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마음을 닦으며 수련생과 협력해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어릴 때부터 대법을 접했지만 수련에 들어서지는 못했다. 2020년 전염병이 발생해 세상이 변했지만 나를 일깨우지는 못했고, 나는 여전히 속인의 상태였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나는 아주 또렷한 꿈을 꿨다. 나는 하늘에서 거센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탁한 오수가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 속에서 오르내리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는 혼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놀랐다. 바닥에 거의 떨어지려 할 때, 아득히 높은 하늘의 무한한 빛 속에서 거대한 부처님의 손이 우리를 하늘로 건져 올려 구해줬다. 나는 흥분해서 깨어났고 예전에 들었던 사부님 설법 녹음 중의 ‘진흙과 함께 뒤섞인다’라는 법이 떠올랐다. 나는 어머니의 대법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대법제자가 다운로드해 준 신전문화와 교류문도 들었다. 이렇게 수련의 길을 열게 됐다.

1. 가정에서 조금씩 심성을 높이다

나는 결혼한 이후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주 이혼하고 싶었지만 이혼하지는 못했다. 남편에 대한 선입견이 매우 깊어 우리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되도록 아이를 갖지 않았고 장기간 냉전 상태였다. 대법을 수련한 이후, 나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다. 남편을 가족으로 여기고 그의 단점을 담담하게 대하려 했으며, 점차 남편에 대한 관념을 내려놓고 그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하며 그에게 잘해줄 수 있게 됐다. 또한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바른 법이라는 진상도 알려줬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우리 관계가 누그러진 것을 보고 손주를 가지라고 재촉했다. 아이가 생긴 이후, 나는 실질적으로 심성 면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원래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볼 생각이었고 남편은 일부러 육아휴직을 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 시부모님이 이사 와서 함께 살게 됐다. 시어머니는 “나는 일부러 너희들 아이를 돌봐주러 온 거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시어머니가 나를 돌보러 왔다고 이해했다. 아이 아빠는 시어머니가 있는 것을 보고 휴직을 취소한 채 아이를 나몰라라 했고, 밖으로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보며 동고동락하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밤에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고, 아무리 졸리고 몸이 불편해도 일어나서 직접 해야만 했다. 나는 본래 시어머니가 나를 돌봐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시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요리가 우리 입맛에도 맞지 않았다. 나도 요리를 할 줄 몰라 자주 굶주렸고, 어떨 때는 한밤중에 배가 고파 깨어나면 물만 한 모금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시어머니가 아이 돌보는 것을 많이 도와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으나, 낮에 아이가 먹고 싸고 울거나 혹은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켜야 할 때면 시어머니는 늘 공교롭게 외출하고 없어 별로 돌봐주시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편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고, 늘 나에게 소리치고 나를 질책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그에게 하라고 시켜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자주 출근도 안 한 채 하루 종일 휴대폰만 갖고 놀며 밤낮이 뒤바뀌었으며, 늘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내 마음은 원망과 불공평함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공산당의 계획생육 정책 때문에 우리 지역은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어서, 며느리가 되면 대다수가 집안의 ‘여왕’이 됐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모두 예뻐하고 양보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다. 이에 비하면 나는 마치 남의 집에 얹혀사는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려 했고, 점차 법공부를 통해 우리 사이에 어떤 인연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서서히 의존심, 원망심,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닦아냈고, 명리정(명예, 이익, 정)과 질투심, 이기심, 자아, 두려운 마음, 극단으로 치우치는 마음 등 많은 것을 닦아냈다. 내가 끊임없이 심성을 닦는 과정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도 변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들은 동시에 어머니 집에서도 닦게 됐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는 자주 어머니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올케 A 수련생은 신수련생으로 두 아이가 있어서 아주 힘들었다. 한번은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발생해 서로 기싸움을 했는데, 두 사람 모두 법리에 따라 안으로 찾을 줄을 몰라 크게 다퉜고, A는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 던지며 쓰레기통을 어머니 등에 던졌다. 내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고충을 이해했지만 속으로는 온통 그녀가 어떻게 잘못했는지만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어머니를 이렇게 대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닦을지 생각하며 명혜망을 열어 수련생의 교류를 보았다. 수련생의 글에 이끌림과 동시에, 수련생이 인용한 사부님의 법 한 구절을 보게 됐다. “당신들은 모두 동수인데, 당신들은 적인가? 당신들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당신들은 마땅히 가장 친밀해야 하며, 서로 도와야 하는데, 당신은 누구를 보고 눈에 거슬려하는가?”(각지 설법 14-대법 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당신은 누구를 보고 눈에 거슬려하는가?’ 이 구절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고, 내 그 마음은 단번에 내려놓아졌다. ‘그렇다. 우리는 동수(同修)다! 우리는 사람을 구한다는 공동의 사명을 지녔음을 알게 되니 그녀가 아주 예뻐 보이는구나!’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에 감동해 마음의 응어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동시에 나도 안으로 찾아 자신이 늘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에게 매우 불효하고 불경스럽게 행동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것들은 모두 현대 관념과 행동이므로 나는 고쳐야 한다.

이후 나는 올케에게 정념을 내보내고 부정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한번은 발정념 시간이 됐는데도, 올케는 아주 화가 난 모습으로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 예전 같으면 나는 ‘그녀는 왜 발정념을 안 하지?’라고 원망하며 생각했을 것이고, ‘자신의 수련에 왜 저렇게 무책임할까’ 하고 여겼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과 생각이 아주 발랐고 한 가지 생각을 더했다. ‘올케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녀의 정념을 가지(加持)해주자.’ 올케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품지 않았다. 나중에 서서히 심성을 닦는 법을 배우게 됨에 따라 올케의 상태도 갈수록 좋아졌다.

또 한번은 정말로 자신을 찾는 법을 배웠다. 그때 수련생들이 한 법회에 참가하는데 내가 운전해야 했다. 돌아올 때 어머니 집에 도착했는데, 아이를 안고 있어서 불편했기에 남동생에게 차를 좀 주차해달라고 부탁했다. 남동생이 대답하며 가려고 할 때 뜻밖에도 올케가 즉시 남동생에게 자기 밥을 좀 퍼달라고 했다. 남동생이 잠시 후에 퍼주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내 첫 번째 생각은 화를 내며 밖으로 찾는 것이었다. 그녀의 질투심이 강해서 남동생이 나를 도와주는 꼴을 못 본다고 여겼다. 당연히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었고, 이전에 형성된 관념이었으며 예전에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생각을 돌려 다시 생각했다. 우연한 일은 없는데 이 일은 나의 무엇을 닦으라는 것일까? 내게 질투심이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가? 찾고 또 찾다가 나는 한 가지가 떠올랐다. 법회가 곧 끝날 무렵 나는 아직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수련생이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나는 수련생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돌아왔지만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는데, 이것이 사심(私心)이고 자아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30분 동안 계속 울자, 그 수련생은 계속 내가 정(情)이 너무 무겁다며 내가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이가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이런 일에 부딪히면 그녀가 먼저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서 울지 않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수련생에게 동의하지 않았고 원망하는 말이 있었으며 쟁투심과 원망심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나 자신의 장(場)이 상화(祥和)롭지 못하고 자비롭지 못했던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올케에 대한 화가 사라지자 올케도 갑자기 태도가 변해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가장 잘 닦지 못한 것은 바로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였다. 어머니는 대열에서 이탈했던 노수련생이었는데, 내가 수련한 이후 어머니도 점차 다시 수련하셨다. 수련하기 전에 나와 어머니는 늘 3일에 한 번씩 작게 다투고 5일에 한 번씩 크게 다퉜다. 수련 이후 나는 많이 고쳤다. 당연히 처음에는 안으로 찾지 못했고 그저 고통스럽게 ‘왜 우리 엄마는 이럴까?’라고 생각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어머니가 다시 수련을 시작하셨을 때 여전히 속인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한번은 내가 어머니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는데, 어머니가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리를 많이 이해해 대법에 따라 행하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만난 이후, 수련인 같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는 어머니를 마주하고 나는 무의식중에 또 말다툼을 벌였다. 이 일은 나를 후회스럽고 또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분명히 대법을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이토록 쟁투심이 강한가?’ 나는 어머니가 제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온 것인데 이렇게 한바탕 다투어 어머니를 잔뜩 화나게 했으니 또 어머니가 어떻게 또 법을 잘 배우겠는가? 나는 마음속이 몹시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펼쳐 무심코 ‘정진요지(精進要旨)’를 열어 ‘진수(眞修)’를 외웠는데 내 마음이 쿵 하고 울렸다. 알고 보니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로운 것은 바로 명리정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련인으로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큰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럼 나는 좋은 일을 만난 게 아닌가? 모두 좋은 일이다. 나는 단번에 먹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마음은 즉시 괴롭지 않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방을 나가 어머니에게 사과하러 갈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올케와 어머니라는 두 개의 ‘거울’과 대조해봄으로써 나는 또 나 자신의 많은 좋지 않은 사상과 관념을 발견했는데,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만약 가족 수련생의 이런 ‘연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빨리 이런 사람 마음을 인식하고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2. 단체로 협력하고 서로 돕다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하는 동시에 나는 자주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감동했다. 두 가지 예만 들겠다.

예를 들어 한번은 내가 시어머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겼는데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 정말 어떻게 시어머니와 지내야 할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외출한 틈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B 수련생 집에 도착해 함께 외출하기로 약속했다. 이로 인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며칠 동안이나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 떠올랐고, 나는 한 가지 정념을 내보냈다. ‘나를 교란하고 내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어 내가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 마(魔)이니 전부 멸해버리자.’ 우리는 진상 소책자를 좀 챙겨 차를 몰고 나섰다. 가는 길에 우리는 한 마을에서 장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아이가 마침 잠들었다. 나는 B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서둘러 자료를 챙겨 마을에 가서 배포했다. 처음에는 진상을 잘 알리지 못했다. 나는 마음가짐을 조정하고 정념과 자비심을 더하며 계속해서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다. 한 권을 배포할 때마다 한 사람에게 알렸고, 5명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에 동의했다. 자료를 다 배포한 후 나는 환희심과 과시심을 닦아내는 데 주의했다(나오면 바로 멸해버렸다. 본래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시고, 게다가 ‘이런 마음은 마에게 이용되기 아주 쉽다’고 하셨으니 이런 마음이 중생구도에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차에 돌아와 보니 겨우 30분이 지났고 아이는 마침 깨어나 내게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감동했다. 내 온몸이 불광(佛光) 속에 감싸여 있었고 마음속은 햇살로 가득 찼다. 집에 돌아온 후 아주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와 인사를 나눴고, 게다가 이전에 구체적으로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온 후 또 아이가 이전 며칠 동안 하던 기침도 멎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말씀하신 ‘서로 구조(救助)’라는 법리가 떠올랐고, 이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됐다.

한번은 내가 B와 함께 C 수련생 집에 모임에 갔는데 소책자를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말을 잘할 줄 몰랐는데 C가 나에게 자료 없이 진상을 알려보라고 격려했다. 그래서 그녀들 둘은 발정념을 했고 나는 걱정하는 마음을 돌파해 물건을 사는 기회를 빌려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중생의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었고 기꺼이 삼퇴해 평안을 지키려 했다. 그중 한 여성은 처음에 위챗 영상 통화를 켜고 있었다. 나는 원래 그녀에게 USB를 주려 했으나 두려운 마음에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미소를 지으며 내가 진상을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그녀에게 영상을 꺼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동의했다. 나는 진상을 알렸고 우리는 상호 교감이 아주 좋았다. 그녀에게 삼퇴를 물었을 때 그녀는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가명을 지어주고 이후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기회를 꽉 잡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의했고 탈퇴한 이후 아주 즐거워했다. 이후에 나는 B와 C가 발정념을 했기에 그녀가 교란을 받아 가버리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이번에 중생이 구원된 것은 우리 세 사람이 단체로 협력한 성과였다.

수련을 통해 겁이 많고 내성적이며 화를 잘 내던 내 성격도 용기 있게 변했고, 부드럽고 명랑하게 변했으며, 조금씩 남을 위해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모두 대법의 위력이다. 이 몇 년간의 수련 속에서, 사실 여전히 ‘나’라는 글자가 두드러졌다. 내가 구원받았고, 내 층차가 높아졌으며, 내가 사람 구하는 일을 했다는 등등이었다. 법의 기준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앞으로의 수련 속에서 사람을 많이 구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내 글을 인내심 있게 읽어준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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