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랴오닝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고 올해 63세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착실히 수련하는 가운데 많은 수확이 있었습니다. 이번 제23회 명혜망 중국법회를 맞아 수련 과정 중 한 단락의 경험을 글로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 찬란하게 빛난다
2008년, 모 대학 학보 편집부에 문과 편집자로 발령받았습니다. 제가 가기 전 학보에는 문과 편집자가 3명 있었는데, 여교수 2명, 남교수 1명이었습니다. 편집부에는 사무실이 두 개 있었는데, 남쪽 방은 따뜻하고 밝아 두 여교수가 사용했습니다. 북쪽 방은 어둡고 습해서 주로 창고로 쓰였는데, 커다란 철제 선반 두 개가 놓여 있었고 문가에 책상 하나를 두어 그 남교수가 업무용으로 썼습니다.
제가 도착하자 주임은 난처한 기색으로 “지금 편집부 근무 환경이 열악한데 저 두 여교수님은 현재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뜻인즉슨 저에게 북쪽 방에서 그 남교수와 함께 근무하라는 것이었고, 학교에서 곧 새로운 사무실을 배정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즉시 “네, 문제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남교수의 책상 옆에 제 책상을 배치했습니다.
제 책상은 달리 놓을 곳도 없었고, 다른 공간은 커다란 철제 선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에는 십몇 년이 지난 정기간행물과 형제 대학에서 보내온 교류용 증정 간행물이 쌓여 있었는데, 어떤 것은 뜯겨 있고 어떤 것은 안 뜯겨 있어 방 전체에서 퀴퀴한 종이 곰팡내가 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 찬란하게 빛나고, 대법제자가 있는 곳은 어디나 눈부시게 밝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을 순수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진선인’의 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리를 정돈한 후 계획적으로 이 사무 환경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원고를 보고 수정하는 일 외에, 휴식 시간에는 그 수많은 낡은 잡지들을 정리해 연도와 호수별로 배열했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종류의 간행물은 10권씩 선반에 남겨두었는데, 저자의 조회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저자들이 직함 평가 등의 이유로 편집부에 자신이 발표했던 글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남는 간행물은 모두 연도별로 묶어서 선반 아래에 쌓아두었습니다.
저는 창가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치우고 깨끗이 닦았습니다. 그 남교수는 한 번도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았는데, 느낌상 좀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포장용 끈으로 엮은 장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단추 하나가 떨어진 낡은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50세 남짓한 나이에 키는 크지 않고 얼굴은 수척했으며, 몰락한 문인 같은 외모 속에 뼛속 깊은 고고함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그를 볼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여가 지났지만 우리는 실질적인 교류의 의미가 있는 문장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무실이 눈부시게 ‘밝아진’ 후, 어느 날 그가 마침내 먼저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교수님은 인품이 훌륭하시군요.”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예전에 다른 교수들로부터 그가 아주 별나고 말이 안 통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함부로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도 많아졌는데, 그는 그 두 여교수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아 자진해서 창고로 옮겨왔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로는 그녀들이 “너무 속물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가 고위 지식인이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타도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교류가 잦아진 후 그에게 진상을 알려보려 했으나, 매번 그의 기이한 언행과 저의 두려움 때문에 다른 화제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가정의 변고가 남긴 그늘이 너무 짙어, 공산당의 선전과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출근하지 않았고, 퇴직한 이후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주임이 우리 사무실에 와서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교수님은 정말 재주가 많으시네요. 이렇게 깔끔하다니, 그야말로 눈부시게 밝네요!” 그러면서 이런 환경에서 일하게 해서 아주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별거 아닙니다, 아주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나중에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을 때 공산당이 매우 사악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그녀의 아버지 역시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를 통해 이미 대법제자의 선량함, 포용, 진실함을 보았습니다.
2.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진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했습니다
2012년, 편집부에 새로운 주임이 오면서 근무 환경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간행물 구조도 조정돼 정식으로 문과와 이과 두 가지 간행물이 발행됐습니다. 문과 편집자는 6명으로 늘어났고, 조건이 아주 좋은 큰 사무실로 옮기게 됐습니다.
사무실이 커지자 잡동사니도 많아졌고 전담 청소 인력도 없어, 자칫하면 아주 어수선해졌습니다. 당시 편집자 중에는 30, 40대도 있었고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매일 바닥을 닦고, 물건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은 제 차지였습니다. 주임이 우리 사무실에 올 때마다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이 문과 사무실은 정말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네요.”
편집부에는 출장 가서 회의에 참석하거나 교류할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편리한 조건이 있었는데, 편집자들이 번갈아 가며 다녀왔습니다. 대다수 편집자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이나 풍경이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지역 특산물을 좀 사고는 그 비용을 출장비나 회의비 명목으로 청구해 환급받았습니다. 저는 한 번도 자발적으로 가겠다고 요구한 적이 없었고, 지도부에서 안배하더라도 가급적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풍경 구경에 관심이 없었고 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가더라도 제가 쓴 돈은 공무 출장비에 절대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택시 영수증 한 장도 청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법 수련자로서 이익을 담담하게 보아야 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고급 직함의 퇴직 연령은 60세까지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55세 때 제가 퇴직을 할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퇴직을 원치 않으며, 어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일하려 합니다. 저도 이익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5년을 더 일하면 월급으로 20여만 위안을 더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퇴직 연금도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금 미련이 남았을 때, 저는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대학 동창 하나가 어느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쓰레기통의 휴지들을 큰 쓰레기통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왜 이런 일을 해?”라고 묻자, 그녀는 “수입을 좀 늘리려고”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얼마를 버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말한 숫자는 정확히 제가 당시 속으로 계산했던, 퇴직하면 매달 덜 받게 될 금액과 일치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제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서둘러 잘해야 했습니다. 저는 즉시 퇴직하기로 결심하고, 한정된 시간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데 사용해 서약을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퇴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보고 바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아쉬워했으며, 어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퇴직하지 마세요. 교수님 원고는 제가 대신 봐드릴게요, 네?” 동료들의 호의는 매우 감사했지만 저는 대법제자이기에 해야 할 더 신성한 일이 있고 완수해야 할 더 중요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퇴직할 때 저는 몇 년간 편집부에서 제게 지급했던 참고도서, 사전, 스테이플러 등 사무용품을 전부 정리해서 사무실 열쇠와 함께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조용히 떠났습니다. 퇴직 후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저는 매일 나가서 사람들을 대면하고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3. “그녀는 우리 부서에서 가장 인품이 훌륭한 교수입니다”
지식인 역시 복잡한 집단이라, 뼛속 깊은 고고함과 함께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에 의해 변이된 교활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참으로 유별납니다. 사무실의 몇몇 사람들은 서로 갈등이 있는 듯했는데, 겉으로는 관계가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기만 하면 즉시 서로 헐뜯고 다투었습니다. 원고 배분이 불합리하다느니, 편집 교정비 분배가 불공평하다느니, 출장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느니, 아무개가 교정한 원고 질이 떨어진다느니, 아무개가 지도부에 뇌물을 주고 무슨 혜택을 받았다느니 하며, 매일 출근하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전법륜)
저는 이 갈등에서 벗어나 속인의 마음을 없애면, 이 갈등이 저를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누구와도 갈등이 없었습니다. 법의 기준에 따라 갈등 속에서 저의 심성을 지켰기에 갈등이 제게 작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동료들은 일이 있건 없건 저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고, 다른 사무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어떤 동료는 저와 이야기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시기가 적절할 때 저는 그들에게 진상도 좀 알려주었습니다. 지식인들은 생각이 복잡하고 우려하는 바가 많아, 어떤 이는 진상을 듣고 두려워했고, 어떤 이는 진상을 듣고 삼퇴에 동의했으며, 어떤 동료는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언행을 통해 ‘진선인’이 옳다는 것과 파룬궁수련생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2015년 제가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한 후, 파출소 경찰 6~7명이 경찰차를 몰고 학교로 와서 저를 납치하러 왔습니다. 편집부 주임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무슨 조직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우리 편집부에서 가장 인품이 훌륭한 교수님이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며, 어떤 업무를 배정하든 절대 가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편집부에 다 이런 교수님들만 계신다면 일하기 참 수월할 겁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그녀가 어떤 부적절한 선전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보름 후 제가 학교로 출근하자 주임은 제게 “아무런 걱정 마세요. 동료들도 모두 교수님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주임이 편집부에 왔을 때 저는 그에게 진상 편지를 한 통 써주었고, 그는 진상을 알게 돼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퇴직 전에 본교 제1호 정공(政工) 교수로 평가받았습니다. 학보 이공계 판도 몇 년간 국가 핵심 간행물로 등록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결국 그의 재임 기간에 성공적으로 등록됐고, 그는 즐겁게 퇴직했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걸어온 제 수련의 길을 돌아보면,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제자를 보살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일깨워주셨기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저는 향후 수련의 길을 잘 걷고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해 세 가지 일을 잘해내야만 사은(師恩)에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3/51566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3/51566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