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제자들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공 악당에게 박해받아 직장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고 이익을 빼앗기며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깊이 묻곤 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1992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중국에서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고 거의 1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법을 접했다. 대법 안에서 많은 사람은 온몸이 가뿐해지고 건강해지는 기쁨을 즉각 체험하며 수련을 이어갔고, 또 많은 사람들은 ‘진선인(眞·善·忍)’의 힘이 가져다준 가정의 화목과 순탄한 직장생활을 경험하며 기쁨에 넘쳤다. 그런데 1999년 대법에 대한 전례 없는 사악한 박해가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떠나고 말았다.
박해가 오늘까지 이어진 지 벌써 27년이 됐다. 이 27년 동안 끊임없이 폭로돼 온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는 전무후무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이 지구상에서 전혀 있어본 적 없는 가장 사악한 일, 대법제자에 대한 생체 장기적출까지 자행됐다. 수련을 지속해 온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가정이 파괴되고 직장을 잃었으며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세상에서 얼마나 명망과 재산을 누렸든, 금슬 좋은 배우자가 얼마나 해로를 맹세했든, 슬하의 자녀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든, 대법제자가 굳건히 수련하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행복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이 인생의 신조가 돼버린 이 시대에, 신(神)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 이 수련자들은 목숨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자신을 잊은 채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고 있다.
왜일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이는 비단 수많은 대법제자 가족과 친구들이 27년간 깊이 고민해 온 의문일 뿐 아니라, 박해에 가담한 자들조차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완고하고 집요하며 세속의 이익도 마다하고 목숨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27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27년이면 갓난아이가 청년으로 성장하고, 청년이 단련되어 중년이 되며, 한창나이의 사람도 노년으로 접어든다. 27년의 인생길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풀 수 없을 것 같던 질문에도 답을 드러내 준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중생이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진선인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마음 깊이 인정하며, 그로써 중화 전통의 기본적인 보편 도덕관을 되찾고 도덕적 규범을 갖춘 전통인(傳統人)으로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공 악당이 퍼뜨린 모든 거짓과 모함은 자연히 저절로 무너지게 돼 있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수련 이야기가 있으며, 그 이야기들은 펼치면 하나같이 길고 또 길다. 분량상의 이유로 이 글에서는 내가 가정에서 맡은 역할을 통해, 한 대법제자가 세상에서 늘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드러내는 모습을 나눠보려 한다.
딸로서
부모님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여동생은 대학에 다닐 때 먼 타향으로 떠나 이후 외국에 뿌리를 내리고 결혼해 아이를 낳은 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가 전부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돌봐드리는 짐은 내 어깨 위에 놓였다.
부모님이 아직 일하실 때는 각자 바쁘게 지내느라 밀접하게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갈등이 있다면 주로 내 학업 문제에 집중됐다. 내가 좋은 직장을 갖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갈등은 다시 결혼 문제로 옮겨갔다. 일상의 사소한 마찰이 종종 생기긴 했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매우 화목하고 좋았다.
대법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특히 1999년 중공 악당의 박해가 시작된 이후, 그리고 내가 악당에게 두 차례 박해를 당하고 나서부터 체제 안에 몸담고 계시던 부모님은 집 안에 ‘위험분자’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으셨다. 대법에 관한 이야기는 가정의 금기 사항이 됐고, 수십 년에 걸친 중국공산당(중공)의 세뇌로 부모님은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셨으며 어떠한 진상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셨다. 그나마 화목했던 가정 분위기는 금세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말하는 태도가 그토록 낯설고 멀게 느껴졌으니, 마치 내가 언제라도 분신자살을 하거나 사람을 해칠 것으로 보셨다.
이처럼 극도로 경계하고 적대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알려드리는 것 외에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언제나 대법제자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언제나 부모님의 이익과 감정을 먼저 생각하며, 언제나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다. 말로 소통하기 어려울 때는 행동으로 소통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겨운 날들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부모님은 퇴직 연령에 이르셨다. 예전의 바쁨과 떠들썩함을 잃은 노후의 삶은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일상과 날마다 반복되는 적막함뿐이었다. 한때 위세당당했던 분들이 이제 평범한 서민의 본모습을 체험하기 시작하셨다. 그제야 부하 직원 없이 혼자인 적막함을 느끼고, 가족 곁에 있어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되셨다. 그리고 많은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이 동반의 시간이, 사실 부모님께서 대법을 수련하는 딸을 직접 알아가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됐다.
부모님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나는 시간제 가사 도우미와 기사를 고용했고 모든 생활비를 내가 부담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챙겨드리고, 정해진 시간에 함께 산책하며 집안의 모든 것을 돌봤다. 도우미가 없을 때는 내가 보모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비서가 되고 힘쓰는 일꾼이 됐다. 집안의 모든 것, 부모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해드렸다. 주변 친구분들이 잇달아 요양원으로 떠나고, 아직 가지 않은 친구들도 내가 늘 부모님 곁에 함께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셨다. 자기 자식들은 일주일에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면 다행이라고들 하셨다.
부모님을 곁에서 모신 이 세월은 내가 심성을 갈고닦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퇴직 전까지 우리는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지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격의 차이, 문화의 차이, 미감의 차이, 취향의 차이, 식견의 차이에다 나에 대한 심리적 경계와 적대감까지 더해져 정말 참기 힘들 때가 많았다. 특히 어머니에 대해서는 원망심이 많이 생겼다. 어머니는 당신의 생각대로 갖가지 무리한 요구를 하시고 인터넷에서 들은 것이면 무조건 따르셨다. 전기온수기는 누전 위험이 있다고 쓰지 못하게 하시고, 통 생수는 불결하다고 안 된다 하시고, 밤에 휴대폰 충전은 폭발 위험이 있다고 안 된다 하셨다. 내가 손님에게 음식을 집어드리면 당신이 드셔야 할 게 줄었다고 화내시고, 시누이에게 설 선물을 보내면 당신 자매들한테도 줘야 한다고 화내시고, 무언가 없어지면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훔쳐갔다고 하셨다.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 내 사람 마음을 자극했다. 처음엔 도리를 말씀드리려 했는데, 어머니는 당신만의 논리를 고집하시는 데다 연세가 드셔서 청력도 나빠져 한 가지를 이해시키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어머니의 무리한 요구에 침묵으로 맞서기도 했다.
내가 악당에게 두 차례 박해를 당한 뒤 나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분이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늘 경계심과 경멸로 가득했다. 이분이 정말 내 어머니인가 싶었다. 한때는 우리 두 사람이 거의 말을 나누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말을 하면 곧바로 다퉜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장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거나 다른 사람을 고용해 돌봄을 맡기고 해외로 나가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법제자이고, 부모님은 여전히 중공의 거짓에 미혹돼 계신다. 진상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 큰 도태 속에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니, 이대로 두 분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진선인’을 수련하는 수련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깊이 자책하며 사부님의 설법을 거듭 공부하면서 생각했다. ‘이처럼 완고한 노인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선(善)이며, 어떻게 해야 진상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나는 지름길이란 없으며, 오직 생각 하나하나, 일 하나하나에서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항상 어머니를 위해 생각하며,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부모님을 나의 두 아이처럼 돌봐드리자. 오직 사랑과 포용만 있을 뿐이다. 자아를 모두 내려놓고, 내가 아이에게 포용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두 분을 포용하고 사랑하자. 아무리 유치하고 황당한 생각이나 요구라도 진지하게 따라드리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무슨 갈등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정말로 어려웠다. 마음속의 자아는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기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대법과 사부님의 도움 속에서 나는 조금씩 해내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전기온수기를 쓰지 못하게 하시면 차가운 물로 씻었고, 이것저것 못하게 하시는 것들을 모두 따랐다. 훗날 어머니 스스로 당신의 고집과 편집이 잘못과 혼란을 빚었는데 내가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변화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모든 무리한 요구에 다른 가족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오직 당신이 그토록 경계하고 방비하던 딸만이 조건 없이 당신의 ‘지시’를 받아들이고, 가장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물로 씻으며 전기온수기 누전 걱정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머니 스스로도 미안하셨던 것이다. 특히 내가 부모님을 돌봐드리기 위해 연봉 100만 위안의 취업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아셨을 때, 어머니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립하던 눈빛과 태도가 사라지고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웃음이 돌아왔다.
“너는 군자의 나라에서 온 게 아니니?”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 이것이 한때 나에게 적대적이었던 어머니가 지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내가 점차 자아를 내려놓고 오직 어머니를 위해 생각하는 수련 과정에서 예전의 많은 서러움은 오히려 사라졌고,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니 이 노인이 꽤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부모님 눈에 나는 흠잡을 데 없는 딸이다.
부모님은 실제 나이보다 20살은 젊어 보이신다. 친구분들과 예전 부하 직원들 모두 나 같은 좋은 딸을 두셨다고 부러워한다. 누구도 의지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해외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자식과 손자들과 함께하는 천륜의 즐거움도 내려놓은 채 홀로 고령의 부모님 곁을 지키며 돌보는 것은 대법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님의 동료와 친구들, 나의 친구들, 남편의 친구들, 이웃과 모든 친척들이 이처럼 이타적인 효성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마디씩 한다. “정말 드문 일이야!”
‘백 가지 선 중에 효가 으뜸’이라는 것은 중화 전통 미덕의 기본 요구다. 전통에 맞는 합격한 좋은 딸이 되는 것 외에, 내가 부모님에게 또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오직 부모님이 진상을 알고 나의 실제 언행 속에서 진상을 보며,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고 ‘진선인’의 위대함을 느끼시길 바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쉬지 않고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두 분은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를 진정으로 알아보셨다. 특히 최근 수년간 끊임없이 폭로되는 중공 관리들의 부패를 통해 중공의 실체를 보셨고, 대법에 대한 중공의 모든 선전이 거짓과 모함이며 불법이라는 것을 깊이 믿으셨다. 진상을 점점 더 잘 알게 된 부모님은 모두 중공에서 탈퇴하셨다.
아버지는 파룬따파를 믿고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외우면서 병마를 벗어나셨다. 대법의 신기함과 불법(佛法)의 위력을 직접 체험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중공을 탈퇴하신 그날 밤, 나는 천목(天目)으로 그분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오랫동안 환호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아내로서
남편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어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을 갖게 됐고, 자기보호 심리가 매우 강하며 말투도 아주 강경해서 말이 거의 명령조다. 이공계를 우수하게 졸업한 그는 다른 사람의 말도 과학적 논리에 맞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다 두 차례 박해를 당한 뒤, 남편은 나를 과학을 모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판하게 됐고, 내가 충동적으로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남편의 상태를 보며 나는 그의 생각을 바꾸려면 수련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확인시켜주는 것뿐 아니라 수련자의 박학다식한 면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깊이 있고 논리적인 주제의 토론을 좋아하니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진지하게 준비해, 그에게 낯선 역사나 문화 주제를 쉽고 깊이 있게 풀어서 들려줬다. 서서히 남편은 내 선택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나의 가치관과 판단을 인정하게 됐다.
학식으로 그를 인정시키는 것은 그래도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면에서 그를 중심으로 하고 그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내가 친구들, 특히 이성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여가 시간은 모두 자신과 함께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수련 전의 나는 친구가 매우 많고 왁자지껄한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나는 반드시 나다운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혼 때문에 자신의 친구 관계와 사회적 모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 수련자로서 나는 전통적이어야 하고, 여자의 도리를 엄격히 지켜야 하며, 남편의 감정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모든 이성 친구들과의 교류를 끊었고 동성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꼭 연락을 유지해야 하는 일부 이성 친구의 사교 모임에는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남편이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어 가정의 온기와 보살핌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친구가 곧 그의 친구여야 했고, 남편이 연락을 원치 않는 친구들은 잠시 옆으로 제쳐두었다.
남편은 사교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순종적인 아내로 변한 것을 매우 기뻐했다. 소위 자아를 잃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실은 많은 부패한 관념을 잃은 것임을 체험했다. 그 이른바 유행과 패션, 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류는 모두 전통에 어긋나는 것으로, 훌륭한 아내이자 어머니라면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방탕한 시대에 이런 현숙한 아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대법 덕분이라며 남편은 대법에 대해 할 말이 없어졌다.
남편의 아버지는 남편이 다섯 살 때 문화대혁명 속에서 박해를 받아 기찻길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이듬해에는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부모 없이 성장하면서 남편은 온갖 냉대와 멸시를 다 겪으며 밥 한 끼도 채우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남편은 돈에 대한 통제 욕구가 매우 강하다. 우리가 함께 사업으로 번 돈은 모두 남편 혼자 관리했고, 심지어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수익도 빠짐없이 남편 손에 들어갔으며, 나에게는 매달 빠듯하게 쓸 수 있는 생활비만 줬다. 이것이 그가 돈을 통제함으로써 나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현대 여성에게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이 통제 방식에 대해 나는 대법 수련자로서 단 한 마디 불평도 한 적이 없다.
나의 매달 지출은 1,000위안 안팎을 유지했다. 미용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비싼 귀금속이나 화장품을 사본 적이 없으며, 의식주 모두 가장 평범하고 기본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주변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기업 고위 임원이면서도 헬스장에 다닌 적도, 마사지를 받은 적도, 금은보화를 걸친 적도 없고, 200~300위안짜리 옷 하나를 사면서도 한참을 망설인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것이 매달 지출이 한정돼 있어서가 아니라,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대법이 제자에게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체력과 미용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외모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편은 소수 민족이고 나는 전형적인 남방 출신 여성이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먹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밖에서 식사할 때 남편이 뭘 먹겠냐고 물으면, 처음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남편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음식을 고르는 일에서 내 의사를 내세울 수 없게 됐다. 이후 남편이 뭘 먹겠냐고 물으면 “당신이 정해요, 나는 뭐든 괜찮아요”라고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나는 그것을 먹었다. 수십 년의 부부 생활이 이렇게 흘러왔다. 집에서 먹든 밖에서 먹든 무엇을 먹을지는 나와 영원히 무관한 일처럼 됐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색함과 자아를 내려놓는 힘겨움이 있었는지는 대법을 수련하는 나 자신만이 안다. 처음엔 많은 불만과 마음속 원망에서 시작해, 나중엔 먹기 어려운 음식을 조금씩 삼키고, 그것에 서서히 익숙해지며 좋아하려 노력하는 것, 이 역시 마음을 닦는 과정이었다. 어떤 음식도 그 주인과의 인연이 있으니, 음식이 왔으면 감사히 받아 즐기고 좋아하고 알아가고 음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은 대법 안에서 수련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처음부터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함께 살면서 경제적 자유도, 사교적 자유도, 소통의 자유도, 심지어 무엇을 먹을 자유조차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완전히 자아를 잃은 이 결혼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또한 깊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음속의 자아가 내뱉는 분노이지, 사부님이 원하시는, 그의 생명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수련은 정말 어렵다! 자아를 내려놓는 것은 정말 어렵다! 방종한 보통 사람이 될 것이냐,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수련자가 될 것이냐 하는 선택 앞에서 대법이 나에게 방향과 힘을 주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진(眞)을 닦고 선(善)을 닦고 더욱이 인(忍)을 닦는 과정에서 남편을 변화시켜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관계를 유지했으며, 더 나아가 중생들에게 ‘진선인’을 실천하는 수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법은 위대하다. 대법은 한 사람을 생활의 작은 것에서부터 이타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로써 대법제자와 함께하는 모든 생명이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화목이며 무엇이 사랑과 존중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내의 끝없는 잔소리와 당부가 내게서는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들의 강한 통제 욕구는 남편들에게 온기와 자유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데, 나는 남편의 자유로운 공간과 생활 습관을 존중해야 하며 이것저것 지적하며 잔소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 가족들은 내가 남편에 대해 잔소리하거나 원망하거나 이것저것 캐묻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에 대해서, 그에게는 그의 친구 관계와 사생활이 있으니 나는 절대 건드리지 않으며, 완전히 자유로운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말하고 싶으면 내가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캐묻지 않는다. 밥을 하면 정말 맛있다고 칭찬하고, 집안일을 하면 정말 깔끔하다고 격려하며, 전자 제품을 수리하면 손재주가 정말 좋다고 칭찬한다. 마치 성장하는 아이를 대하듯 항상 장점을 보고 늘 잘하는 것을 칭찬한다. 집에서 남편이 미흡하게 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가서 마저 해주며 그의 수고로움을 헤아린다. 남편도 갈수록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세심해졌다. 사실 마음은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이니, 당신의 모든 행동을 가족들은 다 눈으로 보고 있다. ‘진선인’을 믿는 아내가 얼마나 좋은지는 남편이 가장 잘 안다.
남편들이라면 아내가 이런 사람이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가족 모두가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한다면 가정생활이 얼마나 즐겁고 화목하겠는가.
어머니로서
어머니로서 아이가 영아기일 때부터 힘겹게 돌보는 것에서 시작해 아이가 커가면서 훌륭한 품성을 키워주는 것까지, 이것은 정말 끊임없는 수련 과정이다. 책임감 있는 어머니로서, 대법을 수련하는 어머니로서, 내 아이는 대법의 ‘진선인’ 은택 속에서 성장했다.
아들이 청소년기에 영어 학교로 전학하면서 찾아온 외로움과 막막함, 영어를 못해 생긴 유급의 고충, 중학교 때의 이른 연애, 록 음악에 대한 열정, 흡연 시도 등, 보통 부모라면 머리를 싸맬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대법제자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아이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이끌어야지, 절대 화내지 말고 지적하지 말며 폭발하지 말자!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아이와 함께 요동치는 청춘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이것이 정말 어렵고 어려웠다. 중학생인 아들이 연애를 시작한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방에서 담배 냄새가 났을 때, 여자친구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거의 참지 못하고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냉정하자! 냉정하자! 냉정하자! 법공부하자, 법공부하자. 대법 안에서 반드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매번 대법의 법리가 내 마음속의 분노를 식혀주고 이성과 평온으로 돌아오게 해줬다.
나는 해냈다. 대법을 수련하는 엄마의 인내심 있는 교육 속에서 아들은 이른 연애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더 이상 담배에 손대지 않았으며, 점차 록 음악과도 멀어졌고, 순조롭게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아들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저에게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신 적이 없어. 엄마는 내 가장 좋은 친구야.”
모든 아이가 게임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아이가 사춘기에 반항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아이가 빨리 부모를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아이는 지금 우리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묻고, 오늘 있었던 기쁘거나 속상한 일을 이야기해준다. 자신의 부모, 특히 엄마가 평생의 친구이며,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는 친구이고, 어떤 잘못과 단점 앞에서도 지적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법은 만물을 소리 없이 적시는 봄비와 같아서,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하기만 하면 사부님은 무수히 많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다.
시어머니로서
아들이 자라 결혼했다.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인 며느리를 진심으로 내 딸처럼 대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선함은 꾸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법의 가르침 아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다른 성씨를 가진 ‘딸’에게 나는 아들에게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전통문화를 가르쳐주고, 숙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함께 쇼핑하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사줬으며,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를 헤아렸다. 가정 안에서 항상 며느리의 감정을 보호하고 며느리의 위상을 높여줬다. 8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자신에게 시어머니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가르쳐준 친정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가르쳐준 시어머니 대응법들은 쓸 곳이 없어요. 우리 시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어머니예요.”
며느리의 친구들도 며느리가 친정어머니보다 나와 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고민과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나에게 전한다. 나는 며느리에게 울타리이고 버팀목이며 좋은 스승이자 친구이다. 며느리는 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며느리가 성장하는 데 있어 본보기가 됐다.
내 서랍장 안에는 며느리가 우리 곁을 떠나 자기들이 사는 도시로 돌아갈 때마다 써두고 간 편지들이 가득 차 있으며, 편지마다 감사와 사랑이 넘쳐난다.
우리는 당신이 진선인을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꾸밀 수 없는 것은 가족 앞에서의 모습이다. 늘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는 모든 집착이 낱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집 안에서 늘 심성을 닦을 수 있다면 밖에서 친구, 동료, 이웃 등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를 처리하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항상 남을 위해 생각한다는 전제 아래, 접해온 친구들은 모두 당신이 다정하다고 느끼고, 동료들은 당신의 바르고 선한 기운을 느끼며, 이웃은 당신이 가족에게 효도하고 세심하며 이웃에게도 친절하다는 것을 안다.
대법제자가 무엇을 바라느냐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이 이 세상에 아직 정법(正法)이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진선인’을 수련하는 착한 사람들이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맑은 흐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품성인 ‘진선인’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당신이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이것이 재난을 복으로 바꾸고 흉한 일을 길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진선인’이라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모두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희망한다!
대법제자가 건네주는 진상 자료를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우리는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접할 수 있는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달라. 그것이 당신이 선량함과 진실함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천지 사이에서 당신 자신을 위해 크나큰 존엄함을 새겨놓는 일이 된다.
눈과 얼음은 이미 녹아내렸고 온갖 꽃들이 곧 활짝 피어날 것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봄날에 반드시 당신의 모습이 있기를 소망한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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