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도 이런 교란이 나타나는가?

—최근 현지 형세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현지 파출소 경찰들이 대법제자들의 집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그들은 문을 두드려 들어온 뒤 불법적으로 대법제자의 사진을 찍고,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대법제자를 보면 그 자리에서 대법서적을 가져가기도 한다. 정법이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왜 아직도 이런 교란이 나타나는가? 현지의 모든 대법제자는 마땅히 한번 깨달아봐야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법공부를 해오면서 정말로 법이 마음속에 들어갔는가? 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층차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관념이 바뀌었는가? 관념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을, 누구든 이 정념을 지켜낼 수 있으면, 그는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대법이 만든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각지 설법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왜 오늘날까지 우리의 일념은 사악의 악행을 제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상 속에서 ‘나가서 좀 피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가? ‘피해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사악의 안배에 순응하고 구세력이 안배한 사유 모델 속을 걷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의 정념이 아주 충족하다면 사악이 어떻게 이토록 기승을 부릴 수 있겠는가?

또한 우리는 모두 사람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경찰의 기고만장한 기세는 사실 서로 다른 층차의 구우주 생명이 관여하고 있는 표현이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눈을 늘 사람의 표면에 두지 말라. 그런 배후의 요소를 해결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형세를 변하게 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게 할 수 있다.”(각지 설법11-20년 설법)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전법륜)

우리는 구세력이 존재하더라도 대법제자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구세력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교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으로 찾아볼 때 어디가 바르지 못해 불러온 것인가? 마음속에 여전히 두려움이 존재하는가? 여전히 박해의 그림자가 있는가? 여전히 피하고 싶은가? 현지에 난공불락의 견고한 정체(整體)가 형성돼 있는가, 아니면 각자 제멋대로 하며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가?

이상은 현재의 약간의 개인적인 인식이니 수련자들이 참고하기 바라며 부족한 점은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수련자 사이의 이성적인 교류는 통상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 중의 인식이며 선의적인 교류로 함께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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