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 시골 농부가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한 이야기(2)

— 좋은 사람이 되려다 박해를 받았지만 목숨으로 대법을 수호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이전 편에 이어) 우리 온 가족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 이후 모두 대법 안에서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줄곧 ‘진선인(眞·善·忍)’의 높은 기준에 따라 처신했고 생명이 법에서 왔음을 깨달았기에 생명이 다시 법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법을 위해 태어났고 법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파룬궁 도로’가 있다

우리 마을에는 원래 길 하나가 있었는데 내리막길이 매우 가파르고 울퉁불퉁해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차가 지나가면 모두 그 안에 빠져서 나오지 못했고 아주 큰 힘을 들여야 겨우 이 ‘함정’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났지만 마을에서는 이 길을 보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 길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우리가 파룬궁을 배운 이후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남을 배려하며 남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수련생들은 마을의 그 다니기 힘든 길을 보수할 수 있을지 의논했습니다. 제가 이 제안을 하자 모두 동의했습니다. 길을 덜 가파르게 만들려면 흙을 돋워 높여야 했습니다. 계획이 정해지자 우리 마을의 대법제자들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흙을 밀어오고 돌과 벽돌을 주워다 안에 채운 뒤 그 위에 다시 흙을 눌러 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길을 고치는 것을 보면서 관망하기만 할 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대법제자들은 이를 보고 끊임없이 합류해 마침내 지역 대법제자들이 모두 찾아와 이 길을 고치는 것을 도왔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 길이 다 고쳐졌습니다. 원래는 다니지 못하던 길이 이제는 평탄해져서 다니기 아주 좋은 길로 변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길을 ‘파룬궁 도로’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길을 걸을 때면 대법제자들이 사심 없이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저절로 칭찬했고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한 일을 보고 “이것이 바로 파룬궁이다”라고 말하다

빚을 빨리 갚기 위해 저와 남편도 작은 장사를 했습니다. 때로는 손님이 돈을 더 주면 우리는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제가 장터에 나가 좌판을 벌이면 많은 사람이 둘러싸서 샀는데 그들은 제가 파는 물건이 좋고 저렴하며 남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고 따지지 않으며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 “그녀는 파룬궁이라 사람을 속이지 않으니 나는 그녀의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진선인’을 좋아하므로 저와 교류하기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꼈고 사람들은 제 언행을 보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집 식구들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수련생들도 모두 이렇게 했습니다. 길에 울퉁불퉁한 곳이 보이면 우리는 삽으로 평평하게 만들었고 길에 유리 조각, 벽돌, 돌멩이, 나뭇가지 등이 보이면 방해가 되지 않는 곳으로 치웠으며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 모두 주워 쓰레기 더미에 넣어 사람들이 평탄하고 넓고 깨끗한 길을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는 물건을 주우면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면 마을 확성기로 방송했습니다. 횟수가 많아지자 확성기 방송만 나오면 사람들은 “이건 또 파룬궁이 좋은 일을 하는 거네!”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이렇게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기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1989년 남부 지방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우리집에는 당시 10위안이 있었는데 우리는 5위안을 기부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오랜 세월 병을 앓아 아직 갚지 못한 빚도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곳에 어려움이 생겼으니 우리도 지원하여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고 싶었습니다.

베이징 청원 이후 연행돼 현지 구류소로 끌려오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이후 저도 ‘4·25’, ‘7·20’ 이후의 베이징 청원과 진상 알리기에 참여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경찰에게 잡혀갔는데 그들이 사람을 때릴 때 제가 “당신들은 사람까지 때립니까? 사람을 때리는 것은 위법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때리지 않았습니다. 남자 수련생 쪽으로 가니 거기도 사람을 때리는 자가 있어서 제가 “대법제자를 때리다니, 사람을 때리는 것은 위법입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네 말대로 안 때리겠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또 내게 물었습니다. “너한테 사부의 경문이 있지?” 제가 대답했습니다. “없습니다.” 그가 “검사 좀 해봐야겠어”라고 하기에 저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너 선생이냐?”라고 물었으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하는 말마다 당당한 것을 보고 제가 교사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또 제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청원사무실에 가려던 거 아니냐? 내가 데려다줄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써라.” 저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서 그들은 우리에게 베이징에 온 이유를 쓰게 하고 또 각자의 상세 주소도 쓰게 하여 우리가 어디 사람인지 알아낸 뒤 우리를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우리를 속인 것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결국 현으로 돌아오자마자 매를 맞았습니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며 그들은 제가 기절할 때까지 제 머리, 귀, 눈, 얼굴 등을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제 의식이 아직 흐릿할 때 그들은 제 이름과 주소, 베이징에 왜 갔는지 등을 강요하며 물었습니다. 깨어난 이후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베이징에 간 것은 국가 지도자에게 파룬따파가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쳐 모두의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을 제고시키므로 국민과 국가에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제가 바로 대법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니 중앙 지도부께서 우리의 진실한 말과 마음의 소리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구류소로 보내졌고 구류소 소장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소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 말했습니다. “지금 공안이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위법이라 나중에 그들은 모두 법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오. 중앙 지도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또 옛날 문화대혁명 같아서 결국 재수 없이 제재를 받는 것은 우리 같은 집행 요원들이오. 파룬궁은 조만간 바로잡힐 것이오.” 저는 불법으로 15일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다시 베이징으로 가 법을 수호하고 귀향한 이후 발을 걷어차여 발목뼈가 부러지다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저는 천안문에 있는 수련생들이 계속 걱정돼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갑시다. 나도 가겠소”라고 하여 우리 둘은 함께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길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라고 묻자 제 남편이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뭐라고?”라고 하니 그들은 놀라서 감히 더 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천안문에 이르러 5~6군데를 돌아다녔으나 아무 일도 없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이후 협조인이 “○○도 베이징에 가고 싶어 하는데 길을 모르니 당신이 데리고 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도 법리에 그리 밝지 못해서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천안문에 이르렀을 때 그녀가 앉으려고 하기에 저는 “앉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걸어가려 했으나 그녀가 기어이 멈춰 섰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우리 두 사람을 납치했습니다. 경찰은 그녀만 심문하고 저는 심문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우리는 함께 나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현지 정부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우리를 억지로 차에서 끌어내려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하고 주먹과 발길질을 가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떠한 위법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들 십여 명은 흉악하게 발로 제 발목과 종아리를 걷어찼는데 당시 저는 ‘우두둑’ 하는 소리를 들었고 제 발을 보니 발목뼈 부위가 부러져 뼈가 튀어나와 뚜렷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당시 제가 도저히 서 있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제야 손을 뗐습니다.

그들은 또 우리를 파출소로 데려가 무언가를 쓴 뒤 저에게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너를 가라고 했어?”라고 묻기에 저는 “아무도 가라고 한 적 없고 제 발로 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너희에게 협조할 줄 아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전기봉으로 저를 전기 충격하려 하자 저는 사부님께 “사부님, 제가 나와서 법을 실증한 것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저를 전기로 충격하려 하면 그를 지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먼저 제 오른쪽을 지지자 불꽃이 ‘지지직’ 하고 튀면서 단번에 그 자신이 감전됐고 그는 “아이쿠, 고장 났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전기봉으로 바꿔 또 제 왼쪽을 지지려고 할 때 저는 저를 충격하려면 그를 지지게 하고 전기봉이 고장 나게 해 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전기봉이 고장 났습니다. 그가 “너 웃고 있네. 네 사부가 널 보호해 준 거지?”라고 묻기에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저를 구류소로 끌고 갔고 저는 그에게 “예전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쩌민이 발동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으로 공식 문서 하나도 없습니다(이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내게 밥을 주잖아. 나는 장쩌민의 개나 마찬가지라 그가 나더러 몇 그릇을 먹으라 하면 몇 그릇을 먹고, 몇 입을 먹으라 하면 몇 입을 먹어야 하니 그의 말을 들어야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면 당신은 속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불법 구류 15일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들은 또 우리를 세뇌반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대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데려와 우리를 ‘전향’시키려 했으나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조금 나은 변호사 한 명을 보내왔기에 저는 그에게 우리가 어떻게 파룬궁을 배웠고 어떻게 처신했는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변호사는 “정말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나도 배우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전향’시키러 온 사람이었기에 마지막에 “그럼 내게 보증서 한 장 써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쓰지 않겠다면 내게 한 마디만 남겨주십시오”라고 해서 저는 “내 이 생명은 법을 위해 태어났고 법을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뇌반에서 수련생들은 함께 ‘논어(論語)’를 암기하고 ‘홍음(洪吟)’을 암기하며 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우리는 사악을 배척해야 하고 단식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단식하겠다고 하자 그들은 당황해하며 우리 사진을 찍었는데 저는 우리를 총살하려는 줄 알았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 발을 걷어차 상처를 입힌 이후 어떠한 치료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으나 이후 제가 연공을 하여 나았습니다.

(계속)

 

원문발표: 202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2/51408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12/514082.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