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집은 동북 지역의 한 작은 마을에 있다. 나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고, 위염, 위하수, 십이지장궤양, 골반염, 부속기염, 전신 관절 종대 및 증식, 커산병(克山病) 등 병이 있었다. 1994년, 병업에 시달려 숨을 헐떡거리며 이미 5일 밤낮으로 물과 음식을 넘기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던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다. 모든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기적처럼 회복됐다. 내가 파룬궁을 배운 후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신기한 일이 우리 지역의 작은 마을에 널리 퍼졌다.
법공부를 시작할 무렵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확고히 했다. ‘나의 생명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이번 생에 나는 반드시 끝까지 수련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이 30여 년 동안 비록 중국공산당(중공)의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지만, 나는 세 가지 일을 한 번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줄곧 보호해 주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는 지금 얼굴에 혈색이 돌고 광채가 나며,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중생구도의 길을 걷고 있다.
1. “수련하는 일만큼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없어요”
남편은 성격이 포악해서 집안의 많은 일을 나는 그를 위주로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이든 다 당신 뜻을 따를 수 있지만, 수련하는 일만큼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없어요.”
1999년 사악한 중공과 장쩌민이 서로 이용해 선량한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나는 여러 번 불법적으로 납치돼 감금당하고 박해받았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매번 마수에서 벗어나 정법의 큰 흐름에 합류했다. 이 기간에 우리 가정은 비록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내가 중공에 여러 차례 납치되는 아찔한 일이 있었지만, 남편은 정말 약속을 지켜 내 수련의 길에서 나를 교란한 적이 없다!
2000년,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바른 도리를 되찾고자 베이징에 갔다. 현지로 돌아온 후 38일간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4500위안을 갈취당한 뒤 풀려났다. 나는 이렇게 좋은 대법이 모함을 받고 사존께서 비방을 당하셨으니, 제자로서 마땅한 책임을 지고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청원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는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으니, 주변 사람들부터 시작해 나의 진실한 경험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친척, 친구,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후 사부님께서 또 우리에게 정념을 발하는 (신통) 능력을 내려주셨고, 수련생들이 먹고 쓰는 것을 아껴가며 사심 없이 제작한 진상 소책자와 전단지, ‘9평 공산당’ 등의 자료도 있었다. 이로써 나는 중생구도의 법기가 더욱 많아졌다. 나는 매일 중생을 구하는 길을 분주히 오가며 들판과 논밭을 바쁘게 누볐고, 고생스럽거나 피곤한 줄도 모른 채 오로지 사람을 구하는 데만 전념했다.
한번은 외출해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를 당했다. 경찰 두 명이 나를 억지로 끌어당겼지만 경찰차에 태우지는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그들에게 끌려갈 수 없습니다. 아직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 후 그 경찰이 전화로 보고했는데, 나는 그의 상급자가 그에게 지시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녀의 사진을 찍은 후 풀어줘.” 나중에 그는 정말 나를 풀어주었다.
돌아온 후 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 없지만, 최근 며칠 동안 수련생들이 모두 내가 사람 구하는 면에서 잘한다고 말했고, 그로 인해 나에게 자만심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 마음가짐이 좋지 않아 사악에게 틈을 주었고 하마터면 중생이 죄를 짓게 할 뻔했다!
2. “우리는 악의가 없고 단지 당신이 평안한 미래를 갖길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이 나를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는데, 아직 얼마나 많은 중생이 중공의 거짓말에 중독되고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감히 대법으로 들어오지 못해 수련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 나는 대법의 복음을 중생들에게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막론하고 혹한과 무더위도 내가 사람 구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또 생각했다. ‘근처 시골은 다 돌아다녔는데, 작은 마을에 줄지어 있는 이 아파트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중생들이 있다. 이들 역시 중생이니 한 명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 생각을 확고히 한 후, 우리집 아파트 동부터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늘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자가 중생을 구하도록 가지(加持)해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손을 들어 첫 번째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간 후 상대의 의아해하는 눈빛을 보며 나를 소개했다. “나는 당신 집 아래층에 사는 이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려주자 상대방은 대법의 진상에 매우 공감했다. 첫 번째 집에서 나온 후 나는 자신감이 크게 생겼다. 방금 전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마음이 다소 불안했는데, 지금의 나는 방금 전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나는 두 번째 집 문을 두드렸고 세 번째 집 문을 두드렸다. 그때부터 사람을 구하는 이 길을 사부님께서 다시 열어 주셨다. 나는 매일 한 동, 또 한 동 계속해서 진상을 알렸고, 한 아파트를 다 알리고 나면 다음 아파트로 갔다. 나는 아파트 한 채도 빠뜨리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그렇게 중생들 마음속의 대법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고 중공 악당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진상을 알아들은 중생들은 기꺼이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선택했다.
내가 마을에서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노년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그래서 나는 그 노년 수련생과 함께 우리가 사는 작은 마을의 모든 아파트를 한 집도 빠짐없이 4번이나 돌며 진상을 알렸고, 최대한 중생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정 중에 중생이 구원받은 후 삼퇴를 선택하는 데서 오는 위안도 있었고, 진상을 모르는 중생의 냉담한 말과 욕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가 사람 구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나는 오직 사부님의 명을 삼가 따르며 사람을 많이 구할 뿐이었다.
두 가지 작은 이야기는 언급할 만하다.
한번은 나와 노년 수련생이 진상 자료를 가지고 한 아파트의 7층(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즉시 방범문을 닫았다. 나는 미처 몸을 빼기도 전에 방범문에 끼이고 말았다. 나는 아픔도 개의치 않고 사람으로서의 체면을 차릴 겨를도 없이 팔로 문을 막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새댁, 우리는 악의가 없어요. 단지 당신이 평안한 미래를 갖길 바랄 뿐이에요. 이 어르신을 보세요. 벌써 일흔이 넘었어요. 이 7층까지 올라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직 당신이 평안하게 구원받기를 바라서 온 거예요.” 아마도 우리의 선한 마음이 그녀의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었는지, 이때 여주인이 방범문을 열고 우리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 마지막에 삼퇴를 선택했다. 삼퇴를 한 후 거듭 감사를 표하며 우리를 배웅했고 나는 이 생명이 구원받아 기뻤다.
또 한번은 어느 집 문을 두드리고 자료를 꺼내 진상을 알렸다. 이 집 여주인은 대법에 매우 공감하며 진상을 받아들였는데, 이때 남자 주인이 나와 난폭한 태도로 우리의 진상 자료를 복도에 내던지며 우리를 쫓아냈다. 나와 노년 수련생이 수련생이 정성껏 만든 진상 자료를 소중히 주워 담을 때, 문 안에서 여주인이 남편을 큰 소리로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안 믿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한테 이래요?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왜 남의 물건을 내던져요!” 그 남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우리는 묵묵히 자리를 뜨면서 이 집의 호수를 기억해 두었다. 다음번에 우리가 다시 진상을 알리러 왔을 때, 그들은 과연 열정적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이 정의감 있는 여주인을 보며 위안을 느꼈다. 그녀의 정의는 우리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들 온 가족이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나와 노년 수련생이 작은 마을의 모든 아파트를 네 번이나 돌고 나자, 이 중생들 대부분이 진상 자료를 받아들이고 삼퇴를 했다.
3. “진상을 알리고 싶으면 나를 따라 다음 마을로 가서 알려요”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한 시골 친척 집에 가서 생신을 축하해 드리자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찌 일반인의 생일을 챙길 시간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기회를 빌려 이 지역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겠다.’ 듣자니 이 마을에는 70~80가구가 있다고 했다.
나는 친척 집에서 나와 마을 입구부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집에 도착해 문 안으로 들어간 후 나를 소개했다. “나는 ○○○의 아내입니다. 친척 집에 축의금을 내러 왔어요.” 주인이 아주 열정적으로 나를 맞이하고 자리를 권한 뒤 말했다. “나는 당신 남편을 알아요…….” 상대방의 소박한 말에 나는 감동했다! 그 집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두 명이 삼퇴를 했고 한 명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먼저 구원받은 두 중생이 적극 권유하자 그 사람도 삼퇴를 선택해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사람이 나를 두 번째 집으로 안내했다. 이 집 사람들의 모습은 사람을 구하는 내 신심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고, 마음속으로 사존의 한량없는 가지와 보호에 감사드렸다! 두 번째 집 남자 주인에게는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가 있었다. 남자 주인은 부체에게 오랫동안 시달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했는데,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는 즉시 파룬따파를 배우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는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살길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나올 때 대법 보서(寶書)를 챙기지 않은 것을 정말 후회했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부체가 다시는 감히 와서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듣고 나서 매우 믿으며 경건하게 외웠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나는 계속해서 세 번째, 네 번째 집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거리에서 10여 명이 삼퇴했고, 두 번째 거리에서도 10여 명이 삼퇴했다. 내가 세 번째 거리에 다다랐을 때 맞은편에서 남편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남편이 내가 사람 구하는 것을 교란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사람 구하는 것을 교란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 진상을 알렸다.
내가 계속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의 목소리였다. “진상을 알리고 싶으면 나를 따라 다음 마을로 가서 알려.” 나는 이 마을의 중생들이 무척 아쉬웠지만,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다음 마을의 중생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첫 번째 마을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로하고 두 번째 마을에 있는 남편의 친구 집에 도착했다.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려주자, 친구의 아내는 어린아이를 업고 나를 이끌며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마을에서도 많은 마을 사람이 구원받았다.
나는 중생의 정념에 감동했고, 제자를 보호하며 중생구도를 위해 치밀하게 안배해 주신 사존께 더욱 감사드렸다. 제자가 잘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시고 사람을 구하는 길을 이미 닦아 놓으신 사존께 뵐 면목이 없을 것이다!
4. 사부님의 보호로 호랑이 아가리에서 벗어나다
외손녀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내가 현 소재지에 가서 아이의 공부를 돌보아야 했다. 이로써 나는 더 많은 중생을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도 예전에 살던 향진(鄕鎭)으로 돌아가 진상 자료를 가져와 현 소재지에서 배포할 수 있었다.
한번은 나와 수련생이 어느 현 소재지 큰길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었는데, 마침 정기적으로 현 소재지에 와서 ‘명혜주간’을 가져가는 한 수련생을 만났다. 그도 중생구도의 염원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다들 당신이 진상을 아주 잘 알린다고 하던데, 나도 경험 좀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별다른 경험은 없어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우쭐했다.
우리는 함께 걸어가며 진상을 알렸다. 내가 택시 기사에게 고개를 들이밀고 진상을 알리고 있을 때, 갑자기 경찰 두 명이 양쪽에서 내 두 손을 붙잡았다. 당시 내 머리는 아직 택시 안쪽에 있었고,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나는 미처 대처할 수 없었다. 눈앞에 경찰차 한 대가 나타났고, 우리 수련생 3명은 연이어 납치됐다(우리는 신고를 당했다). 이때 나는 머릿속으로 납치된 원인을 재빨리 찾았다! 바로 과시심이었다. 수련생의 칭찬으로 생긴 나의 과시심에 사악이 틈을 타 납치를 자행하고 박해를 가해 중생을 파멸시키려 했던 것이다.
경찰은 우리 손에 있던 진상 자료와 휴대폰 등의 물품을 빼앗고,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우리 수련생 3명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에 납치된 후 각자 따로 나뉘어 심문을 받았다! 나는 어찌 됐든 이 경찰들(중생)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상을 명백히 알아들은 경찰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러 나가며 나 혼자 심문실에 남게 되었다.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나는 휴대폰을 챙겨왔다(휴대폰에 수련생들의 전화번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경찰은 내가 휴대폰을 가져간 것을 발견하고 몹시 화를 냈다. 내게서 휴대폰을 빼앗으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진선인이냐. 이건 진선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야. 당신 죄목을 크게 만들어서 8년이고 10년이고 선고받게 해주지.” 이때 나에게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내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자 그들은 긴장했다. 남자 경찰은 바늘로 나를 찌르자고 했고, 여경은 급히 달려와 책임을 질까 두려워 120에 전화해 구급차를 부르자고 했다. 구급차가 도착하자 그들 중 아무도 감히 나를 건드리지 못했고 경찰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여자 집에선 아무도 안 왔는데 누가 업고 가지?”
그때 남자 수련생이 나를 번쩍 안아 들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구급차에 눕힌 뒤 지혜롭게 빠져나갔다. 나와 여자 수련생이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경찰이 분개하며 말했다. “저 놈(남자 수련생을 가리킴) 참 대단하네. 사람이 이 지경인데도 도망가버리다니…….”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남자 수련생이 기지 있게 빠져나간 것을 기뻐했다! 나는 여자 수련생도 빠져나가길 바랐고 나도 반드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여자 수련생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떠나지 않았다.
내가 검진을 받은 후 의료기기에는 병이 없다고 나왔고, 경찰은 내가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여자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이 꾀병 한 번 부려봐요. 벌써 몇 시간이 지났는데 그게 가능해요?” 경찰이 말했다. “하긴 그렇네.” 다시 종합검사를 했지만 검사 후에도 여전히 병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의사는 내가 칼륨이 심하게 부족하다고 했다. 나도 칼륨 부족이 무슨 일인지 몰라 의사에게 생명의 위험이 있는지 물었고, 의사는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나는 강제로 링거를 맞았다. 다음 날 우리는 구치소로 이송됐다. 도중에 경찰이 말했다. “당신들을 아주 봐주는 거야. 열흘만 구류하겠어.” 나는 마음속으로 ‘나는 단 하루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내가 밤새 돌아오지 않자 남편은 사방으로 나를 찾아다녔고, 마침 그때 뜻밖에도 구치소까지 찾아왔다. 구치소 경찰이 나를 데리고 나오자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위험한 것을 보고 “사람이 이 지경인데도 당신들은 가둬 놓았소?”라고 말하면서 빠르게 나를 업고 떠났다. 이때 나는 나를 데려왔던 경찰들이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즉시 경찰차를 돌렸고 남편은 나를 경찰차에 태웠다. 이때 딸이 차에 올라타 나를 보더니 목 놓아 울었다!
차에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경찰 3명이 있었다. 여경은 내 머리를 안고 내 딸을 다독였다. “얘야 울지 마. 네 엄마 병은 흥분하는 게 제일 위험해. 흥분할수록 더 심해진단다.” 딸은 더 슬프게 울었고 경찰차는 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경찰은 전날 밤에 갔던 그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남편이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고집하여 결국 남편이 요구한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차에서 내린 후 가족이 나를 업고 위층으로 올라가 진료를 받았고, 남편과 경찰은 아래층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층에 올라간 후 나는 놀랍게도 병원에 뒷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남편은 병원에 뒷문이 있는 줄 몰랐지만 고집스레 이 병원으로 오자고 했다). 나는 기회를 타 뒷문으로 나갔고, 소형 택시 한 대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서 있었다. 나는 무사히 차에 올라타 빠르게 현장을 떠났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제자를 보호해 호랑이 아가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 자비로 보호해 주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한 가지 언급할 만한 것은, 남편이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후 집에 가서 의료비를 가져 오겠다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번에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점이다. 이 시간의 안배가 아주 절묘했고 경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 여자 수련생도 열흘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일을 겪은 후 나는 깊이 안으로 찾았다. 나의 과시심과 환희심 때문에 구세력이 틈을 타 박해당했고, 사람 구하는 큰일을 하마터면 그르칠 뻔했다. 나는 앞으로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
5. 고난 속에서 경찰을 구하다
내가 48세이던 해, 불법적인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고 15일 후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처음에 사악한 경찰이 8년이고 10년이고 선고하겠다고 떠벌렸지만 나는 즉각 부정했다. ‘당신이 말하는 건 소용없어.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해.’
열흘 후 강제노동 통지서가 내 손에 전달되었다. 나는 당시 매우 기뻤다. 나에게 8년이고 10년이고 선고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고작 3년 강제노동일 수 있는가?!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니, 내가 이 3년 강제노동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나는 마음속으로 즉시 부정했다.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말하는 건 소용없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강제노동이 무엇인지, 판결을 받는 것(징역)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들은 강제노동이 비교적 가볍고 판결을 받는 것이 비교적 무겁다고 알려주었다.
15일째 되던 날, 내가 있던 구치소의 한 경찰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왜 나를 보러 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대법의 훌륭함과 대법제자가 진선인에 따라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일을 처리하는 진실한 모습, 그리고 대법이 내 몸에 나타낸 신의 기적, 즉 온갖 병에 시달리던 나를 죽음에서 살려낸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이 경찰은 여러 명의 대법제자를 접해 보았다며 대법제자들이 보여준 굴하지 않는 굳센 모습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찰은 나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당신이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낼 방법이 없어요. 나는 이 직장을 지키기 위해 이러는 겁니다.”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중공의 압력에 못 이긴 것이 아니라면 경찰들도 선량한 대법제자를 박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어서 사악한 거짓말에 중독된 사건 담당 경찰(직접 나를 납치해 구치소로 데려간 경찰)이 분개하며 말했다. “당신을 아주 많이 봐줬네. 고작 1년 반 강제노동이라니. 나 같으면 8년, 10년은 선고했을 건데….” 나는 여전히 속으로 의아했다. ‘3년 강제노동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1년 반으로 변했지?’ 아마 내가 방금 그 경찰에게 진상을 알린 것이 그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게 해 3년 강제노동을 1년 반의 강제노동으로 바꾼 듯했다.
진상을 아는 경찰과 모르는 경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1년 반이면 1년 반이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일념이 내가 1년 반의 강제노동을 인정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나는 당일 바로 악명 높은 하얼빈 노동수용소(샤오바이러우)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나와 많은 대법제자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박해와 강제적인 폭력 전향을 당했다. 이곳의 바오자(包夾, 수련생을 24시간 감시하는 수감자) 구타자들은 수시로 대법제자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고, 그녀들은 온갖 모욕과 욕설 등 사악한 수단을 극도로 썼다. 우리 대법제자는 여러 차례 단체로 단식하며 박해에 저항했고, 나는 대법제자에게 가해지는 고강도 노예 노동을 배척했다. 여러 차례 정사(正邪)간의 대결 속에서 사악은 끝내 나를 전향시킬 방법이 없었고, 나를 노예처럼 부리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경찰 왕민(王敏)은 이곳에서 악명 높은 구타자였다. 그녀는 내가 노예 노동에 참여하도록 나를 불러 하루 종일 강경책과 회유책을 썼다. 하루 종일 이어진 대화에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오직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대법의 훌륭함을 알려야 했다. 사람 구하는 데에는 선택이 없으며, 선택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
결국 이 노동수용소의 악명 높은 구타자도 대법제자의 선량함에 감화되었다! 그녀가 나를 데려다주었을 때 수련생들은 내가 하루 종일 나갔으니 이곳의 관례에 따라 분명 고문 박해를 당했을 거라며 걱정했다. 그러나 왕민은 내 팔짱을 끼고 마치 친자매처럼 웃고 이야기하며 나를 감방까지 바래다주었다.
내가 하얼빈 노동수용소에 불법적으로 1년 1개월 동안 감금되었을 때, 중공의 강제노동 제도가 해체되면서 나는 조기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보호해주신 사존께 천만번 감사드린다! 다시 정법의 큰 흐름 속으로 돌아와 수련생들과 함께 사부님께서 맡기신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6. 이전의 허물을 따지지 않으니 참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이 있었다. 사악한 박해로 인해 남편이 큰 압박을 받았고 그 기간에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그는 그 여자와 4년 동안 함께 산 후, 사기를 당해 무일푼이 되고 빚까지 잔뜩 진 상황에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사악의 박해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가 외도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박해당할 때 그는 나를 구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안 부서를 뛰어다녔다. 나는 대법제자의 넓은 관용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가 돌아오고 몇 달 후, 나는 그가 이미 당뇨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2년 후에는 뇌경색까지 걸려 반신불수가 되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았고 그를 위해 명의를 찾고 약을 구했다. 나의 이런 행동은 남편의 친척과 친구, 이웃들을 감동시켰다! 모두가 말했다. “대법제자는 이전의 허물을 따지지 않으니 참 좋네요.” 나도 대법을 실증하며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
병든 남편을 돌보기 위해 나는 혼자 안팎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고, 돈을 벌어 남편의 병을 치료했다. 9년 후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그 역시 대법 속에서 이로움을 얻었다. 남편은 대법에 매우 공감했다. 병원 원장은 그가 결국 전신 마비가 오고 온몸이 썩어 들어갈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마지막까지 남편의 몸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가 병을 앓는 동안 나는 아무리 바빠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딸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결인(結印) 자세를 하고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이 생명이 마지막에 대법을 인정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맺음말
수년 동안의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죽어가던 사람에서 심신이 건강하고 진선인을 따르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골 여성에서 마음이 넓고 매사에 이타적인 수련인으로 변했고, 나아가 주눅 든 모습에서 진상을 알릴 때 당당하게 말하는 대법도(大法徒)로 변했다. 과정 중에 중생이 구원받은 후의 기쁨도 있었고, 내 수련이 부족했을 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하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사존의 한량없는 자비와 세심한 보호가 스며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존께서 새로 만들어주신 은혜는 말로 다 보답할 길이 없다!
나는 일념을 확고히 다졌다. 앞으로 수련의 길이 얼마나 길든 나는 반드시 사존의 명을 삼가 따르며,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많이 구하겠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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