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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는 것을 형식에 치우치지 말아야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녀 8월 28일】 최근 나는 일부 동수들이 정도 부동하게 일부 난관에 부딪힌 것을 발견하였다. 어떤 수련생은 심성방면에서, 어떤 수련생은 신체 병업 형식으로, 어떤 수련생은 생활방면에서다. 나는 사부님의 정법이 최후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위해 최후의 일을 하시고 있으므로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도 높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의 수련은 반드시 시시각각 법에 서서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문제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는 것이다. 저층차로 문제를 사고하지 말고 매 시각마다 모두 수련인의 각도에서 일을 하고 문제를 생각한다면 넘지 못할 난관이 없다. 그런데 왜 어떤 수련생은 관을 넘는 시간이 길어져 수련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어떤 동수들이 관을 넘을 때 안으로 찾는다고는 하지만 형식에 치우쳤음을 발견하였다. 아주 많은 마음을 찾아내거나 혹은 자신이 한 어느 일을 잘못했다고 말할 뿐 근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것을 파내어 그것을 없애고,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그것을 거절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재빨리 관을 넘고 층차를 제고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집에서 법공부를 하기에 협조인이 어느 날 저녁 그의 집에서 법회를 하기로 안배하였다. 그것은 얻기 어려운 법회로, 박해가 발생한지 10년만에 우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법회를 소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방정맞게 외손주가 병에 걸려 그에게 며칠 돌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도 법회를 마친 뒤 가려고 했으나 그의 딸 또한 매우 조급해하여 그는 장도열차로 갔다. 아울러 이쪽에서는 장소문제로 인해 법회를 열지 못했다. 물론 이 일은 응당 정체적으로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수련생이 며칠 있다가 돌아온 후 법공부에도 일부 교란이 있었다. 어떤 수련생은 안으로 찾으라고 했고, 그 자신도 응당 하루 늦게 가거나 혹은 자신은 가더라도 법회장소만은 제공했어야 했다고 하였다. 그 밖에도 아주 많은 집착을 찾았으나 사실 정에 대한 집착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한 것에 문제가 있음을 찾아 내지 못했다.

나는 또 일부 동수들의 병업관이 몇 달 동안 지속됨을 보았다. 그는 온 몸이 가렵고, 아프고 불편해하였는데 이 수련생은 열린 채 수련하고 있었다. 그 수련생은 자신이 목욕한 물에 작고 검은 벌레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자신의 몸이 열이나고 갈라터져 아주 위독했다. 지금은 ‘세 가지 일’ 마저 할 수 없게 되어 많은 동수들이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하지만 소용없다. 바로 이 동수와 기타동수들이 협조하여 주변의 몇 몇 시골마을에 자료를 배포했다. 그리하여 몇 몇 시골마을 사람들 대부분 그들로 인해 탈퇴했고, 인근 현지 수련생을 구출하기위해 발정념을 할 때에도 아주 주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자신의 병업관은 몇 개월 동안 넘지 못하고 있었다. 동수들이 그를 도와 안으로 찾았지만 그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교류를 할 때, 그들 법공부팀은 늘 교류의 본제를 벗어나서 이야기를 했다. 어떤 때는 법에서 어긋나 몇 번이나 화제를 되돌려도 또 본제에서 벗어났다. 언제나 일에서 일을 논했을 뿐 법리를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그것을 어찌 법공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좀 지나면 법을 읽는 사람 외, 다른 7명은 다 자고 있었다. 스스로도 그들 법공부팀에서는 매일 연공만하고 교류만 할뿐 법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CD하나를 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법공부만 하면 졸려서 며칠 동안『전법륜』을 1강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들 법공부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엄중한 문제가 장기간 지속해도 재빨리 돌파하지 않고 도리어 마음을 병업에 쓰고 있었다. 이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는 게 아니라 병업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완전히 사부님께 맡기고 온 몸과 마음을 중생을 구도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은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하고 있다.

나는 또 어떤 수련생은 유리걸식하는 생활을 하면서, 대법제자의 수련은 응당 정정당당하고 평탄하게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의 길을 미래에 남겨주어 미래의 수련인이 참조로 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 사실 매 하나의 진수제자는 모두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의 신변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감수하였을 것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잘 수련하게 하기위해,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우리가 금후 “세 가지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한 우리의 운명이 개변될 때 다른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참으로 느꼈을 것이다! 부처의 자비는 오직 진수제자만 비로소 체득하고 감오(感悟)할 수 있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무엇 때문에 몇 년 동안 유리걸식 상태인가? 대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차별하신다는 말인가? 이런 수련생은 정말 자신이 무엇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잘 찾아보아야 한다.

물론 일부는 우리가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안으로 문제를 찾기만 하면 해결 할 수 있지만, 어떤 일은 근원을 파내야 하며 어떤 일은 생명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은 심지어 생명을 내려놓으려 해도 낡은 세력이 우리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함께 일을 한다고 하여 관을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최후에 이르러 어떠한 마음이든 낡은 세력은 우리를 속인 속에 되돌아가게 하려 할 것인바, 최후일수록 우리는 더욱 정진해야 하며 시시각각 자신을 대법 속에 용해 시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기제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소유의 집착을 닦아 버리고 일체를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위타의 정각이 되어 사전의 대원을 완성하고 원만으로 사부님께 보답하자!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8월 27일

문장분류:【수련 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28/20727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