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20여 년의 수련 속에서 내가 걸어온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와 보호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1. 대법을 얻은 후 몸과 마음에 일어난 변화
나는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때 집안의 모든 것을 늘 깨끗하게 치워뒀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집안을 정리했다. 임신한 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토했으며 나중에는 출근도 할 수 없게 됐다. 그 후 두 팔이 자주 저렸고 두 손에 힘이 없어서 밥을 먹을 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지 못했으며, 찐빵을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한참을 씹어도 삼키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 허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비염과 두통이 있어서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구토까지 동반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시어머니는 내가 딸을 낳은 것을 보고는 고향 친척 집에 통통한 사내아이 둘이 태어났으니 우리집과 바꾸자며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나는 속으로 몹시 화가 났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여전히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친정에 가서 두 달을 지냈는데,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중의원에 가서 열 첩 남짓 약을 지어왔지만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아이가 생겼는데 시부모님은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매일 내게 골칫거리를 만드셨다. 오늘 이 일이 아니면 내일은 저 일이 생겼다. 내 유방과 겨드랑이에 커다란 멍울이 많이 생겼는데, 나는 이것이 속으로 화를 앓아서 생긴 것임을 알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 집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 계속 살다가는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가 채 한 살도 되기 전에 우리는 근처 마을에 방 한 칸을 빌렸다. 낮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나 혼자 아이를 돌봤다. 그때 나는 몹시 야위어서 얼굴이 해골처럼 변했고, 체중이 30여 kg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몹시 늙어 보여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일찍 대법을 얻으셔서 내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주셨다. 책을 펴서 사부님 사진을 봤을 때 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사부님이 매우 자애롭게 느껴졌고 낯익었다. ‘전법륜’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진작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공법이 있는데 왜 일찍 보지 못했을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는 구절구절 내 마음속에 와닿았고, 그때부터 나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대법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고 몸의 각종 질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98년에 언니가 어머니를 뵈러 친정에 왔다가 나를 보고 놀라며 “동생아, 너 정말 변했구나. 젊어졌어”라고 말했다. 나는 “네, 제 몸의 변화가 정말 커요!”라고 말했다. 그 후로 오빠와 언니도 대법을 얻어 수련했다.
2. 원망심을 닦아 없애다
수련하기 전에는 시부모님이 내게 하셨던 일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울고 싶었고 억울하고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2000년에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했다가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그 기간에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여자를 소개했고, 법원 직원이 노동수용소까지 와서 재판을 열었다. 내가 당시 정념이 강해서 동의하지 않았기에 법원도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
나중에 남편은 나쁜 길로 빠져 연달아 여러 여자를 만났고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았다. 2009년에 남편은 결국 나와 이혼 수속을 밟았다. 나는 혼자 딸을 데리고 살았는데 그때 딸은 겨우 열여섯 살이었고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조금씩 이겨냈다. 나는 마음속으로 두 분 어르신에게 몹시 불만이 있었고 깊은 원망심을 품고 있었다.
마음을 닦는 것도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과정인데, 지금은 그 원망심이 나에게 너무나 멀리 떨어져 마치 전생의 일처럼 느껴진다. 아이 할아버지는 위암에 걸려 위를 절제하셨고, 아이 할머니는 내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내 대법 서적을 불태웠다가 역시 적지 않은 고생을 겪으셨다.
점차 나는 그분들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았다. 해마다 명절이면 나는 아이와 선물을 사서 함께 두 분 어르신을 찾아뵙는데, 지금은 우리 사이가 점점 더 화목해지고 있다.
3. 소조 법공부에 참가하고 얼굴을 마주해 진상을 전하며 사람을 구하다
2005년에 우리 파룬궁수련생 몇 명은 H 수련생 집에서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매주 두 번 아침 8시가 넘어 법공부를 시작해서 줄곧 오후 5시 반까지 했다. 모두 각자 도시락을 싸 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이어서 법공부를 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마음에 와닿았고 공부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었다. 때때로 우리는 대법 안에서의 체험을 서로 교류했고 모두 대법 속에 목욕하며 심성 면에서 매우 빠르게 향상됐는데,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 나가서 진상을 전하는 데 기초를 다져줬다.
2006년에 우리집은 컴퓨터 한 대를 샀는데 당시는 아이 학습용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는 것은 내게 가장 골치 아픈 일이었는데, 다른 수련생들이 가정 자료점을 세운 것을 보고 나는 늘 기다리고 의지하고 요구하기만 해서 마음이 몹시 조급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 머리는 왜 배우질 못하는 걸까요. 너무 우둔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 내게 이런 소원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도와주셨다. 내 머리도 깨쳐서 수련생이 내게 진상 CD 굽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 후로 나는 자주 아파트 단지에 가서 배포했고, 구워놓은 진상 CD를 수련생들에게 주기도 했다. 나는 또 수련생에게서 진상 자료를 가져와서 색종이로 포장하고 양면테이프를 붙여 이곳저곳에 가서 배포했다. 명절 때면 예쁜 봉투를 많이 만들어서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넣어 함께 배포했다. 우리는 각 단지의 주민 문 앞에 진상 소책자를 가져다주었는데, 매번 자료를 배포할 때마다 몹시 순조로웠고 놀라기만 했을 뿐 위험은 없었다. 나는 곁에서 제자를 보호해 주시는 사부님이 계심을 알고 있었다.
사부님의 ‘2013년 미국 서부 국제법회 설법’이 발표된 후 우리는 모두 공부했다. 화요일에 법공부 팀에 가서 새 설법을 공부한 후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아직도 나가서 진상을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겠는가,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Z 수련생에게 “우리 앞으로 매주 시간을 정해서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갈까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좋아요, 언제 갈까요?”라고 했다. 나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내일 오후로 하죠”라고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 수련생 몇 명이 듣더니 모두 “나도 갈래요.”, “나도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좋아요! 그럼 우리 함께 가요!”라고 했다. 모두 단단히 마음을 먹고 걸어 나오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 우리 파룬궁수련생 몇 명은 사람들을 대면해 진상을 전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막 지어진 신도시로 갔는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각 조마다 차례로 몇 명을 삼퇴시켰다.
우리가 돌아올 때, 나이 지긋한 분이 길가에서 햇볕을 쬐고 계셔서 나와 수련생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손발이 불편해 보이셔서 우리는 건강부터 이야기하며 진상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성씨를 묻고 그에게 삼퇴를 해줄 때, 그가 자신의 성이 웨이(魏)라고 하기에 나는 마침 ‘영원한 증거’라는 소책자를 그에게 주려던 참이었는데 수련생이 “그럼 영항(永恒, 영원)이라고 부르세요”라고 했다. 그는 기뻐하며 “내 이름이 영항이구나! 내 이름이 영항이야!”라고 했다. 우리는 “맞아요, 맞아요!”라고 하며 그에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또 그에게 진상을 좀 더 알려주자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우리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수련생이 웃으며 내게 “이건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거예요!”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시내, 주변, 마을 등 다 다녔다. 처음에는 눈앞에 펼쳐진 것이 온통 논밭과 황무지였고 주변에 민가가 있었다. 우리는 마을로 가서 농민들에게 진상을 전하고 진상 소책자를 배포했으며, 책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9평 공산당’이나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한 권을 주었다.
그 후 시내 주변 곳곳이 개발구가 되어 고층 건물이 들어서자, 우리는 공사장으로 가서 그 건축 노동자들에게 진상을 전했다. 건축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 매우 소박했고, 다수가 중공의 공청단과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지만 당원은 적어서 말만 하면 탈퇴했다. 그리고 진상 소책자 한 권을 주면 그들은 앞다투어 받으려고 했다. 특히 설이 다가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수련생들은 함께 진상 달력을 배포하고 삼퇴를 권하며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주었다.
다시 그 후로 고층 건물이 다 지어져 번화가가 되자, 우리는 상점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전했다. 추위와 더위가 오가며 10여 년의 시간 동안 그곳들은 크게 변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4. 자신을 잘 닦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가 발생한 후, 우리가 사는 지역은 도시와 단지를 봉쇄하고 핵산 검사를 했으며 열이 나는 사람은 끌려가 격리돼 인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2021년에 수련생 세 명이 납치당하자 나는 나가서 진상을 전하고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이 느려졌고 나태해졌으며 두려운 마음도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정념을 강화하며 발정념을 많이 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진상을 전하는 것으로 바꿨다.
2021년 막 봉쇄가 풀린 어느 날, 나는 채소 시장의 한 노점상에서 채소를 샀는데 이 노점상 주인에게는 이미 진상을 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고 우리 둘 다 채소를 한 움큼씩 달라고 했다. 그가 내게 “내가 얼마 전에 고열이 나서 죽다 살아난 사람인데, 저승사자한테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왔소”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건 인연 있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말했다. “어르신, 이 역병은 이제 막 시작된 거고 큰 역병은 아직 뒤에 남아있어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나빠지고 도덕이 안 돼서 역병이 있는 거예요. 이 역병은 바로 무신론을 겨냥해서 온 거랍니다. 제가 어르신께 역병을 피하는 좋은 처방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붉은 스카프 매보신 적 있으세요?” 그는 “다 가입했었지. 난 당원이오”라고 했다. 나는 “어르신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서 탈퇴하셔야지 더 이상 그것의 순장품이 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는 “좋소”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예쁜 대법 진상 호신부를 하나 꺼내며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시고, 이 작은 이야기들도 좀 보세요.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고맙소!”라고 했다. 우리 둘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한번은 내가 채소 시장에 채소를 사러 갔다가 배를 파는 한 노인을 보았다. 나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르신, 이 전염병이 아직 안 끝났고 더 큰 전염병이 뒤에 있다는 거 아세요?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는 “조금 알지. 나도 공청단,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었어”라고 했다. 나는 “탈퇴해야만 목숨을 지키고 평안을 지킬 수 있어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세요”라고 했다. 그가 내게 성씨를 알려주어 나는 “그럼 ○○라고 할 테니 진심으로 탈퇴하세요”라고 했다. 그는 “좋아!”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중공의 사악한 역사를 이야기해 주자 그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어르신도 이런 일들을 겪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렇지”라고 했다. 나는 “어르신께 USB 하나 드릴게요. 안에 내용이 정말 좋아요. 영화, 뉴스도 있고 ‘9평’도 있어요. 여기에 공산당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으니 꼭 잘 보세요”라고 했다. 그는 건네받으며 “내가 꼭 잘 보겠소!”라고 했다. 나는 그와 작별 인사를 했고 진심으로 그가 진상을 알게 돼 기뻤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전하다 보면 듣는 사람도 있고 듣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악당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탈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자신을 찾는데, 상대방에게 진상을 철저히 알려주지 못했거나, 또 자비심이 부족해 진심으로 이 사람을 위하지 않았거나, 두려운 마음이 커서 효과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정념이 아주 충분하고 아무런 망설임이나 두려운 마음이 없이 자아를 내려놓았을 때, 사부님께서 중생 배후의 사령(邪靈)을 깨끗이 제거해 주시면 그들은 진상을 알고 구원받게 된다.
어느 날 우리집 커튼이 망가져서 큰 도매 시장에 가서 적당한 커튼이 있는지 보러 갔다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커튼 가게에 들어갔다. 여자는 커튼을 묶고 있었고 문 앞에는 처분하는 커튼 몇 장이 놓여 있었는데 한 쌍에 200위안이라 나도 한 세트 샀다. 그 집 커튼은 다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우리집은 고리가 달린 거라 고쳐야 했다. 내가 “요즘 장사하기 힘드시죠?”라고 하자 남자는 “3년 전염병 사태도 지나가고 봉쇄도 풀려서 장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는 사람이 없네요”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 서민들은 이 3년 동안 시달렸잖아요. 출근도 못 하게 하고 장사도 못 하게 하고 집에 가둬놓고 가만히 앉아서 다 까먹게 만들었죠. 돈은 다 관리들 손에 있고 관리치고 탐오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이 3년 전염병으로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아세요? 이런 일들은 인터넷에서는 볼 수 없어요.”
마지막에 내가 그들에게 삼퇴를 이야기하자 젊은 부부는 흔쾌히 동의했다. 떠나기 전에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건강해지고 장사도 잘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 소중한 생명들이 진상을 안 후의 기쁨을 보니 마음속으로 정말 그들을 위해 기뻤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4/5125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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