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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ㅣ두 가지 습관에서 생각

글/ 일언(一言)

[밍후이왕] 사부님의 ‘전법륜-논어’에서 “반드시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문제는 수련인에 대해 매우 중요하고 엄숙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늘 습관과 관념의 반응이 나타남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의 반응에 적응된 상태 및습관과 관념의 표준에 따라 간다. 이런 것은 이미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지장을 준다.

예를 들면 두 가지 습관이 있는데 늘 우리는 수련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안할 것인지 여부만 고려한다. 한 가지 습관은 사부님 설법 중의 단어와 구절을 볼 때나 협조인이 무엇을 말할 때, 단순히 자신의 인식과 같다고 생각하고 표면적인 일만 하고 실속과 멀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각 지역 설법2-미국 필라델피아 설법)고 말씀하시면 ‘법공부’를 ‘독서’로 여긴다. 그러나 독서는 다만 속인의 개념과 방법이기에 책을 읽고도 수련할 줄 모르면 수련할 기회를놓쳐 버린다. 또 협조인이 한 가지 일을 하라고 하면 그대로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법의 일’, ‘사부님께서 협조인의 말을 들어라’고 했기에 하는 것이다. 효과가 어떠한지는 협조인의 일이며 자신의 수련 및 책임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튼 나는 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비록 사부님께서 협조인의 문제는 ‘해외국제사회’를 말씀하셨지만 대륙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사실 이것은 표면 행위를 중시한 것이다. 법공부의 본질을 놓치고 표면만 치중하려는 것으로 진심으로 법을 이해해 수련의 제고 작용을 일으키기 어렵다.

다른 한 가지 습관은 다른 의견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의 ‘독립적인 의견’, ‘경험’이 가장 중요하며 ‘실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립적인 의견’, ‘경험’, ‘실제적’ 등은 사실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모두 어떤 표준인가? 모두 ‘진아(眞我)’의 인식, 수련한 일면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대륙에서 ‘구평’을 배포하고, 션윈이 해외에서 주류사회를 위주로 홍보하고, 대륙에서 강귀(江鬼)가 죽은 뒤 폭죽을 터뜨리는 것, 매번 이런 일이 있으면 수련생은 자신의 관념으로 한동안 저촉하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 사건과 자신의 사상과의 부딪힘(혹은 자신의 사상이 마비)은 얼마나 되는가. 자신이 어떤 것을 수련해 내야 하는가. 어떤 관념과 사람 마음이 자신의 수련을 방해하고 법과 사람을 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가. 이런 자신의 사상 속의 부딪침은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고 중생을 구하는데 얼마나 큰 손실을 주었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더더욱 사부님께서 정법을 할 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고 무엇이 사부님의 요구와 수요인지 모른다.

이상은 간단한 예를 들은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습관은 아직도 거부 작용을 한다. 말한 것이 그다지 적당치 않을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전법륜2-불성’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종 관념이 형성된 후 당신의 일생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하는데 이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이다. 이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만일 이것이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의 사상 중에 용해되며, 진정한 자신의 대뇌 속에 용해될 수 있는데, 그것이 이 사람의 천성을 형성할 수 있다.” “형성된 관념은 당신의 일생을 저애하고 통제할 수 있다. 사람의 관념은 종종 다 사(私)적인 것으로부터 더욱 좋지 못한 것에 이르기 때문에 또 사상 업력이 생기게 되며 사람도 업력의 통제를 받는다. 사람은 主元神(주왠선)이 주재(主宰)하는데, 主元神(주왠선)이 마비되고 관념으로 대체됐을 때, 그렇다면 당신이 무조건적으로 투항한 것이며 생명은 이러한 것들이 좌우지하게 된다.”

우리가 익숙한 많은 ‘말’, 예를 들면 ‘정념이 강하다’, ‘ 정념으로 문제를 보자’, ‘법공부’, ‘법공부를 잘하자’, ‘ 발정념’, ‘정법시기 대법제자’, ‘조사정법’ 등등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법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알고 있는가? 끊임없이 대법 중에서 사부님이 설법한 법을 이해했는가? 진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사람 마음과 관념을 없애는 과정에서 법을 이해했는가? 이해를 정확히 했는가? 아니면 속인의 지식과 개념으로 판단했는가? 자신이 마음에서 정의를 내리고 공식을 만들었는가? 우리는 진짜로 법공부를 하는 동시에 곰곰이 기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제를 보는 사유, 수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가는 수련의 기초와 같다. 정념으로 수련을 대하며 자신과 법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자신과 사부님의 관계도 잘 이해해야 길을 잃지 않고 굽은 길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가, 혹은 자신의 약속을 실천할 수 있는가는 자신이 매 사람과 일에서 어떻게 법에서 수련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현재의 약간의 생각이다. 글로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해 보려 한다.

문장발표: 2011년 8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4/244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