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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련이야기】학대통(郝大通)이 동굴을 파고 도를 닦다(사진)

글/류진쑹(劉劲松)

【명혜망 2007년 5월 18일】 무협소설의 흥행으로 전진(全眞) 7자 중에서 학대통(郝大通)에 대해 말하면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료에 기재된 학대통은 실수로 할머니를 때려죽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태고집(太古集)』에서 풍벽(馮璧)의 서문(명대 『정통도장(正統道藏)』에 의하면 그는 옥주[沃州, 조주(趙州)를 말하며 지금의 하북성 조현(趙縣)에 해당한다]에 의하면 학대통이 행각할 때 일찍이 조주 다리 밑에서 가부좌하면서 6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개구장이들이 그를 때리거나 장난을 걸어도 그는 맞받아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심지어 그의 머리에 돌을 올려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강물이 불어도 그는 가지 않았고 강물이 그를 잠기게 할 수 없었는데 도행이 높은 고인(高人)이었다.

학대통은 그 당시 전진교 조사(祖師)인 왕중양(王重陽)의 문하에서 도를 닦았고 나중에 왕중양이 우화등선하자 다른 6명의 사형 사제들이 각자 길을 떠나 행각했다. 학대통은 곳곳을 다니며 행각했고 조주에 도착하자 매일 다리 밑에서 가부좌 하며 성(性)을 길렀다. 왕중양은 동자의 몸으로 나타나 그에게 화산(華山)에 가서 동굴을 파고 도를 닦으면 정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점화해 주었다.


화산(華山)의 험한 길

학대통은 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화산에 갔고 북두평(北斗坪)에서 3년간 굴을 팠다. 자미동(紫薇洞)을 파고 이곳에서 수행했다. 동굴을 파는 과정 중에 그는 두 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하나는 매량(梅良), 다른 한명은 죽청(竹青)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학대통을 따라 동굴을 팠는데 아주 열심히 일했다. 학대통은 제자들에게 아주 진지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자미동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한 노(老) 도인(道人)이 와서 애원하면 말했다. “당신의 동굴은 정말로 잘 팠는데 저는 팔 수 없으니 제게 양보해 주십시요.” 학대통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두 말 없이 도인에게 내주었다. 두 제자는 잔뜩 불만을 품었지만 사부가 이미 허락한 일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대통은 두 제자를 거느리고 산 정상에 올라가 계속 동굴 자리를 찾았다. 누가 알았으랴, 두 번째 동굴을 다 파자 또 다른 한 도인이 가져갔다. 바로 이렇게 세 명이 동굴을 하나 파면 다른 도우(道友)한테 주었고 또 파고 또 양보했는데 이렇게 하길 40여 년 동안 지속해 70여 개의 동굴을 팠지만 자신들이 수도할 곳은 없었다.


회심석(回心石)

학대통은 두 제자를 거느리고 얼얼연(臬臬椽)에 왔는데 이곳은 절벽으로 수행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는 두 제자더러 그를 달아매게 했다. 그리고 절벽 중간에 동굴을 팠다. 이 두 제자는 본래 도를 닦아 신선이 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이런 사부를 만날 줄 어찌 알았으랴. 동굴을 파서 남에게 주기만 하면서 도에 대해서는 조금도 전해 주지 않았다. 여러 차례 하산하려 했지만 사부가 볼까 봐 두려웠다. 지금기회가 온 것을 보고 순식간에 악념(惡念)이 올라와 밧줄을 끊어 사부가 산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두 제자는 짐을 꾸려 급히 하산했다. ‘천 길’ 아래 큰 바위 옆에 도착하자마자 사부가 표연히 마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두 제자는 사부가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음을 알고 후회했다. 학대통은 두 제자가 회개하는 마음을 보고 그들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 바위를 나중에 ‘회심석(回心石)’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학대통이 두 제자를 거느리고 남천문(南天門)에 가서 또 그 절벽에 동굴을 팠다. 어느 날 그들이 계속해서 절반가량 완성된 동굴을 파고 있을 때 두 제자는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사부에게 “어떤 사람이 옵니다!”라고 말했다. 학대통은 이 말을 듣고 동굴 속에 들어가 앉았고 눈을 감은 채 우화등선했다. 이 동굴은 채 완성되지 않은 ‘절반 동굴’이 되었다.

수련에서 가장 관건적인 것은 바로 心性(씬씽) 수련이다. 일부 사람들은 알지 못하며 당신들 파룬궁은 자료를 배포하고 또 퍼레이드를 하고 문예공연을 하는데 이것이 무슨 수련인가 라고 한다. 사실 행각 중에 밥을 빌어 먹는 중에 心性을 수련할 수 있고, 다리 밑에서 가부좌하면서 心性을 수련할 수 있으며, 산에서 동굴을 파면서 心性을 닦을 수도 있다. 어떠한 형식을 취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 과정 중에 수련자의 心性이 연마되는가이다. 그렇다면 똑같이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퍼레이드 에 참여하고 문예공연을 하는 중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 마찰에 부딪칠 수 있고 마찬가지로 心性을 닦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널리 선연(善緣)을 맺을 수 있는 것으로, 진상을 모르고 마음에 불선(不善)을 품은 사람들더러 [마음을 돌려] 선을 향하고 구도되게 할 수 있다.

(《명혜주보》 해외판에서 전재)

문장완성:2007년 5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5/18/15507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