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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교소에서 “논어”를 암송한 경험

글 / 중국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주간” (매주 명혜 기사들을 모아 중국 수련생들 사이에서 돌려본다, 수련생들 대부분에게 인터넷이 자유롭게 통용되고 있지 못하다)의 매 간행물은 나를 눈물로 감동시킨다. 사부님의 자비와 구도 그리고 동수들의 영웅적인 정념정행이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명혜주간”은 나 자신을 검토하고, 단점을 찾아내고, 정념을 강화시키고, 그리고 수련에 더욱 정진하도록 돕는다. 내가 걸어온 수련의 길을 회상해 볼 때, 특별 3년 동안 노동교화소에서 고난을 겪는 중에, 나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인정했다. 내가 꽤 잘했다고 생각했던 기간동안에도, 나는 아직 소극적인 상태에 있었고 무기력하게 고난을 견뎌냈으며, 마땅히 대법 수련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를 나타내 보이지 못했다. 이유를 들여다보았을 때,

바로 사부님께서 >에서 말씀하신 것과 똑 같은 것을 발견했다,

“낡은 세력을 부정하는 사람, 정념이 매우 충족한 사람을 그것들은 모두 건드리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기간에 어떻게 박해하든지 막론하고 만약 대법제자가 마음이 매우 바르며 정념이 매우 충족하고, 능히 맑게 깨어있으며, 냉정하게 이 일체를 인식할 수 있다면 아주 많은 손실을 면할 수 있게 된다.”

2000년 3월 13일, 나는 불법적으로 스자좡시 노교소 제 4분단으로 보내졌다. 다른 수련생들과 나는 박해에 저항했다. 우리는 강제되는 노동을 거부했다. 감시원들이 우리에게 가한 형벌은 하루 17-20시간 동안 벽 옆에 강제로 서 있게 하는 것 (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사실은, 박해를 너그럽게 봐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우리를 “군사 훈련”에 참가하도록 강제했다. 나중에야 동수들은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지 사악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이해를 모았다.

2000년 3월말 어느 날 아침, 50명이 넘는 우리들에게 강제로 “군사 훈련”을 실행하게 했을 때, 동수들은 앞으로 나가 파룬궁 연공을 시작했다. 감시원들은 그들 중 세 명을 사무실로 끌고 가 그들을 묶고 때릴 준비를 했고, 다른 수련생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연공을 하거나 > 중의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 있는 동수들에게 말했다, “우리 >를 낭송하자.” 우리 18명의 수련생들은 팔을 껴 서로 가까이 하고, 동시에 “불법은 가장 정심하다;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이다…”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힘찬 목소리는 노교소와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한 생명들을 대단히 놀라게 했다. 노교소에 있는 거의 모든 감시원들이 우리를 향해 떼 지어 몰려와서 주먹질하고 발로 차기 시작했다. 노동교화소가 혼란 속에 빠졌다. 감시원들은 나를 동수로부터 떼어내어 바닥에 밀어 던졌고 나의 머리는 심하게 바닥을 쳤다. 나는 통증을 느끼지도 않았고, 멍도 들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여자 감시원이 나의 얼굴을 때렸다. 나는 크게 사부님의 시 >을 크게 암송했다. 내가 시를 여러 번 암송한 후에야, 나는 여자 감시원이 가버린 것은 알아차렸다. (비록 내가 정념정행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대법이 전능하다는 것, 사부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리고 사악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를 두 번째 낭송한 후에, 감시원들은 우리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우리를 겁주려고 애썼다. 어떤 동수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법을 실증하면, 사악이 와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무거움을 느꼈다. (우리가 사부님께서 우리 바로 옆에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가슴속에서 사악을 부정하고 근절시키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 나는 여러 동수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다음 날 내가 크게 “하나, 둘, 셋”을 세면, 모두가 동시에 연공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4월 4일 아침, 우리는 화장실 사용을 끝내고 돌아와서 함께 모였다. 우리가 모두 함께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옆에 있는 동수의 팔을 잡고 크게 소리쳤다, >. 즉시, 20명이 넘는 수련생들이 “논어”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를 암송하는 소리가 다시금 노동교화소를 넘어 하늘로 울려 퍼지며, 어두운 구름의 층층을 꿰뚫고 나아갔다.

우리는 첫 번보다도 더 심하게 얻어맞았다. 나는 사무실로 끌려 들어갔으나, 마음은 아주 평온했다 (나는 얻어맞을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인정했다.) 감시원 류슈민은 두 손으로 나의 얼굴을 때렸다. 그녀가 피곤해지자, 류위잉이 따귀 때리는 일을 넘겨받았다. 두 감시원은 나를 묶고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들은 방망이를 집어 들고 나의 엉덩이를 사납게 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은 일종의 나무판을 집어 들고 (나는 당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중에 그것이 대나무 조각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의 머리채를 잡고는 대나무로 나의 얼굴 왼쪽을 때리기 시작했다. 얼굴 왼쪽을 수없이 때린 다음, 그들은 오른쪽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은 너무 부어 올라서 마치 금방 터질 것만 같았다; 전체가 검고 퍼랬다. 류위잉은 나의 팔을 잡아, 등뒤로 묶고, 아프게 잡아당겼다.

속인이 그런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면 그의 생명은 아주 위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마치 매 맞는 것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그날의 구타로 사부님의 얼굴이 검푸르게 멍이 든 것을 누군가가 보았다고 한 수련생이 내게 말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에서 말씀하셨다,

“당시에 이 사악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그것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는데, 그럼 그것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고험(考驗) 중에서 그것들은 인정해 주지 않으며, 당신은 그것을 소각하기만 해서는 안 되므로,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만일 수련생들이 가서 감당한다면, 넘어 지나오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수련생더러 다만 사람이 표현해 낸 사악을 감당하게 하였을 뿐이며, 그러나 이 실질적인 것을 , 내가 그것을 감당하였다.”

2000년 4월 말에, 우리는 죄수의 옷을 벗어버리고,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단식 항의로 들어갔다. 노동교화소는 종종 점심시간에 대법을 비방하는 녹음을 방송했다. 내게 감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었고 어느 날 문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방송실이 바로 우리 감방 건너편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여러 명은 다음에 그들이 방송할 때 그곳에 가서 그들을 중지시키고 >를 암송하자는데 동의했다. 6월 1일 정오에, 우리 네 명은 방송실로 들어갔다. 한 수련생이 마이크 연결을 잡아 뺐고, 나는 방송하고 있던 죄수에게 대법을 비방한다면 그에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때, 감시원들과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방으로 달려 들어와서 우리를 가까이에서 포위했다. 우리 세 명은 삼 주 동안 다른 분단으로 이송되었다. 우리가 다시 돌아왔을 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데려간 후에도, 대법을 비방하는 방송이 계속되었다. 6월 중순 어느 날, 그녀는 혼자서 방송실로 달려가서 마이크에 대고 크게 “법륜대법은 위대하다!”라고 말했다. 전 노동교화소가 충격을 받았다. 당번을 섰던 감시원은 너무 놀라서 그녀 손에 있던 밥그릇을 마루에 떨어뜨렸다. 다른 공간에서는, 아마도 정과 사의 대전이 있었을 것이다.

2000년 7월 초에, 나를 포함한 17명의 대법수련생들은 엄중하게 통제되어 있는 교실에 구류되었고, 하루 24시간 감시를 받았다. 어느 하루 정오에, 대법을 비방하는 방송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는 모두 크게 소리내어 같은 리듬으로 >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의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막으려고 우리 입을 막고 충격을 주고 때리려고 왔다. > 암송하는 것을 끝냈을 때, 사악의 방송도 그쳤다. 사악한 방송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계속 >를 암송해 나갈 것이다. 바로 며칠이 지나자, 비방 방송이 중지되었다.

2002년 1월에, 나는 스자좡시 노교소의 제 5분대로 이송되었다. 2002년 4월 12일, 첫 날 감시원은 나를 강제로 일일 세뇌 교육을 받도록 강제했고, 나는 단식항의로 맞섰다. 감시원은 내가 잠자는 것을 방해하려고 애썼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에게 잠을 못 자게 한다면 괜찮겠는가?” 잠 잘 시간이 되면 나는 잠을 잤다. 나중에 강한 정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단식에서 오는 아픔과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12시가 넘어서, 나는 한 전향자 [세뇌된 전 수련생]에게 왜 그녀가 나를 잠자지 못하게 하는가를 물었고, 나는 그녀에게 분단장을 부르라고 요청했다, 그는 내가 많이 졸리면 조금은 잘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하루에 2, 3시간 밖에 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열흘 후에, 내가 포기하기를 거부하자, 감시원이 말했다, ‘전향’되기를 거절하면 당신이 잠자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잠을 자고 싶으면 ‘전향’을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내가 포기를 하느니 잠을 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지 못하게 내가 박해를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다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다.) 나에게 8, 9일을 잠을 못 자게 한 지 어느 날 밤, 사악한 전향자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고, 나를 잠자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나에게 >를 암송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는 감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를 크게 암송했다. 전향자는 내가 몇 번이나 >를 암송했나 세었다. 근무교체 시간까지, 나는 >를 35번 암송했다.

나중에까지도 그 때 내가 >를 암송했던 것이 사악을 질식시켰고 나 자신의 공간에 부패된 생명을 청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13일 째 되는 날, 세뇌는 결국 실패했다.

내가 노교소를 떠나기 전 수 개월 동안, 감시원들은 내게 계속 이야기했다, “당신은 집에 가지 못하고 당신은 대신에 감옥으로 갈 것이다.” 나는 또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직도 개인 수련의 관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노교소 밖에 있던 동수들은 발정념을 함으로써 계속 나를 지지해주었다. 나도 역시 계속 법을 암송했고 매일 발정념을 했다.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내가 곧 집에 갈 것이고 사악은 더 이상 나를 박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조건으로 일정에 따라 석방되었다.

문장발표: 2004년 6월 21일

문장완성: 2004년 6월 21일

문장분류: [진상알림]

중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4/6/5/76383.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6/21/493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