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글/ 독일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수련 체험을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멀었습니다. 단지 제가 이곳에서 차로 10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 북부에 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협조인이 법회 몇 달 전에 저에게 이 교류 원고를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원고를 쓰는 것 역시 저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몇 주 동안 저는 몇 번이나 펜을 들었지만 원고 작성을 미루고 미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때까지 갔습니다. 저는 이 교류 원고를 통해 사부님의 안배가 가장 좋다는 것을 실증하고 싶습니다. 또한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떻게 파룬따파에 들어서게 됐는가

2017년 여름, 남편이 해외 연수반에 참가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일주일 안에 우리 삶이 완전히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집은 자연보호구역 안에 있었고, 평소에 우리는 종종 몇 시간씩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틀 동안 집안은 온통 침묵에 휩싸였고, 함께 산책하지도 않았으며, 예전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줄곧 파란색 표지의 책 한 권을 읽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아침, 남편이 그 파란색 표지의 책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오자 저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여보, 이 책은 주말에 연수반 선생님이 내게 추천해 준 거예요. 거기서 내가 세 번이나 막 집어 들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려서, 이제야 마침내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이 책은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럼 저는요? 우리 둘은요? 당신은 하루 종일 이 책만 보고 있잖아요.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요?”

“당신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여보. 나는…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단번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남편은 커피를 들고 나가기 전에 저를 한 번 뒤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는 마음속으로 몹시 화가 났습니다. ‘파룬따파가 뭐지?’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파룬따파’라는 글자를 입력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유튜브 영상 하나가 열렸는데, 노란 옷을 입은 중국인이 연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거 나도 알아.’ 저는 생각났습니다. 5년 전에 저도 이 공법을 연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중이었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연공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것이 다시 제 삶에 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즉시 일어나서 동작을 따라 연공했습니다. 정말 너무 훌륭했습니다. 에너지가 온몸에 흐르면서 남편에 대한 화가 사라졌고, 그 파란 책에 대한 원망도 옅어졌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제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여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파룬따파 공법을 연마하고 있어요!”

“무슨 공법이요? 나는 이 파란 책밖에 몰라요.”

“나도 어제야 파룬따파에 책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퍼즐을 맞췄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연공 영상을 보여줬고, 그도 저에게 자신의 파란 책을 읽게 했습니다. 그 책은 정말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동안 묻고 찾았던 질문들에 대해, 책에서는 쉬운 말로 지극히 심오한 해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주에 저와 남편은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박해를 알게 되다

연공 동작을 정확하게 배우기 위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연공장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가장 가까운 연공장은 200km 이상 떨어진 베를린에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주말에 대중교통이 없었기 때문에,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2시간 반을 걸어 가장 가까운 바렌 역까지 간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했습니다. 이 생각이 아무리 미친 짓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이 여정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말한 대로 바로 실행했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에 저는 아들을 깨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걷기 위해 우리는 교대로 아들을 목말을 태웠습니다. 2시간 반을 걸어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기차역에 도착했고, 또 2시간 동안 기차를 타면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오전 10시, 우리는 베를린 동물원 근처의 연공장에 도착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중국인 수련생이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오는 길의 피로가 모두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연공을 마치자 온몸에 힘이 넘쳤고 모든 세포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 베트남 수련생이 우리에게 브란덴부르크 문에 있는 진상 부스에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잘됐다, 이 훌륭한 수련 공법을 더 잘 알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다음에 제가 본 것은 저를 말문이 막히게 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 도착하자 거대한 현수막 하나가 단번에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거기에는 장기적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고, 중국의 수련자들이 얼마나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형도 있었습니다. 제가 멍하니 현수막을 응시하고 있을 때, 한 중국 수련생이 제게 전단지 몇 장을 쥐여주며 행인들에게 나눠주라고 눈짓을 했습니다. 제가 훑어보니 안에는 역시 장기적출과 박해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저는 이런 일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저는 정신을 차리고 전단지를 그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아마 다음번에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가야 해서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머릿속에는 줄곧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수련 공법이 어떻게 이토록 잔혹한 박해를 받을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수련생이 우리에게 추천해 준 명혜망을 열었습니다. 중국 전통 이야기, 세계 각지의 뉴스, 파룬따파의 신기함 등, 당장 저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곧장 박해 코너를 열었고 2017년 9월 28일 자 ‘상하이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보았습니다.

편지에서 말하는 것은 몇 달 전에 사망한 66세의 중국 여성 바이건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수감돼 감옥에서 고문과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독방에 갇힌 4년 동안, 화장실 가는 것이 금지돼 용기 하나에만 용변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감옥경찰은 그녀를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감방의 죄수들까지 핍박해, 그들이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잔인한 수단으로 그녀를 괴롭혔고 심지어 밥에 오줌을 누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이 수련생은 한 죄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밥을 먹으면 당신이 벌을 받지 않을 거예요.” 죄수들은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수련생은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있었고 주변에는 그녀를 괴롭히는 죄수들뿐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 죄수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랐으며 그들을 자신보다 우선시했습니다. 그녀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런 처지에서 이 여성은 어떻게 죄수들에게 이토록 자비롭고 관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심지어 자신을 핍박하는 데 가담한 이 죄수들에게 화조차 내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흉금입니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는 분명 보통이 아니야.’

저는 계속해서 검색했고, 또 수백 수천 편의 이런 보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대자연 속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남편과 함께 수련의 길에 들어섰으며, 심지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베를린까지 가서 수련생들을 따라 연공을 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책상 한구석에 웅크린 채 막 우려낸 페퍼민트 차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 끔찍한 이야기들 앞에서 이 차가 제게 약간의 의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깊이 아는 수많은 수련자가 중국에서 무고하게 수감돼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이 정보들은 모두 명혜망에 공개돼 있지 않습니까?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걸까요?

그날 밤, 저는 자신이 정말로 중대한 일을 발견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설마 나 혼자만 이 보도들을 읽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저의 결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신했습니다. ‘전 세계가 반드시 파룬따파를 알아야 한다.’

이제 9년이 지났습니다. 만약 몇 년 전에 누군가 제게, 언젠가 제가 기자가 돼 박사와 교수들을 인터뷰하고 출판사도 경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면, 저는 분명 소리 내어 웃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짊어지다

처음 남편과 함께 수련을 시작했을 때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매일 그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15년 후에도 자신이 매일 새벽 5시에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나서 연공을 할 것을 생각하면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의 오랜 반려자 관계에 대해 안도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저의 유대감은 너무나 깊어서 죽음조차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파룬따파를 통해, 모든 수련인은 원만한 후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세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는 자신 세계의 왕이며, 각자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 천국의 촉탁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나니 그런 천국들은 모두 그들의 왕을 기다리고 있다네”(홍음 4-사명).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수련에 성공한 후 저는 홀로 남게 될 텐데, 남편은 그의 세계로 돌아가고 저는 저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깊은 슬픔이 마음속으로 밀려왔습니다.

저는 이 슬픔을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그것이 언젠가 남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이 거대한 책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문득 수많은 생명을 느꼈습니다. 어떤 생명은 제가 제 세계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생명은 저를 따라 함께 제 세계로 올라가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시선을 느꼈고 또한 그들의 믿음도 느꼈습니다. 그들은 제가 지구에서 자신의 사명을 원만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한 제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짐을 느꼈는데, 그것은 제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사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홍음 4’ 중의 ‘당신의 중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네’라는 시를 읽었을 때 이런 압박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일깨우리라 신과 약속했다네
당신이 세상에 내려온 목적은 대법을 얻으려는 것이고
당신 천국의 중생들이 난을 피하게 하기 위함이라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사람이 된 연고이나니
세상을 속이는 붉은 마귀가 자신을 해치게 하지 말고
진상을 요해(了解)하라, 당신의 중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하지만 이 ‘사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저는 여러 해 동안 생각했습니다. ‘사부를 도와 중생을 구한다’는 답은 제가 보기에 너무 표면적인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출판사 책임자가 되다

저는 언젠가 출판사를 경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없었지만, 일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영문판 ‘명혜 20년 보고서’라는 책을 번역해야 했는데, 제가 자원했습니다. 당시 저는 에포크타임스에서 몇 년 일했기에 이미 원고 편집 경험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혜 20년 보고서’ 안에 있는 수련생들의 고난을 기록한 그토록 많은 글은 단지 문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능욕당하고 고문을 겪은 수련생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겪은 일들은 밤마다 악몽으로 변해 저를 괴롭혔고, 저는 종종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 더는 번역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초판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된 양장본이 다시 나왔고, 출판사를 통해 발행해야 했습니다. 제 기자 업무가 인권 수호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자진해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2022년 2월, 저는 명혜출판사를 등록했습니다. ‘명혜 20년 보고서’에 이어 여러 권의 명혜 잡지를 잇달아 출판했고, 2025년 11월에는 서양 수련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주의 근원으로 가는 길(Der Weg zu den kosmischen Wurzeln)’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명혜 20년 보고서’(영문판, 독어판)는 사람들에게 박해 진상을 알리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저는 종종 진상 부스에서 관심을 보이는 행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데, 그들 역시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종종 다른 공간에서 거대한 무리의 생명들이 금빛 속에서 목욕하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이 책을 널리 전해 중생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은혜와 위대한 안배 덕분입니다.

취리히 진상 부스에서의 경험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서 교류할 수 있는 것 역시 사부님의 비범한 안배를 실증합니다. 작년에 법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 같았습니다. 당시 스위스 협조인이 저에게 남편과 함께 오고 싶은지 물었을 때, 제 첫 반응은 매우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차도 없었고, 저는 간호가 필요한 어머니를 거의 24시간 돌봐야 했기 때문에 먼저 스위스에 갈 생각을 접어두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제 마음속에 아주 순수하고 바른 생각 하나가 생겼습니다. ‘왜 안 되겠어? 왜 내가 남편, 아들과 함께 스위스 법회에 참가할 수 없겠어? 이미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사부님께서 분명히 이미 안배해 놓으셨을 테니 나는 그저 굳게 믿기만 하면 돼.’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틀 만에 우리는 좋고 저렴한 중고차를 구했고, 어머니를 며칠간 돌봐줄 간병인도 안배했습니다. 숙소를 찾을 때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출발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짧은 가족 휴가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법회 며칠 전, 저는 갑자기 협조인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토요일에 법회에 가는 길에 취리히 진상 부스에 들러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멍해졌지만 수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휴가가 아니라 대법에 동화하고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이것이 바로 사부님의 안배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낙했습니다. 우리는 이 진상 부스에 대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금요일 심야에 우리는 길을 떠났습니다. 몇 번의 짧은 휴식을 제외하고 남편은 밤새 운전했고, 약 11시간 후 우리는 취리히에 도착했는데, 현지 수련생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렀습니다. 그중 몇몇 수련생은 제가 명혜 여름캠프에서 이미 알고 지내던 이들이었습니다. 아들 역시 한 소녀와 금세 친구가 됐는데, 예전에 여름캠프에서 본 적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직 부스를 설치하고 있을 때, 저는 길모퉁이에 서서 전단지를 나눠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치심, 부끄러움, 거절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이곳은 낯선 곳이고 사람들의 말투도 달랐으며, 더욱 최악인 것은 견디기 힘든 졸음이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어느 카페에든 숨어 들어가 좀 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보았는데, 그는 밤새 운전을 했음에도 여전히 활기차고 자신감에 넘쳤으며,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행인들에게 다가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왜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안으로 찾았을 때 저는 자신의 누락을 보았습니다. 제게는 원망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스위스에서 푹 쉬지 못하고 이 진상 부스에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원망했습니다. ‘집에서 신경 써야 할 일이 아직도 모자란가?’ 당시 저는 이미 1년 넘게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2024년 8월 심각한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저는 좀 쉬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제 시선이 부스와 수련생들에게 머물렀습니다. 아들과 그 소녀를 보았는데, 그들도 전단지를 들고 미소 지으며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운을 차리고, 원망심과 편안한 가족 휴가를 바라는 마음을 제쳐두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사부님의 위대한 안배 덕분에 제가 집에서 거의 1,000km나 떨어진 스위스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제가 구해야 할 중생들을 보내주십시오.’

제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자 모든 원망심이 흩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전법륜)

잠시 후, 젊은 커플이 스쿠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부스에 있는 박해를 알리는 대형 전시판을 보고 멈춰 섰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그들에게 전단지 한 장을 건넸습니다. 알고 보니 청년은 러시아에서, 여자 친구는 체코에서 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독일어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저는 그들에게 박해의 배경과 파룬따파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거의 1,000km나 떨어진 독일 북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네요. 하필이면 우리 세 사람이 오늘 스위스의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건 틀림없는 운명의 배치입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를 통해 사부님의 안배가 얼마나 독특한지 제게 보여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우리가 파룬따파를 알려주어야 할 중생과는 일찌감치 인연이 맺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안일을 탐하는 마음을 따라 카페에 숨어 쉬었다면 이 커플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격려에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불과 1분 뒤 저는 또 하나의 시련에 직면했고, 마음은 순식간에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제가 스쿠터를 타고 떠나는 그 커플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 길 건너편에서 갑자기 아시아인 무리가 걸어왔습니다. ‘중국인 20명쯤 되겠네’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는 작은 도시에는 중국인도 없고, 대규모 외국인 관광객도 없습니다. 저는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을 느꼈는데, 사상업력은 제가 이 사람들과 대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온갖 이유를 댔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래? 저들이 너에게 욕을 하면 어쩌려고? 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어떻게 권하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그들에게 파룬따파를 이야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어! 그리고 방금 저 두 아시아 여자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못 봤어?’ 저는 몇 분 전에야 세워놓은 자신감을 이 사상업력들이 산산조각 내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고, 단 몇 초 만에 전부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는 또 한 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리 중 몇 명은 우리 부스를 가리키며 이상한 손짓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하나의 정념이 떠올랐습니다. ‘나에게 이것을 보게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가서 이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중국어 전단지 한 뭉치를 움켜쥐고 그 무리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부스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모여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 어떤 사람은 서서 수다를 떨고, 어떤 사람은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저는 벤치를 택했습니다. 용기를 냈지만 약간 겁먹은 채로 65세 정도 돼 보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제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음속 돌덩이가 내려앉으며, 일단 말을 거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단지를 건네려 하자마자,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제게 가라고 손짓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벤치에는 다른 사람들도 앉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모두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부님, 저는 이 생명들을 보내주신 분이 사부님이심을 압니다. 저는 단지 저와 가장 인연 있는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저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문득 다른 벤치에 같은 일행인 여성 한 분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다가갔지만 그녀 역시 제 전단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소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중국 사람 아니에요. 우리, 한국에서 왔어요!”

저는 서둘러 사과하고, 즉시 부스에서 한국어 전단지를 가져왔습니다. 그 여성이 슬쩍 보더니 말했습니다. “아, 파룬따파.” 그러고는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일행 중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에 다가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불과 1분 뒤, 가이드 한 명이 와서 이 한국인들을 버스에 태웠습니다. 만약 제가 이 여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관광객들의 손에 전단지를 전해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도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렸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스에 돌아오자, 한 수련생이 제게 1장부터 4장 공법까지 함께 연공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승낙했고, 이것이 마치 중생이 구원된 후 제게 주어지는 보상 같아서 연공할 때 긴장도 풀고 에너지도 보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발을 벗고 미리 준비된 방석 위에 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굳게 설 수가 없었고 마치 배 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개를 숙여 발밑을 보니 확실히 가부좌 방석 위에 서 있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저는 다시 눈을 감고 연공을 시작했지만,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발밑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 했습니다.

제2장 공법은 특히 어려웠는데, 정말로 풍랑이 치는 배 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3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흔들리는 느낌이 더 강해져서 저는 몇 번이나 눈을 떠야 했습니다.

제4장 공법을 연마하며 허리를 아래로 굽힐 때는 하마터면 균형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까지 연공을 계속했습니다. 어쨌든 1장부터 4장 공법까지 연마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후 연공을 마쳤을 때 저는 이미 기진맥진해 두 다리가 떨렸고, 그저 앉을 곳만 찾고 싶었습니다. 마침 12시가 거의 다 돼 정념을 발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방석 위에 앉고 나서야, 방석 아래에 작은 스펀지 조각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제가 연공할 때 똑바로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사부님께서 이 일을 통해 수련에서 발을 단단히 내디디고 확고히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정념이 없고 중생구도에 대한 또렷함과 확고함이 없다면, 우리는 누락을 남기게 돼 사상업력이나 구세력이 틈을 타고 우리를 교란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방향이 명확할수록 사부님의 안배를 더 잘 따르고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로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2026년 스위스 독일어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3/51576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3/515762.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