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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반을 타파한 심득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수많은 중생을 우리가 구도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적지 않은 동수들이 집착심을 버리지 못해 구세력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잇달아 납치 박해 당해 중생구도에 영향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적지 않은 동수들이 옥경에게, 죄수들에게 혹독한 매를 맞아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나는 이런 것을 보게 되면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옥중에서의 자신의 수련 심득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해 함께 제고하고자 한다.

나는 비교적 늦게 법을 얻었고,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자신은 법공부가 갚지 못하고 누락이 많아 구력에게 틈 탈 기회를 주었으므로 동수들과 함께 연달아 잡혀 불법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 막 도착해 첫 눈에 보이는 것이란 한 무리의 이른바 ‘전향’된 예전 동수들이었다. 이는 이번에 새로 납치당해 들어온 동수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했고 이해할 수 없게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원래 그렇듯 확고하던 한 수련생이 어찌해서 며칠사이에, 심지어 하루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될 수 있단 말인가? 전후의 변화는 크고도 빨랐으며 사람을 놀랍게 했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우린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수련의 엄숙성. 그리고 세뇌하는 사악과 관을 넘기는 엄혹함을 인식하게 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많이 성숙된 듯 했고, 더이상 이전처럼 수련을 안팎이 다르게 대하지 않았고, “전면적이고도 빠짐없이 와해식으로 대법과 제자를 검증하고 있는”(『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가자」) 과정 중에 추호의 모호함도 있어서는 안 됐다. 아래에 몇 가지 착실하게 수련한 체험을 이야기 하겠다.

1. 옥중의 세뇌반 박해를 해체

사악이 처음으로 나에게 세뇌를 할 때는 막 감옥에 들어간 두 달 후였다. 그 때 나는 단번에 감옥을 철저히 전면 부정하고는 단식을 했다. 음식물 주입을 당한 후 나는 스스로 법 공부와 心性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관을 넘기는 요구와는 나의 心性이 아직 훨씬 멀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지적으로 단식을 중지하고 법공부를 강화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오늘 단숨에 해 냈다면 당신은 오늘 바로 부처이다, 그러므로 이 역시 현실적이 못되며, 당신은 서서히 이 한 점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다.”(『轉法輪』) 이 때 사악은 ‘유다’를 소집해 나에게 세뇌를 감행했다. 나는 한 주 동안을 거쳐 관을 넘는데 성공해 세뇌반을 종료시켰다.

막 시작에 많은 동수들이 나 때문에 걱정했는데 결국 관을 넘는데 성공했고, 깔끔하고 재빠르게 해서 다른 동수들에게 지대한 고무격려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창궐한 사악에게 따끔한 충고를 주었다. 당시 과정은 이러했다. 처음엔 좀 긴장하고 두려웠는데,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고 ‘유다’를 피하려 했다. 사실 당시의 자신의 心性에 의거해서는 단번에 감옥을 전면 부정하는데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많은 동수들이 해내긴 했지만 매 개인의 업력, 心性, 근기가 다르므로 이지적으로 자신의 힘을 헤아려야 하지 맹종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감당력, 인내력에 따라 온정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법공부를 강화하고, 행하고, 걷고, 앉고, 눕고 하는 중에 일체를 다해 자기 두뇌가 법으로 가득 차게 했다. 설령 한 마디 말, 한 개 글자일지라도 대법 중의 말이기만 하면, 대법 중의 글자이기만 하면 다 됐다. 잠을 자는 외의 기타 시간엔 머리 속에서 내내 법이 떠나지 않았고, 사부님 말씀을 확고하게 믿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당시 내가 외울 수 있는 경문은 아주 적어서 그저 끊임없이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眞善忍好)”, “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를 묵념했을 뿐이다. 바로 절의 화상이 끊임없이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과도 같이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그들이 뭐라고 말하던, 당신은 당신이 할 말을 하고 나는 나대로 염을 하면서 그들의 물건이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대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계속 법을 염하면서 그들이 한 말을 분석해 보지 않았고, 내일은 그들과 어떻게 따질 것인가를 계획하지 않고 그저 계속하여 잠 잘 때까지 사부님 법만 외웠다. 하루 또 하루, 사흘 동안에 6,7명 ‘유다‘가 나와 대화하지 못하고 신문을 보거나 졸았다.

이번에 세뇌반 타파에 성공한 것을 총결해 보면 몇 가지 체험이 있다.

1. 사악의 본질을 분명히 인식했다. 누구라 없이, 설령 원래의 동수라 할지라도 이런 장소(세뇌반)에 와서 무엇을 권고하는 것은 모두 구세력에게, 사악한 생명에게 이용당해 법을 파괴하러 온, 수련생을 박해하는 마(魔), 난귀(爛鬼)가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대법 수련생이란 명의를 걸고 사오(邪悟)을 퍼뜨리는 그러한 사람은 과거에 수련생이었든지 아니었든지 막론하고 모두 대법을 파괴하는 마(魔)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정진요지2』「건의」) “이른바 전향(轉化)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바로 이렇듯 법을 박해하도록 배치됐다. 그가 과거에 잡혀가고 매를 맞을 때 어떻게 잘 표현했든지 막론하고 모두 오늘날 그가 뛰쳐나와 법을 박해하고, 수련생을 미혹시키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다. 수련생들은 그것들의 사악한 거짓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정진요지2』「사악을 질식 시키자」) 그러므로 그들이 이때에 입으로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하고 아무리 이른바 이치가 있다 하더라도 실은 죄다 사오한 것이므로 어느 구절이 맞고 어느 구절이 틀렸는가를 분석하지 말고 일률로 접수하지 말며, 듣지 말며, 그저 평화적으로 사부님 법만 묵념하면 되는 것이다.

2. 머리에서 법이 떠나지 않았고, 眞善忍이 떠나지 않았으며, 사부님이 떠나지 않았다. 대화 중이든, 아니면 대화 후든, 더욱이 대화 후 자기 혼자일 때면 더구나 그들의 말을 생각하거나 분석하지 말고, 일심으로 법공부하면 된다. 왜냐하면 전반고험 과정은 본질상에서 바로 당신이 법을 떠났는가 안 떠났는가, 지키고 있는 염두가 법에 있으면 되는 것이다.

3. 세뇌반에 대한, ‘유다’에 대한 공포심을 내려놓고 정면으로 그들을 직면해야 한다.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법을 확고히 믿으면 누구도 당신을 가로막지 못한다. 내심 진정으로 이 짐을 내려놓으면 그 무슨 대단할 것이 없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나는 신이다. 그들은 단지 통제 됐을 뿐이지 본질상에서는 난귀의 조종하에서의 행위인데 내가 어찌 너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이렇게 하니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했으므로 2년 후 사악이 또 나를 세뇌반에 넣으려 할 때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직접적으로 부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마음이 없으면 이런 난이 없다는 법리에 부합됐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동수들이 줄곧 부정해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은 그의 마음속에 ‘유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깊이 숨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마음은 여전히 상당히 엄중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부정하려면 우선 당신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고,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걱정한다면 구세력은 곧 당신의 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틀어잡고 당신을 박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신이 집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해도 그는 베란다를 넘어서 당신 집에 들어올 것이며, 당신이 거리에 나가서 일을 보거나 채소를 사는 길에서, 벌건 대낮에 감히 당신을 납치할 것인데 원인이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유다’, ‘610‘, 세뇌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의 아주 큰 누락이기 때문이다. 장래 신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한 주재자가 어찌 사령, 난귀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우리는 시간을 다그쳐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세뇌반에 납치돼 간다 해도 그 무슨 두려워할게 없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잡혀 와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여기에 왔다면 나는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럼 그 사악한 그것들은 두려워한다.”(『대뉴욕지역법회설법』)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근본상에서 우리 마음 속에 비껴진 검은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발정념이 강화되고 心性도 끊임없이 제고됐다. 제3차로 사악이 나의 친인(당시 그녀는 ‘전향’ 됐을 뿐만 아니라 또 사악을 도와 다른 수련생을 ‘전향’시키고 있었다)을 이용해 세뇌반을 꾸릴 때 나는 사흘안에 그녀를 설복시켰다. 당시 사악은 기세 사납게 덮쳤고 시, 구, 감옥 등 각급에 ‘610’의 사악이 있었다. 나는 알게 됐다. 원래 확고했던 대법제자 수련생이 세뇌당해 ‘전향’된 것은 누락이 있어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하여 통제당한 것으로서 그녀 스스로는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를 구하려면 우선 발정념으로 그녀 배후의 사악을 소멸해야 했다. 그래서 먼저 이틀은 단지 묵묵히 그에게 발정념만 하면서 전력을 다해 그 배후의 일체 사악을 제거했고, 청리를 다 한 후에는 그 마음속 매듭을 겨냥해 의혹을 해답해 주었다. 이때의 그녀는 재빨리 명백해 졌다. 그녀는 진상을 알게 된 후 ‘610’ 사악 앞에서 세 차례나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정중히 성명하고 대법 수련으로 다시 들어섰다. 현장에 있던 ‘610’ 악인 배후의 사악마저 모두 제거 됐을 때 그들도 도리어 우리에게 수련을 잘 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발정념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먼저 발정념부터 시작해야지 표면에서 억지로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대화 중에 발정념은 어떤 때는 그들의 말에 교란을 받을 수 있고, 염두 사상이 늘 집중되지 못할 수 있고 정신이 분산된다. 나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서 한 번 또 한 번 ‘몌(滅)’자를 쓴다. 쓰는 한 편 이 ’滅‘자를 생각하거나, 묵묵히 의념으로 상대방 몸에다, 얼굴에다 한필 한 획씩 써 놓는다. 이렇게 하면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정력을 ’滅‘자에 집중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시종 법에 있게 된다. 보통 2,3일 대화하면 상대방 배후의 사악이 깨끗이 소멸되는데 이때에 당신이 다시 그녀와 무엇을 말하던 다 듣는다. ‘610’ 혹은 악경을 포함해 그들이 아직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악해지지는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이 소멸될 때 어떤 악인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똑바로 서지 못해 쓰러지려 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아예 감히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심장병이 발작해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마치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직접 말한다. “나는 못 살겠다. 난 죽을 것 같아.” 한번은 여러 명 ‘610’ 악경에 발정념 하고서 거의 된 것 같을 때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실은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는 구세력이라 부릅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다른 악경에게 물었다. “당신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공산당원이라 부릅니다.” 착실한 수련 가운데서 나는 보았다. 진정한 사악은 그들 배후에 있으며, 사람의 이 한 층 면은 전부 사령에게 통제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을 구해도 그렇고 박해를 제지해도 그렇고 관건은 그 배후의 사악을 소멸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선량한 생명과 세상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보살피고 구도(救度)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모두 선한 표현을 써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조종하여 인류를 파괴하는 사악한 생명에 대한 처리 또한 인류와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다.”(『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 사악은 더는 감히 ‘유다’를 불러다 나와 대화시키지 못했으며 나는 세뇌반 보따리를 철저히 벗어버리게 됐다. 희망하건대 나의 착실한 수련 심득이 아직도 ‘유다’, 세뇌반, ‘610’에 공포를 갖고 있는 동수에게 조그마한 계발이라도 되어 곤경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신의 길에서 걸어가기를 바란다.

2. 옥중 환경을 바로잡다

감옥과 같은 이런 환경에서는 처음에 사람마음이 엄청 많아 이것도 두렵고 저것도 무서워 곳곳마다 다 그것을 부정해야 했으므로 그야말로 곤란이 첩첩했다. 단식도 해 보았고, 육체적인 고통도 적지 않게 당했으며, 심지어 수시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늘 환경이 별로 변하지 않은 감을 느끼게 됐고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이 같은 고통 속에서도 하루를 일년처럼 삼고 견지했으나 적지 않은 사람은 얼마를 견지하지 못하고 점차 감당하지 못하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본래 감당력이 부족했던 수련생은 더구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나는 법공부 강화를 통해 인식하게 됐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실증하고 있으면서 몸으로서 당하고, 지탱하고, 감당했는데 이것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밖에서 찾으면서 마치 전장에서 고지쟁탈을 하는 것처럼 사악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생각한다, 비록 그다지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진정 안을 향해 닦고, 자신을 찾아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의 위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법공부하여 법리를 알게 된 후 끊임없이 조절하면서 자신의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데 힘을 들였고 쟁투심을 멸하고 공포심을 멸했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멸했다……부동한 시간에 어떤 마음이 나오면 그것을 겨냥해 그 마음을 멸했는바, 진정으로 직지인심(直指人心)이었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이렇게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착실하게 마음을 닦고 집착을 버렸을 때 그런 집착심은 그야말로 견디지 못해 어떤 것은 몇 분 사이에, 어떤 것은 몇 시간 사이에, 어떤 것은 며칠 사이에 소멸됐다. 이 마음이 없으면 이 난이 없는 것으로 사람마음을 버린 후 환경변화는 아주 컸다. 예를 든다면 나에게 전기곤봉에 감전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선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으므로 구세력의 박해를 절대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런 다음 두려운 마음을 겨냥해 염한다. ‘전기봉에 감전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멸한다’를 이 마음을 버릴 때까지 염하다가 태연해 질 때면 그만한다. 그러므로 이후에 내가 여러 번 환경을 바로 잡을 때 더이상 이 방면의 육체적인 고통이 없었다, 두 번 자세를 바로 잡은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 사인상(死人床)까지 다 바로 놓게 했다. 나는 ‘滅’라는 이 마음의 강도를 강화했는바, 태연해 지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사악은 사인상도 들고 갔고, 눈 앞에 닥친 난도 화해됐으며 일체 위험했던 상황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생사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어떻게 내려놓겠는가? 실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멸하는 것이며, 직지(直指)로 이 마음을 멸하는 것이며, 거기에 또 법을 배워 법리를 아는 것을 더해 준다, 육신은 옷 한 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린 후엔 육체에 대한 집착도 자연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린다 해서 죽음으로 대항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육신은 인간 세상에서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쓰는 것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때에 옥경에게 『전법륜』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주지 않는데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써 주고 성명을 써준다. 이 먼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앞당겨 깨끗이 멸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얼른 책을 가져다준다. 전반 과정에 자신은 단지 마음을 버리고 입만 놀렸을 뿐이며 법을 실증했다. 불법은 끝이 없는 것으로 나는 다만 집착심을 버렸을 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이후에 정정당당하게 연공하고, 정정당당하게 죄수복을 입지 않으며, 정상적인 이발을 하고, 노동을 하지 않는 등등은 모두 이렇게 바로잡아 온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면 스스로 무슨 마음이 나오게 되는데 그러면 먼저 이 마음을 멸해야 하고 깨끗이 멸한 다음 다시 사람 이 한 층을 타파해야 한다. 이를테면 옷을 갈아입거나, 정상적인 연공을 시작하거나, 사람을 찾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의 이발을 해 달라 한다거나, 노예노동을 중지한다거나 하는 것인데, 사악은 아예 상관할 수 없거니와 전혀 묻지도 상관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리어 자신도 돌볼 겨를이 없을까 봐 두려워할 지경인데 어찌 감히 상관할 수 있겠는가? 사악이 함부로 감히 박해할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게 집착이 있어 그들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집착심을 버린 후 법에 있을 때면 사악이 무슨 힘으로 전체 우주 정법에 감히 맞설 수 있겠는가? 숨을 겨를도 없을 것이다!

구세력이 배치를 부정하는 과정에 이지적으로 하는 것은 가장 관건적이다. 막 시작에는 이지적이지 못해 자신의 감당능력과 心性에 따라 하지 못하면서도 한 입을 먹고 뚱보가 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다 보니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박해했다. 법공부를 통하고, 실패를 교훈으로 삼은 후, 이성으로 돌아와 한 걸음, 한 발자국씩 환경을 바로잡는 범위와 역량을 확대했다. 예를 든다면 정정당당하게 연공한 전체 과정은 아주 이지적이었는바,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가부좌 자세를 취할 수 있을 뿐이었고, 그건 그저 자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마음이 긴장해 지기 시작하자 다리를 내려놓고 두려운 마음을 버렸다. 두려운 마음을 겨냥해 두려운 마음이 죽으라는 염을 반복적으로 발하고 반복적으로 ‘滅’를 염했다. 태연해 진 후 다음번에는 5분 동안 가부좌 하니 마음이 또 혼란스러웠다. 그럼 또 내려놓고 또 ‘滅’를 염하고 한 동안을 멸하고는 다음번에는 10분 동안 가부좌 했으며, 혼란해지면 또 중지하고 또 ‘滅’자를 계속 염했다. 바로 이렇게 조금 조금씩 마음을 버리면서 조금 조금씩 시간을 연장 했다. 5분으로부터 10분, 20분에서 반시간, 다시 한 시간에 이르기 까지, 눈을 뜨고 하던 데로부터 잠깐씩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하던 데로부터 나중에는 완전히 태연하게 미묘한 가부좌를 할 수 있는 데에 이르기 까지, 정공만 연마하던 데로부터 동,정공 전부를 하고, 하루 한 번 하던 것을 하루 두 번 전부 할 수 있는데 이르기까지, 전 성(省) 감옥계통 CCTV를 마주하고서라도 집에서 연공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연공할 수 있은 것 등등은 모두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버리고 조금씩 연장하고 조금씩 넓히면서 했던 것이다. 心性이 제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면 먼저 하지 말고 心性이 제 위치에 이르렀을 때를 기다려 다시 정식으로 사람 이 한 층 면을 타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체 과정은 이지적이면서 온당하고도 난이 없어야 하는바, 바로 저수지의 물이 붇는 것처럼 전체 제고, 전체 승화가 돼야 하며 일체는 물이 도랑에 흘러들듯 풍랑이 일지 않고 조용해야 한다.

이 과정은 보건대는 마치 아주 느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치지 않고 정진하기만 하면 아주 빠른 것이다. 내가 연공을 시작해서부터 완전히 동공, 정공을 전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르기 까지는 장애가 없었는데 한, 두 주 사이에 완전히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온당하고 착실하게, 원래의 외적인 격렬한 대항을 완전히 내적인 자아 수련에로 돌렸을 때, 외부에서의 충돌을 조금도 보아낼 수 없었고, 상화롭고 원용불파했는 바, 법의 위력을 실증 했던 것이다.

3. 감옥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

이지적이고 냉정하게 법을 실증했으므로 바르지 못한 환경을 바로 잡았고, 환경을 갈수록 바르게 했으며 죄수와 옥경은 파룬궁에 대해 갈수록 정확한 심태를 가지게 됐다. 그들도 거의 전부 아무런 고려도 없이 『전법륜』, 경문을 보았고, 내가 말하는 진상을 들었다. 그 중 한 옥경은 『전법륜』을 다 본 그날 저녁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신 금빛 반짝이는 8개의 큰 글자, “제자를 선히 대하고, 대법을 바짝 따르라”(善待弟子,緊隨大法)를 보았다. 어떤 죄수는 감히 큰 소리로 “중공은 사당”이라고 외쳤으며, 감히 “파룬따파 하오”라고 외쳤고, 원래 대법을 극히 미워하던 죄수는 내가 걸어온 곤경으로부터 평탄한 길로 걸어온 전 과정을 보고는 불법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대법을 배울 결심을 했다. 전직 ‘610’ 경찰은 사람들 앞에서 『전법륜』은 진경(眞經)이라고 하면서 잘 배워야 하고 잘 수련해야 한다고 했으며, 평소에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면서 알뜰히 보살펴 주었다. 그는 중공 사당이 선량한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하는 것을 보고 “공산당은 조만간에 멸망될 것이다”라고 정의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환경의 호전으로 전체 감옥에 수감된 동수들은 정체적으로 모두 제고 됐고, ‘전향’됐던 동수들이 잇달아 대법 중으로 돌아왔으며, 한 사람 한 권씩 손으로 베낀 『전법륜』이 있게 됐고, 모두 정상적으로 연공할 수 있었다. 사부님 신경문은 빠짐없이 그대로 들어왔고 나머지 ‘유다’들은 더이상 우쭐거리지 못했다. ‘610’은 그들에 대해 흥미가 없어졌고 더는 그들을 대법제자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세뇌반은 기본상 마비상태에 처했고 동수들은 모두 제고 승화했다. 네 개 정각에 발정념하는 외 모두들 날마다 8시 정각에 두 번 감옥의 사악에 대해 발정념 하자고 결정했으며 그리하여 수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구원됐다.

내가 마지막으로 감옥을 떠날 때, 한 감옥장은 나와 한 번 대화하면서 절대로 ‘전향’하지 말고, 꼭 수련성취 해야 하며 돌아가서 계속 잘 수련하라고 당부했다. 자비와 해내지 못할 것이 없는 불법의 위대함을 실증했는바,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명하도다.” (『轉法輪』)였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 중생을 구도했다.

계속하여 나는 더더욱 안에서 찾아보고 안을 향해 닦으며, 자신의 마음에 공을 들이고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면서 막바지 길을 더 잘 걸어가겠다.

개인 심득으로서 부족한 곳은 동수께서 비평비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6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6/3/2246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