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외우며 착실히 수련하는 법을 배웠다

글/ 산시(山西)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대법을 접했습니다. 그때는 열 살도 안 됐을 때라 주위 가족들이 대법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그저 신기하게만 여겼습니다. 1999년 중공의 박해가 시작됐을 때 저 역시 악당의 거짓말에 깊이 세뇌됐고, 가족들이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은 탓에 201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정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9월, 경제 불황으로 회사 업무가 취소되면서 해고됐습니다. 사실 진짜 해고되기 전 사람 마음으로는 내심 해고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독신이라 별다른 재정적 부담이 없었고, 해고 보상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이면 속인들이 말하는 소위 ‘탕핑(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지냄)’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마음속에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어 직장에 나가지 않고 전업으로 수련하겠다는 사람 마음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막상 집에 돌아온 후 처음에는 계획했던 소위 ‘전업 수련’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출근하지 않아도 돼 시간이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에 자신을 방임했습니다.

법을 외우며 착실히 수련하는 법을 배우다

이후 명혜망에서 수련생의 법을 외우는 수련교류 문장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법을 외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느꼈고,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돌파할 수 있겠다고 여겨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법을 통독하는 것과는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독할 때는 입에 익은 몇몇 단어와 문장은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아주 여러 번 보았고 전체적인 표면적 의미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구체적인 글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 법을 외울 때는 반복해서 한 글자 한 글자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이해한 뒤, 단락 속 매 문장의 뜻과 위아래 문장의 관계를 다시 이해해야 했습니다. 글자와 구두점을 모두 명확히 보고 이해한 후에야 전체 단락을 외우려 시도했습니다. 비록 처음에 외우는 내용은 익숙해서 비교적 빨리 외웠지만 대법 법리가 주는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게 쉽지 않음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의 깊은 내포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점차 법을 외우는 고비도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조급한 마음이었습니다. 때로는 한 단락의 법을 반복해서 읽고 반복해서 이해했는데도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것 같았고, 심지어 예전에 비슷한 길이의 단락을 외울 때보다 2~3배의 시간을 썼는데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글자를 빼먹거나 틀리기 일쑤였고, 마음속으로는 당일 설정해 둔 법 암기 목표를 완수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속으로 조급해질수록 더욱 외워지지 않았고, 외워지지 않을수록 더 조급해졌습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 잠시 멈추고 쉬면서 내면이 평온해지고 마음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외우려 시도하면 서서히 외워졌습니다. 여러 번 이런 상황이 나타난 뒤에야 저는 자신이 너무 조급하고 법을 외우는 분량에 너무 집착해 스스로 설정한 수량 목표를 너무 중시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법을 얻기 위해 법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소위 분량을 채우기 위해 법을 외웠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조급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매일의 법 암기 목표를 설정하긴 했지만, 분량에 얽매이지 않고 법공부를 해 법을 얻기 위해 법을 외웠더니 조급함 때문에 법을 외우지 못하는 상태는 기본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또 하나는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단어로 표현하시는 것을 접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수련인(修煉人)’과 ‘연공인(煉功人)’ 등입니다. 또한 대법의 문장 문법과 속인의 문법이 크게 차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법을 외울 때 단어를 섞어 기억하거나 문법적 표현이 자신이 배운 논리와 맞지 않아 오랫동안 외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심지어 저는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마음과 원망심까지 생겨났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부님께서 법을 외우는 것을 통해 저의 이런 속인의 규범을 대법 위에 두는 잘못된 관념을 제거해 주심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속인의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법을 얻을 수 없고,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법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수시로 대법의 법리가 머릿속에 나타나는 신성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그때면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감격하며 대법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때는 한 단락의 법을 여러 번 외워 다 숙지했다고 느꼈는데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대법과 제가 외운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자세히 대조해 보면 아마 ‘~의(的)’ 자가 하나 더 들어갔거나 빠진 문제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다시 자세히 법을 읽어보면 홀연히 이 글자의 중요성과 이 한 구절 법의 더욱 깊은 법리를 깨닫게 됐습니다. 때로는 사부님께서 적절한 방언으로 설법 내용을 묘사하신 것에 충격을 받고 기뻐하며, 사부님께서 쓰신 어휘가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고 정확한지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법에서 묘사한 정경이 곧바로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또 때로는 대법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으며, 사부님께서 이토록 자비롭고 이토록 위대하시며 제자들에게 이토록 간절하게 가르침을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근 두 달의 시간을 거쳐 저는 전법륜에 대한 첫 번째 암기를 완성했습니다. 전법륜의 마지막 단락의 법을 다 외운 후, 내면에서 비할 데 없이 신성한 느낌이 솟아올랐습니다. 저같이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렸습니다. 이전에 저도 대법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우주 최고 특성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 사람의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할 줄 몰랐고 갈등에 부딪히면 여전히 속인의 이익을 고려했으며, 수많은 좋지 않은 생각과 집착을 의식하지 못했고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수련해 버려야 하는지는 더더욱 몰랐습니다. 법을 외운 후, 저는 그런 사상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고 능동적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부정할 수 있었으며, 이런 좋지 않은 사상을 붙잡아 그 뒤에 어떤 좋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대법에 대조해 능동적으로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수련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제가 진정으로 대법에 들어왔다고 느꼈습니다.

안으로 찾고 마음을 다해 연공하며 발정념하다

연공 면에서 저는 줄곧 잘하지 못했습니다. 안일을 추구하고 고생을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에 이끌려, 시간이 비교적 짧고 난이도가 낮다고 느껴지는 제1, 3, 4장 공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 마음으로 어쨌든 매일 연공하고 있다고 여겼고, “시간이 있으면 많이 연마하고 시간이 없으면 적게 연마하며”(전법륜법해)라는 말씀을 인용해 자신의 집착심에 대한 핑계를 찾았습니다. 어떤 대법제자가 책만 보고 연공은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며 자신이 그들보다 훨씬 낫고 적어도 매일 세 장의 공법은 연마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당시에는 ‘이것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 대법은 어떻게 요구하는가, 정진하는 수련생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다해 법을 외우고 법공부를 한 뒤, 저는 자신이 사람 마음으로 대법을 이해하고 사람 마음으로 연공 문제를 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비록 세 장의 공법을 연마했어도 많은 경우 형식을 차렸을 뿐 조용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연공하지 않았으며, 매일의 연공을 속인 중의 임무로 여기고 완수했음을 발견했습니다. 정말로 속인이 체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연공할 때 머릿속은 온통 속인의 일로 가득 차 있었고 스스로 이런 속인의 잡념을 능동적으로 배제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이런 잡념을 따라 계속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사지가 비록 동작을 하고 있었지만 사상은 아예 연공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공부를 할 때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해야 하며, 최소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사부님과 법을 공경해야 함을 생각하니, 연공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다섯 장 공법 역시 대법의 일부분이 아닙니까? 마음을 조용히 하지 않고 어떻게 연공을 잘할 수 있으며, 그것 역시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사상이 아예 자신의 연공에 있지 않은데 그럼 누가 연마하는 것이며, 헛수고한 것이 아닙니까? 이를 깨달은 후 저는 연공할 때 사상 속의 잡념을 능동적으로 배척했습니다. 속인이 형식을 차리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되며 주의식(主意識)을 사부님의 연공 구령과 연공 음악에 집중했습니다. 점차 연공할 때 머릿속의 잡념이 훨씬 적어졌고,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제가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 마치 달걀 껍데기 속에 있는 것같이 미묘하게 입정(入靜)하는 상태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발정념에 관해서도 저는 줄곧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자신이 닫힌 채 수련하다 보니, 수련생들이 교류 문장에 쓴 발정념할 때의 격렬한 정사(正邪) 대전을 보고는 늘 사람 마음으로 자신이 발정념할 때의 위력을 체험해 보려 했습니다. 사람 마음으로 체험하려 할수록 더욱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점차 발정념하는 일에 나태해졌습니다. 특히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는 발정념 시간이 거의 속인의 퇴근 및 식사 시간과 겹쳐서, 종종 발정념할 때 속인의 일을 하러 가곤 했습니다.

최근 한동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외우고 법공부를 하면서, 많은 수련생이 교류 문장에서 발정념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연공인(煉功人)을 두고 말하면 사람의 의념이 사람의 공능을 지휘해 일을 하나”(전법륜)라는 이 한 구절 법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를 얻게 됐고, 발정념이 바로 수련인이 공능과 신통을 운용할 때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았습니다. 또한 ‘정념(正念)’에 대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인식을 갖게 됐고,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부여하신 능력이며 신통을 운용해 법을 바로잡고 악을 제거하도록 제자에게 부여하신 법력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발정념을 할 때는 반드시 정념을 내보내야 하고 마음이 반드시 순수해야 하며, 오직 정념이어야만 신통과 공능을 운용할 때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보내는 것이 정념이 아니고 사상 속에 온갖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신통을 운용해 악을 제거하는 작용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쁜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저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발정념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여전히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보지는 못하지만 발정념을 할 때 자신이 에너지에 감싸이는 그 아름답고 장엄한 상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 중 하나인 발정념은 그 중요성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발정념 시간과 속인의 일을 어떻게 균형 맞출 것인지가, 수련인이 대법의 위치를 어떻게 놓는지에 대한 고비이자 사실상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체현임을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네 번의 정시 발정념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며, 동시에 다른 공간을 볼 수 있든 없든, 자신이 발정념하는 위력을 체험할 수 있든 없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법이므로 반드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정으로 정념을 내보내야 합니다!

이 기간의 진정한 수련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결코 평온하고 좋은 시절 속에서 자신이 이런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고 저런 사람 마음이 없어졌다고 사람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갈등 속에서, 이익 앞에서, 사람 마음과 관념 앞에서 어떻게 참된 자아와 거짓된 자아를 똑똑히 분간하는가,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할 수 있는가, 수련인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큰절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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