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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 수련생을 일깨워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의 책임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21일】 장기간 수많은 예전 동수들이 줄곧 걸어 나오지 못하여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줄곧 자신에게 말했다. “수련하여 닦는 것은 자신이니 남을 보지 말자. 사부님의 법이 모두 그곳에 놓여 있음에도 그들을 개변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그들을 개변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이 가급적 더 많이 하여 그들이 하지 않은 그 부분의 손실을 약간이나마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줄곧 자신의 이 인식이 아주 이타적인 것이라고 여기다가, 《신당인 방송 토론회 설법》을 본 후에야 자신의 생각이 진정 타인을 위하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며, 적어도 정법 전반 국면의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신당인 방송 토론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일부 수련생이 장기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그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으며, 그 부분의 수련생들이 나와서 먼저 간단한 일을 하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첫째는 그들이 걸어 나올 수 있게 하고, 둘째는 그들 자신에게 위덕을 수립할 수 있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래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전에 나는 늘 자신이 좀 더 많이 할 것만 생각하고 걸어 나오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동수의 장래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우리가 이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번번이 그들의 장래를 위해 그런 큰 걱정을 하시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또 사부님께서 《2004년 시카고 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말한다면, 한 생명이 역사상에서 오늘날 능히 법을 얻을 수 있는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며, 너무나 행운이다! 그러나 일단 그가 잃었을 때에, 여러분은 그가 직면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아주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큰 책임과 거대한 사명을 부여했는데 그가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한 생명의 원만과 그것은 반비례되는 것으로, 그 생명은 정말로 무생지문(無生之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신들은 나를 위해서 함부로 한 사람도 내버려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어떠한 착오가 있고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막론하고 나는 모두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최근 나는 일부 동수들을 접촉했는데 그들 그 지역의 십여 명 사람들이 거의 모두 걸어 나오지 않는 상태에 처해 있었고, 올림픽 이후 보편적으로 소침해졌으며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를 거절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전도에 실망을 느끼고 아예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어떤 사람은 또 엄중한 ‘병업(病業)’상태가 나타나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2004년 뉴욕 국제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연상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단 수련을 하여 이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사악의 박해 중에서 위험 하므로 여러분은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필경 법을 얻은 생명으로 이치를 따진다면 마땅히 속인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들이 점점 길을 잃는 것을 보고도 우리가 상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더 많은 마음을 써 될수록 빨리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우리 현재의 급선무이고 우리 현 단계 조사정법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박해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까닭을 생각해 보자. 사부님께서는 《신당인 방송 토론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바로 많은 대법제자들이 수련 중에서 아직 자신의 길을 다 걷지 못했기 때문에, 지연하고 있는 것이다.”

정법 수련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며, 사부님께서도 영원히 기다리시진 않을 것이다. 박해가 오늘까지 지연된 것은 사부님께서 중생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말하지만 차라리 사부님께서 자신의 거대한 지불을 대가로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인류 사회의 일체는 모두 우리의 수련상태에 따라 움직이는데, 인류 도덕이 왜 일일천리로 미끄럼질 치고, 중생이 왜 이렇듯 구하기 어려운가. “세상 쇠락을 끊어 막는”(《홍음 2》〈널리 비추노라〉) 책임을 진 우리가 장래 대심판 중에서 이에 대해 조금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07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현재 여러분이 이 일을 완수할 수 없고 중생들이 구도 받을 수 없게 한다면 당신들은 자신이 체결한 서약(誓約)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며, 동시에 또한 전반 정법, 우주, 중생에게 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대륙동수들이 지난 십여 년 동안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한 경력을 반성해 본다면, 오늘날의 효과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가? 《명혜주간(제394기)》에 북미 대법제자의 문장 “ 진상 알리는 효과에 중시를 돌리고 사람 구하는 속도를 빨리하자(역주: 한글명혜망 수련마당 5633번 문장 http://dafamedia.net/minghui/bbs/tb.php/madang/5648)”가 올라왔는데, 말한 것이 극히 시의적절하고 총화한 것이 상당이 전면적이다. 이 문장은 “정진하지 않는 동수들을 이끌어 제고”하는 것과 “사람 구하는 효과를 중시”하자는 두 가지 중요한 각도로부터 다시 한 번 우리 매 대륙대법제자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는바, 우리 전체 대륙 대법제자들은 모두 자신을 대조하면서 다시 진지하게 이 문장을 볼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 허스.

문장발표 : 2009년 8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21/20688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