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이 내게 이타적이고 사심 없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마음이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다. 매일 연공(煉功)하고 법공부를 하니 마음에 잡념이 없고 기분과 정신이 모두 좋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기쁘게 대답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했어요. 대법은 사람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를 나중에 생각하며, 이타적이고 사심이 없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좋다고 했다.

1. 대법의 위력이 나를 구하다

수련한 지 반년이 지난 1999년 4월 어느 날 아침, 연공장에서 연공을 마치고 우리집 뒷방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 간 지 5분도 채 안 돼 우리집 화장실 뒷벽이 무너져 내 머리와 등 위로 쏟아졌다. 나는 바닥에 깔렸다가 잠시 후 기어 일어났다. 손가락은 검붉게 변했고 손등도 까져 피가 흘렀으며 등에 깔렸던 벽돌들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그때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해서 만져보니, 맙소사! 머리에 오리알만 한 혹이 나 있었고 이마는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머리카락, 신발, 옷에는 온통 석회와 벽돌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당시 마음이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 내가 수련생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두렵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사부님 법상 앞으로 가서 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부님,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오늘 이 일을 당한 사람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아무리 젊고 건장하더라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위력이 나를 구해주신 것이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었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날 밤 바로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를 했고 아침에는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다. 며칠 만에 몸의 상처와 머리의 큰 혹이 모두 나았다.

2.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

2000년 4월, 우리 10여 명의 수련생은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때 큰아들은 마침 집을 수리하고 있었고 아들과 며느리 모두 출근해야 했기에 집 수리와 관리는 나와 남편이 맡고 있었다. 작은아들도 출근했고 작은며느리는 임신 8개월이라 내가 돌봐줘야 했다. 이때 마음속에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갈등이 일었다. 집에 남아 아들들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것인가? 이 문제들 때문에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이틀 밤낮의 싸움 끝에 나는 이기심을 이겨내고 반드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셋째 날 점심을 차려놓고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집을 나섰고 11명의 수련생과 차에 탔다. 어린 손자를 데리고 가는 수련생도 있었다. 나는 기필코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했다.

아쉽게도 베이징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제지당했고 억류됐다. 넷째 날, 현지 공안국 마당으로 끌려갔는데 소총을 멘 한 무리와 권총을 든 한 무리가 우리를 가운데 에워쌌다. 마당에는 구경하는 군중이 많이 서 있었지만 나와 수련생들은 미소를 지으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다. 방 하나에 수련생 한 명씩을 넣고 경찰 한 명이 밤새 심문했는데, 나는 대법 연공 체험을 이야기했다.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약 한 번 안 먹고 주사 한 번 안 맞았으며, 몸이 가벼워지고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으며 도덕성이 좋아져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는 나도 사람을 욕하고 때리며 나 자신만 위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반말로 “누가 너보고 베이징에 가라고 했어?”라고 묻기에 나는 나 스스로 갔고 아무도 가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마음씨도 착해졌으며 도덕성도 향상돼 가장 좋은 사람이 됐기에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섯째 날, 그들은 나와 6명의 수련생을 구치소에 가뒀다. 그 두 방은 새로 지은 단층집이었고 다른 5명의 수련생은 구역 내 구류소에 갇혔다. 우리를 가둔 방에는 의자도, 침대도, 화장실도 없었다. 방이 습했는데 나중에 1인용 침대를 하나 구했다. 나이 든 수련생 한 명이 병업 상태를 보여 그 침대에 눕고 나머지 6명은 양쪽에 앉아 있어야 했다. 박해받는 7일 동안 독방에 갇히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으며 강제 노동을 당하고 매일 심문을 받았다.

이 7일 동안 두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저녁 5시 반이 되면 우리는 방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 평소 방에 요강을 하나 두었는데 그날은 요강을 놓아두지 않았다. 한 수련생이 배가 아파 대변을 보려 했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떤 수련생이 우리가 대법의 ‘진선인’을 배우는 사람이니 좀 참자고 했다. 잠시 후 그 수련생의 배가 아프지 않았고 다음 날까지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우리가 갇혀 있던 며칠 동안 매일 비가 내렸는데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은 같은 줄의 방에 있었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우리 방은 처음에는 습했지만 비가 내린 날에는 오히려 뽀송뽀송해졌고 방에 비도 새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건물인데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방은 천장 곳곳에서 비가 샜다. 나중에 감시자가 우리 방 문을 열어보고 “헉!” 하고 놀라 소리쳤다. 그는 우리 방 지붕이 새지 않고 바닥도 말라 있는 것을 아주 신기해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셨어요.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보답이 따르죠.” 그들은 떠났다.

3.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업

2001년, 남편이 타지로 돈을 벌러 가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며 다리와 머리가 아프고 고열이 나면서 기침과 콧물이 났다. 나중에는 뒷머리도 아프고 저녁에는 밥도 먹기 싫어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때는 섣달이었는데 나는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기침하고 토했다. 입과 코에서 나오는 숨이 불처럼 뜨거워 휴지를 가져다 계속 콧물과 침을 닦았고 밤새도록 기침하고 토했다. 그때는 그저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발정념을 할 줄도 몰랐다. 다음 날 연공을 하지 못했고 바닥을 보니 온통 내가 닦은 휴지투성이였는데 휴지가 여전히 붉었다. 그제야 내가 피를 토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는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제 몸을 정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날 작은아들과 작은며느리가 공장에서 돌아와 쓰레받기에 피 묻은 휴지가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머니, 이 피 묻은 휴지는 뭐예요?” 나는 대답했다. “어젯밤 코와 입에서 토해낸 피란다.” 며느리가 “왜 병원에 안 가셨어요?”라고 묻기에 나는 말했다. “나는 병이 없어서 병원에 안 가. 나는 대법을 배우는 사부님의 참된 제자라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는 거야.” 작은며느리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4. 진상을 아는 사람들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다

나는 올해 82세로 매일 꾸준히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법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상을 아는 사람들이 대법 사부님의 보호를 받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뻐한다.

어느 날 도로가에서 한 운전기사를 만났는데 그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차창 밖에서 그에게 말했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매일 안전 운전하시고 가정이 화목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대법 수련자인데, 기사님도 좋은 사람이 되셔서 진실하게 말하고 참된 일을 하며 선량하게 참고 견디시길 바랍니다. ‘진선인’의 기준에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평안하고 건강할 수 있어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믿으세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될 겁니다.” 나중에 그는 내게 160위안이 든 봉투를 주려 하며 말했다. “할머니, 말씀 참 잘하시네요. 살면서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봐요.” 나는 말했다. “봉투는 받을 수 없어요. 마음속으로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또 어느 날은 40대 남성을 만났는데 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평안을 하나 선물할게요. 평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고 삼퇴하세요.” 그가 말했다. “10년 전에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분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호신부(護身符)도 하나 받았어요.” 내가 호신부를 한번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지갑에서 호신부를 꺼냈다. 보니 이미 색이 바래고 글씨가 약간 흐릿해져 있었다. 그는 이 호신부가 두 번의 재난을 넘기도록 보호해줬다면서 다시 물었다. “하나 더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그에게 호신부를 하나 주며 평안을 기원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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