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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와 “부정”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7일] 명혜망 2009년 8월 2일에 깐수(甘肃)의 한 수련생이 쓴 문장이 있었는데, 제목은 “법암송을 견지하여 마귀의 소굴에서 뛰쳐 나오다”(이하 “견지”로 약칭)였다. 이 문장은 작자가 6년간 감옥에서 7개월 동안의 세뇌반 박해중에서 법암송을 견지하여 최종적으로 걸어나오게 된 경력을 서술한 것이었다. 보고난 후 동수의 신사신법의 견정한 정념에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만약 감옥에서 동수들에게 모두 그러한 정념이 있다면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전화”가 나타날 수 없을 것이며 환경 역시 더이상 이처럼 사악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각종 교란에 부딪친 동수들이 모두 이러한 정념이 있다면 매우 많은 일을 더욱 잘 처리할 수 있고 매우 많은 유감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다른 하나의 각도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문장에서 수련생은 이렇게 썼다. 감옥을 지키는 경찰과 공안이 자신을 찾아 이야기 할 때 압력이 매우 컸다. 그리하여 >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제자로서 시달림이 올 때, 정말로 능히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끔 마음을 놓는다면, 족히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씬씽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꼭 사악한 마가 당신들이 방치한 틈을 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니다. 그럼 본성의 일면은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 동수의 그 당시 인식은 ”법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심태가 정말로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고비를 넘을 수 있고 나의 사람의 일면이 사악한 마를 자양하여 관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탄연한 기초상에서 나는 절대 그들의 말과 요구에 부합되거나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수련생은 이처럼 “그들의 말과 요구에 부합되거나 승인하지 않는다”라는 사상으로 자신의 행위를 지도하였고 한차례 또 한차례의 참혹한 박해와 마주하였다. 기나긴 6년간 감옥속에서 박해후 또 세뇌반에 가게 되어 매우 추운 겨울에 홑옷을 입고 철문에 수갑을 찬채 매달려 있어야 하였다. 그때 수련생이 생각한 것은 의연히 ”내가 하루를 견지할 수 있다면 이틀을 견지하고 이틀을 견지할 수 있으면 한달, 일년을 견지하겠다. 이제 2개월만 있으면 봄이 오게 되는데 잘 지나갈 수 있다.” 유사한 생각들이 전반 박해과정에 관통되었다. 동수의 그 문장을 보고 수련생이 “박해를 부정하는“ 이 방면에서의 법리가 똑똑하지 못한 것으로 하여 유감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 이 경문에서 사부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를 무리한 박해에 직면하였을 때 견정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신의 정념으로 부정하여야 하며 소극적으로 담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수련생은 다만 사부님의 앞 한마디 “제자로서 시달림이 올 때, 정말로 능히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끔 마음을 놓는다면, 족히 고비를 넘길 수 있다.”만 주의했을 뿐 도리어 뒤 한마디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씬씽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꼭 사악한 마가 당신들이 방치한 틈을 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니다. 그럼 본성의 일면은 왜 법을 바로잡지 않는가?”는 소홀히 하였다.

수련생이 후에 암송한 >, > 등 경문에서는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본성의 일면이 정법하려면 대법제자의 정념을 발휘하며 신통으로 다른 공간에서 악경을 통제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깨끗히 제거하며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고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하여야 한다고 더욱 명확하게 알려 주셨다. 몇 년 전 한 수련생이 쓴 문장의 내용이 기억난다. 모 수련생이 노동교양소에 감금된 후 잔인하게 두들겨 맞고 전기충격을 받는 등 박해를 받았다 한다. 그는 “확고”, ”태연부동(坦然不動)”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본성의 일면이” 어떻게 정법하겠는가를 사색하였다. 한 달 후 그 수련생은 명백해졌다. 악경이 다시 전기 몽둥이로 충격하려고 하면 3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을 때 전기몽둥이가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었다. 악경이 다른 것을 바꾸어 가지고 왔으나 약 3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또 폭발하였다. 이처럼 세 차례 반복되자 경찰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구했다. 그때로부터 수련생을 감히 박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곧 정념의 위력이다.

이번 박해는 사람의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닌데 > 문장을 쓴 동수도 다른 공간의 사악은 자기의 생각을 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대법제자가 시시각각으로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한다면 그것들도 다른 공간에서 똑똑히 보게될 것이다. 그것들은 시급히 대법제자를 내놓던지 아니면 해체될 것이다. 어떠하던지를 막론하고 박해는 곧 종식될 것이다. 관건은 대법제자에게 “박해를 부정한다”라는 정념이 생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박해를 요구하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관하시게 될 것이다.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자는 세뇌반 두목의 다리를 부둥켜 안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 너희들이 나를 6년이나 박해하였으니 네가 나를 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면 나도 너를 가지 못하게 하겠다” 이것이 곧 박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비록 그 당시 그 수련생은 명확히 발정념하여 사악을 제거하지 않았지만 이 자체가 박해를 하지 말라고 표시한 것이기에 사부님께서 도와 나오게 하였다. 몇 달 후 수련생은 끝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박해시간이 너무 길었고 불필요한 고생을 많이 한 것이다.

신변에 있는 동수들을 보면 역시 유사한 현상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교란 중에서 확고히 수련하나 도리어 강대한 정념으로 부정하지 못했다. 나는 일찍이 한 노수련생을 가서 본 일이 있는데 그 지역의 협조인이었다. 그는 엄중한 “병태”가 나타난 후 집사람들에게 매매하는 것을 정지하라고 하고 전력을 다하여 세 가지 일을 잘 하라고 하였다. 사실 이것은 이미 박해를 승인하는 표현이다. 교류 중에서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렇게 아픈 것을 일반인은 담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담당능력”에 대한 긍정, 표현된 심태 역시 박해를 담당하는 과정 중에서 견정히 수련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정법수련의 우리들에 대한 요구는 담당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비록 동수들이 줄곧 그를 도왔으나 그가 이 방면에 대한 법리가 똑똑하지 못하였고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하지 않았기에 최종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주위의 속인들이 대법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매우 큰 장애를 조성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어떤 동수들은 가능하게 자신의 집착심에 의해 가로막혀져 있어 직면하려 하지 않고 내려놓기 아까워 하며 어떤 수련생은 법리에 있어서 똑똑하지 못하다. 어떤 동수들은 가정에 마난이 매우 많지만 의연히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정법시기 제자의 위덕은 성공적으로 박해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사부님이 안배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이 안배하는 것으로 박해나 교란은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란을 받고 박해중에 있는 수련생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도대체 어느 방면의 부족으로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참답게 사고하여, 장시간의 교란 중에서 어찌할 수 없어 “이렇게 가는대로 가라”는 심태로 소극적으로 담당만 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함과 동시에 강대한 정념을 발하여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것을 건의한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에 대해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 2009년 8월 6일

문장발표 : 2009년 8월 13일문장수정 : 2009년 8월 13일 18:49:08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8/7/2060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