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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으로 세상을 떠남으로부터 다시 착실한 수련을 논함’을 보고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협조인의 착실한 수련 문제를 말하면 내가 보기에 수련생 간의 생각이 아주 큰 작용을 한다. 그렇다, 착실한 수련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협조인으로서 비록 같은 수련자이지만 협조인으로서의 법리가 따르고 더욱 높은 요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협조인은 구세력이 우선 교란하는 목표물이 된다.

구세력은 구 우주의 이치에 따라 시시각각 수련자 팀의 협조를 지켜보며 백방으로 간격을 만들어 틈을 탄다. ‘병업으로 세상을 떠남으로부터 다시 착실한 수련을 논함’에서 모 협조인은 『전법륜』을 외울 수 있고 법공부에 노력했다. 하지만 협조인이라고 세 가지 일을 다 잘하고 완전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협조인이기 때문에 많은 수련자는 모두 협조인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의 수련에 홀시하고 일함에 협조인에게 심각하게 의지해 협조인이 수련을 잘하고 못하고를 깊히 집착한다. 구세력은 이렇게 깊히 집착하고 이렇게 많은 수련자가 자신을 보지 않고 협조인만 보고 밖으로 수련하고 다른 사람만 본다고 여기고 ‘좋다, 그럼 이 협조인을 먼저 보내자. 당신들이 어떻게 하는가 보자’고 한다. 결국 협조인이 구세력의 안배에 따랐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협조인을 보며 모범을 학습하는 울타리에 들어가 구세력이 협조인을 먼저 떠나도록 안배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어떤 협조인은 이러한 대관대난(大關大難)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가고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됐는가? 이렇게 되어 모범이 없고 학습할 것이 없게 되어도 당신들이 계속 확고히 수련하겠는가? 이것이 곧 구세력의 파괴적인 고험의 구실이다. 구세력은 개인수련을 구실로 안배한 것이고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정법수련, 중생구도의 안배를 심각히 교란했다. 그러므로 협조인 수련생이 구세력이 틈을 타게 해서 심각한 박해를 당한 것이 다른 수련생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층차가 제한되고 다만 개인의 경험이다. 부당한 점을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8/2359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