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29년 동안 수련해 온 대법제자입니다. 파란만장한 정법 수련의 여정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수련하며 깨달은 소중한 경험을 정리해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 고난 속에서도 언제나 길은 있었다
저는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을 하러 갔다가 직장에서 불법적으로 해고됐습니다. 남편은 직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저와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2003년 가을,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제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집도, 일자리도 없었고 전남편은 이미 재혼한 상태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아빠와 살고 있었죠.
갈 곳이 없던 저는 친척집 단층 주택에 임시로 머물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척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면서 제게 가구와 침대, 소파 등을 남겨주었습니다. 비록 빈털터리였지만 덕분에 최소한의 살림은 갖추고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한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막 돌아온 제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법공부였습니다. 거의 3년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을 만나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새 경문을 구하고 정법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어느 장날, 공장 사무원을 따라 장터에 나갔다가 우연히 수련생 슈전(秀珍, 가명)을 만났습니다. 슈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의 최근 설법들을 모두 구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부님의 안배임을 느꼈습니다.
그 공장은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았는데, 당시 제게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결국 지인의 소개로 직장을 옮겨 대형 슈퍼마켓의 판촉사원으로 취직했습니다. 당시에는 슈퍼마켓이 흔치 않아 현 전체에 두세 곳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설 명절이 다가오자 손님이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물건을 채우느라 거의 뛰다시피 일했습니다.
어느 날 음료 코너에서 일하다가 예전 직장 동료였던 중링(鍾玲, 가명)을 만났습니다. 제가 멀리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입을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당신 혹시 ○○씨 아니에요?” 제가 맞다고 하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99년에 당신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매 맞아 죽었다고 했거든요. 보안과장이 그렇게 말해서 온 직원이 다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당신처럼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당했나 싶어 다들 마음 아파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네요!”
저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했군요! 당시 직장에서 저를 불법 해고하고는 부모님 댁이며 동생 집까지 이 잡듯 뒤지고 다녔거든요. 저를 찾지 못하니까 그런 끔찍한 거짓말을 지어낸 모양이네요!”
저는 그 기회에 중국공산당(중공)이 꾸며낸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의 진상과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이라는 점, 그리고 파룬따파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매장이 시끄러워 그녀의 귀에 대고 크게 말했습니다. “꼭 기억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요! 정말 좋네요!”라고 말하더니 제게 건강을 잘 챙기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2. 대법이 열어준 지혜
슈퍼마켓 일은 고되고 바빴습니다. 휴일도 없이 온종일 근무해야 했기에 법공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고 연공도 거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월급이 제때 나와 조금씩 저축할 수 있었습니다. 3년쯤 지났을 때 친척의 집이 철거되면서 이사를 해야 했는데, 마침 모아둔 돈으로 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일하다가 수련생 옌옌(燕燕, 가명)을 만났습니다. 제 사정을 들은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 법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잖아요. 세 가지 일을 못 하면 수련생이라고 할 수 없죠. 차라리 우리 남동생이 운영하는 공장에 오는 게 어때요? 월급은 지금보다 적겠지만 일이 여유로워서 법공부와 연공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출소 후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생계에 매달리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생활비와 방세 걱정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찾아온 옌옌이 말했습니다. “마침 통계 담당자가 그만뒀어요. 이번에 오면 현장 일이 아니라 사무실 일이라 아주 편할 거예요.” 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답했습니다. “업종이 다르면 넘기 어려운 벽이 있잖아요. 통계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옌옌은 좋은 기회라며 숙소까지 제공되니 잘 생각해보라고 저를 격려했습니다.
그녀가 돌아간 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다. 대법제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법을 통해 사람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하여 진정한 천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지 않았나.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가.’ 게다가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혼자 단층집에 사는 것보다 경비가 있는 공장 숙소가 더 안전할 것 같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안배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옌옌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만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로 겨우 자판을 눌러가며 통계 업무를 했지만, 반년도 채 안 돼 공장에서 가장 먼저 자판을 보지 않고 치는 블라인드 타이핑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숫자와 기호가 머릿속에 들어온 듯 서류만 보고도 빠르게 전산 처리를 해냈습니다.
나중에는 엑셀 표 작업도 익혀 업무 효율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정말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오래 일한 회계사도 제 타이핑 실력을 구경하러 오곤 했습니다. 옌옌의 말대로 일이 힘들지 않아 남는 시간에는 마음껏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법을 배우며 ‘업종이 다르면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는 식의 생각들이 모두 버려야 할 인간의 관념임을 깨달았습니다.
혼자 숙소를 쓰게 되니 수련 환경도 좋아졌습니다. 근처 수련생의 도움으로 숙소에 ‘작은 꽃’을 피워 《명혜주간》과 진상 지폐를 인쇄하고 진상 CD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명혜망의 지침에 따라 단선으로 연락하며 자료를 만들어 전달했습니다. 저희는 찰떡궁합처럼 잘 맞았고, 이 소중한 자료점은 제가 그 도시를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3. 옛 직장에서 서류를 찾고 불법 벌금을 돌려받다
베이징 청원 사건 당시 전남편이 저 몰래 ‘보증금’ 5000위안을 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출소 후 딸을 통해 영수증을 받았는데, 직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돈은 직장 내부 은행에 입금돼 있었습니다. 당시 제겐 한 푼도 없었기에 그 5000위안은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은 민영기업이라 사회보험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작업반장과 출납 직원이 사회보험료를 내러 가곤 했는데, 하루는 그들에게 몇 년이나 부었냐고 물었습니다. 5년 됐다는 대답에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예전 직장에서 낸 것만 11년이나 되는데, 저보다 훨씬 부지런하시네요.” 그러자 작업반장이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도 계속 내야지 왜 안 내고 있어요? 할 일은 해야죠!”
그 말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할 일은 해야죠!’라는 말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주시는 힌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미납된 보험료를 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옛 직장에서 인사 서류를 찾아와야 했습니다. 2000년 당시에 서류를 찾으려 했지만, 호적을 받아줄 곳이 없어 포기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공의 박해로 인해 파룬궁수련생의 호적을 받아주는 주민센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4월,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든 김에 다시 한번 옛 직장을 찾아갔습니다. 노무과장은 예전에 얼굴만 알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상을 아는 생명의 기쁨임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예전 모습 그대로네요. 하나도 안 변했어요. 파룬궁이 정말 좋긴 좋은가 봐요. 당시 직장에서 어떻게 해고됐고, 보안과에서 세 번이나 어떻게 도망치셨어요? 당신을 놓치는 바람에 감시하던 직원이 징계를 받고 길거리 청소부로 좌천됐었죠. 다들 당신이 도망친 걸 기뻐하며 진짜 신선 같다고 했어요….”
세월이 흘러 저조차 가물가물한 일들을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대법제자의 행보를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부서마다 돌아다니며 도장을 받아야 한다며 층수와 방 번호까지 친절히 적어주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가자 한 직원이 박수를 치며 환영해주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직도 수련하세요?” 제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자기 누나 내외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을 한다며 반가워했습니다. 99년 ‘7·20’ 탄압 전에 저희 연공장에서 함께 수련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잘됐네요! 그럼 당신도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는 했겠네요”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앙을 꼭 지키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는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도 대법이 얼마나 좋은지 목소리를 높여 칭찬했습니다.
호적 문제도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이미 직장 단체 호적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노동조합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담당 직원은 “신앙이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정말 좋은 거죠”라며 웃어주었습니다. 박해의 위압감 대신 평화롭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분위기였습니다.
재무과에서도 아는 과장을 만나 순조롭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평직원이라 간부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지만, 박해로 인해 ‘유명인’이 된 덕분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불법 벌금 영수증을 보여주자 과장은 담당자를 불러 장부를 찾게 했습니다. 15~16년이나 지난 일이라 장부를 찾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과장은 사장님께 건의해 이자까지 쳐주고 싶다며 진심 어린 호의를 보였습니다. 비록 이자는 받지 못했지만 그들의 진심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억울하게 뺏겼던 5000위안을 되돌려 받았고, 사악한 경제적 박해를 타파했습니다. 열흘도 채 안 돼 제 개인 서류도 모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의 여정을 돌아보니 한 걸음 한 걸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곳에서 주거 환경도 좋아진 만큼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앞으로 착실한 수련에 전념하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2/5073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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