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그 순간 우리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흘렀다

—사부님의 94년 제5기 광저우 설법반을 회상하며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4년 12월 21일부터 28일까지 나는 다행히 광저우 제5기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수련생들의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설법반을 8일로 줄이셨는데, 보통 1기 반의 기간은 10일이었으니 8일이 가장 짧은 것이었다. 사부님의 공법 설법반인 만큼 수련생들의 몸에 많은 것을 넣어주셔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그보다 더 짧으면 수련생들의 몸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전에 어머니는 이미 세 차례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해 큰 도움을 받으셨고, 여러 번 나에게도 참가하도록 권유하셨지만 나는 매번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미뤄왔다.

그 당시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학교를 나와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니 오랫동안 얽매여 있던 학교생활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어른으로서 사회에 나와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 가득했다. 당시 중국은 점차 개방하고 국제 사회와 접촉하기 시작하던 때였으며 온갖 문화와 정보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정보 대폭발’의 시대라 불리던 그때, 거리에는 홍콩과 대만의 유행가요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화제는 온통 어떻게 장사해서 돈을 버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담배와 술을 배우고 술자리 예법과 인간관계 맺는 법 등을 연구하며 세상에 푹 빠져들었다.

이번에 이 설법반이 사부님의 국내 마지막 설법이 될 것이며 이후에는 더 이상 국내에서 설법반을 열지 않으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부님께서 이미 해외 설법 초청장을 받으셔서 곧 출국하실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설법반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30년 전 중국은 교통이 매우 낙후돼 있었고 대부분의 운수가 도로에 의존하고 있었다. 편의를 위해 수련생들이 함께 현지에서 소형 승합차를 빌려 출발지에서 광저우까지 직행하기로 했다. 차에는 두 명의 기사가 교대로 운전하며 밤낮없이 달렸다. 떠날 때 우리 북방 지방의 날씨는 이미 얼어붙을 듯 추웠고 눈이 쌓인 빙천설지였으며 도로도 눈이 얼어 꽤 미끄러운 상태였다. 다들 가장 두꺼운 옷을 껴입었다. 버스는 작고 낡았으며 히터도 잘 되지 않아 차 안이 매우 추웠다. 전세 차량이라 모두 매우 빡빡하게 앉아 심각한 초과 탑승 상태였고, 나와 또 다른 수련생은 차 문 바로 옆 직사각형 공구함 위에 앉았다. 얼마나 비좁았냐 하면, 자리에 앉으면 서로 몸이 바짝 붙어 어깨를 앞뒤로 엇갈리게 해야만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 발을 차 바닥에 평평하게 놓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북방의 작은 현에서 출발해 며칠 밤낮을 달렸다. 중간에 숙박하지 않았고 낮에는 길가 식당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거나 집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끓여 먹었으며, 밤에는 차에 앉은 채로 잠을 잤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출발했는데, 출발하기 전에 담배를 꽤 많이 챙겨 길에서 피우려 했다. 그런데 다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같은 차에 탄 사람들이 이미 수련을 시작해 담배를 끊었고 차 안에서는 피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 내려 밥을 먹을 때마다 재빨리 한 대씩 피웠다. 수련생들은 나의 모습을 너그럽게 봐줬으며, 때로는 웃으며 바라봐서 나도 멋쩍었다. 같은 차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 두 명도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업을 해서 꽤 잘됐고 어느 정도 재력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길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광저우에 도착한 후 우리는 행사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텔에 묵었다. 설법을 들으러 갈 때마다 함께 약속해 같이 가고 같이 돌아오며 길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산책도 하고 쇼핑몰도 돌아다녔다. 난생처음 찾은 남방의 대도시 광저우에서 아름다운 야경과 번화함을 만끽했다.

제5기 반은 광저우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매우 큰 체육관이었다. 당시 들은 바로는 6~8천명의 수련생이 참가했다고 한다. 체육장 안에 다 앉을 수 없어 체육관 바깥에 여러 대의 TV 스크린을 설치해 사부님의 설법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하실 때 종이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놓으신 다음 설법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넓은 행사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매우 조용했고 모두들 정신을 집중해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한번은 수업 전에 사부님께서 행사장 정문을 통해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홀로 걸어오셨는데 짙은 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를 입으시고 자태가 위엄이 있으셨으며, 미소를 머금으시고 발걸음이 가벼우셨다. 수련생들이 따라가려면 종종걸음을 쳐야 할 정도였다.

8일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몸이 정화돼 제비처럼 가벼워지고 걸을 때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인생관이 바뀌기 시작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담배 맛도 없어져 담배를 끊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행사장을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때 사부님께서 강단을 내려오셔서 행사장을 한 바퀴 걸어 도시는 것이 보였다. 두 팔을 높이 올리시고 걸으시면서 큰 폭으로 수인(手印)을 맺으셨다. 나는 사부님의 손동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강력한 에너지가 체육장 전체에 가득 퍼지는 것이 느껴졌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강력한 에너지의 충격파가 모든 수련생을 뒤덮었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저 이런 표면적인 느낌만 받았을 뿐이었지만, 그 순간 눈물이 비처럼 흘러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다.

남자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나는 그 순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얼른 수건을 꺼냈지만 금세 다 젖어버렸다. 억누를 수가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강한 감동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명백한 일면이 사부님께서 주신 것을 보고 느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었다.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즉시 멋쩍은 생각이 들었고 체면을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좌우의 수련생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들 말없이 체육관을 한참 벗어난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방금 우리 다 울었네요.”

세월이 흘러 함께했던 수련생들과는 오랜 세월 연락이 끊겼지만 그들의 모습과 웃음소리는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맺은 소중한 우정으로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것이다. 우리 모두 잘 수련해 평온한 날에 다시 만나 함께 앉아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나처럼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했던 수련생들도 펜을 들어 이 신성하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기록해 주기를 바란다. 함께 이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증언하자. 세상 사람들이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지어낸 유언비어와 오해를 씻어내고 사부님과 대법의 명예를 회복하자!

 

원문발표: 2026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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