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지금은 이미 50대가 됐다. 되돌아보면 법을 얻은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이란 시간이 마치 한순간처럼 느껴진다. 나는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에게 두 차례 박해를 당했고 거의 10년을 감옥이라는 어둠 속에서 보냈다. 이 길을 걸어오는 동안 여러 번 넘어지고 부딪혔지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오늘도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다.
아래에서는 내가 법을 외운 몇 가지 단계와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1. 초기 법 암기
나는 학창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기억력이 좋아서 암기도 빠른 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1994년에 창춘의 수련생들이 법을 외워 법공부 때 책을 보지 않고도 한 사람이 한 단락을 외우면 다음 사람이 이어 외운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법을 외우고 싶었다. 기억력이 좋으니 이 보배로운 책을 반드시 외울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외우기 시작하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매번 첫 페이지부터 외우기 시작하는데 네 번째 소제목인 ‘기공(氣功)은 사전문화(史前文化)다’에 이르면 익숙하지 않아졌다. 매번 첫 페이지부터 다시 시작하다 보니 제1강의 앞 세 소제목만 가장 익숙해졌는데 반복 횟수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몇 번 외우다가 중단하게 됐는데 법을 외우려면 제1강부터 제9강까지 전부 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학창 시절에 외우던 것과 이렇게 다른 건지, 왜 이리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단락은 어느 정도 외웠다 싶어도 며칠 지나면 다시 잊어버렸다. 나는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가로막혀 결국 법 암기를 중단하고 통독으로 바꿨다.
2. 감옥에서 법 암기로 정념을 굳건히 하다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 나는 법을 꾸준히 외우는 것에 의지해 정념을 굳게 지켜내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토록 사악한 환경 속에서 감옥 관계자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며 수련자의 정진 의지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장시간 강제 노동을 시키니 하루가 끝나면 수련에 대해 생각할 기력조차 없었고 매일 팽이처럼 쉴 틈 없이 돌아야 했다. 나는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해야 했다. 그래서 먼저 노동 참여를 거부하고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때 나는 “정념 법력으로 요귀 소굴 때려 부수네”(홍음2-포위 토벌)라는 법을 떠올렸다. 비록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이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의 계략을 역이용)의 법리를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에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가까운 거리에서 정념을 발하여 사악한 것을 제거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발정념을 하는 것 외에는 법을 외우는 데 집중했다.
감옥 안에서 사부님의 경문이 내게 전달됐을 때 나는 다른 수련생들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에는 이불 속에서 법을 외우고 베껴 쓰며 매일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법을 머릿속에 담아두면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생각을 조금도 느슨하게 할 수 없었다. 법의 소중함을 알았고 집에 있을 때 정성껏 법을 배우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됐다. 법을 안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법을 배워도 진정으로 얻지 못했고 착실한 수련이 없었다. 일에만 바쁘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사악에 그렇게 오랜 세월 박해를 당했다고 느꼈다.
나는 먼저 ‘홍음’을 외우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외운 적이 있었지만 일부는 완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목차 순서대로 외웠다. 하루에 5수씩 반복해서 외우고 다음 날 다시 5수를 더 외운 뒤 그 10수를 이어서 외웠다.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계속해 나가면서 ‘홍음’의 72수 시를 모두 외우게 됐다. 마치 책을 머릿속에 인쇄해 놓은 것처럼 원하면 언제든지 외울 수 있게 됐다.
매일 아침 생산 작업장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악당이 죄수들을 착취해 고된 노동을 시켰기에 낮에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고 정해진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밤에는 ‘판자에 앉기’라는 체벌을 받아야 했다. 나는 노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려 했지만 나는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박해에 저항하는 것이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환경이 매우 시끄러웠기에 소리를 내어 외웠다. 때로는 외우다 보면 주변 환경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감옥이라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주변 사람과 일들이 나와 분리된 듯했고 몸은 강대한 에너지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그때는 ‘홍음’부터 ‘홍음4’까지 매우 익숙하게 외워 매일 한 번씩 외울 수 있었다. 다만 ‘홍음3’의 노래 부분은 반복 횟수가 적어 익숙하지 않았다.
법을 많이 외울수록 정념은 더욱 강해졌다. 이후 나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고자 했다. 감옥에 갇힌 것은 구세력이 강요한 것이지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가야 했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비록 감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7일만 굶어도 생명이 위험해지는데 나는 14일 동안 물도 음식도 먹지 않았다. 겉으로는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었지만 나는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연화해주신 가상이었다. 병원 검사에서 신장 괴사 판정이 나왔고 곧 병보석으로 풀려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악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약물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나는 주사를 맞지 않으려 했고 맞으면 바늘을 뽑아버렸다. 몇 번이나 그렇게 하자 그들은 내 손발을 침대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때 나는 ‘주사를 맞으면 끝이다’라고만 생각했을 뿐 공능을 사용해 약물을 가해자에게 되돌려 보내지는 못했다. 그 한 일념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는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수련한다. 반드시 자신의 사상을 잘 지켜봐야 한다. 어떤 사상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붙잡고 더 깊이 찾아봐야 한다. 그 뒤에는 반드시 어떤 집착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상이 매우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정신과 물질은 하나이기에 이런 순간적인 사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넘기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게 된다. 다만 자신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것을 반드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두 번의 박해 모두에서 심각한 병업 고비가 나타났다. 고문으로 인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 있어야 했고 군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괴롭힘도 당했는데 이것 역시 견디기 매우 힘들었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 피부가 짓무르기까지 했다. 또 ‘감시 역할’을 맡은 수감자들이 일부러 나를 괴롭히며 화장실도 못 가게 했는데 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세면도 하지 못하게 했고 말로 계속 자극했다. 나는 장기간 박해를 당하면서 계속 혈변을 보게 됐고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면 많은 피를 쏟았다. 이후 검사에서 심각한 빈혈이 나왔고 얼굴은 누렇게 떴으며 걸을 때는 벽을 짚어야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 주시는 과정이라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사악이 내가 방심한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강한 정념을 내보냈다. ‘내 몸은 내가 주관한다. 내 공간장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공간에서 내 몸을 박해하는 그 영체를 해체하라. 즉시 내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멈춰라!’ 그 후 정법구결을 외우며 ‘멸(滅)’이라는 한 글자에 집중했고 의념은 매우 강력했다. 그렇게 30분 동안 정념을 발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갔을 때 출혈이 멈춰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두 번의 박해 모두 이런 정념으로 사악이 내 육체를 박해하는 것을 해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법을 외운 것이 나에게 가져다준 정념이었다. 만약 사상이 바르게 돌아가지 않으면 사악이 틈을 탄다. 하지만 법 위에 서면 그 사악은 아주 미미해져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눌러버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신통을 부여하셨으니 평소에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이것 또한 신사신법의 표현이다.
감옥에서는 모두가 노동에 참여해야 했지만 나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자 감옥 측은 두 사람을 붙여 나를 감시하며 ‘전향’시키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결국 그들은 나를 전향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몰래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펜과 종이를 주어 경문을 베껴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나는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이 나를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산에 지장이 있다고 느꼈다. 감옥 측은 나를 노동시키기 위해 체격이 크고 험상궂은 수감자를 시켜 나를 때리게 했다. 처음에는 감시 카메라가 보이는 곳에서 나를 때리다가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 내 머리를 철제 상자에 부딪히게 하고 신발을 벗어 얼굴을 때렸다. 나는 맞으면서도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계속해서 외쳤다. 머리는 찢어졌고 몸은 온통 멍이 들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자 근무 중이던 감옥경찰이 와서 이를 제지했다. 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데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법을 외우고 베껴 쓰는 것을 통해 정념이 강화됐는데 법을 많이 외울수록 정념은 더 강해졌다. 만약 법의 지도가 없었다면 이 과정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정념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우며 자신을 법 속에 녹여 넣으려 했다. 머릿속에 빈틈을 주지 않기 위해 법을 외우거나 발정념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옥경찰은 물품 구매를 통해 나를 괴롭히려 했지만 나는 감옥에서 파는 음식은 사지 않고 감옥에서 제공하는 식사만 먹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는 더 힘드셨고 종종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셨다. 나의 자원은 곧 대법의 자원이기 때문에 감옥 음식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낭비할 수 없었다. 감옥에서 주는 대로 먹었고 그것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을 먹어도 다 비슷하게 느껴지고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도 없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많이 옅어져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됐다.
감옥 측은 가족을 이용해 나를 압박하려 했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자주 면회 오지 말고 반년에 한 번만 오라고 했다. 나는 계속 법을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이 면회 올 때마다 ‘책을 보라’고 당부했다. 아들은 법을 배우라는 뜻임을 이해했다. 그동안 사부님께서 줄곧 아들을 지켜주셔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도 매우 우수해 대학에서 전공 전체 1등을 했고 대학원에도 추천으로 진학했다.
어느 날 감옥경찰이 내 경문을 찾아내 나를 독방에 보름 동안 가두었다. 감옥경찰 과장은 누가 경문을 줬는지 물었지만 나는 당연히 협조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계속 독방에 가두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속으로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독방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보름이 지나자 그들은 나를 다시 작업장으로 돌려보냈다. 경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수련생들과 연락해 계속 법을 베껴 쓰고 외웠다. 석방되기 전날까지도 여전히 법을 외우고 있었다.
3. 법을 외우는 방법을 바꾸다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여전히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고 싶었다. 오직 법만이 사악을 깨뜨릴 수 있고 오직 법만이 정념을 굳건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부터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전법륜’을 외우겠다고 생각했다.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는 경험을 나누는 것을 보고 ‘왜 나는 저들처럼 끝까지 꾸준히 외울 수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괴로웠다.
어느 날 명혜 라디오를 듣다가 한 수련생이 법을 외우는 방법을 나누는 것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수련생은 한 단락을 외우고 나면 바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며 앞부분을 반복하지 않고 한 단락씩 계속 이어서 외운다고 했다. 나는 그 방법을 따라 힘겹게 ‘전법륜’을 한 번 전부 외웠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마치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평소 통독할 때는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아 생각이 자주 딴 데로 흘렀고 입으로는 읽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틀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통독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법에 대한 불경이었고 그래서 법을 배워도 진정으로 얻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을 외우는 것은 달랐다. 반드시 생각을 집중해야 했고 자신의 주의식이 법을 얻도록 해야 했다. 법을 외우는 동안에는 평소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법리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 외울 때 나타났던 것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 법리를 볼 때는 기쁨이 생겼고 때로는 저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의 일깨우심에 감사드리기도 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는 교란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때로는 이런저런 일이 끼어들어 하루 이틀 법을 외우지 못하기도 했다. 원래는 하루에 한 페이지씩 외울 수 있었는데 나는 미루는 습관이 있어 스스로 하루에 한 페이지를 반드시 외우도록 규정해 두었다. 하지만 며칠 쉬면 계획이 흐트러지고 다시 맞추려면 하루에 한 페이지 반이나 두 페이지를 외워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몇 시간이나 걸리는데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 법 외우는 데 두 시간 정도밖에 쓸 수 없었다.
다른 일이 법 암기를 교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 법을 외우는 시간을 조정했다. 오전 6시 30분에 발정념을 마친 직후 그 시간에 외우기 시작했다. 그때는 머리가 맑고 연공을 마친 직후라 에너지도 충만하여 외우는 효과가 좋았다. 몇 번은 교란을 받아 먼저 다른 일을 하고 밤에 바쁜 일을 마친 뒤 외우려고 하면 졸려서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법을 외울 때 두 다리를 결가부좌하고 앉는다. 한 단락씩 외우되 긴 단락은 두 부분으로 나눈다. 소리 내어 읽으며 외우는데 한 단락이 길면 몇 부분으로 나누어 먼저 한 부분을 열 번 넘게 읽으면 쉽게 외워진다. 평소 통독한 기초가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이미 익숙해 비교적 쉽게 외워지지만 긴 단락은 한 번에 전부 외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는 보통 두 시간 넘게 법을 외운다. 그 시간 동안은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가끔 어떤 단락을 외울 때 글자를 더하거나 빠뜨리는 경우가 있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우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이 답답해지고 외우기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걷고 창밖을 바라본 뒤 다시 외운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면 ‘빨리 한 번 다 외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집착이며 법을 외우기 위해 외우는 상태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법을 외우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법과 동화되고 진정으로 자신의 주의식이 법을 얻어 자신을 법 속에 녹여 넣기 위함이다. 빨리 외우려는 집착을 인식한 후에는 속도를 늦추고 법의 내포를 하나하나 깊이 체득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4. 수련생들과 법 암기 팀을 만들어 함께 제고하다
나는 법을 외우는 데서 단맛을 느끼게 됐고 문제가 생길 때면 사부님의 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외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련생들끼리 서로 배우고 수련을 비교하면 쉽게 나태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법공부팀에 가서 법을 배웠는데 한 수련생에게 법을 외우고 싶은지 물으며 함께 외우자고 했다. 그 수련생은 외우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수련생에게도 함께 외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고 그 수련생도 법을 외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에 3명으로 구성된 법 암기 팀을 만들었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 두 시간 넘게 법을 외웠다. 먼저 15분 동안 발정념을 하고 ‘홍음6’의 시 한 편을 외웠는데 미리 집에서 예습을 해왔다. 한 단락의 시가 너무 길면 두 부분으로 나누고 더 길면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모두 매우 경건하게 결가부좌를 하고 몸을 바르게 유지했다. 우리는 원을 이루어 앉아 함께 ‘홍음’을 읽었는데 사부님의 아름다운 시를 읽다 보면 온몸의 세포가 모두 법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한 단락을 열 번 넘게 읽으면 자연스럽게 외워졌고 미리 예습을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그런 다음 한 사람씩 따로 외웠고 각자 두 번씩 외운 뒤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에는 시 전체를 완전히 두 번 외웠다. 그리고 다음에 외울 시를 두 번 읽었다. 이어서 ‘전법륜’을 외웠는데 ‘전법륜’도 같은 방법으로 외웠다. 이 두 시간 동안 수련생들은 거의 중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았고 계속 결가부좌 상태를 유지했으며 그 공간은 정말로 매우 바른 분위기였다.
이후 두 명의 수련생이 더 우리 팀에 참여하게 되어 다섯 명이 됐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내게 남을 얕보는 마음이 있음이 드러났다. 나는 Z 수련생을 얕보았는데 매번 법을 외울 때 그녀가 가장 느렸기 때문이다. 이는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예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번 다 외웠는데 그녀는 외우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리 예습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늘 시간이 없다고 하며 얼마나 바쁜지를 강조했다. 몇 번을 말해도 같은 이유로 답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고 수련생들이 집에서 더 많이 예습하고 더 많이 외우길 바랐다. 또 계산해 보니 이 속도로는 ‘전법륜’을 한 번 외우는 데 몇 년이 걸릴 것 같았다. 명혜 라디오에서 어떤 수련생들은 일주일에 여러 번 외우며 매우 정진하여 1년 남짓 만에 ‘전법륜’을 한 번 외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수련생들이 더 빨리 외우길 바랐는데 이것 역시 ‘추구하는 마음’, 속도를 추구하는 마음이었다. 예전에 나 혼자 외울 때도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을 대충 처리하려는 공산당 당문화의 영향이었으며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조급하게 공을 빨리 이루려는 사람에 속했다.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마음도 드러났다. Z의 모습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나의 집착을 보게 하신 것이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Z를 돕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타인을 위하는 경지로 수련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얕본다는 이유로 거의 그녀를 이 팀에서 밀어낼 뻔했다.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배척했고 그녀가 정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좋지 않은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을 찾아내어 사상을 바로잡았고 스스로 Z의 집을 찾아가 함께 예습하고 함께 법을 배우고 외웠다. 지금은 Z도 집에서 스스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큰 변화를 보였는데 몸에 있던 큰 상처가 아물었고 법을 읽는 속도와 억양도 안정됐다.
나는 모든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기를 바란다. 법을 외우면 많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을 외우면 자신의 주의식이 법을 얻게 된다는 점, 즉 진정으로 자신이 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들은 법을 외우는 것이 시간을 낭비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어떤 수련생은 법을 여러 번 외웠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 결국 병업으로 갔지 않느냐’고 말한다. 사실 법을 외운다고 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을 외우는 것은 하나의 법공부 방법일 뿐이며 통독과 마찬가지로 매일 조금씩 외우면서 꾸준히 이어가면 반드시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얻게 된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는 고생이 따르고 때로는 사상의 교란이 있어 너무 어렵다고 느끼며 통독으로 바꾸고 싶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계속 외워야 한다. 이것은 우주의 대법이며 천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명혜 라디오의 ‘전통문화’ 코너 ‘무일재(無逸齋)의 하루’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희황제가 자식 교육을 매우 엄격하게 하여 황자들에게 책을 100번 외우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미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 보배로운 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겠는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신다. 속인들은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10년 동안 고생하며 공부한다. 우리는 정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회는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반드시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배워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하실 때마다 법공부를 강조하셨다. 우리는 정말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현 단계에서의 나의 얕은 인식일 뿐이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24/50905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4/24/50905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