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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둥융웨이

둥융웨이(董永偉), 남, 52세,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커우(旅順口)구 룽탕(龍塘)진 다룽탕(大龍塘) 사람. 룽왕탕(龍王塘) 파룬따파(法輪大法) 보도원이고 여러 번 우수 당원으로 뽑혔다. 생전에는 다룽탕촌 라텍스(latex) 공장 공장장 겸 청룽(成龍) 경질비닐 제품 공장, 병뚜껑 공장 공장장이었다. 1999년 7월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권고 받아 당에서 탈퇴했다.

2000년 7월 21일 저녁 8시경 둥융웨이는 다롄에 파룬따파 경문 『교란을 배제하자』를 가지러 갈 때 현지 경찰에게 미행 당했다. 다롄에서 돌아온 그는 문 앞에서 기다리던 룽탕진 파출소 쑨(孫) 소장, 경찰 장헝하이(張恆海)와 다른 한 경찰에게 끌려가서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경찰은 당일 저녁에 그를 뤼순커우구 구치소에 보냈다.

며칠 후 누가 그를 보러 갔을 때 그는 철 의자에 앉아 있었고, 두 손은 의자에 수갑 채워져 있었다. 그는 미소 지으면서 온 사람에게 “나는 괜찮다. 여기의 생활에 적응됐다.”고 말했다.

8월 2일 점심 11시30분 둥융웨이는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경찰차에서 내릴 때 몹시 허약했고 토를 멈추지 않고 했다. 흰색 티셔츠 어깨에는 이미 검은색이 된 핏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다. 당일 저녁 그는 온몸에 열이 났고, 아프다고 했으며, 힘이 없어 말을 못했고 연필로 간단한 말만 적었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했고 사유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가족은 그에게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그는 손을 저으며 가지 않겠다는 표시를했다. 그리고 손으로 목을 한번 그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떨어져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라는 뜻이었다. 그는 괴로워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다.

8월 3일 점심, 둥융웨이는 더욱 허약해졌고 아픔을 참기 어려워했다. 가족은 강제로 그를 210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그의 맥박과 혈압을 검사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1시간 후 구치소에서 나온 지 24시간도 안 된 둥융웨이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힘겹게 ‘나는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글자를 남겼다. 그리하여 어느 수련생도 그 때문에 연루되지는 않았다. 경찰이 한 말을 인용한다면 “그는 그 해의 지하당(地下黨)보다 더 지하당이다.”라고 했다.

둥융웨이는 학비를 내지 못하는 많은 아이에게 학비를 내주어 공부하게 했다.하지만 장쩌민(江澤民) 권력 하의 경찰들은 이렇게 좋은 사람을저승으로 보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69.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