 기지는 파괴됐고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는다. 피해를 본 영웅들은 명백해졌다. 책임자와 협조자 모두 주동적으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반성했고, 다른 영웅들도 묵묵히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자 적은 더 강력히 진영을 갖추게 된다. 먹구름이 도시를 뒤덮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6명의 영웅은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먼저 한 명을 대장으로 선출한다. 대장은 즉시 명령을 내렸고 영웅들은 질서정연하게 각자의 역할을 이행한다. 직접 적의 주력을 소멸하는 영웅,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지원 공격하는 영웅, 시민을 보호하는 영웅, 곧바로 적의 기지로 돌격해 타격을 입히는 영웅, 누군가 어려움에 빠지면 가까운 동료가 도와주며 좋은 생각이 있으면 즉시 의견을 제시한다. 영웅들은 결국 승리를 거둔다.

나는 생각했다. 이는 많은 부분 우리 대법제자의 협조상황과 같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우리는 모두 왕이며 모두 큰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능력이 있다고 한들 협조하지 않고 모순에 봉착해 밖을 향해 찾는다면 결과는 사악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함정에 빠지고도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끊임없이 이용하고 교란해 간격을 조성하고 시기가 성숙되기를 기다려 하나하나 격파하려는 사악의 음모이자 수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조차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욱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사부는 일체 중생을 구원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사악한 세력은 오히려 정말로 중생을 이용하여 대법(大法)에 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근본적인 목적은 중생을 훼멸하려는 것이다. (정진요지 – 대법(大法)은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다)” 우리 대법제자들에게는 이미 단순히 개인적인 ‘협조’ 또는 ‘비협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잘하면 모든 중생이 이득을 보지만 잘하지 못하면 모든 중생이 손실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바로 사악이 원하는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의 정체는 마치 한 사람의 신체와도 같다. 신체가 무엇을 하려 할 때, 팔 또는 발을 들어 올리거나 이동하려 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눈을 뜨라고 하면 뜨고, 감으라고 하면 감았는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신체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신체가 무엇을 하려 하는가를 보면 된다. 정황에 근거해 원용과 협조를 할 뿐, 기본적으로 어떤 지령도 필요 없다. 우리의 정체는 사부님께서 이끄신다. 우리에게는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 같으며 갈라놓을 수 없다. ‘‘누구는 높고 누구는 낮다’고 한다면 이는 질투심이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우리는 단지 바쁘게 움직이고 말하는 중에 심성을 제고하면 된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다. 층차의 한계로 부당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23/257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