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4년에 태어났으며 2살 때부터 가족을 따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1995년에 태어났으며 3살 때부터 가족을 따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성장 과정에서 모두 사부님 법신(法身)의 세심한 수호를 깊이 체감했으며, 어리고 순결한 마음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모두 나이가 아직 어렸을 때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와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수련 환경을 잃었고 파룬따파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해외로 나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여권을 받을 수 없었기에 저희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매우 반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몰래 법공부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에게 욕을 퍼부으셨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감히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하셨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던 남편은 본심을 어기고 수련에서 멀어졌습니다. 오직 외할머니만이 방학에 그를 돌보실 때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께서는 남편이 중학교에 다닐 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파룬따파는 줄곧 저희의 마음속에 있었기에 해외에 온 후 성인이 되어 저와 남편은 각자 다시 파룬따파로 돌아가기를 선택했으며, 가족의 인도가 없는 상황에서 홀로 수련했습니다.
1. 생사의 고비
2019년 현지 청년 팀은 저와 남편을 위해 단체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환경을 개척해 주었으며, 동시에 많은 갈등도 나타났습니다. 2020년 4월, 저는 마음속에 억눌러온 원망심이 점점 많아져 더는 억누를 수 없었고 수련에서 나왔습니다. 수련을 그만둔 후 수련생을 용서하지 못했기에 저에게는 우울증 현상이 생겼으며, 자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제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남편은 저와 함께 속인 생활을 했습니다. 남편은 자주 저를 데리고 나가 놀아주었고 저는 서서히 우울함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희에게 다시 돌아와 수련하라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 자동 입력된 주소의 도시 항목에 ‘천국’이라고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지옥의 공포스러운 광경을 꿈꿨으며 암흑 속에 좋지 않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꿈속에서 제가 늙어 임종에 이르러 온몸에 업력이 가득하고 곧 낮은 층차의 생명으로 환생하게 되는 절망을 생생하게 겪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상처 입힌 수련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는 감히 나가서 단체 활동에 참가하지 못했고 단체 수련 환경을 잃었습니다. 매번 돌아오려 해도 멀리 가지 못하고 또 속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수련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2021년 3월 20일 남편은 배가 더부룩하고 불편함을 느꼈으며 먹은 것을 모두 토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매일 배가 붓고 많은 것을 먹지 못했으며 먹고 나면 곧 토했습니다. 남편은 어릴 적 목숨을 거두러 온 존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혼미한 중에 그는 사부님께서 연화좌에 앉아 날아오시는 것을 보았고,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는 깨어났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어릴 때와 같이 곧 좋아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5월이 되자 그는 반 그릇의 죽과 몇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했고 체중도 매우 빠르게 줄었기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병원 응급실로 보냈습니다.
2021년 5월 17일 의사는 남편이 장암에 걸렸으며 암이 림프로 전이되어 전신을 이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말을 매우 단정적으로 했으며 생존 기회가 없고 반복되는 화학 요법 속에서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전염병 상황 때문에 병원은 가족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전화로 이 소식을 저에게 알렸습니다. 그는 울면서 “왜 하필 나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식사를 못 하는 것이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 집에 있었으며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1년 넘게 발정념을 하지 않았으나, 어릴 때부터 수련 속에서 닦아놓은 기초가 있었기에 장시간 고도로 집중해 발정념할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3시간째가 되었을 때 저는 갑자기 저와 남편이 두 어린아이로 변해 사부님의 발아래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사부님의 발바닥만큼도 크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부처의 형상이셨으며 신체는 층층의 구름을 가로지르고 계셨습니다. 하늘은 투명하고 밝은 오렌지색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웃으시며 저희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발정념할 때 저는 또 다른 장면을 보았는데, 검은 옷을 입고 뾰족한 모자를 쓴 한 생명이 구름 속 높은 곳에서 저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전혀 자신이 없었으며 의학은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만약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 저는 아마도 응어리를 내려놓고 단체 수련 환경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전에 수련생이 저를 설득한 적이 있었으나 저는 고집스럽게 “저는 걷어차도 움직이지 않는 철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심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으며, 남편을 영영 잃을 것이 너무 두려워 오로지 이 한 길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직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수련 단체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이와 같았어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남편과 함께 가부좌를 했습니다. 1년 넘게 가부좌를 하지 않아 예전에는 1시간을 해도 아프지 않았으나 다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아팠으나 매우 편안했으며 에너지 흐름이 제 다리 위에서 한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매우 진지하게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이전에 배운 것도 모두 잊었기에 이것이 주천의 운행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매우 신기하다고 느꼈으며 공이 저의 다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와 남편은 사부님께서 저희를 구하시니 저희는 중생을 구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평소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 외에 토요일에는 함께 자동차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일요일에는 함께 나이아가라 대폭포 관광지에 가서 파룬따파를 알렸습니다.
남편은 배가 불편해 늘 더부룩함과 메스꺼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도중에 구토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주 아무것도 먹지 않고 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퍼레이드 과정에서 오후 내내 차가 흔들리는 것은 그를 매우 괴롭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몇 달 동안 한 끼도 배부르게 먹은 적이 없었으며, 대개 음식을 먹고 나면 곧 메스꺼워졌고 30분 정도 지나면 모두 토해냈습니다. 남편의 몸 상태로는 장시간 길 위에 있는 것이 고되고 피곤했습니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자료와 연꽃 수공예품을 들고 있다가 인연 있는 사람을 보면 그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생리통이 매우 심해 차를 몰고 10분 거리의 어머니 집에 가는데 도로의 흔들림 때문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퍼레이드를 위해 외진 작은 마을에 가며 길에서 5~6시간을 보내는 것을 생각하니 저는 갑자기 남편의 인내에 탄복하게 됐습니다.
일요일에 대폭포 관광지에 가서 파룬따파를 알리면 차를 타고 왕복하는 시간이 3~4시간 걸렸습니다. 남편은 수련생의 차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에 매번 길에서 메스꺼움과 구토를 억눌렀고, 관광지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토했습니다. 예전에 통통하던 남편이 뼈만 앙상하게 마른 모습을 본 일부 수련생은 충격을 받았고, 남편이 이런 상태인데도 그를 데리고 관광지에 간다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그래도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매번 차 안에서 매우 많은 소업(消業)을 하고 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매우 신기하게도 수련생의 차 안에서는 한 번도 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병원에서 돌아온 후 나타난 한 가지 기적은, 병원을 나올 때 체중이 58kg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는 먹는 양이 매우 적었고 대부분을 토해냈지만 체중을 재면 여전히 58kg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남편은 체중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는 아마 50kg까지 빠졌다가 그 다음에 다시 체중이 오르기 시작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실제로 체중을 잴 때마다 몸무게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줄어들수록 그는 더 두려워하고 집착했습니다. 남편은 7월 25일까지 버텼고 마지막으로 한 번 대폭포에 다녀왔으며, 7월 31일에는 마지막으로 자동차 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남편은 더 이상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장기간의 신체적 고통이 그의 심성과 감당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복부와 등 부위에 끊임없는 통증이 시작됐고, 밤낮으로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으며 연속으로 2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등과 복부의 통증 때문에 누워 있어도,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모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 느낌은 마치 계속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리를 영원히 내리지 않는 것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정오, 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에게 발정념을 해주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1시간 동안 발정념을 했고 그가 잠든 것을 보고 옆방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깨어나 저를 불러 “정말 신기해요, 내가 어떻게 잠들었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딱 1시간 발정념을 했고 당신도 1시간 잤어요. 발정념을 마치고 제가 막 나가자마자 당신이 깨어난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할 때 고대 의상을 입고 얼굴이 푸르게 질린 긴 머리 여자 귀신이 계속 그를 물속으로 끌어가려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 귀신은 없애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1시간을 발정념했지만 그녀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8월 초가 되자 남편에게 의학적인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거의 매 끼니 식사 후 화장실에 가서 토해야 했던 상태에서 마른 구역질만 하다가 결국 구토가 멈췄습니다. 이는 진짜 암 환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토는 암으로 인해 위가 역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남편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할 변화였습니다. 그는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됐고 얼굴에도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해외로 오셨습니다. 격리를 마친 뒤 시어머니는 저와 함께 남편을 돌보셨습니다. 8월 18일 그날, 남편은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1, 3, 4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저는 1시간 동안 포륜을 해도 몸이 떨리지 않지만, 그는 한 세트 공법을 할 때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1공법을 처음 할 때 그의 몸은 떨렸고 연달아 이어서 할 수 없어 잠시 쉬어야 두 번째, 세 번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습니다. 제3장 공법을 할 때는 눈앞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계속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4장 공법을 할 때는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끝까지 마쳤습니다. 마른 몸이 그렇게 심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며 저는 진심으로 “정말 존경해요. 당신은 정말 잘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마워요, 나는 내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통증으로 밤을 새우지 않고 밤새 푹 잠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와 시어머니는 밤에 사악한 요소의 교란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고 교대로 그에게 발정념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3~4시간은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진짜 암 환자의 경우 암세포가 신경으로 퍼지기 때문에 암성 통증은 완화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진통제를 먹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도 의학적 기적입니다. 의사들은 암 환자에게 모르핀을 복용하게 해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환자는 약물 의존성이 생기고 결국에는 모르핀조차 통증을 완화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은 어떤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또한 한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갑자기 숨이 막혀 호흡이 곤란해졌습니다. 시어머니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계속 발정념을 하셨습니다. 새벽 4시에 시어머니가 주무시러 가시자 제가 이어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남편의 호흡 소리는 점차 급박함에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다음 날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남편이 저에게 알려주기를, 한 목소리가 병원에 가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병원에 가서 무엇을 하겠어, 의사는 날 도와줄 수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부님께 청했습니다. 신사신법(信師信法)을 시험하는 이 고비에서 생각 하나의 차이로 생사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 전까지 남편은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이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남편은 마침내 8월 22일에 저와 시어머니와 함께 지역의 대형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몸 상태 때문에 저는 차량으로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가 막 차에 오르자마자 몸이 매우 불편해졌고 통증을 참기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티며 퍼레이드 전 과정을 완수했습니다.
9월 2일이 되자 남편은 또 한 번 생사의 시험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기운이 빠지고 어지러웠으며 일어서기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내가 화장실 안에서 쓰러지면 머리를 다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것이 사부님과 법을 믿는지에 대한 시험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네요, 그 안에서 쓰러지면 정말 곤란하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뇌졸중이 있던 수련생의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그때 그가 단지 일어서기만 하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남편 역시 그와 같은 고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오직 시어머니만이 깨달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격려해 그 고비를 넘고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사부님의 음성으로 ‘짜이(在, 있다)’라는 한 글자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남편에게 “사부님께서 옆에 계신다고 하셨어. 일어나기만 하면 이 고비를 넘을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여러 번 몸부림쳤고 매번 매우 힘들었으며 결국 포기하고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말기 암 환자라면 장기간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이전까지 제 남편은 계속 스스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밤에 제가 남편에게 발정념을 할 때 갑자기 금부처 한 분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제 남편의 형상이었지만 지금의 남편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고 이목구비도 남편보다 더 섬세하고 잘생겼습니다. 저는 그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9월 4일 새벽 4시, 남편은 갑자기 저에게 “나는 곧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그는 시어머니께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전 10시, 저는 남편과 함께 누워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의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서 저는 그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조용히 들었습니다. …… 제가 눈을 떴을 때, 방금 전까지 숨소리가 들리던 남편이 갑자기 숨을 멈춘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겨우 25살인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밖으로 뛰어나가 시어머니를 불러 남편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말하며 응급 전화를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전화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당황한 가운데 응급 전화의 지시에 따라 남편을 바닥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와 시어머니는 처음에 사부님께 구원을 청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먼저 응급 전화를 생각했습니다. 구조대원이 도착한 뒤에야 저희는 사부님을 떠올렸습니다. 사부님과 법을 믿는지에 대한 시험에서 저와 시어머니는 이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여러 날이 지난 후에야 이것이 시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저희 세 사람 공동의 고비였지만 결국 저희 셋 모두 넘지 못했습니다.
2. 기적
남편의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저는 많은 마음의 응어리가 남았습니다. 남편 생애의 마지막 1년은 저 때문에 그가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집착으로 그의 수련 환경을 망쳤지만 그는 오히려 저와 시어머니를 다시 수련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저는 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작년에 내가 수련에서 나가지 않았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게다가 남편은 돌아온 뒤 고작 4개월만 수련했는데, 그렇다면 속인이 암에 걸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부님께서는 과연 그를 대법제자로 인정하셨을까?’ 남편이 떠난 첫날, 저는 한 어린 남자아이가 주황색 하늘의 한 공간에서 다른 두 아이와 함께 아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눈을 감았지만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한 아이의 눈 한 쌍이 나타났는데 매우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하게 저를 바라보더니 이내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생명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흰자위가 없는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얼굴도 검었으며 털이 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하고 너무나 사악하게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제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려고 저를 이끌고 연공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시시각각 남편 생각뿐이었습니다. 포륜을 할 때 갑자기 한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할 때는 내 생각을 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매 순간 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제5장 공법을 할 때 갑자기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한 소녀가 울고 있었고 그녀 뒤에는 그녀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소년이 서 있었는데, 표정이 매우 엄숙해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소년은 소녀에게 “너는 오빠에 대한 정이 너무 무겁다. 오빠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너는 하늘로 돌아가 오빠 곁으로 갈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금의 인연 관계는 아직 너에게 말해줄 수 없다. 나중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정에 관해 저는 한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늘 고등학교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여겼습니다. 이과생이었기에 반에 여학생이 몇 명 되지 않았고, 그래서 종종 저 혼자 많은 남학생과 함께 놀러 다녔으며 그들은 저를 잘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의 장면들이 눈앞에 하나하나 펼쳐지는 것을 보았고 그 과정에서 분홍색의 끈적끈적한 물질이 많이 분비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우 역겨웠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그토록 고등학교를 그리워했던 것은 정의 각도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그러나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그때 사실은 좋지 않은 물질을 그렇게 많이 쌓았던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늘 정을 기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남편의 추도식에는 저의 어머니, 시어머니, 수련생들, 그리고 남편의 동료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흘렸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속인 속 형상으로 나타나 계속 웃으며 관 위의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에게 “헤헤, 난 이미 그 몸 안에 있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치 달걀 껍질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매우 편안했으며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이상하게 느꼈습니다. 그는 저기서 멀쩡한데 왜 슬퍼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그렇게 고요한 사상 경지에 수련해 도달한 것이 아니기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법공부할 때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을 보게 됐습니다. “만약 당신들이라면, 아주 평범한 사람이 그들과 연결된다면 당신의 사상은 단번에 즉시 무엇이든 다 사라지게 되며 모든 속인의 사상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상은 바로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 당신은 아마 일순간에 아주 높은 경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당신이 수련한 것이 아니다.”(미국서부법회 설법) 저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의 사상이 남편과 연결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른 공간의 진상을 분명히 알았기에 속인 속의 현실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한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저와 남편, 아버지(수련생), 시어머니가 모두 아주 높은 건물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2층에서 사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꼭대기 층으로 가서 살아요”라고 했고 그는 곧 옥상 층으로 옮겨갔습니다. 깨어난 뒤 저는 한 소년과 소녀가 마치 영화를 보듯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방관자가 지켜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남편이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저와 시어머니는 에포크타임스 사무실에 가서 단체 아침 연공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의 환경은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신이 둥글게 둘러앉아 계신 모습을 보았고 금빛이 번쩍였습니다. 포륜을 할 때 네 가지 동작 모두에서 매우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침 연공에 간 첫날, 예전에 저를 수련에서 밀어내게 했던 그 청년 수련생의 어머니를 마주치게 됐습니다. 저는 자극을 받아 사상업이 저를 통제하며 우울한 생각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또 꿈을 꿨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대법제자(大法弟子)’라는 네 글자 뒤에 담긴 내포를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사부님과 남편이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제 남편은 대법제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렇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당신은 리훙쯔 사부님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렇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밤 한 수련생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교류를 하셨습니다. 통화하던 중 저는 무심코 책상 위에 놓인 남편의 사진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근시라 그때 안경을 벗고 있었고 그렇게 먼 거리에서는 사진 속 이목구비를 분명히 볼 수 없어야 했는데 저는 아주 또렷하게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사진이 정말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 입, 머리 모양, 옷차림, 나이가 끊임없이 변하면서 한 장면 한 장면 그가 생생세세 서로 다른 역할로 환생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 한 얼굴만 알아보았는데,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중년의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 생에서는 그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다른 생에서는 저와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는 생생세세 저의 가족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 그의 사진은 지금의 모습, 한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아주 즐겁게 웃고 있었습니다. 원래 사진 속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마지막의 그 웃음은 이를 드러내지 않았고 안경도 쓰지 않았으며 머리 둘레에는 하얀 빛이 한 겹 둘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와 얼굴은 더 작아졌고 눈은 더 둥글고 더 충만해졌으며 선도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저는 그때 옆방으로 달려가 시어머니를 불러와 보게 하려 했지만 시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세 번을 불렀지만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다음 날에는 시어머니도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셨고 저 역시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왜 웃을 때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사부님도 웃으실 때 이를 드러내지 않으시잖니. 아마 신은 그런 상태일지도 모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 사부님과 남편이 또 함께 나타났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너는 죽으면 안 된다. 너는 계속 수련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저는 꿈에서 남편과 제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은 저와 다른 반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반은 내일 하루 휴가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반은 왜 내일도 수업을 해야 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수련에서 저와 남편의 차이는 제가 그보다 하루 더 수업을 듣는 것뿐인 것 같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련생이 남편을 션윈 단체 채팅방에서 삭제했습니다. 그 행동은 또다시 저의 사상업을 자극해 우울한 상태를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그 행동은 마치 남편이 정말로 떠났다는 것을 저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통제할 수 없이 온몸이 떨리고 몸이 차가워져서 한 오후 내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하나의 꿈을 꿨습니다. 꿈은 낮에 겪은 일처럼 또렷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현실 속의 할머니가 아니라 다른 할머니셨습니다. 저희는 광활한 설원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눈밭에는 잠든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기에 매우 무서웠습니다. 저와 할머니는 힘겹게 마을까지 갔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으로 만든 작은 집들에 살고 있었습니다. 눈집은 아주 작고 낮아서 저희는 안에서 앉을 수만 있고 설 수는 없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남편이 떠난 일로 슬퍼하다가 할머니가 주무시는 사이 몰래 숯을 피웠습니다. 짙은 유독가스 냄새가 났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깨어나 얼음으로 제가 피운 숯을 꺼버리셨습니다. 그때는 전쟁 시대였고 갑자기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당시 깨어 있던 사람은 저와 할머니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흰 이불 한 채를 들고 눈집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몸을 편 채 이불을 덮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곧 저희를 덮어버렸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마을의 다른 사람들을 모두 죽였고 저와 할머니만 살아남았습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그곳에 숨어 있다가 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감히 나와 계속 도망쳤습니다. 이후 한 군사 건물로 도망쳐 한쪽 구석에서 몰래 밤을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잠드셨고 그때 저의 원신(元神)이 갑자기 어떤 힘에 이끌려 몸을 떠나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남편의 세계로 인도됐는데, 그의 세계는 푸른빛이었고 반짝였으며 마치 물 분자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제 몸으로 돌아오기 전 저는 밖에서 제 몸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 후 깨어났습니다.
이 기묘한 장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 신비한 힘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때는 새벽 1시였고 시어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몇 번을 불렀지만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매우 흥분하여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은 정말 신이에요, 정말 신이에요! 제가 그의 세계에 갔어요, 제가 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제가 꿈에서 간 그곳은 시베리아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저는 시베리아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고 혹시 사하라 사막처럼 더운 곳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로 눈 덮인 땅이고 호랑이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위험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생생세세 저희를 돌보고 계셨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혹시 제가 오성이 너무 낮아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게 되는 건가요? 오성이 좋은 사람은 이런 걸 보지 않는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늘 당신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계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분발하여 뒤쫓아 갈 것입니다. 남편이 생명을 바쳐 제가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오게 된 것을 저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3. 수행
사부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기적은 한동안 지난 뒤 점점 드물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수련에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기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난이 저에게 너무 컸기에 만약 이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우울증에 휘둘려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제가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설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것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저의 사상업은 매우 무거웠고 반복해서 솟아났습니다. 저는 힘에 부쳤고 때때로 스스로의 뇌를 통제하지 못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상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제가 했던 그 부정적인 말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뇌와 사상을 통제하려면 주의식(主意識)이 굳건한 의지로 그 부정적인 생각을 배척해야 합니다. 저에게 있어 이 시기의 수련 과정은 곧 저의 정념과 그 부정적인 사상 사이의 대항 과정이었습니다.
저의 사상업은 주로 원망심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매번 제가 원망심을 제거했고 수련생에 대한 원망이 없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저희 집의 이 사적인 일은 지역에서 널리 퍼졌고 저의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사실 저의 한 관념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수련생들이 때로는 속인보다도 선하지 못하게 보이는지, 심지어 어떤 행동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관념이었습니다. 2020년에 제가 수련에서 나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수련생들의 선하지 못해 보이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대법제자가 과연 좋은 사람인지 의심하게 됐고, 그로 인해 수련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습니다. 저에게 원망을 일으켰던 모든 일은 사실 예전에 넘지 못했던 고비였고, 눈덩이처럼 굴러 다시 한번 저로 하여금 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관념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제가 억울한 쪽이고 수련생은 저를 해친 쪽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평과 원망의 태도로 이런 일들을 대할 때 사실 저 역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고 수련하는 사람답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수련생과 갈등이 생긴 이유는 저는 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수련생은 수련생의 관점에서 생각했으며, 쌍방 모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고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갈등이 나타날 때 그것을 사부님께서 제자를 관할하고 계신다는 증명으로 여겼습니다. 갈등이 나타났다는 것은 저도 사부님의 제자이고 상대도 사부님의 제자라는 증명입니다. 사부님께서 서로를 제자로 인정하시고 심성을 수련하도록 안배하셨다면 저는 수련생을 깔보는 태도로 이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저의 원망심 가운데 한 부분이 의존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에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저는 지름길을 찾고 싶어 했고 수련생이 저에게 답을 알려주기를 바랐습니다. 저의 수련 결심이 충분히 굳건하지 못했기에 늘 수련생이 저를 붙들어 한 번 이끌어 주기를 의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수련생의 표현이 제 마음속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심지어 정반대로 나아갈 때 저는 곧 원망을 품게 됐습니다. 저의 의존심의 근원은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저희에게 법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지만 저는 늘 밖으로 수련생의 표현을 바라보았습니다. 원망심이 생긴 전제하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향해 안으로 찾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강한 쟁투심도 드러났습니다. 원망은 자신이 억울하고 분노할 때 생겨납니다. 그러나 억울함은 한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합니다. 저는 이런 일들의 표현에서 제가 옳고 수련생이 틀렸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옳고 그름이라는 관념을 내려놓고 다시 바라보니, 갈등이 생길 때 법에 입각하지 못한 행동이 나타난 것은 법공부가 적었기 때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는 사람의 행동과 사상이 많아지지만 본인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합니다. 오직 법을 많이 배워야만 말이 법 위에서의 교류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법의 기준으로 수련생이 드러낸 사람의 행동을 가늠했고, 그것이 제 마음의 기대와 큰 차이를 보이자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망심을 닦아 버리려면 오직 법리로 엄격히 자신을 가늠해야지, 한순간도 법리를 남을 재는 데 써서는 안 됩니다.
밤에 반쯤 잠들고 반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저는 사부님께 분명히 여쭤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한 힘이 저의 원신을 사부님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노란 연공복을 입으시고 조용히 저를 바라보셨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보고 매우 격동되어 질문하려던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순간 그 힘이 저의 원신을 거대한 붉은 용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위험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엄마! 엄마!”라고 외쳤고 그러자 곧 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깨어난 뒤 저는 이 체험이 무엇을 일깨우려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신이 신사신법 이 고비를 또 넘지 못했고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수련도 착실하지 못해 위험을 만났을 때 사부님을 부르거나 발정념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책을 펼치자 마침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사람은 아주 심하게 맞아 너무 아플 때면 입으로 오히려 “엄마야! 엄마야!” 라고 소리치고 있다. 완전히 이 박해를 속인의 사람에 대한 박해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럴 때 내가 그를 보호한다면 이런 구세력 그것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구 우주의 이치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그것이 우주의 유일한 이치라고 여길 뿐 새로운 우주를 보지 못한다. 그것들은 “이것이 당신의 제자입니까? 당신이 보십시오. 그가 당신을 사부로 여깁니까? 그가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깁니까? 그에게 정념이 있습니까? 그가 생사를 내려놓았습니까? 그가 금강부동(金剛不動)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럴 때에 사부는 그것들의 질책에 정말로 할 말이 없다.”(북미 순회 설법)
이 한 단락 법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 원망심의 근원은 그 붉은 용이며 그것이 이 마음을 강화하고 있었지 진정한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생생세세의 경험 때문에 원망심이 이렇게 강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소녀 시절에 나쁜 사람들에 의해 집안 재산을 빼앗기고 살해되어 집 뒤뜰에 묻힌 적도 있었습니다. 또 사회가 매우 보수적이던 시대에 약혼자에게 버림받아 평생 외롭게 늙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시고 사부님께 도움을 구하게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청했습니다. 이 원망심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저는 처음으로 마음속 깊이 후회했습니다. 자신이 한 청년 수련생을 용서하지 못해 10여 년의 수련을 스스로 포기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반드시 끝까지 수련해 나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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