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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는 정성들여 해야한다를 다시 말하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2일】 오늘 명혜문장 “법공부는 정성들여 해야 한다”를 읽고 매우 큰 촉동을 받았다. 사존께서는 거의 매 번 설법에서 모두 반복적으로 우리들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잘하라”고 말씀하셨다. 나 자신도 사존께서 그렇게 반복적으로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문제가 이미 매우 엄중함을 설명하며, 아울러 법공부를 정성들여 하지 않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자신이 이해한 상황에 의해 말한다면, 어떤 동수들은 매일 법공부하며, 또 매일 얼마를 공부한다고 규정까지 지어놓고, 다른 동수에게도 얼마를 한다고 알리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제에 부딪치면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몸이 불편하면 평소대로 병원으로 가며, 다른 사람과 모순이 있게 되면 마음이 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쾌해 한다. 어떤 동수들은 신변에 모순이 첩첩한데 물결이 연이어 일어나듯 모순이 연이어 나타나며, 시끄러움과 교란이 하나 또 하나 이어져 수련함이 아주 어렵다. 당신이 그더러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하면, 그는 법공부는 매일 한다고 한다. 사실 곧바로 법공부를 정성들여 하지 않고, 법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매일 하기는 하지만 마치 임무를 완성하는 것과 같이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법공부를 정성들여 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은 의연히 마음이 조용히 하지 못하고, 집착심이 너무 많고, 속인의 그 무엇도 내려놓지 못하여 법공부를 정성들여 할 수 없음이 조성된 것이다. 이 방면에 대하여 동수들이 교류한 것이 비교적 많으므로 오늘 나는 더 많이 말하지 않겠다. 사실 나는 또 하나의 감수가 있다. 법을 보편적으로 많이 읽었기에 법의 표면 문자는 이미 매우 익숙하여 매우 류창하게 읽을 수 있다. 위의 문구를 읽고나면 아래 문구는 머리를 쓰지 않고도 읽어 내려갈 수 있기에 만약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자신이 무엇을 읽었는지 근본적으로 모르며, 법공부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건대 가장 좋은 것은 법을 암송하는 것이다. 하루에 몇 개 자연 단락을 암송하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에 새겨졌기에 그 효과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몇 강의를 읽는 것보다 훨씬 좋다. 또 나는 법을 애주 익숙하게 암송할 때 때로는 한 강의의 법을 매우 빨리 암송한다. 그러나 무엇을 암송했는지 모르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주의식이 맑아야 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암송해야 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눈앞에 나타나 온 몸이 법중에 용해되는데 그러한 느낌은 묘사할 합당한 단어가 없으며, 그야말로 너무나 오묘한 것이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정성들여 공부한다면 머리속에 담겨 있는 것은 모두 법이기에 세 가지 일을 하면 자연히 효과기 좋아지며, 자연히 그렇게 많은 교란이 없게 된다. 몇 년 간 나는 줄곧 이렇게 공부하였고, 마음 속에 담은 것은 모두 법이었기에 일체 번거로움, 교란은 모두 나를 피하곤 하였다. 수련 상태는 줄곧 매우 좋았다.

이상은 자신의 약간의 체험이다. 다시 말하여 법공부를 정성들여 하지 못하는 동수들이 법을 암송하며, 그것을 견지할 것을 희망한다. 필히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장완성 : 2009년 11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11/12/2124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