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루(路) 아주머니 댁에서 시간제 도우미로 일한 지 벌써 거의 3년이 다 돼 간다. 작년에는 아이가 대학원 진학 시험을 준비하게 돼 집에서 밥을 해줘야 했기에 잠시 아주머니 댁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루 아주머니는 자녀의 시험이 끝나면 꼭 다시 와달라며 계속 부탁했다. 그녀는 월급도 올려주겠다며 “다시는 당신 같은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시험 마지막 날 아침, 루 아주머니가 몸이 불편하다며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있는지 전화로 물었다. 나는 “아이가 오늘 시험이라 점심을 차려줘야 합니다. 만약 아주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해 아이 밥을 거르게 되고 시험에 지장을 줄까 봐 걱정됩니다. 아드님이 모시고 가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서둘러 “아이고 미안합니다. 아이가 오늘 시험이라는 걸 깜빡했네요. 아들에게 전화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도 별생각 없이 아이의 점심을 준비했다.
오후 5시가 넘어 아이의 시험이 모두 끝났다. 저녁에 루 아주머니에게 몸 상태를 묻는 전화를 걸었더니, 그녀는 병원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고 이미 입원해 치료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제때 병원에 가서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치지 않았고, 스스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현재는 후기 치료를 하며 관찰 중이라고 했다.
우리집은 병원과 가까워서 정념(正念)을 발한 뒤 병원에 가서 그녀를 뵙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정성껏 외우라고 당부하려 했다. 평소 그녀의 집에서 일할 때 나는 자주 그녀에게 대법의 신기하고 초범적인 면과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려줬다. 그녀는 파룬궁을 매우 인정하며, 예전에는 파룬궁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지만 나와 접촉한 2년 동안 자신이 변했고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늘 좋은 사람이 돼서 나중에 나와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했다.[현재 그녀는 이미 대법서적 ‘전법륜(轉法輪)’을 두 번째 읽고 있다.]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교수이고, 딸과 사위는 싱가포르에 있으며 사위는 고위 관리다. 하지만 그들은 파룬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매우 단편적이었으며, 관련 문제를 감히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그녀의 집에 일하러 갔을 때 ‘기왕 인연이 닿았으니 반드시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겠다. 집을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게 치울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진상을 깨닫고 구원받게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보통 시간제 도우미의 업무 시간은 반나절이며 청소와 식사 준비를 한다. 나는 그녀의 집을 우리집처럼 여겨 게으름 피우지 않고 미루거나 대충 넘기지 않았으며, 구석구석 청소했다. 할 일이 없으면 찾아서라도 했고, 주방을 완전히 새롭게 단장했으며, 벽과 천장에도 새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해줬다. 매일 오전 4시간을 매우 알차게 보내면서도 한 번도 대가를 따지지 않았다.
나는 루 아주머니를 내 친가족처럼 여겨 먹고 입고 쓰는 것 중에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 조금씩 가져다드렸다. 그녀는 자주 감동하며 “친자식도 당신처럼 이렇게 세심하지 않은데, 내가 80여 세에 어떻게 이런 복이 있어서 당신을 만났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너무 좋다며 이런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칭찬했다.
그녀의 자녀들이 돌아와 집안의 변화를 보고는 모두 놀라며 “이건 도우미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늘 나에게 돈과 물건을 더 주려 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하며 “대법은 나에게 누구에게나 잘 대하고 곳곳에서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그저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대법의 요구에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그들은 “당신은 이미 훌륭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 가족을 위해 해준 모든 일에 매우 감동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손자는 할머니에게 “꼭 아주머니에게 잘 대해주셔야 합니다. 아주머니는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들은 나를 믿고 신뢰하며 인정했다.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을 때 그들은 모두 내 말을 믿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다.
딸과 사위는 매년 두 번 귀국하는데, 올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루 아주머니가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 딸을 어릴 때부터 산둥(山東) 할머니 댁에 보냈다가 다 커서야 데려왔기 때문에 모녀 사이가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전화 한 통만으로도 다툴 정도였다. 노인은 매우 상심해 늘 나에게 “어떻게 저런 딸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푸념했다. 그녀의 딸도 매우 실망하며 나에게 “엄마는 단 한 번도 모성애를 보여준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딸이 루 아주머니를 보러 올 때마다 아주머니는 특별히 맛있는 것을 사주지 않았지만, 아들이 오면 항상 사줬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후, 딸과 사위가 해외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루 아주머니에게 그들이 외국에서 먹을 수 없는 채소와 과일을 사자고 당부하며 함께 사러 갔다. 사 온 뒤 내가 요리를 해주면 그들은 모두 너무 맛있다고 했고, 귀국할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메뉴로 요리를 해줬다. 한 번은 그들이 돌아왔을 때 내가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을 가득 차렸더니, 루 아주머니의 딸이 감동해 눈물을 글썽이며 “이 집에서 단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너무 감동적이에요!”라고 말하며 나를 힘껏 껴안았다. 그 후 그녀와 루 아주머니의 관계는 갈수록 부드러워졌다. 모녀는 각자 나에게 내가 그 집에 온 뒤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들 각자도 변하고 있었는데 특히 루 아주머니는 참는 법을 배우고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자주 말했다. 그녀는 딸을 예전처럼 미워하지 않고, 늘 딸과 다투지 않고 나를 본받아 누구에게나 잘 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본래 아이가 대학원 시험을 끝내면 일을 나가지 않고 수련에 시간을 더 많이 쓸 생각이었다. 내 남편은 미용실을 직접 운영하는데, 연말이라 손님이 많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설을 앞두고 돈을 좀 더 벌고자 내가 도와주기를 바랐고 나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루 아주머니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도 내가 미용실에 도우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차마 나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하지 못했지만, 당장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몹시 초조해하는 것을 눈치챘고, 모자가 모두 애를 태우면서도 나에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이 며칠 뒤 외지 학교로 강의를 가야 해서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루 아주머니가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그의 일정도 꼬여버린 것이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므로 문제에 부딪히면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한다고 떠올렸다. 모자가 애태우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내가 가서 일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었다. 노인도 안심하고 아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도우미 일은 정말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잘할 수는 있지만 마음속에 늘 이 일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응어리가 있었다. 나는 ‘수련인에게 있어 이런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의 마음(人心)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미용실에 가는 것의 이면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과 정(情)이 있으니 이런 사람의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다짐했다.
이런 것들을 분명히 깨달은 후, 나는 서둘러 루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퇴원 후에도 예전처럼 아주머니 댁에 가서 일하겠다고 알렸다. 그녀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 다음 날 내가 병원에 다시 가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정말 큰 도움을 주셨네요. 제가 요 며칠 속이 다 타들어 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아들도 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루 아주머니에게 “예전에도 파룬궁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파룬궁에 완전히 탄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루 아주머니는 “당신이 교수 한 명을 완전히 감동시켰네요”라고 말했다.
루 아주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아주머니와 아들에게 찐빵, 만두, 국수 등 메뉴를 바꿔가며 밥을 한 끼씩 배달해 줬다. 아주머니 아들은 내가 너무 고생한다며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되니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음식을 가져갔고, 고구마를 구울 때는 병실 환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는데 환자들은 모두 매우 고마워했다.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가 4명이나 되고 간병인까지 있어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는 음식을 가져갔는데 마침 병실에 환자들만 남아있었고 한 명은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다급하게 퇴원하려는 환자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하자, 루 아주머니가 황급히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압니다. 어제저녁에 제가 이미 그 사람들에게 교육했어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라고 알려줬어요! 그들도 다 압니다.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해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도 말해줬어요. 저도 요 며칠 매일 외우고 있어요. 안 그러면 제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환자들도 다들 당신이 좋다면서 나더러 어떻게든 당신을 수양딸로 삼으라고 하네요. 아들도 당신을 완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기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했다. 기쁜 것은 이 환자들이 대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며, 비록 삼퇴는 하지 않았지만 분명 좋은 미래가 있으리라 믿는다. 감동적인 것은 루 아주머니가 이런 진심 어린 말을 해줬다는 점이다. 한 환자는 예전에 대법을 배운 적이 있으나 지금은 불교에 귀의했는데, 그녀의 딸 말로는 예전에 집에 사부님 법상(法像)이 있었다고 한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때문에 나는 그녀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고, 이 생명에 대해 대단히 큰 아쉬움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 아주머니가 퇴원했고 나는 여느 때처럼 그녀 집에 갔지만 출근은 더 일찍 하고 퇴근은 더 늦게 했다. 갓 퇴원한 첫 일주일 동안은 저녁 식사도 가서 차려드렸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괜찮아진 뒤에야 나는 정상적으로 출퇴근했다. 그녀는 내 월급을 2백 위안 올려주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내가 확실히 수고를 많이 했기에 이 돈을 받아도 마음이 편안했다.
최근에는 일이 별로 없어서 루 아주머니는 매일 밥을 다 지으면 집에 돌아가 아이 밥을 챙겨주라고 했다. 내 아이의 대학원 시험 점수가 나왔는데 합격선보다 50점이나 높게 나와 2차 시험을 기다리며 몇 달 더 집에 머물러야 하기에 나는 계속 아이 밥을 챙겨줘야 했다. 아주머니도 최근 직접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거의 매일 ‘전법륜’을 한 강씩 읽으면서 그녀 역시 대법 속에서 많은 혜택을 얻고 있다.
나는 이 돈을 너무 쉽게 받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몰라 자주 아주머니에게 필요한 과일이나 간식을 사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아들이 외지에서 돌아와 내게 감사하며 “정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를 구해 주셨으니 아주머니는 제가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별말씀을요. 저는 그저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사실 대법의 요구에 비하면 정말 한참 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눈빛에서는 존경과 감동이 묻어났다.
내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감사의 눈물,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선인(眞·善·忍)의 법리(法理)로 한 생명을 깨끗이 씻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발전할 줄 모르던 한 생명을 매번 끌어올려 새롭게 빚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2/5083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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