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을 앞두고
글/ 독일 거주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또다시 ‘7·20’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일으켰던 날이 떠오른다. 27년이 지났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는 박해 속에서 생명을 잃은 파룬궁수련생들을 추모하고, 또 더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박해를 알고 하루빨리 박해가 종식되기를 희망한다. 올해 이맘때, 나는 2025년 7월 18일 나를 평생 잊지 못하게 만든 그날의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그날 나는 중국에서 독일로 갓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처음으로 심야열차를 탔다. 밤새도록 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7·20’ 반(反)박해 기념행사에 참가할 참이었다.
한밤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차가 갑자기 도중에 운행을 멈췄고 모든 승객이 내려서 환승 열차를 기다렸다. 승강장 벤치에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다음 열차가 왔다. 나는 인파를 따라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막 출발한 뒤 무심코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더듬어 찾았는데 휴대폰이 만져지지 않았다. 순간 휴대폰을 승강장 벤치에 둔 채 열차에 탔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독일에 갓 도착해 환경이 낯설어 내게 휴대폰은 거의 나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독일어를 할 줄 몰라 환경이 완전히 낯설었기에 앞으로의 환승 노선, 지도, 내비게이션, 다른 사람과의 연락 모두 휴대폰에 의지해야 했다. 되찾지 못한다면 ‘7·20’ 기념행사 참가는커녕 숙소로 돌아가는 것조차 몹시 어려웠다. 숙소 위치 정보도 모두 휴대폰에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초조하게 객차 안을 왔다 갔다 하던 중, 귀에 꽂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휴대폰에 연결됐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문득 발견했다. 휴대폰을 주운 사람이 바로 이 열차에 타고 있고 그것도 내가 있는 객차 근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 가닥 희망이 불타올랐다.
나는 객차 안을 살피며 영어로 “혹시 제 휴대폰 주우신 분 계신가요?”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이리저리 찾아다녔고 블루투스 이어폰은 휴대폰과 연결됐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초조하게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있던 몇몇 서양인 승객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그녀들은 몇 살에서 10대에 이르는 아이 몇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번역 앱을 사용해 그녀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감동하게 한 건 귀여운 소녀 몇 명이 어른들보다 더 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즉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내 번호로 몇 번이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그녀들이 계속 전화를 거는 동안 나도 줄곧 블루투스가 연결될 수 있는 범위 안을 오가며 찾아다녔고 희망을 품은 채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 전화로 발신했고 나도 끝내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갑자기 한 소녀가 흥분해서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한 독일 신사가 서서 내 휴대폰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고 휴대폰을 건네받는 순간,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던 마음이 단숨에 따스한 햇볕 속으로 돌아온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이때 객차 안의 모든 사람이 내가 휴대폰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쁘게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내가 휴대폰을 찾은 것을 기뻐해 주었다. 그 순간 말로는 내 감사함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객차 양쪽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깊이 고개를 숙이며 “당케(감사합니다)”라고 거듭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이들의 선의는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에게 오랜만에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번역 앱으로 이 독일 신사에게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제게 주소를 남겨주세요. 기념으로 중국 우표를 좀 보내드리고 싶어요. 아버지가 제게 남겨주신 거랍니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당신이 휴대폰을 찾을 수 있어서 저도 기쁩니다. 전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우겨도 그는 끝내 어떤 선물도 받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전화번호만 남겨두었다.
그 후 나는 내 휴대폰 찾는 것을 도와준 소녀들과 그녀들의 어머니 앞으로 가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만약 그녀들이 열성적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휴대폰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작은 선물을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소녀들에게 연락처를 물었고 그녀들은 기쁘게 승낙했다.
그녀들이 적어준 국가 전화번호 지역번호가 독일 것이 아니기에 혹시 잘못 적은 게 아닌지 물었다. 그녀들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잘못 적은 게 아니에요. 우리는 스페인 사람인데 독일에 여행 왔어요.” 그때서야 나는 그녀들도 먼 곳에서 온 관광객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들과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그녀들은 기분 좋게 승낙했다. 이 사진은 내가 지금까지 간직해 온 소중한 추억이 됐다.
그 후 나는 마침내 무사히 열차를 갈아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7·20’ 반박해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이 선량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
훗날 나는 내 휴대폰을 돌려준 독일 신사와 연락이 닿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중국에서 갓 넘어온 파룬궁수련생입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휴대폰을 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7·20’ 반박해 기념행사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숙소로 돌아가기도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저의 모든 노선, 열차 편, 위치 정보가 다 휴대폰에 있었거든요.” 나는 기념으로 그에게 중국 우표를 보내주고 싶다고 다시 뜻을 밝혔으나 그는 여전히 어떠한 보답도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나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2025년 12월 크리스마스에 나는 특별히 그와 귀여운 몇 명의 소녀에게 명절 축하 인사를 보냈다.
독일에 갓 온 탓에 우편 발송 같은 일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올해 1월이 되어서야 나는 마침내 파룬궁 진상 작은 연꽃을 그 세 명의 귀여운 소녀에게 부칠 수 있었고, 편지로 왜 이렇게 오래 걸려서 선물을 보냈는지 설명하며 그녀들에게 사과했다. 그녀들은 연꽃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나는 또한 그녀들에게, 그녀들이 휴대폰을 찾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무사히 ‘7·20’ 반박해 기념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들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했다.
이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감회가 새롭다. 27년 동안 얼마나 많은 중국 수련생들이 잔혹한 박해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고 억지로 고향을 떠나 해외를 떠돌며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난을 겪었으며 가족을 잃고 자유를 잃고 고국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고 있는가.
그러나 가장 힘들고 무력할 때, 무수히 많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심, 선의, 그리고 사랑으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따뜻함과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잃어버렸다 되찾은 휴대폰 한 대. 남들에게는 그저 주운 물건을 탐내지 않고 돌려주는 평범한 일에 불과하겠지만, 내게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인간성의 선량함을 보게 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소중한 진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7·20’을 맞아 나는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도와주셨던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다른 사람이 가장 힘들고 무력할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고, 선량함으로 선량함을 지켜주시며 진심으로 진심을 따뜻하게 감싸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다 함께 자유, 선량함, 그리고 양심을 아끼고 수호하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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