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교류ㅣ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와 “움직이지 않는다”에 대한 약간한 깨달음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7월 26일]근래 장마두의 사망설에대륙 동수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와 “움직이지 않는다”에 대한부동한 이해와 인식이 있음으로 인해수련 상태와 행위 또한 같지 않다.그렇다면 수련인의 상태는 고층 생명이 저층 공간에 반영되어 표현되는 것이아닌가?

나는 사존님의 설법 중에서하신 내용을 깨달았다. “천상변화는 만약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속인 사회에 일종 상태를 가져다 줄 수도 없으며, 그것을 천상변화라고도 할 수 없다.”(전법륜)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정법을 하고 계시고, 대법제자는 조사 정법하는 법도임을 모두 알고 있다. 대마두가 죽어도 좋고, 죽기 전, 헐떡이는 숨을 겨우 부지해도 좋은데, 이런 것은모두 중요하지 않다. 수련인은 모두 그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일체는 모두한 가지소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사존님의 정법노정의 변화와 추진, 시간의 긴박함과 사람을 구도함의 시급함을 알려 주는 것으로, 우리들이 능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상의 변화가 세간에서의 반영이다. 사악한 요소는 이미 대마두 이 한 장의 껍질을 지탱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사악한 물건은 이미 다 이용 되었고, 대법제자들도 성숙되었기에 그것 또한 이용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여러 해 수련을 거쳐 대법제자들은 정말 성숙되었다. 매우 많은 대법제자들은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전에 무엇을 들으면 마음이 마치 부평초처럼 되던 상태가 없었고, 오히려 정념으로, 선으로 이 문제를 대하면서 중생들의 마음 속 매듭을 풀면서 다그쳐 일체 구도할 수 있는 중생을 구도 하였다. 외재적인 그 어떤 형식의 변화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고, 악당에 대해 그 어떤 환상도 품지 않았으며, 세간의 그 어떤 변동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야 말로 이번 큰 극의 주인공이며, 중생들이 구도되는 희망이기에 우리는 오직 사람을 구도하는 몫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수련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행위면에서 수련인은 응당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명확하게 해야한다. 즉 어떻게 법속에서 수련하며, 무엇을 조사정법이라고 하며, 사부님의 요구를 어떻게 원만하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큰 방향에서 보면밍후이왕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틀림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법속에서 깨달아야 한다. 수련 와중에는 작은 일이 없고, 절대 우리의 수련과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다.

대륙에서 생활하는 대법제자들은 아직도 당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부 관념들이 아주 깊숙이 숨어있는데 이는 제거해야 할 것들이다. 혹은 아직도 의식하지 못 했거나, 혹은 아직도 인식상의 잘못된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부분 수련생들은 아직도 사람의 마음으로 이 일을 대하며 입으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이를 이용하여 집착과 사람 마음을 덮어 감추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일종은 사람의 마음으로 소식의 내원이 정확한가, 하지 않는가, 믿을만 한가 하지 않는가를 가늠하면서 만약 대마두가 죽지 않고 또 살아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행위가 소극적이거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의 이 하나의 법리를 잊어버렸다. 심지어 “폭죽을 사고 폭죽을 터뜨리다”의 포스터를 붙이고 진상을 알림에도 소극적이다. 법리상에서 이 일은 본신이 사람의 최후 껍질을 부수는 것이며, 사부님의 자비이고, 법정 인간이 오기 전 다시 사람들에게 선택하게 하여, 놓여질 위치, 구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남겨 주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일면에서 말하면 정말 악당의 목구멍과 혀인 방송국이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확정 되었다고 보겠는가? 이와 같이 악당 매체에 대한 심리가 기울어지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수련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두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며, 만약 상당수의 대법제자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사람 마음이 또 정법노정과 세인을 구도하는데얼마나 큰 저애를 조성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누구도 이 법을 박해할 수 없으며 단지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함으로써 좋지 못한 작용을 일으킬 뿐이라고.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몇 년 전 본래 응당 나타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한 것은 대법제자의 마음에 의해 촉성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곧 바로 우리들의 수련이 성숙되지 못함으로 인해누락이 생겨 흑수와 썩은 귀신들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 인기된 것이 아닌가? 이로인해 오늘 우리가 소극적일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지금도우리의 마음속에 사악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만이라도 있다면, 대 마두가 죽기 전, 헐떡대는 숨을 겨우 부지하거나 죽게 되었으나 숨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다른 고층공간의 상태가 우리 저층에서의 반응되어 표현되는 것이아닌가? 어떤 것들은 우리 수련인들의 승인함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또 어떤 수련생들은 “폭죽을 사서 폭죽을 터뜨리다”를 속인의 일로 여기고 수련인과는 관계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을 발견 하였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두려워하는 마음때문에 감히 정정당당하게 하지못한다. 사실, 어떤 동수들은 대범하게 폭죽을 사서 상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사람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였는데, 어느 각도로 말해도 모두 사람을 구도 하는 것이다. 명백한 사람들은 모두 ” 정말 좋은 일이 구만, 나도 집에 가서 폭죽을 터뜨려야 겠다!” 이것은 정의의 마당을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닌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소멸하여 감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의 공간 천상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아닌가? 세간에서 폭죽이 터져 울려 퍼질 때, 폭죽을 터뜨린 그런 사람들은 또 하나의 구도된 생명이 아닌가?

그러므로 수련인들이성숙하게 표현되는”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수련 중의 소극적이고 태만하며, 마비 및 각종 사람 마음의 장애로 인해 반영되어 나온 “움직이지 않는다”와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이것도 역시 한 수련인으로서 이 일을 빌어 자신을 검토하며, 자신의 심성을 가늠하며,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자신을 규정할 수 있으며, 선천의 최고 위치로 승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인의 수련 층차에서천박한 깨달음이다.

문장 완성:  20011년 7월 19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26/2444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