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업을 씻어내고 금체(金體)를 이루다

글/ 산시(山西)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올해 일흔다섯 살이고,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의 대법 박해로 인해 수련 환경을 잃었고,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법리 이해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탓에 십여 년간 대법을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저를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전반생

저는 아주 어릴 때, 학교 구경도 해보기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위로는 공부하는 큰언니와 몸이 불편한 둘째 언니가 있었고, 아래로는 철없는 동생 넷이 줄줄이 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온종일 뼈 빠지게 농사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셨습니다. 저는 한창 학교에 다닐 나이였지만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문턱 한번 밟아보지 못했고, 책 한 줄 읽어본 적 없으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제 이름 석 자조차 쓸 줄 모르는, 그야말로 철저한 문맹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만 11살도 안 된 어린 저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이 지워졌습니다. 생전 어머니가 하시던 집안일이 몽땅 어린 제 어깨로 넘어온 것입니다. 매일 7~8명 식구의 밥을 짓고, 집안 청소에 빨래, 닭 무리와 돼지 두 마리, 당나귀 한 마리와 소 한 마리까지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밤이 깊으면 식구들 옷을 해 입히기 위해 실을 자아야 했는데, 매일 밤늦게까지 물레를 돌리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온 식구가 입는 옷과 신발은 모두 제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열흘이나 보름 간격으로 곡식을 손질하는 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곡식에 섞인 작은 돌멩이를 일일이 골라낸 뒤, 당나귀를 매어 맷돌로 갈아야 했습니다. 밀가루를 빻을 때마다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찌꺼기를 골라내고 쓸어담고 체로 치는 와중에, 당나귀가 꾀를 부리거나 몰래 곡식을 먹지 않나 감시하며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식구가 워낙 많다 보니 그렇게 힘들게 빻은 밀가루도 며칠 못 가 바닥이 났고, 거의 보름마다 이 고된 작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축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아버지가 농사일에 바쁘시니 소와 당나귀 먹일 풀을 베는 건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들에 나가 수십 근이나 되는 풀을 베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어깨에 짊어지고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집으로 날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지어 먹고 나면 작두로 풀을 썰어야 했고, 새벽녘에는 아버지가 날이 밝자마자 밭으로 가축을 몰고 나가실 수 있도록 미리 여물을 먹여야 했습니다.

이처럼 과중한 집안일로 저는 매일 숨 쉴 틈 없이 지쳤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남의 집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남몰래 흘린 쓴 눈물이 얼마인지 셀 수도 없습니다. 해가 뜨고 지고, 해가 바뀌어도 매일 반복되는 고된 삶 속에서 제 어린 시절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어른이 된 후, 아버지는 당신 뜻대로 저를 이웃 마을에 사는 외지 출신 집안으로 시집보냈습니다. 속으로는 백 번도 더 싫었지만 매일 굳은 표정으로 웃음기 하나 없는 엄한 아버지 앞에서 감히 싫은 내색 한번 못 하고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따랐습니다. 결혼 후, 친정 동생들 밥 챙겨 줄 사람이 없고 마을에 학교도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동생들을 모두 데려와 제가 시집간 마을 학교에 다니게 했습니다. 이 일로 시어머니와 남편 식구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 삶은 너무나 고달팠습니다! 그저 내 부지런한 두 손으로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밤낮없이 식초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식초를 빚는 일은 무척 고됐습니다. 매일 물을 스무 짐 넘게 길어 날랐고, 밤낮 가리지 않고 몇 시간마다 식초 지게미를 저어줘야 해서 옷 입은 채로 쪽잠을 잤지, 편하게 통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순곡 식초를 만들어내면, 여름에는 땡볕 아래 비 오듯 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얼음길을 헤치며 자전거에 식초를 싣고 거리의 상점들을 돌며 배달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가정을 위해 이렇게 피땀 흘려 헌신했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엄하고 혹독했으며, 남편은 성격이 괴팍하고 난폭해서 조금만 수틀리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무슨 일이든 상의하는 법이 없었고 매일 말다툼 아니면 싸움질이라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저는 결국 40년 전, 이혼 수속을 밟고 남편과 완전히 갈라섰습니다.

이혼 후 네 아이 중 누구도 아빠와 살겠다는 아이가 없어 모두 제 품으로 왔습니다. 먹고 입는 것부터 학비까지 모든 걸 저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큰애가 겨우 14살, 막내는 7살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혼자 억척스럽게 식초 공장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그동안 전남편은 우리 모자에게 생활비 한 푼 주지 않았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다 대법을 얻는 기쁨을 누리다

오랜 세월 모진 고생을 하며 밤낮없이 몸을 혹사한 탓에 결국 제 몸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마흔다섯 살 되던 해, 자궁암 판정을 받고 성(省) 소재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퇴원할 때 의사는 당분간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파서 일을 못 하니 당장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항암 치료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날이 갈수록 병세는 악화됐습니다. 밥도 못 먹고 몸은 앙상하게 말라가는데 배만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습니다. 수술 후 1년도 채 안 돼 배가 만삭 임신부처럼 부어올라 허리를 굽힐 수도, 발을 씻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중학생인 어린 세 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들을 세상에 낳아놓고 다 키우지도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가야 하다니요.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분의 80세 된 친척 아주머니(수련생)가 놀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병색이 완연한 저를 보더니 물으셨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길래 배가 그렇게 불렀어?” 저는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자, 나랑 같이 파룬궁(法輪功) 수련하러 가자. 이 공법을 수련하면 넌 살 수 있어!” 저는 망설임 없이 “그럴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길로 며느리에게 밀가루 한 포대와 달걀 10근을 사서 보내게 하고는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저에게 연공을 가르쳐주셨고, 매일 연공이 끝나면 함께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습니다. 7일째 되던 날 아침, 일어나보니 갑자기 그토록 불룩하던 배가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제 눈을 의심하며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아! 정말로 그 큰 배가 온데간데없는 것이었습니다!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아주머니께 외쳤습니다. “아주머니, 빨리 보세요! 제가 정말 나았어요. 언제 배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싹 없어졌어요!” 아주머니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랬잖아, 파룬궁을 수련하면 좋아질 거라고. 정말이지? 열심히 수련해, 사부님께서 널 맡아주신 거야. 인연이 보통이 아니네. 겨우 며칠 만에 이렇게 큰 병이 낫다니, 정말 신기해!”

저는 아주머니 댁에서 20일간 머물며 연공 동작도 다 익히고, 아주머니의 이불 빨래도 해드리고 집안일도 도왔습니다. 아주머니 댁을 나설 때 저는 이미 병 없이 가벼운 몸을 가진 정상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와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심 없이 도와주고 고생하신 아주머니께도 감사드립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법공부 장소를 찾아가 보서(寶書)인 『전법륜(轉法輪)』을 모셔 왔습니다. 하지만 글자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라 수련생들이 책을 읽을 때 저는 뚫어지게 책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배우려는 제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과 수련생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열성적인 도움으로 저는 2년이 채 안 되어 『전법륜』 9강 전체를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깊은 뜻은 잘 몰랐지만요.

대법이 모함을 받고 수련을 떠나다

1999년 대법이 모함을 받고 사부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시자, 저와 수련생들은 대법을 수호하고 공정한 말을 전하기 위해 성(省) 정부로 향했습니다. 제 직접적인 경험으로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정부 청사 정문을 겹겹이 막아선 탓에 만나려던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집에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날이 저물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돌아온 후, 당시에는 글자만 겨우 익혔을 뿐 법의 뜻은커녕 내포는 더더욱 몰랐고 표면적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저 글자만 읽어 내려가는 수준이었기에 인생의 진정한 의미나 수련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법공부 환경과 단체 연공장이 파괴되자, 저는 무리에서 떨어진 외기러기 신세가 되어 무려 14년 동안이나 대법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이 사는 타지로 가서 임시직을 구했고, 7년 동안 일하면서 완전히 속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7년 동안은 속인 사회에 빠져 명예와 이익, 정(情)에 집착하고 안일한 생활을 탐했습니다. 마작까지 배워서 매일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때우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몸에 다시 이상이 생겼습니다.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주저앉게 된 것입니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가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비참해졌습니다.

다시 수련으로 돌아와 자비롭게 사람을 구하다

이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저를 보시고, 우연을 가장해 필연적으로 또 다른 노년의 대법제자를 보내 저를 부르셨습니다. “나랑 같이 파룬따파(法輪大法) 배우러 가요, 그럼 당신 다리도 분명히 좋아질 거예요!” 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저도 파룬궁 좋은 거 알아요! 제가 예전에 불치병을 앓다가 파룬궁 수련해서 나았거든요. 근데 어디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나요?” 70대인 그 언니는 제가 이전 수련생이라는 걸 알고는 더욱 반가워하며 서둘러 말했습니다. “묻지 말고 나만 따라와요.” 그렇게 길 잃은 탕자가 되었던 저는 다시금 사부님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잃었다가 다시 얻게 되니 수련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 만고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자도 모르고 오성(悟性)도 형편없는 저 같은 제자조차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얼마나 위대하고 친근하며 존경스러운 분이신지요!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법공부와 연공, 진상 알리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제 다리가 기적처럼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매일 새벽 3시 넘어 일어나 단체 연공을 하고, 6시에 발정념을 한 뒤 1시간 반 동안 법을 외웁니다.

저는 이제 사부님의 모든 경서를 막힘없이 통독할 수 있고, 『전법륜』은 몇 번이나 외웠습니다. 우리 법공부 모임에서 제가 책을 가장 빨리 외웁니다. 수련생들은 “학교 문턱도 안 가봤다더니, 배우자마자 읽는 게 바로 천서(天書)네요!”라며 감탄합니다. 저 역시 이번 생에 대법을 얻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 느끼며 흐뭇해합니다. 오전에는 수련생들과 나가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고, 오후에는 단체 법공부를 하며, 저녁에는 씻고 나서 법을 외우고 밤 12시 발정념을 합니다.

우리는 꽤 큰 마을을 집집이 돌며 진상 달력을 나눠주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해 사람을 구했습니다. 한번은 저와 수련생이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서는데, 현관 앞에 가기도 전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집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들 뭐 하는 거야?”라고 소리치며 다짜고짜 우리 가방을 뒤지려 했습니다. 저는 당황하지 않고 자비롭고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댁에 복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 얼굴에서 흉한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태도가 180도 바뀌더니 저와 수련생을 방으로 정중히 안내하고 자리를 권하며 물까지 대접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정중히 사양하고 두 사람이 차근차근 진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결국 온 식구가 대법의 진상을 깨닫고 삼퇴를 했습니다.

정념으로 난(難)을 대하다

법공부를 통해 제 심성(心性)도 끊임없이 향상되었습니다. 한번은 큰길을 걷는데 교통법규대로 길가에 붙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저를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피할 겨를도 없이 부딪혔는데, 운전자와 오토바이가 붕 날아가더니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운전자가 일어나 제게 다가와서는, 제가 오토바이를 망가뜨렸다며 물어내라고 막무가내로 굴었습니다. 저도 이게 무슨 영문인지 얼떨떨했는데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봐요 젊은이, 말이 안 되잖아. 자기가 과속해서 사람을 들이받아 놓고, 걸어가던 사람이 어떻게 오토바이를 들이받는단 말이요?”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지만 젊은이는 끝까지 돈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얼마면 되나요?”라고 묻자 그는 수리비로 500위안은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주머니에 그만한 돈이 없으니 우리집에 같이 가서 가져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집으로 가는데 다 와갈 무렵 그가 갑자기 “됐습니다, 안 받을래요”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오토바이 고칠 돈 없다면서요?”라고 했지만 그는 “필요 없어요”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습니다.

이 일은 제 목숨을 앗아가려던 것이었는데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 느낌도 없었습니다. 저녁에 씻을 때 보니 팔과 허벅지 바깥쪽에 시퍼런 멍이 크게 들었지만 눌러봐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은 경공(硬功)이 오토바이를 그렇게 멀리 쳐낸 것이지, 안 그랬으면 결과가 끔찍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생명을 빚진 업을 갚은 것이고, 또 심성을 시험받은 것입니다. 오토바이가 저를 들이받고도 적반하장으로 돈을 요구했지만 저는 속인과 똑같이 따지지 않고 다툼 없이 돈을 주려 했습니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과 쟁투심을 내려놓자 상대방도 돈을 뜯어내려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목 한가운데 목구멍 쪽에 호두만한 종양이 생긴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수련생이 볼 정도로 아주 뚜렷했고 가끔 불편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저는 수련 중에 업력을 삭감(소업)해야지 편안하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조금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고, 이건 분명 가상(假相)이며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 여겨 아예 무시했습니다. 매일 하던 일을 묵묵히 해나갔습니다. 이 가상이 두세 달 동안 기승을 부리더니 제가 두려워하지 않자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수련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봐야 합니다.

작년 초, 다리에 또다시 힘이 빠지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진상 알리러 나가는 것과 동공(연공 동작)을 하는 데 지장이 생겼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사람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딸은 제가 나이가 들어 골다공증이 와서 칼슘이 부족한 거라고 하며 1천 위안이 넘는 칼슘제를 사다 줬습니다. 저는 ‘매일 사람 구하러 나가야 하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도 가야 하니까 먹자, 칼슘제는 약도 아니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먹었지만 효과는커녕 상태가 더 나빠졌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시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말라)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보며 제 안의 더러운 사람 마음을 많이 찾아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생만 한 것에 대한 억울함, 언니 동생들은 다 학교에 갔는데 나만 못 간 것에 대한 질투심, 자식과 동생들에게 보답받고자 하는 마음,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 대한 원망 등등, 너무나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다 썩은 물질이었습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고생을 많이 한 것은 생생세세 빚진 업의 빚을 갚는 과정이었음을요. 금생에 대법을 얻었으니 전생의 빚쟁이들이 제 주변으로 환생해 온 것인데, 마땅히 원망 없이 기꺼이 묵묵히 헌신하며 빚을 갚아야지, 어찌 억울해하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보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좋지 못한 마음들을 찾아내어 필요 없다고 거부하고, 제거하고, 해체하고, 멸(滅)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제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저는 미련 없이 1천 위안어치 칼슘제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수련인에게 병이란 없으며 ‘안으로 찾는 것’이 바로 법보(法寶, 법력을 지닌 보물)입니다. 그날부터 다리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다시 수련생들과 함께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관(關)과 난(難)을 넘을 때마다 한 층의 하늘을 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상은 제 수련의 작은 체험입니다. 글로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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