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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법공부를 견지하여 수련의 길을 잘 걷자

글/ 흑룡강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2월 2일】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수련인은 어떤 모순, 어떤 일에 봉착하든지 모두 안을 향해 찾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법보이며, 오직 진정으로 자신의 귀정해야 할 그 마음을 찾아내야만 무슨 일이든 쉽게 문제가 풀린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수련을 10여 년이나 한 노제자로서 사부님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비틀비틀 수없이 넘어지면서 오늘까지 걸어 왔다. 내가 걸어온 길을 회상해 보면 나는 모순과 못마땅한 일에 부딪혔을 때 자각적으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찾아본 때가 얼마나 있었는가? 모순에 부딪히기만 하면 첫 생각은 곧 밖을 향해 찾았고, 보아낸 것이란 죄다 다른 사람의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린 것이었지 종래로 먼저 자신을 보는 일이 없었다. 바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손전등처럼 남만 비추고 자신은 비춰보지 않았으며, 남을 보는 데는 아주 틀림이 없었다.

왜 그렇게 남을 틀림없이 볼 수 있는가? 법공부 하고 안을 향해 찾아보면서 그것은 나 자신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반영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반영되어 나온 것은 내 몸의 나쁜 물질이기 때문이다. 오늘에야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직도, 만약 그가 이렇게 나간다면 구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올 것인데 하고 남 걱정을 했다. 스스로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나는 자신이 정말 위험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표현과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어떤 일에 부딪힐지라도 오직 모두가 나의 씬씽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나는 곧 나의 정념을 강화해 그 나쁜 물질과 깊이 숨어있는 집착심을 노출시키고, 닦아버려 제고되어 올라감으로써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을 수 있었다.

1. 가정 교란을 돌파하고 단체 법공부 가운데서 자신을 잘 수련하다

나는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조급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한 가지 마음이 또 있으니 바로 무슨 일이든 내 뜻대로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무슨 일을 내가 좀 더하거나 내가 좀 더 감당했다면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해 말투가 딱딱해졌고 선심이라곤 전혀 없다. 이게 무슨 수련인인가! 수련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수련되었는가? 나는 몹시 고생스럽고 힘든 감을 느꼈고, 자신을 얼떨떨하게 만들어 뒤따라 무슨 교란이든 다 오게 했다. 법공부 연공도 조용해질 수 없었고, 3퇴 권고도 적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야 되는가? 이렇게 얼떨떨해서는 안된다. 청성해 져야 하며 법공부를 바짝 틀어쥐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그 전에 나는 구세력의 박해로 한동안 유리실소 하였는데 두려운 마음이 아주 중한 탓에 이 몇 년 동안 법공부, 연공을 잘 견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몇 달 동안 전혀 대법 책을 보지 않았고 진상 알리기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조금했지만 두려운 마음이 엄중했다. 이 동안에 가족의 교란도 아주 크게 받았고 경찰도 날마다 찾아와 오늘은 이걸 찾고 내일은 저걸 묻곤 하여 겁에 질린 가족들은 감히 집에 있지 못했고 경찰차 소리만 들어도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했으며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것은 모두 내가 정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서 정념이 부족하고 대법 일을 하는 것으로 수련을 대신하고, 마음을 닦지 않아 사악한 구세력이 틈 탈 기회를 주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수련과 가정에 매우 큰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3년 남짓 지속되었다. 돌아온 후 가족들은 나를 엄격히 관할했다. 집에서 법공부, 연공도 못하게 하여 나는 그들 몰래 연공해야 했다. 그 때 명혜와 대법자료를 본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나는 이렇게 하고서야 어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수련은 마땅히 정정당당해야 하고 그들에게 제한 당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일부러 그들 앞에서 책을 보았더니 그들은 겁에 질려 나더러 얼른 책을 감추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신앙을 견지하고, 대법을 수련하는 데는 죄가 없다고 말하였다. 당신들은 나를 바깥에도 못 나가게 하는데 내가 집에서 책을 봐도 안 되는가! 바로 이렇게 하여 나는 날마다 집에서 법공부를 하게 되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정념으로 나를 제한하는 그들의 나쁜 물질을 해체했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수 집에 갔다. 하지만 날마다 법공부하러 가기 전에 나는 집안일을 잘해 놓은 다음 가곤 했다. 가족들이 뭘 하러 나가느랴고 물으면 나는 놀러 간다고 말했다. 나는 가족들이 나의 법공부를 저지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싫었고, 또 식구들이 나 때문에 근심할까 두려웠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속인은 수련하지 않으므로 만일 이 말이 새나가면 법공부 팀에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늦게야 집에 돌아왔는데 문에 들어서자 남편이 무엇을 하러 갔다 왔느냐, 길에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무엇을 하고 놀았느냐, 그리고는 또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에게 법공부 하러 갔다 왔다고 정정당당하게 알려 주었다. 그는 믿지 않았다. “이렇게 늦었는데 누구 집에서 아직까지 자지 않느냐, 당신 늘 남의 집에 가서 뭘 하는 거야?” 내가 “그럼 남의 집에 가지 말고 우리 집으로 오면 되겠네요” 하고 말했더니 그는 곧 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어 그럼 내일 그들을 우리 집에 오라 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또 자신의 수면을 지체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우리는 한동안 말다툼을 했다. 비록 나의 말투가 상냥하지 못하긴 했어도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정념을 증강해 주시어 정념의 장의 작용 하에 부정확한 상태가 귀정되었고, 그도 따라서 개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형식이다. 또한 우리 매 수련인마다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며, 누구도 떠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늘 동수 집에 가서 법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오랫동안 동수에게 준 번거로움도 적지 않으니 속으로 늘 우리가 법공부 팀을 하나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줄곧 부부 쌍쌍이 모두 수련하는 가정을 무척 부러워하면서 이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장 훌륭한 환경이라고 여겼다. 특히 사악이 가장 창궐하던 시기, 동수 그들이 각종 압력을 무릅쓰고 모든 사악한 구세력의 교란을 저지하는 그 때, 나는 동수 집에 법공부 하러 가는 것조차 속으로 두려워 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서 법공부 함으로 하여 가져다 줄 번거로움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으며, 이런 것을 그들은 전혀 생각지 않고 단지 사부님 안배대로만 하였고, 집에서 법 공부 할 수 없는 우리 같은 동수들에게 단체 법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단체 법공부는 내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할 수 있는 신심을 증강해 주어 수많은 관과 난을 넘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줄곧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는 것을 견지했다.

내게는 시종 법공부 팀을 건립해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 하게 하려는 염원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실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 집은 비좁고 물건이 많아 동수들이 와도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내가 끊임없이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느 날인가 나는 아주 쉽게 집을 한 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조건이 있게 되자 법공부 팀은 재빨리 조직되었다. 이는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 자신에게 오직 이런 염원이 있고 , 이렇게 생각만 한다면 진정한 그 일은 사부가 해준다.” (『전법륜』) 이것이 바로 대법의 위력, 사부님의 자비가 아닌가, 오직 우리의 생각이 법에 있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모두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법공부 팀을 설립한 후 나는 동수들에게 ‘반드시’ 시간 전에 미리와야 한다고 제출했다. 이러면 단체로 발정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발정념을 끝내고 와야지 발정념 중간에는 오지 말아야 하는데 발정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어떤 수련생은 앞당겨 왔지만 어떤 수련생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자신의 어떤 마음으로 촉성된 것인 가고 찾아보았다. 내가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란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수련생을 오지 못하게 한 것과 같지 않은가? 나는 몹시 후회했다. 내가 어찌 남에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자신을 찾아보니, 그것은 발정념 할 때 사람이 오면 내가 가서 문을 열어 주어야 하고, 가부좌 하고 발정념 하는데 사람이 오면 내려놓고 가서 문을 열어주면 “여러 사람의 발정념에 영향 준다”는 구실을 댈 것인데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가? 바로 나에게 영향 주는 것이 아닌가? 이건 다만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위사위아한 마음이 어쩌면 이다지도 중한가?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동수 집으로 다니며 법공부를 했어도 수련생은 나에게 아무런 요구도 제출한 적이 없었고 늘 그렇게 열정적이고 착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 주었는데 나는 어찌하여 남에게 이런 요구를 하게 되었는가? 동수와 비겨보면 나는 왜 차이가 이렇게도 멀단 말인가! 이건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다. 수련생이 단체 법공부 환경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주 쉽지 않은 일이며, 이 한 걸음을 내디딘 것 자체가 바로 아주 훌륭한 것인데 나는 어찌하여 남을 밖으로 밀어버린단 말인가? 어떤 땐 또 사람을 고르기까지 하면서 정념이 강하지 못한 사람, 자주 접촉하지 않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무슨 마음인가? 내가 이렇듯 정진하지 못하는데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셨고,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심에 종래로 사람을 고르지 않으셨는데, 나는 왜 이렇게 수련생을 대하는가? 인식을 하게 되자 누가 오던 나는 모두 선심으로 접대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반드시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으로 수련 성취하라고 하셨다.

법공부 하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닦을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읽지만 글자가 틀리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느리게 읽지만 글자를 더 넣거나 빼고 읽었고, 틀리게 읽은 글은 남이 시정해 주면 듣지도 않는다. 이럴 때 나는 곧 마음이 움직였고 마음이 움직이면 말투가 상냥하지 못하고 심태가 불안정했는데 이런 상태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여전히 나의 마음 때문에 촉성된 것이다. 내가 이 팽팽한 마음을 늦춘 후 다시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 했더니 수련생이 읽는 글에 빼놓는 것도 틀린 것도 없었다. 나는 대법은 그야말로 엄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진지하게 매 한 글자를 읽어야 하며 틀리거나 보태거나 빼 놓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알다시피 매 글자의 배후마다 모두 층층 겹겹으로 불도신(佛道神)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 부호 역시 법이다! 쉼표와 마침표를 읽을 때 분명하지 못하면, 특히 물음표와 모점, 그리고 또 감탄부호도 다 읽지 않고 평음으로 읽어 버리면 되겠는가? 만약 모두 한 가지 소리라면 사부님께서 문장부호를 달아선 무얼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부님께서 어떻게 쓰셨으면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만 옳은 것이다.

나는 매 번 법공부에서 ‘수구’라는 절을 읽을 때면 언제나 내 차례가 온다는 것에 주의하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곳에 있던 상관없이 모두 ‘수구’를 읽는 것은 내 차례였다. 처음엔 깨닫지 못했는데 나중에 왜 늘 내가 이 단락을 읽는 걸까, 이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수구에 주의하라고 일깨워 주시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하지 말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나중에도 늘 이 단락은 내가 읽을 차례가 되었으므로 나는 계속 안을 향해 찾았고 비로소 무엇 때문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 는 원래 농담을 잘하고 남의 말을 곧잘 받아 넘기며 우스갯소리를 좋아한다. 수련 이후에도 이 방면에 대한 수구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늘 농담 몇 마디를 하는 게 대수냐 하고 생각 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지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이 문제를 인식한 후부터 이 단락을 내가 읽을 차례가 될 때는 아주 드물었다.

법공부 중에서 어느 단락을 읽든지 모두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지 당신의 씬씽을 견주어 안배한 것이 아니므로 당신은 마땅히 더 깊이 있게 이 단락 법의 법리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법공부 가운데 서서히 제고되었다. 대법의 지도가 있고 또 수련생이 나를 위로 밀어주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나를 위로 잡아당겨 주셨기에, 밀어주고 잡아당겨 주는 상황에서 씬씽은 제고되었고 가정의 장애를 돌파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법공부를 해도 안 되고, 남의 집에 가서 해도 안 되었으니 먼 곳의 농촌에 가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런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드디어 돌파하게 되었다. 이는 대법의 위력이며, 사부님께서 나의 마음을 보아내시고 나를 대신해 장애를 죄다 제거해 주셨고, 나에게 일체 안배를 해 주신 것이다.

2. 최후의 길을 잘 걷다

많은 법공부를 통해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요성, 중생구도의 긴박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낡은 관념이 장애하여 전혀 잘할 수 없었고, 마음은 조급하나 발은 내디디지 못하여 늘 그 곳에서 배회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동수들은 자신의 일상 사업이 있는데도 늘 편벽한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있는데 나는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왜 걸어 나가지 못하는가? 어느 때 가서야 갈 수 있겠는가? 동수들이 진상을 하고 돌아와 체득을 말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조급해 죽을 지경이었고 발정념도 조용해 지지 않았으며, 속으로는 정말로 이 한 걸음을 내딪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한 걸음이 확실히 아주 어려웠고, 교란도 매우 커서 농촌에 가려고 몇 번이나 준비했어도 가지 못했다. 집에 손님이 오지 않으면 이런 저런 일이 있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교란이 아닌가? 말로는 간다 하고서는 때가 되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동수들의 마음마저 일어나게 했다. 나는 입으로는 늘 간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 수련인은 마땅히 말을 했으면 자시닝 말한 대로 해야 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 실은 아직도 사람을 구하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손님이 오거나 일이 있고 하늘같은 일이라 해도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일체는 모두 이 일을 위해 길을 개척한 것이다. 아직 나의 씬씽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가지 못한 원인은 나의 이 마음에 있으며, 사람을 구하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것이다.

아직 가지도 않고서 생각이 아주 많았고 이것저것을 두려워하였다. 그 곳의 사악은 사악하지 않을까? 나의 심태가 불안정하여 동수에게 번거로움을 주진 않을까? 남들이 가면 모두 순조로운데 내가 가도 순조로울까? 농촌의 길은 매우 어둡고 개도 많으며 걷기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늦게 돌아오면 가족들이 용서 해 주겠는가? 이렇듯 한 무더기나 되는 집착에 끌리고, 이렇듯 한 무더기나 되는 좋지 못한 사상견해가 있으니 교란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는 모두 나의 생각이 아니므로 나는 진정한 나와 가짜 나를 똑똑히 인식하고 법공부를 바짝 틀어쥐며, 나의 진상 알리기를 교란하는 일체 부정확한 견해를 제거해 버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아주 절박하다는 심정을 품는다면 필연코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누구든지 나를 막지 못하며, 누구든지 나를 교란하지 못한다. 나는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어디로 가든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 하겠다. 내가 마음을 굳게 먹으니 사부님 말씀이 이때에 귓가에서 울렸다.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전법륜』)

바로 내가 이 마음을 굳게 먹고 있을 때 집에 손님이 왔다. 끝장이구나, 내가 금방 결심을 내리자마자 교란하러 오는구나. 나는 또 달리 생각해 보았다. 이 역시 나에 대한 시련일 것이니 난 오늘 반드시 가고야 말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 내가 중생 구도 하러 갈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바로 이렇게 하여 우리 집 손님은 식사를 마치고 총총히 가버렸다. 마침 10분 후 동수들이 출발하게 되어 나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갈 때 나는 가족에게 나와 동수들이 농촌에 발정념 하러 간다고 말했다. 가족은 동수와 같이 간다는 걸 알고는 얼른 갔다 오라고 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드디어 외진 산간 마을로 복음을 보내주는 첫 발자국을 떼게 되었다.

발걸음을 떼기 전에는 아주 어렵다고만 여겼는데 발걸음을 떼었을 때는 이후의 길을 걷기가 쉬웠다. 그것은 나를 장애하는 사악이 이젠 아주 적어졌고 교란도 적어졌으며 게다가 사부님의 도움으로 주변 동수들이 모두 나를 돕게 하였으며 내가 그 한 걸음을 내디딘 동시에 좋지 못한 물질이 단숨에 나의 공간장에서 해체 되었던 것이다.

중생구도의 사명을 지니고 우리는 가는 길에 줄곧 발정념과 법 외우기를 하였다,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한 사악한 구세력의 우리의 중생구도를 교란하고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이런 안 좋은 물질을 해체했으며,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구원되라고 하였다. 우리는 한 마을 한 마을씩, 한 집 한 집씩 진상 자료를 주었고, 동수들은 서로 배합하여 한 쪽으로는 발정념 하면서 한 쪽으로는 자료를 배포하였다. 나는 자료에게 말했다. “너도 사명을 갖고 와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 너는 인연 있는 사람더러 보게 하고, 그들더러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여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보게 하거라.” 나는 자료를 배포할 때 집집마다 낮은 소리로 말한다 “우리 사부님께서 나더러 와서 당신들을 구도하라 하셨다” 매 한 집의 어느 공간장이든 일체 모두가 내가 그들에게 알려주는 말을 들었으므로 교란이 없었고 심지어 개조차 짖지 않았다.

한번은 우리가 막 자료를 어느 집 문입구에 놓자 그 집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오면서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였다. “파룬궁을 보게, 명절이 다가오니 일찍이 보내왔네.” 나는 그들이 진상 자료를 얻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무척 기뻐서 동수와 말했다. “사부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어 우리를 고무해 주시고 계셔.” 이어서 한 집에서 어른이 애를 데리고 나왔는데 애가 전단지를 주어들자 어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가져다 뭐하게. 얼른 버려라.” 나는 듣고서 그녀들은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 한 집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이 집의 좋지 못한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기 시작했다. 달리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가 금방 속으로 기뻐하는 환희심으로 조성된 것 같았다.

그 날 우리는 아주 늦게까지 하였다. 비록 만난 사람은 아주 많았지만 우리 동수들이 모두 서로 배합하여 정념을 내보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가 되돌아올 될 때는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 아침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에 앉았는데 몸이 가볍다 못해 뜰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늘의 뭇별들은 모두 그 곳 중생들이 구도될 수 있는 것으로 하여 즐거워하였다.

단체 법공부가 있기에 인근 농촌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이런 환경에서 수련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법에 용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란을 제거할 뿐더러 사람을 구하는 일도 잘 할 수 있었고, 또 서로 배합하여 하나의 정체를 형성함으로써 내가 이 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 좋지 못한 물질이 단숨에 몽땅 제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효과는 집에서는 아무리 수련한다 해도 수련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사실 걸어 나올 수 있는가 없는가를 누구든 교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장 바른 일을 하기 때문에 누구든 모두 마땅히 우리에게 길을 비켜 주어야 하며, 관건은 당신 자신이 걸어 나오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는 것으로 바로 자신의 이 마음이 자신을 장애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구실로 덮어 감추고 있다. 만약 좋지 못한 이런 마음을 닦아 버리려면 마음을 굳게 먹고 누구든 나를 막는 것을 용서하지 않으며, 나는 기필코 가서 사람을 구하겠다고 한다면 어떠한 결과이겠는가를 보라. 이는 바로 사부님께서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 준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법륜』)

아직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여, 절대 나의 오성처럼 이렇게 차하지 말기 바란다. 이렇게 늦게 걸어 나왔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어서 빨리 정법 홍류 속으로 뛰어들라!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하고, 법공부 팀이 하나로 이어지며, 진상을 모르는 중생구도를 바싹 틀어 져야 한다! 정법노정은 더 없이 신속한데 만약 진행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낙오할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조급해하신다! 우리 빨리 우리의 서약을 실현하고, 우리의 법 실증과 중생구도의 사명을 완수하자! 우리 은사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개인 체험이니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2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2/2/1946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