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그늘에서 벗어나 원망과 정을 닦아 없애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올해 63세로 1997년에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게 됐다. 수련해 온 이 수많은 해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대법 속에서 줄곧 끊임없이 정화되고 끊임없이 승화됐다. 나는 이전의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마음, 원망, 질투, 쟁투심에서 벗어나 점차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고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가늠하며 사심을 닦아 없애고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보게 됐다. 아울러 수련의 길에서 세 가지 일을 하며 서약을 실현하고 있다. 다음은 내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승화하며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다.

1. 시어머니의 횡포 속에 원망하며 몸부림치다

시어머니는 횡포가 심하고 이기적이어서 마을에서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뒤에서 시어머니를 ‘여장부’라고 불렀다. 나와 남편이 결혼하기 전 시어머니는 우리의 혼사를 극구 반대하시며 정부 청사에서 일하던 남편 직장까지 찾아가 크게 소란을 피우신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전혀 내막을 몰랐다. 결혼 10년이 지나서야 다른 사람에게서 이 일을 듣게 됐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우리를 경제적으로 통제하셨다. 우리는 현(縣) 소재지에 집을 세내어 살았는데, 동창의 권유가 있고 나서야 시어머니는 우리가 가구 세 점, 즉 침대, 책상, 옷장 하나를 옮겨 가도록 허락하셨다. 우리는 매달 시어머니에게 50위안을 냈는데 이는 우리 둘 월급의 70%에 해당했다. 게다가 식량을 식량표로 바꿔 시어머니에게 넘겨드려야 했다.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함부로 물건을 사서는 안 되며, 뭘 사려면 먼저 본인에게 사줘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그 시절에는 구멍탄을 피우는 것이 유행이라 우리는 시어머니에게 구멍탄 난로를 마련해 드렸다. 당시 액화가스 난로가 유행하자 또 시어머니에게 하나 사드렸다. 이후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난방이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또 난방을 설치해 달라고 하셨다. 명절 때면 나는 늘 배급받은 가장 좋은 쌀, 밀가루, 참기름을 모두 시댁으로 가져갔다.

결혼 2년 차에 남편 직장에서 자금을 모아 주택을 지으면서 1만 위안을 내라고 했지만, 우리는 저축해 둔 돈이 전혀 없었다.

시어머니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고 농사일은 더더욱 하지 않으셨다. 나와 남편은 현 소재지에서 출근했고, 시댁과는 30여 리 떨어져 있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퇴근 후(그때는 주 1일 휴무였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농촌 고향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일요일에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당일 다시 자전거를 타고 현 소재지로 돌아왔다. 봄에는 밭을 갈고 가을에는 농작물을 수확하고 밀을 타작했다. 나는 임신한 후에도 불룩한 배를 안고 타작마당에서 일했다. 시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지 않으셨기에 일을 마치고도 우리가 직접 밥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만족하지 않고 빈정거리며 싸늘한 눈초리로 대하셨다.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오래 흐르자 내 마음속에도 자연스레 원망이 생겼다.

시어머니는 또 자주 아들에게 일을 떠맡기며 쪽지에 적어 사람 편에 보내셨는데 마치 황제의 ‘성지(聖旨)’ 같았다. 예를 들어 비료를 살 때면 친척과 이웃의 것까지 모두 챙기게 해서 한 번 사면 십여 포대나 됐다. 남편은 결국 직장에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비료 밀매’로 고발당했다. 시어머니는 또 수시로 별일도 없이 직장으로 남편을 찾아가셨다. 시간이 지나자 남편도 견디지 못하고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변방 지원을 나갔다. 이후 시어머니는 편지에서도 우리를 욕하고 질책하며 남편을 심신이 지치게 만들었다.

결혼한 지 2년도 채 안 돼, 남편은 시어머니의 억지와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수시로 시어머니 일 때문에 다퉜고, 그로 인해 시어머니에 대한 내 원망은 갈수록 깊어졌다. 때로 내가 남편에게 하소연하며 약간의 이해와 위로를 받고자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툼과 심지어 분노 폭발이었다.

서서히 내 몸에 적신호가 켜졌는데 갑상선 종대, 만성 인후염, 치질, 간 부위 불편, 불면증, 심각한 신경쇠약이 생겼고 머리에는 늘 솥을 뒤집어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 부부의 정 속에서 괴로워하다.

나와 남편은 고등학교 같은 반 동창이었다. 그가 취업했을 때 나는 아직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번은 현 소재지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가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통된 화제가 별로 없어 때로는 할 말이 없다고 느꼈지만 오가다 보니 결국 함께하게 됐는데 아마 이것이 인연이었던 것 같다.

결혼 후의 생활은 나를 매우 억울하게 했고 스트레스가 아주 컸다.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남편은 나와 상의도 없이 몰래 식당 하나를 도급 맡아 운영했는데 결국 큰 손해를 보고 빚더미에 올랐다. 아이가 세 살 때 남편은 마작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매일 혼이 빠진 사람처럼 저녁을 먹고 나면 마작을 하러 갔고 아주 늦어서야 돌아왔다. 당시 나는 자주 불면증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자주 다투기도 했다.

이후 사람들에게서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같은 사무실의 여자 동료라고 했다.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마음속에 이미 억울함과 고통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집은 화약 냄새가 진동했고 우리는 걸핏하면 다퉜다. 빚을 갚으려고 나는 심지어 남편 몰래 두 번이나 시내에 피를 팔러 가기도 했다(팔지는 못했다). 1991년이 됐을 때 내 갑상선은 이미 달걀만 한 혹이 부풀어 올라 절제 수술을 했다.

이후 남편은 무도회장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1994년 그가 향에 부직을 맡으러 가서 자주 집에 오지 않으면서 나에게는 일이 바쁘다고 거짓말을 했다. 향의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분이 자주 아가씨들을 향 정부에 데려와 재우는데 이러다가는 앞길이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고 그에 따라 우리 부부 관계는 파탄 나고 말았다. 이후 남편은 또 나 몰래 밖에서 무도회장을 도급받았고 손실을 보아 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1998년 그는 자금 문제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어머니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는 생활에서 돌보아줄 의지처를 잃었다. 경제적 궁핍, 시어머니의 모욕, 어머니를 잃은 슬픔, 부부 관계 파탄 등 각종 타격으로 내 정신은 완전히 붕괴됐다.

나는 남편에 대한 정에 너무 몰두했고 마음속으로 그를 내 남은 인생의 의지처로 여겼다. 결혼 후 나는 일편단심 남편과 함께 살아가려 했지만 남편은 부부간의 정을 장난처럼 여겼고 이것이 나를 무너뜨린 마지막 지푸라기가 됐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죽고 싶을 만큼 괴롭게 했고 어떻게 죽을까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내려놓지 못해 그야말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나는 정신이 분열된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고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3. 다행히 대법을 얻어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파룬불법(法輪佛法)을 듣게 됐다. 파룬따파의 법리가 내 마음속에 환한 등불을 밝혀 주었고 나는 모든 일에 인연이 있다는 이치를 알게 됐으며 사람이 왜 고통스러운지 알게 됐고 사람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매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법공부를 하고 꾸준히 연공했으며 마음이 더없이 즐거워졌고 몸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졌다. 당시 나는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더 이상 남편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선인(眞·善·忍)’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명리와 정을 담담하게 보았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내가 수련을 잘 할 줄 몰라서 고비를 넘기지 못할 때면 ‘정진요지’ 안의 ‘진수(眞修)’라는 이 경문을 읽고 외웠다. 매번 눈물을 흘리며 다 읽었고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한량없는 자비를 깊이 느꼈다.

점차 내 심리적 평형을 찾았고 그렇게 많던 고통도 사라졌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다시는 억울함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고 몸과 마음이 대법 속에서 끊임없이 정화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닦아 없애고 남편에 대한 정을 담담하게 했으며, 이익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보게 됐다.

2001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남편 삼 형제가 분가를 할 때, 시할머니가 살고 계신 낡은 방 몇 칸을 첫째와 둘째가 공동 소유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가산, 가구, 가전제품이 막내인 셋째 시동생에게 돌아갔다. 시어머니는 재산 분배가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돌아와 나를 설득하라고 하셨다. 당시 둘째는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지만 현 소재지에 이미 아파트를 사둔 상태였다.

나는 대법을 수련했기에 이익을 두고 다투지 않았고 마음이 매우 평온했다.

시어머니가 나이가 드시자 고향에서 시동생과도 갈등이 생겼다. 2014년에 내가 현 소재지에 시어머니가 단독으로 살 아파트를 한 채 사드리자고 제안해 시어머니가 편안하고 걱정 없는 노후 생활을 보내시게 됐다. 우리와 거리가 가까워져 돌보기도 편했기에 나는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나는 시어머니에게 밥을 가져다드리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깐깐하셨기 때문에 나는 감히 시댁에서 시어머니 물건을 써서 밥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심지어 시누이들이 와도 감히 그러지 못하고 모두 밖에서 사 먹었다. 시어머니가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는 집에서 그것을 만들어 갖다 드렸고 매번 색다르게 만들어 드렸다. 시어머니가 생선을 좋아하셔서 나는 이삼 일에 한 번씩 생선을 갖다 드렸다.

몇 년간 연공 중의 반응으로 내가 고기를 먹지 못했는데 시어머니의 영양 보충을 위해 단독으로 시어머니에게 고기를 푹 삶아 드렸다. 시어머니는 감동해 웃으며 “너는 고기도 안 먹으면서 나한테는 고기를 삶아 주는구나”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간식, 과일, 주전부리를 끊임없이 시어머니에게 사다 드렸고 위생 청소를 해드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주방, 침실, 화장실을 닦으며 어디든 깨끗하게 정리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여겼고 마음속에 원망이 사라졌다. 매번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한 후면 시어머니는 나에게 곁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하셨다. 시어머니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 무엇이든 다 말씀하셨고 자신에게 저축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려 주셨다.

시어머니는 마침내 나를 인정하셨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나를 칭찬하셨다. 때로 내가 타지에 가서 외손자를 돌보려 하면 시어머니는 진심으로 나를 붙잡으며 “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내게 밥이나 해주고 나를 모시렴”이라고 하셨다. 때로는 “그냥 내 집에서 살거라!”라고도 하셨다.

4. 남편에 대한 정에서 벗어나다.

2000년 남편이 형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일자리를 잃어 스스로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호의적인 사람의 도움으로 남편은 다시 원래의 기관 직장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 모든 것이 대법의 덕을 본 것이다.

일이 한가하다 보니 남편은 여전히 별일 없으면 마작을 했다. 나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에게 요구하며 다투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저녁을 지을 때가 되면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먹으러 올 거예요?”라고 물으며 최대한 그를 배려했다.

남편은 오랜 시간 마작을 한 탓에 한동안 ‘마작 팔꿈치’ 증세가 생겼고 허리 디스크 돌출과 팽윤증상도 나타났다. 나는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했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는 또 인내심을 갖고 보살폈다. 남편은 상태가 좀 좋아지자 계속 마작을 했고 나중에는 마작관에 자주 드나들며 여자 세 명과 함께 쳤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나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과부 동창과 왕래하는 것을 발견했고 심지어 내 앞에서도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남편을 캐묻고 질책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또 그를 위협하며 “당신이 그녀와 관계를 끊지 않으면 우리 이혼해요”라고 했다. 질투, 원망심, 의심, 체면, 이기심 등 사람 마음이 모두 폭로돼 나왔다. 이어서 내 몸에 심각한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법공부를 하고 수련생이 나를 도와 정념을 발해주어 나는 이 고비를 넘겼다.

반년 후 나는 남편이 또 다른 여자와 애매한 관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이것이 나에게 남편에 대한 정을 버리게 하고 동시에 질투심, 원망심, 의심 등을 없애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지만 마음은 정말 뼈를 에는 듯 아팠다. 나는 사부님께 부탁드려 남편에 대한 정을 없애겠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연공할 때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 담담히 여길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당신이 그런 것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전법륜)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나는 여러 번 외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단번에 마음이 풀리며 마음속이 환해졌다. 나는 남편을 중생의 위치에 놓고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남편이 매일 마작관에 가는 것을 보고 입으로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언짢았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속인은 그가 무엇을 하려면 바로 무엇을 하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이다”(전법륜). 나는 마침내 이 일을 내려놓았다.

신기하게도 남편 역시 따라서 변했고 올해는 다시는 마작관에 가지 않고 매일 집에서 TV를 본다.

어느 날 내가 법을 베껴 쓸 때 사부님의 법이 단번에 또 나를 일깨워 주셨다. 알고 보니 내가 남편을 좋지 않게 보는 것 역시 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렸다! 나는 사부님의 법에 따라 행했고 수련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서 나는 힘들고 원망스러운 일도 기쁘게 했고 이전의 불만이 사라졌으며 남편과의 관계도 담담하고 화목해졌으며 서로 화해롭게 지내게 됐다.

파룬따파가 근본적으로 나를 변화시켰고 나를 원망과 질투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 사존을 따라 조사정법하고 서약을 실현할 수 있어서 나는 더없이 영광스럽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6/5151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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