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서 불혹까지, 한 기자의 20년 인생 변화

[명혜망](대만 선융 기자) 매일 시장과 기업 동향에 주목하는 경제지 기자 장위안장(張原彰)은 숫자의 오르내림 앞에서도 외부 변화 때문에 초조해하는 일이 드물다. 이 평온함이 투자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한 역사 수업에서 시작된 것이다.

20여 년 전 한 역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자신이 암에 걸렸으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해 다시 건강을 되찾은 인생 경험을 들려줬다. 그 순간 풋풋한 한 소년은 생명의 궤적을 바꾸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직장으로, 소년에서 불혹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의 수련 경험은 장위안장이 인생과 업무, 인간관계를 마주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한 역사 수업이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열다

개학 후 첫 역사 수업이었다. 고등학생 장위안장은 교실에 앉아 페이샤(沛霞)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가 웃으며 반 전체에 자기소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페이샤는 교수법이 전문적이고 유머러스한 역사 선생님이었다. 수업 시간에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에 암을 앓았지만 파룬궁 수련으로 심신이 개선돼 다시 교단에 서서 건강하게 인생을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위안장의 한 절친한 친구는 선생님의 소개를 듣고 파룬따파가 슬픔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온을 되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 장위안장을 끌고 함께 가서 연공에 참여했다.

학교에서는 일부 교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파룬따파 연공장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관심 있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개방했다.

친구는 결국 꾸준히 하지 못했지만 장위안장은 포기하지 않고 견지했다. 가장 많을 때는 약 30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함께 가부좌를 틀고 연공하며 캠퍼스에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소년 시절의 수련 체험

연공을 시작한 후 장위안장은 곧바로 신체적인 변화를 느꼈다. 위안장은 당시의 체험을 회상하며 말했다. “연공을 한 달 남짓 했을 때 온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속에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고 한겨울에도 종종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연공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날 이른 아침 집에서 가부좌를 할 때 몸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느낌은 매우 신묘했습니다. 온몸이 무게가 없어져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사춘기였던 장위안장은 원래 여드름이 잘 났는데 연공을 반년 한 후 피부가 하얗게 깨끗해지고 안색도 더 발그스름해졌으며 건강 상태도 갈수록 좋아졌다. 이런 변화는 그가 계속 수련하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그는 선생님이 추천했던 ‘전법륜(轉法輪)’이 생각나 며칠에 걸쳐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후회였습니다. 이 책을 왜 좀 더 일찍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습니다.”

책 내용은 그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인생의 의미와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해답을 주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저는 종종 저와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이나 어떤 관점으로 살아야 세상에 이로울지 모색하곤 했습니다. 다 읽고 났을 때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제 원래 인식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거 수련 중 겪었던 몇몇 체험과 의문도 책 속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가 말했다. “당시 마음속으로 한 가지 기로에 섰습니다. ‘속인 속에서 인식한 것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대법이 가리키는 길을 믿을 것인가?’”

파룬따파를 접한 후 일어난 여러 변화와 법공부, 연공 속에서 느낀 평온함과 든든함을 돌아보며 장위안장은 흔들림 없이 수련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캠퍼스 갈등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다

수련에 들어선 후 장위안장은 자신의 언행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할 때면 몸에 열이 나는 느낌이 들었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과거에 쉽게 생기던 많은 감정과 집착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제가 집착심을 하나 내려놓을 때마다 머리에서 무거운 짐을 덜어낸 것처럼 순식간에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그 좋지 않은 물질이 치워지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머릿속으로 불어오는 것 같았고 무척 상쾌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는 수련이 단지 신체적 변화일 뿐만 아니라 내면의 변화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图1:修炼后,原彰表示自己逐渐放下争强好胜的心态,待人更加真诚平和。(明慧网)

수련 후 장위안장은 쟁투심을 점차 내려놓고 진실하고 평온하게 사람을 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명혜망)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학생이 오해로 장위안장에게 적의를 품었고 심지어 뒤에서 그를 헐뜯고 공격했다. “원래 제 성격이었다면 인맥을 동원해 반드시 반격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제 마음속에 또렷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수련인이니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반에서 자리를 바꿨는데 그 학생이 마침 장위안장 바로 앞자리에 앉게 됐다. “당시 그가 제게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굴면 저는 제 자신에게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따금 화를 참기 어려울 때면 즉시 ‘전법륜’을 꺼내 읽으며 저 자신과 대조했습니다.”

차츰 장위안장은 일이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해서 자신도 똑같은 태도로 그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한번은 시험지를 나눠줄 때 그 학생이 찢어진 시험지를 그에게 던졌지만 장위안장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고개 숙여 고맙다고 인사했으며 상대방 생일에는 먼저 간식을 나눠주었다.

1~2개월 후 이 학생의 태도가 점차 바뀌어 먼저 장위안장에게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장벽도 선의와 관용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봉쇄된 정보를 전하다

1999년부터 시작된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와 모함으로 많은 중국 민중이 진실한 정보를 접할 수 없게 됐다. 성인이 된 후 장위안장은 틈나는 대로 인터넷을 통해 중국 민중에게 관련 정보를 전하며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기를 바랐다.

그가 말했다. “친구들이 온라인 게임을 할 때 저는 진상을 알리는 데 시간을 썼는데 이는 제가 원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마음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제게 가져다준 기쁨과 든든함은 다른 많은 오락이 주는 만족감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통제되고 정보가 봉쇄된 인터넷 환경 속에서 많은 누리꾼은 처음에 오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며 장위안장도 속으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감정에 휩쓸려 상대방과 설전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선의를 품고 그들의 의문에 답해줄 것인가?’ 당시 20세도 채 안 된 청년에게 이는 한 차례 심성 고비이기도 했다.

한번은 어떤 중국 학생과 온라인으로 대화했는데 잘못된 정보의 영향을 받아 장위안장에게 불친절하게 대했고 그가 하는 말도 믿지 않았다. 장위안장은 말다툼에 빠지지 않고 담담히 사실을 설명했다. 뜻밖에도 상대방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고 나중에는 무엇이 수련인지 더 알아보고 싶어 했다.

또 한 중국 네티즌은 오랫동안 그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처음에 장위안장은 이상하게 여겼다. 상대방이 접속할 때마다 마치 처음 접하는 것처럼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인내심을 갖고 대답했다.

나중에 상대방은 자신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지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며 외부와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 한 대를 같이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접속해서 장위안장과 대화할 때마다 매번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된 순간 장위안장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가 말했다. “많은 대만 사람에게 인터넷은 그저 타자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더없이 자유로운 오락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글자 하나하나는 어둠 속에서 얻은 아주 소중한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경제지 기자의 눈에 비친 득과 실

어느덧 장위안장은 20여 년의 인생길을 걸어 경제지 기자가 됐다. 일하면서 그는 매일 산업 동향과 기업 경영, 시장 변화를 접한다. 주변 친구들 모임에 가면 어떻게 투자해 더 많은 부를 얻을지 자주 논의하고 마음도 쉽게 시장의 등락에 따라 오르내린다.

하지만 오랜 수련은 그가 돈과 이익을 마주할 때 한층 평온함을 유지하게 해줬다. “우리 마음속에는 기준이 있어 운명에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지 못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제가 벌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 대법은 제가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을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는 또한 진심으로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을 때 삶 속의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오히려 점차 해소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예전에는 부주의하게 일을 망치기 일쑤였고 대인관계에서도 마찰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선인(眞·善·忍)’의 마음가짐으로 마주할 줄 알게 되자 도리어 평온하고 순조로운 환경을 갖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장기간의 수련이 가져다준 평온한 마음가짐 때문인지 장위안장의 젊은 얼굴과 상화로운 분위기는 종종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의 실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외적인 젊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세월의 담금질을 거쳐 형성된 내면의 안정과 여유로움이다.

소년에서 불혹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의 수련 여정을 돌아보며 장위안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정말 제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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