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비를 품은 채 중생을 구도

글/ 사천대법제자 매 (梅)

[명혜망 2009년 8월 29일] 대법수련을 시작한 후 나는 늘 대법제자로서 행운ㅡ 천 만년의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위대한 사부님을 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 하지만 “행운”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사실 자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나는 원만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제자의 사명은 조사 정법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마음이 모두 나빠지고,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왔는데, 개인의 원만만 돌본다면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원만 되었다 해도 또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대법제자로서 오직 사부님 요구대로 하고, 시간을 바짝 틀어쥐고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만이 비로소 가장 근본인 것이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중요한 형식이다.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적극 투입되어” 말하기 시작해서부터, “마지못해서” 진상을 말하고, 다시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말을 했는데, 나중에서야 드디어 “자비심을 품고” 진상을 알리는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은 완전히 심성을 단련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진상을 알리는데 적극 투입했다. 처음엔 그래도 비교적 순조로웠지만 이후부터는 내가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입을 막 열자 먼저 내 입을 막는다: “나한테 이런 걸 말하지 말아요,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한 번은 옛 친구이자, 오랜 이웃인 부부에게 진상을 말할 때 남자가 사정없이 말했다: “나에게 그렇게 많은걸 얘기하지 말게, 난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네……” 속인일 때 나는 비교적 내향적이고 체면을 돌보는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완전히 닦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자 마치 무언가 내가 잘못한 것 같이 느껴져 당황했다. 그 때부터 나는 진상 알리기의 어려움을 느꼈다.

비록 어렵긴 해도 진상은 여전히 알려야 했다.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는 제자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진상은 예전대로 알렸다. 하지만 심정은 늘 진상 알리기의 결과에 좌우지 되었다. 상대방이 들으면 나는 슬그머니 기뻐하면서 환희심이 나왔고: 상대방이 듣지 않으면 나는 풀이 죽었다. 이런 심태로 인하여 내가 받는 좌절이 증가 되었다. 한 번은 한 기사가 내가 알리는 진상을 듣더니 불손한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반동이고 정치를 한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알려 주어도 그는 듣지 않았다.

마음이 좋은 한 동료가 몰래 나에게 알려 주었다: “듣자니 지금 자네에 대해 의론하는 사람이 있다네,(진상 알리는 일) 말하지 말게, 조심하라구” 또 한 친하게 지내는 한 동료가 나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모모에게 말하지 말게나, 그가 도처로 다니며 자네가 이런 걸 말해 주었다고 떠들고 있는데 정말 무서워. 또 시디를 자네한테 되돌려 주겠다고 하고 있거든.”하지만 지금까지도 아직 되돌려 받지 않았다.

한 번은 국장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가 “내가 자네를 보호해 주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하는 게 나의 처지가 위험함을 암시해 주었다.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쌓이자 나에게 진상을 들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집에 있는 자료가 생각났다. 점차 얼굴을 맞대고 진상하는데 대한 두려운 마음이 생겨, 얼굴을 보고 진상을 알릴 때 우선 생각하는 게, 이 사람이 들어 줄 수 있겠는지, 위험이 없겠는지 하는 생각부터 나는 것이었다. 이는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는 질량과 수량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진상을 알리니 태만해져, 늘 바깥에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 얼굴을 맞대고 하는 진상을 대체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아주 훌륭한 구실을 붙였는데, 집에 자료가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구세력의 이치 ㅡ 진상을 알리면 박해를 받는다는 걸 승인하고 있었다.

진상 알리기가 이런 상태였으니,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사부님 대하기가 미안하고! 중생에 미안 하였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하루빨리 이런 상태를 개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법 공부를 강화하고, 동수의 관련 문장을 진지하게 읽었으며, 내가 진상을 알릴 때의 문제를 반성해 보았다.

나는 진상을 알리는 기점이 옳지 않음을 인식하였다. 처음에 적극 투입한 것은 진상 알리기를 마땅히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선생님께서 내 주신 숙제를 학생이라면 반드시 완수해야만 옳은 것이다”는 이런 심태였고: 곤란에 부딪히고 좌절당하면서 생각한 것이란 자신의 체면상 지내기가 어려웠고 위험을 느꼈는데, 여기서 생각한 것이란 자신의 안전이었다. 이 일체는 모두 “사”에서 온 것이지 중생을 구한다는 기점에서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의 태도에 별도로 주의 했으며, 정서는 상대방에게 주재 당한 것이었다. “고집”스러워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생각하기를, 이런 사람에게는 말하기 싫다는 것이었고, 그때부터 더는 그들을 찾지 않았고 만나기조차 싫어하였다. 이것이 그래 사부님께서 비평하신 그런 “사람을 구하는데 아직도 조건을 운운”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더 깊이로 파 보니, 나는 자신의 진상알리는 기점이 불순함을 보아냈다. 나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진상을 알렸던 것이며, 자신이 잘하지 못하여 떨어질까 두려웠고, 자신이 낙오하여 원만하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진상 알리기를 위해 억지로 버티었으며, 두려웠기 때문에 박해가 어서 종결되기를 바랬다. 아래로 파 내려 갈수록 깊이 숨겨져서 나타나지 않았던 더러운 것들이 더욱 발견되어 일종의 한 매 얻어맞은 감각이었다. 이러한 사심을 갖고 진상을 알렸으니 길은 갈수록 좁아지기 마련이었다. 법은 나에게 알려 주었다, 대법제자가 이 특수한 시기에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사부님께서는 참회하는 나의 진심을 보시고 끊임없이 나를 도와주시어 나로 하여금 진상 알리기에 진보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나는 사람 구하러 왔다”는,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게 하셨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헛되게 왔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나는 사람을 구하러 왔다”는 일념이 생기자 두려운 마음이 끊임없이 버려졌다. 그때부터는 아는 사람, 낯선 사람, 구별없이 진상을 알렸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에게도 다 진상을 말해 주었다. 한 학생의 아버지는 대법제자를 박해해서 명혜망에 이름이 오른 악경이었다. 나는 그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몇 번이고 그의 집에 가서 그에게, 그의 아내 및 아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는 나에게 더는 그런 일을(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 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와 >을 요구 하였다. 위험을 무릅쓴다는 말은 파출소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몰수한 대법 책은 일률로 두 사람이 동시에 보관해야 하고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는 나는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에게 3퇴를 권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나는 앞으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을 다짐하고 있다.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자, 일체 돌발적인 상황도 능히 태연하게 대할 수 있었고, 금강불동 (金刚不动)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가기만 하면 나에게는 늘 염두가 있다: 나는 사람을 구하고 있으며, 자료는 인연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인연 없는 사람은 가져가지 못하며, 악경은 보지 못한다. 누구도 나를 건드릴 생각을 말라!

(……중략)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탈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 번을 말해도 여전히 탈퇴하지 않아 나는 그와의 우정을 믿고 신랄하게 그를 조소하고 비웃으면서 그를 자극시켜 탈퇴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그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업이 전성기라, 머리에는 사당이 준 수많은 명예 테가 둘러져 있어서 구도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 구하려 왔다”는 일념이 생기자 나는 또 그를 찾아 가, 한 번 또 한 번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명백한 일면에다 말하였다: 나는 너를 꼭 구하고야 말겠다. 처음에 그는 듣고 나서 그저 웃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조급해 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결과에 급해 하지도 않으면서 참을성 있게 그를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한 동안 그를 겨냥해 발정념을 견지 하였다. 그렇게 전 후 십여 차례 권유하면서 시간 간격도 아주 길었다. 드디어 흔쾌히 동의했다. “‘역사’라는 화명으로 탈퇴 하겠어!”나는 그의 손을 꽉 붙들고는 말할 수 없는 격동을 느꼈다. 이는 한 생명이 구원된 것이다! 그는 자칫했더라면 나 때문에 지체할 뻔 하였다. 나는 정말이지 함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절실히 알았다.

“나는 사람 구하러 왔다”는 이 일념이 생기자, 진상을 알릴 때 지혜롭고 자비롭게 되었다. 나는 교육연구를 담당하므로 연구 과정에 적지 않은 교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청년 핵심 교사가 많았다. 애초에 그들 대다수와 연계가 비교적 많고, 또 비교적 깊은 우정이 있으므로 가장 쉽게 탈퇴시킬 수 군체라고 객관적으로 여겼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핵심이 많고, 간부로 발탁된 사람이 많았으며, 우수한 사람으로 선발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입당을 쟁취한 사람이 많았으며, 사당 독해를 받은 정도가 상대적으로 깊은 사람이 많았으므로 탈당을 권고하는데 난이도가 적지 않았다.

한 젊은 교사에게 3퇴를 권하자 그는 조금도 회피하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노서기가 저를 아주 잘 대해주고, 줄곧 저를 독려하여 입당 시켰어요” 어떤 사람은 또 어쩌면 내가 “미신”을 믿는가 하면서 놀라워하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이런 젊은이들 모두 사당에 독해되어 이 모양이 되었는데 대법제자로서의 내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겠는가?! 이 한 패의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평온한 마음으로 화를 내지 않고 진상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예전에 많이 알지 못했던 사당의 죄악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시 하였다.

그들과 사업상 접촉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는 한동안 집중적으로 특정 몇 사람을 겨냥해 발정념을 하였는데, 그들을 구하겠다는 강렬한 염원을 발하였다. 그런 다음 교재를 안배할 때, 수업할 때나 개별 담화를 할 때,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사당이 중국 사람에게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죄행을 말해 주었으며, 성근한 언어로 대법이 어떻게 해외에서 널리 전해지고, 서양인들이 중국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천안문에 와서 진상을 알렸다는 예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거듭거듭 그들에게 3퇴를 권하는가를 말하였으며……, 감동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가슴속으로부터 흘러나온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동해 3퇴를 하였고, 어떤 사람은 탈퇴 후 보충하여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듯 입이 닳도록 말하는 것을 보고 당신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당신을 믿으며, 당신이 한 말은 긍정하고 옳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족마저 탈퇴 시켰다.

만약 만난 사람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따라서 선악에 보응이 따름을 믿는 사람이라면 나는 더는 예전처럼 주관적으로 이런 사람에게는 말하기 좋으며, 진상을 듣고 3퇴하는데 문제없다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솔하게 대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구한다는 그 한 마음을 유지하고 여전히 발정념하고, 여전히 신통을 썼다. 진상을 알려 준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직접 하느님께 3퇴를 성명하게(많은 사람들이 이런 형식을 좋아하였다)하거나, 내가 그들의 3퇴 성명의 증인으로 되었다. 그리고 소명으로 나에게 위탁하여 탈퇴 하거나, 내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며 탈퇴하게 하였다.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29/20733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