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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들과의 교류

글 / 한국 인천 수련생

【명혜망 2004년 6월 30일】
저는 1994년 3월 제가 다니고 있던 학교의 반주임을 통해 파룬따파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기공법이 사회에 유전(流傳)되고 있었고 저도 건강 증진 차원에서 여러 가지 기공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를을 배우면서 파룬궁은 다른 기공과 달리 심성을 수련하는 동시에 명을 닦고 우주의 특성에 동화시키는 성명쌍수의 공법이며 심성을 제고하는 한편 빠른 기간 내에 신체를 정화하고 세포 본질을 개변하여 고도로 순정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초상적인 생명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해 8월 사부님께서 연변에 오시어 설법하실 때 저는 운 좋게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으며, 법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정해졌습니다. 열심히 법을 배우고 연마하면서 인생의 참된 뜻을 깨우치면서 지난날 인생살이에서 겪었던 맵고, 짜고, 쓰리고, 아리고, 저리고, 모진 고통과 시달림 속에서 완전히 해탈되어 새로운 인생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로운 법학습을 통하여 부단히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제 몸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병마들은 하나하나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전법륜》에 씌여 있는 상태가 하나하나 나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연마하면 연마할수록, 점점 더 저 자신의 인격적인 결점과 윤리적인 결점들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고치는 과정에서 진실로 의미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관이 바뀌면서 흥분과 열정으로 열심히 법을 배울 때 장쩌민의 개인적인 야심으로 인해 파룬궁이 탄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지역 공안의 감시와 가도 담당 책임자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룬궁에 대한 저의 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탄압으로 인하여 저는 2년 동안 소중한 법학습과 연공 환경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저는 2002년 1월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다시 평화롭게 수련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음에 제가 수련 과정에서 깨달은 몇가지 얕은 인식을 오늘 여러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두려운 마음을 품고 남 몰래 연공하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중국에서 수련한 후에 사라졌던 잔병들이 하나하나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여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활 상의 문제들이 잇따라 숨돌릴 겨를도 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때 저의 상태는 완전히 속인이었으며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서야 저는 다시 파룬궁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동수들을 통해 2년 간 보지 못했던 사부님의 설법을 얻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제가 여태까지 남 몰래 한 개인 수련은 완전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행위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너무나 조급해졌습니다. 이에 전단지에 적힌 잠실 수련관을 찾아 가 동수들의 수련 정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으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중요성을 뒤늦게 안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 때부터 수련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달정도 지나자 정신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저는 몇 년을 수련을 잘 하여 몸이 정화된 신체일지라도 심성이 속인 층차에 떨어지면 여전히 속인 상태에서 얻어야 할 것들을 얻기 마련이며, 다시 말해서 심성이 제고되지 않고연공을 날마다 한다 해도 전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명백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 제가 처음으로 인천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열정적으로 법학습에 참가하여 법리에 대해 이해하느라 엉뚱한 질문도 많이 하여 학습 분위기에 영향을 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잠자던 사유는 많은 법리를 이해 못하여 마음만 조급해졌습니다. 동수들에게 물으면 “책에 다 있다.”거나 “책을 꾸준히 보세요.” 하면서 어떤 질문은 웃어 버렸습니다. 때로는 “아직 그것도 모릅니까?” , “안으로 찾으세요”, “법대로 하세요.” 행동마다 말마다 계속 꼬투리를 잡혀 잘 된 것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법공부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동수들을 만나면 ‘조심하자’,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결심하지만 무심결에 한마디 하게 되면계속 그런 형편이었습? 求? 이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하였고 숨이 꽉 막히는 듯 하여 동수들을 만나기 싫어졌고 같이 어울려 법공부하기도 싫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을 피하여 공덕 수련관, 잠실 수련관을 찾아 법공부를 하였으며 진상 활동도 서울 동수들과 어울려 하게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니면서 보니 우리 인천 수련생들이 정체적으로 차이가 많이 남을 느꼈습니다. 인천에서의 활동을 피하고 보니 마음이 편안하였고 법공부도 안정되었지만 몇 달 동안 인천 수련생들의 정체적인 활동에도 핑계를 대고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공덕 수련관에서 모순이 있는 한국 동수 두 분이 서로 인사도 하지 않고 피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 나는 두 동수와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지만 그들 둘은 못 본 체 하였습니다. 그때 모습은 마치 속인들의 행동과 같이 보였습니다. 집에 오면서 아까 보았던 모습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동수들끼리 저렇게 할까? 서로 모순을 풀어 버리면 될텐데!’하는 생각과 또 ‘왜 내가 이것을 보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간 제 머리 속에는 사부님께서 설법집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이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 3자가 보아도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999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서 설법》

아! 그들에게 발생한 모순이 무엇 때문에 내가 보게 되었는가, 내게 어떤 집착심이 있지 않는가, 내게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수련이기에 당신은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며 자신을 보아야 한다” 바로 내가 모순을! 피하여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그 ! 동수! 들의 행동은 바로 나의 얼굴이 아닌가? 사부님께 서 저에게 이렇게 점화하여 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안을 향하여 찾기와 언행이나 생각을 법으로 판단해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이전에도 진정한 수련이라면 모든 수련자들이 자신의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법공부가 부족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볼 수 없었고 아직도밖으로 구하려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안을 향하여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제 일 관건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근본적으로 개변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안으로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저는 동수들과 모순이 생겼을 때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잘못을찾았고 다른 사람들의 단점에는 아주 엄격했지만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 자신의 문제에 대해 뿌리와 밑바닥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일부만 찾을 뿐 나머지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오염된 괴물의 요소가 아직도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3]동수들과 모순이 발생한 것은 자신이 안을 향해 찾아 닦을 수 있는기회이자 자기 천체의그런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 잡는 기회인 동시에 자신의 무량한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으로만 건성으로 읽었습니다.

[4] 자신에게 모순과 난이 생겼을 때 자신의 심성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그것을 오로지 간섭이나 장애로 보았으며 과시심, 자존심, 고집 등 낡은 관념으로 사(私)라는 낡은 우주의 이치에 속박되고 자신의 속인 관념에 집착하였기 때문에 속인의 관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려 하였습니다.

[5] 법공부를 잘 하지 못한 것이 관건입니다. 법공부와 안을 향하여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이 두가지는 서로 보충하며 서로 포함하는 관계입니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제 머리에 떠오르는 매 생각과 행동들이 법에 부합되는지,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 관념이나 낡은 세력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가늠해 보게 되었고, 지나치는 생각일지라도 지나치지 않고 진지하게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일체 환경, 신변에서 발생하는 일체 사물이나 출현하는 어떠한 시달림 심지어 동수들 간의 모순이나 동수에게 존재하는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한 기회이자 우리가 제고하고 깨닫게 하기 위한 배치라고 여겨야만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개변시키는 것이고 새로운 우주에 우리 자신을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중생을 구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내포의 함의를 부동한 층차에서 깨우치면서 동수들이 제게 수련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배치한 환경을 뿌리치고 회피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으며 정체의 입자로서 그 작용을 잘 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동수들에게 미안했고 심성을 제고시켜 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순정한 심태로 다시 인천 동수들과 함께 법학습에 참가하여 하나의 금강불파한 정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서로 협조하고 잘 원용하여 더욱 큰 정체의 작용을 발휘하기 위하여 인천 정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련 과정을 쓰기에는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 수십 번 엎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또 이로 인하여 제가 해이해질 때 낡은 세력의 흑수들에게 이용 당하여 그들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여러 가지 형식의 법학습과 법리 상의 교류를 통하여 순정한 마음과 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으로 장기 간 교란받았던 저의 장애를 마침내 돌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또 한 수련생이 명혜 사이트 번역에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제게 번역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당시 저는 늘 자신의 실력에 한계가 있어서 번역은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수련생은 만나기만 하면 번역을 해보라고 권하면서 중국에서 한국에 오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서 끈질기게 짜증이 날 정도로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번역을 하게 되면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빼앗기고 번역 수준이 낮다는 핑계로, 사이트 번역에 참여할 사람이 아주 필요함을 알고 있었지만 줄곧 뛰어 들지 못했습니다. 어느 하루 동수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짧은 문장을 시작으로 번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번역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번역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였으며 번역을 하게 되면 법학습과 연공시간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한 것이 도리어 법학습이 더욱 잘 되었으며 번역을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돌파할 수 있는 것을 제가 몇 달이나 교란을 받으면서 극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일부 법리를 적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

우리는 수련 과정에서 부동한 형식으로 교란을 받고 있으며 사람의 보편적인 각종 관념과 사유방식은 우리에게 일종 속박을 형성하여 법을 실증하는 행동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또한 정법 활동과 동수들과의 관계 중에서 이런 것들이 저애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私)라는 낡은 우주의 이치에 속박되고 자신의 속인 관념에 집착하기 때문에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서 자아를 중심으로 나를 먼저 생각하고, 못한다, 할 수 없다! 피곤하면 휴식을 해야 하고 늦게 자면 잠을 보충하여야 한다는 등등 여러 가지가 모두 사람의 관념이 머리 속에서 형성한 고유한 사유 방식이었고 사람의 이치였으며 해결 방법 또한 사람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를 교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정념은 다른 공간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사악한 마를 소멸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발정념하면서 모두들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인의 형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구체적인 일을 할 때 자신은 “능력이 없어 못한다. 법 공부 시간을 빼앗긴다.” 는 등등을 떠올리는 것은 바로 먼저 나라는 관념을 앞세운 것이며 또 각종 우려하는 마음 역시도 사람의 관념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려고 하지 않고 이성적으로부터 대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되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게 마련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년이래 뼈속에 형성된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층의 껍데기를 벗겨 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정진 요지1》

개인의 집착과 좋지 않은 관념들을 고수하면 단지 법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자아를 내려 놓고 관념을 없애 버리려면 법을 스승으로 삼아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마음속엔 다른 사람의 고난을 생각하며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만 비로소 서서히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관념을 없앨 수 있으며 정정당당하게 무사무아(無私無我)를 향해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법에 대하여 책임지려는 마음, 오로지 이 순정한 마음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가서 하기만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순정한 정도, 법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마음을 쓰는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대법제자는 못해낼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속인의 능력을 잣대로 삼아 “할 수 없다. 못한다”를 판단한 이것이 천백년이래 형성된 관념이며 또한 교란을 조성하고 우리의 능력을 저애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정황을 조성한 주요 원인은 법학습을 잘 하지못하고 법리에 대하여 청성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련인의 심태로 법 중에 용해 되어 법학습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법학습을 안 한 것과 같고, 대법 법리에 대한 이해에서 아직도 적지 않는 거리가 있어서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을 인식하는 요소가 아직도 많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일면은 충분히 이지적인 상태에 처해 있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神)의 일면을 발휘하는 작용을 억제하였던 것입니다.

법 학습을 많이 해야만 끊임없이 이런 관념과 사상 업력이 조성한 각종 장애를 돌파할 수 있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습니다.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이라 층차의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하여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한국 화인 심득 교류회 발표 원고)

문장완성 : 2004년 6월 27일
문장발표 : 2004년 6월 30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30일 오후 1시 55분 11초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6/30/782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