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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신변의 제자’에 대해 말해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몇 년간 여러 차례 현지 일부 수련생이 어떤 항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거나 들었다. 이런 항목은 다수가 모금이며 그 항목 내용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예를 들면 씬탕런에 모금하며, 션윈에 모금하며, 사부님에게 모금하며, 따지왠에 모금하며… 그 근원을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현지의 모 수련생이 사부님 신변 제자와 연계하고 있으며 이 항목은 사부님 신변 제자가 동의한 것으로 틀림없습니다.” 이 수련생은 말할 때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신비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 거듭 강조한다. “이 일 범위는 확대해서는 안 되며 기타 지역도 하고 있습니다.” 더욱 신비로울수록, 더욱 작은 범위일수록 더욱 흡인력이 있고 참여할 생각이 들게 한다.

최근 현지에 또 이렇게 말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대만 씬탕런 2호 위성 재계약이 이루어져 사이트에도 공지됐습니다. 현재 자금이 매우 부족하니 우리 능력 있는 수련생은 돈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이건 모금이 아닌가요?” 그 수련생이 말했다. “이건 모금이 아닙니다. 모금은 대면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나 이 일은 단지 개별적인 사람에 제한됩니다. 능력이 있으면 내면 되는 것으로 범위를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알게 됨은 다 우연이 아니죠.” 내가 말했다. “이 일은 어디에서 전해온 것이죠?”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 현지의 한 노 수련생이 사부님 신변의 한 제자와 연계를 갖고 있으며 이 일은 당신이 안심해도 됩니다. 틀림없습니다. 1차 송금은 이미 됐습니다.” “국외 수련생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닿는 만큼 돈을 좀 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지 않습니까?”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할 것인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인가? 대법을 위한다면 나는 무엇이나 다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나는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신속히 내 머릿속에서 한번 회상됐다. 법으로 가늠하자 정말로 이 일은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

수련인은 바로 이 마음을 수련하는 것인데 왜 사부님 신변 제자를 언급하면 그렇게 흥미를 느끼는 것일까? 왜 사부님 신변 제자와 연계하기를 원하는가? 왜 사부님 신변 제자가 말하면그렇게 큰 호소력이 있을까? 나는 사부님 신변 제자를 중하게 보는 자체가 바로 사람 마음이라 생각된다. 이 마음의 배후는 바로 사(私)이며 그 목적은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함이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항목을 내가 함으로써 내원이 크고 위덕이 큰데 왜냐하면 사부님 신변의 정보로서 사부님께서 인정하셨거나 묵인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는 사부님 신변 사람을 중하게 보는 자체가 쉽게 비뚤게 갈 수 있으며 수련에서 하나의 누락이라고 여긴다. 법으로 대조한다면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그런 ‘사부님 신변 제자’가 어떻게 말했거나 한 것에 따른다면 모두 법에서 비뚤어진 것이며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늘 사부님께서 조금이라도 더 기뻐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사람 마음이 매우 중하여 또 법에서 비뚤어질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점화해 주시고바로 잡아 주신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고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르기까지 지도할 수 있는 법을 전부 우리에게 말씀해주셨다. 더욱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알려주셨다. 우리가 사부님의 신변 제자를 중하게 볼 때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그들이 사부님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들은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일까?” 만일 진정으로 수련을 잘했다면 쉽게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 신변의 제자다.” 더욱이 ‘특수신분’으로 대륙의 어느 수련생과 연계해 이 항목 저 항목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은 수련이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또한 이 몇 년간 대륙에서 ‘사부님 신변 제자가 말한’것에 의거해 일부 항목을 했을 때 많은 일이 잘못됐으며 참여한 많은 수련생이 다 붙잡혔고 손실이 매우 큰 것을 보았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모두 자신이 바르지 않은 사람 마음으로 초래한 박해가 아니겠는가? 때문에 이 몇 년간 ‘사부님 신변 제자와 연계가 있다’는 것으로 일부 항목을 했을 때 늘 끊임없이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공안의 특무까지 그 속에 개입해 들어왔다. 이 일은 우리가 냉정하게 사고해야 한다.

수련에는 숭배심이 없어야 하며 국내든 국외든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경지를 제고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수련생이 국외 수련생이나 사부님 신변 제자를 숭배할 때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몇 년간 사부님께서 비평하신 그 사악한 사이트에 참여한 것, 항목에서 잘 협력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 사부님의 가족을 찾아 다른 방법의 근거를 찾아내려고 하는… 이 중에 사부님 신변 제자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함은 절대 사부님 신변 제자가 모두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 중에서 수련하면 사람 마음이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인위적으로 사부님 신변 제자를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이런 마음 또한 그들을 해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수련에 입문한 그 몇 년간 나의 사람 마음도 매우 중했다. 사부님을 찾을 수 없으면 사부님 신변 사람을 찾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 좋게 느껴졌고높게 느껴졌다. 돌아와서는 또 주변 수련생에게 이야기했는데 잠재의식 속에는 일종 과시심리가 있었다. ‘7.20’이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사부님 신변의 보도원과 참장(보도소장)이 사악에게 협조하여 TV에서 ‘태도표시’를 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은 동시에 수련은 다른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되면 바로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몇 년간 수련에서 곤두박질하기도 했으나 이 한 점에서는 그래도 걸어지나왔다.

수련에는 분별심이 없어야 하며 대법실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든지, 혹은 어떤 특수한 신분이든지 모두 하나의 보통적인 제자이며 심성과 경지가 일체를 증명한다.

사부님 신변 제자로서도 마땅히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왜 이 몇 년간 대륙의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늘 당신들과 연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사부님 신변에 있을 수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당신들은 수구(修口)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는가? 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사부님 신변의 사람임을 알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매우 순박하고 순선하며 수구하고 떠벌이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어찌 당신의 ‘말뜻’을 옮길 수 있겠는가? 대륙 수련생이 당신에게 이것저것을 물을 때 이 자체가 바로 당신의 수련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시심리가 좀 있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겨 자신을 높인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에나 수련을 잘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존재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그 마음을 보시며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시지 않는다. 아마 당신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한마디 말로 대륙에서는 당신이 생각할 수 없는 나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법에 책임지고 수련생에 책임지며 정말로 이런 일을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처음 글을 쓸 때 어조를 부드럽게 하려 했으나 여전히 어조가 좀 강했다고 느껴진다. 나는 단지 화제를 끌어내어 여러분이 교류하기를 바라며 바르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5/2434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